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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멋쟁이 의사들의 독립운동
1.1. 독립운동에 나선 의사들
19세기 말 제국주의 국가 출신의 지식인들은 자신들과 문화적, 사회적, 종교적 배경이 다른 비서구 지역에서 활동을 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이는 당시 우리나라의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그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서구 출신의 지식인들은, 선진 의학기술로 조선인의 병을 치료하며 그들에게 다가갔고, 평등사상이 담긴 자신들의 종교도 전파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의사출신 독립운동가들 대부분은 종교와 깊은 연관이 있었는데, 이는 의료분야 선교사들이 이들의 의학교육을 담당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1884년 갑신정변 당시 서양인 의사 알렌이 부상당한 민영익을 치료하면서 근대식 병원 광혜원의 설립이 추진되었다고 해석한다. 이렇게 생긴 근대식 병원은 의사출신 독립운동가들의 산실이 되었다. 책에서는 특히 10명의 주목할 만한 의사 출신 독립운동가들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그 첫 번째 인물인 몽골의 신의(神醫) 이태준은 신민회의 자매단체인 청년학우회에 가입하며 독립운동을 시작했다. 그는 중국에서 여러 동지들과 교유를 나누다 일제의 압박으로 몽골지역으로 피신했다. 몽골에서 그는 거리의 매독환자들을 치료하며 명성을 얻게 되었고, '동의의국'을 세우게 된다. 이를 통해 독립운동가들을 후원할 수 있었던 이태준은 몽골 국왕의 어의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1921년 러시아 반혁명보수파의 부대에 의해 살해당하였다. 이태준의 독립운동은 단순한 조국을 위한 항일운동을 넘어 국제친선에 이바지한 선구적인 활동이었다.
두 번째 인물인 김필순은 정미7조약으로 대한제국 군대가 강제해산될 때 조선과 일본이 충돌한 남대문 전투 현장에서 부상자들을 치료하며 조국의 현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후 그는 서간도와 몽골 근처 지역으로 이동해 '북제진료소'를 세우고 병원 수입의 대부분을 독립군 자금으로 사용했다. 그러나 1919년 9월 일본인 수련의가 준 우유를 마시고 순국하게 된다. 김필순의 죽음 이후에도 가족들은 그의 뜻을 이어 독립운동을 이어나갔다.
1.2. 의사출신 독립운동가의 활약
의사출신 독립운동가들은 당시 열악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도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했다.
이들은 서양의 의학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여 의사로 활동했지만, 동시에 민족의식을 가지고 다양한 방식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특히 당시 대부분의 의사들이 종교와 깊은 연관이 있었는데, 이는 의학교육을 담당했던 서구 출신 선교사들의 영향 때문이었다.
이들 의사출신 독립운동가들은 환자 진료와 병원 설립에 힘썼을 뿐만 아니라, 군자금 모금, 비밀 유인물 제작 및 배포, 무장 투쟁 등 다양한 방식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예를 들어 몽골의 신의로 알려진 이태준은 자신의 명성을 이용해 독립군을 지원했고, 김필순은 병원 수입금을 독립운동 자금으로 사용했다. 또한 박서양은 교육계와 의료계에서 활약하며 독립운동을 펼쳤다.
이처럼 의사출신 독립운동가들은 자신의 전문성과 사회적 지위를 활용하여 다양한 방식으로 조국 독립을 위해 노력했다. 이들의 헌신과 희생정신은 당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독립운동을 이끌어 나가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1.3. 갑신정변과 근대 병원 설립
갑신정변은 1884년 12월 4일 정변계획 주도자들의 무장봉기로 시작되었다. 이 정변의 핵심 배경에는 경복궁 개건공사와 광혜원 설립이 있었다. 당시 경복궁 개건공사를 주도한 인물은 민영익이었다. 민영익은 갑신정변으로 부상을 당하게 되었고, 서양의 신식 의술로 치료를 받게 되었다. 치료에 나선 의사가 바로 미국인 의료선교사 알렌이었다.
알렌이 민영익을 치료하면서 왕실의사와 고종의 정치고문 등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되었다. 1885년에는 왕이 개설한 한국 최초의 근대식 병원인 광혜원의 의사이자 교수로도 임명되었다. 이처럼 갑신정변에서 서양 의사의 활약은 근대식 병원 설립의 계기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광혜원은 의사출신 독립운동가의 산실이 되었다. 당시 광혜원에 근무한 의사들 중에는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광혜원에서 갖춘 의학지식과 서구적 사고방식을 바탕으로 조국의 독립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