본문내용
1. 서론
1.1. 항공 역사의 유구성
조선시대 실학자 신경준의 저서에 기록된 바에 따르면, 임진왜란 당시 정평구라는 사람이 비행기를 제작하여 군사작전용으로 사용하였다. 해당 비행기는 가죽으로 만든 북배에서 바람을 일으켜 날개를 움직이며 솔개의 날개처럼 상하로 비행하는 방식이었다. 이를 통해 당시 우리나라에서도 비행 기술이 일정 수준 발달했음을 알 수 있다. 조선 후기 학자 윤증의 후손 윤달규 또한 이러한 비차 제작법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이는 우리나라 항공사가 세계 항공사와 비교했을 때도 그 역사가 유구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실제로 연구진들이 비차의 설계도를 바탕으로 재현을 시도했으나 현대 과학으로도 구현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항공 기술은 서구보다 앞섰던 것으로 짐작되며, 이는 우리 조상들의 과학 문명이 상당히 발달했었음을 방증한다.
1.2. 한국 항공 역사의 중요성
한국의 항공 역사는 매우 유구하다고 볼 수 있다. 조선시대에 이미 비차라는 비행 장치를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어 한국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비행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이처럼 오랜 역사를 지닌 한국 항공 역사의 중요성은 크다고 할 수 있다.
첫째, 한국 항공 역사의 유구성은 한국이 단순히 수동적인 기술 수용국이 아닌, 능동적으로 비행 기술을 개발해온 국가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비차와 같은 독자적인 비행 장치의 개발은 한국의 과학 기술 수준이 상당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이는 한국이 단순히 서구 문물을 받아들이기만 한 국가가 아니라, 자체적인 기술 혁신을 거듭해온 국가라는 점을 보여준다.
둘째, 한국 항공 역사의 중요성은 항공 분야에서의 선각자들의 활약상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안창남, 신용욱, 박경원 등 한국의 독보적인 비행사들은 당대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국 항공사의 발전을 주도했다. 이들의 활약상은 한국 항공사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셋째, 한국 항공 역사의 중요성은 그것이 한국 근현대사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일제 강점기 항공 역사는 한국의 독립운동과 깊은 관련이 있으며, 해방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항공 계획은 국가 건설 과정에서의 항공 산업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이처럼 한국 항공 역사는 단순한 기술적 발전의 역사가 아니라, 한국의 근현대사와 불가분의 관계를 지니고 있다.
이와 같이 한국 항공 역사의 유구성, 선구자들의 활약, 그리고 그것과 근현대사의 연관성 등을 고려할 때, 한국 항공 역사의 중요성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2. 한국 항공 역사의 태동
2.1. 최초의 비행 시도 - 조선시대 비차
조선시대 비차
조선 후기의 실학자 신경준의 책 '차제(策車制)'에 따르면, 임진왜란 당시 김제 사람 정평구란 인물이 비행기를 제작하여 사용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정평구는 진주성이 왜군에 포위되자, 자신이 만든 비차를 타고 성 밖 30리까지 친지들을 피난시켰다.
비차의 원리는 이규경의 '비차변증설'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비차는 규모가 4인승으로 커다란 고니나 기러기의 모습과 유사하였다. 가죽으로 주름을 잡아 만든 북배(敲腹)에서 바람을 일으켜 비행하며, 날개가 돛처럼 바람을 가르며 하늘로 날아 올랐다. 이처럼 비차는 동력으로 바람을 이용하여 비행하는 원리를 가지고 있었다.
윤달규와 같은 증기의 학자들도 비차의 비법을 알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를 통해 조선시대에 이미 비행기에 대한 지식과 기술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현대 과학으로도 비차의 비행 원리를 완전히 구현해내지 못하고 있어, 그 기록이 과연 사실인지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2.2. 근대 한국 최초의 비행 시연
1913년에 일본 해군 중위인 나라하라가 50마력의 기관을 갖춘 비행기를 타고 서울 용산 연병장에서 공개 비행을 한 것이 처음이었다. 당시의 비행은 지금 보면 상당히 유치한 수준이었지만, 비행기를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는 큰 놀라움을 주었다. 이로써 1913년 전까지 우리나라에서는 비행기가 전혀 날지 않았다는 일반적인 인식을 깨뜨리게 되었다.
그 이듬해인 1914년 8월에는 다카사라는 일본 민간인이 미국의 커티스라는 복엽기로 용산에서 남대문까지 비행을 해 서울 시민을 놀라게 했다. 이는 서울 시민들이 처음으로 비행기를 보게 된 또 다른 계기가 되었다.
1917년 5월에는 서울의 여의도 비행장에서 미국인 스미스에 의하여 사상 처음으로 곡예 비행 대회가 개최되었다. 이 행사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비행기의 모습을 실제로 목격할 수 있었다.
이처럼 1913년부터 1917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우리나라에서 비행기가 처음 등장했고, 서울 시민들이 비행기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게 된 것이 근대 한국 최초의 비행 시연이라고 할 수 있다.
3. 일제강점기 항공 역사
3.1. 나라하라의 용산 상공 비행
1913년 일본 해군 중위 나라하라가 서울 용산 연병장에서 공개 비행을 하였다. 나라하라는 50마력의 기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