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1. 진흙의 세계
1.1. 들어가는 글
들어가는 글이다"" 다시 한해를 마무리하는 연말이다. 이 때쯤이면 거리에는 자선냄비가 보이기 시작하고 여기저기 불우이웃을 돕는 성금모금을 시작하곤 한다. 극을 보면서 소외된 계층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내가 그들을 위해서 해 줄 수 있는 것이 무언인지에 대해서. 그리고 그들이 몸과 마음 모두 따뜻한 겨울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그들 모두가 새봄이 되면 진흙을 툭툭 털어내고 힘차게 일어나길 바란다.""
1.2. 줄거리
무대가 밝아지고 주인공인 메이는 열심히 다림질을 한다. 그리고 어딘가 모자라 보이는 남자인 로이드가 자신의 성기를 만지며 메이에게 계속해서 중얼거린다. 그들의 관계는 양남매이며 때론 사랑을 나누는 연인이기도 하다. 그들이 살고 있는 공간은 보기에도 더럽고 궁색하기만 하다. 그들이 하층민의 삶을 영위하고 있음을 전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메이는 성적으로 병을 앓고 있고 또 이로 인해 정신적인 병 또한 앓게 되는 로이드를 위해 치료를 받게 하려고 무던하게 애를 쓰던 중 헨리를 만나게 된다. 글을 읽을 줄 알고 무언가 인텔리의 분위기를 풍기는 헨리는 배우고 싶은 욕망을 강하게 갖고 있는 메이에게 있어 선망의 대상이 되고 곧 그에게 자신을 마음을 주며, 식탁에서 시작하여 침대까지 로이드의 공간을 차츰 헨리에게 내어준다.
헨리에게 자신의 공간을 빼앗기고 메이마져도 ㅃ빼앗겨 버린 로이드는 헨리와 마찰을 빚게 되고 차츰 갈등의 골이 깊어진다. 헨리가 사고로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어 로이드의 도움이 없이는 식사조차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자 두 사람의 갈등은 최고조에 이르고 둘 사이의 갈등은 메이마져도 끌어들이게 된다.
메이는 두 무능력하고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기적인 두 사람을 더 이상 책임지고 싶지도 않고 자신의 새로운 삶이 어딘가에 분홍빛으로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마침내 그들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그녀가 떠나는 것을 원치 않던 로이드에 의해 엽총에 맞아 살해되고 암전이 되며 극이 끝난다.
1.3. 현장성
연극은 어느 시대, 어느 나라의 작품을 공연하든지 간에 무대에서 공연되는 순간은 생생한 현재의 인간이며 현재의 사건으로 받아들여지는 영원한 현재성을 지닌 예술이다. 아무리 역사극을 하여도 관객은 그 인물이 겪는 사건이 오늘 바로 이 시간, 이 순간에 일어나는 것으로 받아 들여 지게 된다. 즉 현장성을 특징으로 하는 예술이다. 무대 위에서 행해지고 있는 것이 곧 진실할 수 있는 것이다. 순간 순간에 진실을 전달하여 관객의 경험을 일깨워 준다.
무대라는 것이 얼마나 솔직하고 정직한지, 배우의 연기도 중요하지만 그 배우의 인간적 매력을 보러 극장에 온다는 말도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열정을 뿜어내는 배우를 보면서 그 열정을 얻어간다고 해야할까. 혼신의 힘을 다해서 연기에 몰두하는 배우를 보고 있는 순간엔 참으로 마치 내가 그들이 되는 것이다.
연출가는 처음 극이 시작할 때 배우들이 너무 빠른 호흡으로 극을 이끌어가다가 어느 순간인가부터 호흡을 되찾기 시작했다는 말씀을 하셨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처음 극에 몰입이 안 되는 느낌이 있었다. 물론 극이 시작하면서부터 곧바로 관객이 극에 몰입을 할 수 는 없다. 왜냐면 극의 시작과 동시에 각 등장인물에 대해서 꼼꼼히 살피고 무대도, 조명도 그런 것들을 한 번씩 둘러보면 전체 극이 어떻게 전개될 지에 대해 너무 많은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새 인가 배우와 하나가 되는 느낌이 들기 시작하였다. 나의 경우는 내가 마치 메이와 로이드가 된 것처럼 극에 몰입을 했었는데. 그들의 호흡에 함께 맞추다 보니 그들의 머릿속이 복잡해지면 나의 머리도 복잡해지는 느낌이었고 그들의 답답함이 마치 나의 답답함 같이 느껴지곤 했다.
연출가의 말씀이 생각나서 마지막으로 적어 본다. "난 완벽한 무대보다는 부족한 것이 좋다. 부족한 무대는 관객이 채우는 것이다." 이는 현장성을 강조하는 연출가의 철학이 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완벽한 무대가 아닌 부족한 무대를 통해 관객이 자신만의 경험과 상상력을 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연극이 가진 현장성을 극대화하여 관객과 깊이 있게 소통할 수 있도록 하는 연출가의 의도라고 볼 수 있다.
1.4. 시각적/청각적 요소의 조화
우선 무대에서 가장 많이 눈에 뛰는 것이 바닥과 옆에 그물처럼 놓인 붉은 줄의 세트이다. 노릇노릇하게 죽어 가는 푸른 잔디, 지금껏 몇 편의 공연을 감상하면서 잔디가 있는 그런 무대는 처음이었다. 연출가께서 말씀하시기 전에 단순한 잔디가 아닌 어떤 의미가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설명을 듣고 나니 저절로 수긍이 가며 정말 독특하고 적절한 무대가 아니었는가 싶다. 밟히고 또 밟혀도 죽지 않는 질긴 생명력 그것이 메이의 세계라고, 그리고 공연이 끝날 때쯤엔 잔디가 모두 죽어있길 바란다는 설명. 그것은 아무리 삶에 대한 의지가 강하지만 언젠가는 죽음을 맞는 메이랑 너무나도 닮은 꼴이고 또한 잔디가 죽을 만큼 무대 위 배우들의 열연을 바라는 연출가의 심정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붉은 줄은 핏줄을 의미한다고 한다. 인간은 무언가 열중하고 정력을 쏟다보면 힘줄이 보이기 시작하고 절정에 다르면 아주 굵고 선명하게 그 모양을 드러낸다. 그리고 핏줄은 무언가 안타깝게 무엇을 갈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데 부족함이 없다. 하지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선의 굵기가 너무 얇고 굵기가 너무 획일적이라서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좀더 굵게 표현했으면 그리고 양쪽으로 나뉜 세트를 한쪽 방향에서 시작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