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과 서양의 헤어스타일 변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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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생성일 2024.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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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과 서양의 헤어스타일 변천사"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미용의 역사
1.1. 서론
1.2. 본론
1.2.1. 머리모양
1.2.2. 화장
1.3. 결론
1.4. 참고문헌

2. 서양 화장 변천사(1910년대~1990년대)
2.1. 서론
2.2. 본론
2.2.1. 1910년대 ~ 1930년대
2.2.2. 1940년대 ~ 1950년대
2.2.3. 1960년대 ~ 1970년대
2.2.4. 1980년대 ~ 1990년대
2.3. 결론
2.4. 참고문헌

3. 중국과 일본의 근대화
3.1. 서론
3.2. 본론
3.2.1. 일본의 근대화 과정
3.2.2. 중국의 근대화 과정
3.3. 결론

4. 참고 문헌

본문내용

1. 미용의 역사
1.1. 서론

미용이란 얼굴이나 머리 등을 아름답게 매만지는 일을 뜻한다. 흔히 이야기 하는 메이크업, 헤어 스타일링, 네일아트 등이 미용의 범주에 속한다. '"美(미)"'를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며 시대의 변화에 따라 미의 기준도 변화해왔다. 미용의 역사는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본 글에서는 크게 머리모양과 화장으로 나누어 동·서양 미용의 기원과 변천사에 대해 서술할 예정이다.


1.2. 본론
1.2.1. 머리모양

머리 모양에 있어 인류는 기후, 종교, 계층 등의 영향을 받으며 다양한 스타일을 시도해왔다. 과거의 머리 모양은 사회 계층, 경제력, 정치적 신분을 나타내는 용도로도 활용되었으며 현재와 같이 아름다움과 매력을 나타내는 용도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처음 가발이 등장한 시기는 기원전 1000년 고대 이집트로 거슬러 올라간다. 흔히 '클레오파트라'하면 생각나는 정갈한 뱅에 어깨 위치까지 곧바르게 커트한 노프렛에서 땋은 머리카락을 늘어트리는 롱 헤어까지 다양한 헤어스타일을 시도하였다. 또한 웅장하고 화려한 헤어스타일을 선호하여 금빛 헤어장식들이 수놓인 다양한 스타일의 가발을 착용하는 것을 즐겼다. 그리스·로마 시대에 와서는 구불구불한 웨이브 형식을 선호하며 불에 달구어 사용하는 인두를 이용하기도 하였다. 중세에 이르러 기혼 여성은 교회의 엄한 계율로 인해 머리쓰개로 머리를 가려야했다. 이때 베일, 모자, 후드 등이 등장하였다. 수도사들은 정수리를 기준으로 가운데 머리만을 동그랗게 밀고 다녀야했는데, 이는 현재까지도 교황이 착용하는 주케토(작고 동그란 캡)의 원형이 되었다. 르네상스 시대에 접어들면서 자유롭고 화려하며 개성을 추구하는 다양한 헤어스타일이 등장한다. 보석이 달린 화려한 액세서리를 즐겨하며 이때 헤어피스가 상용화되기 시작한다. 화려한 헤어스타일의 절정은 로코코 시대로, 머리카락을 타워모양(헤어타워)으로 높고 풍성하게 연출하는 것이 유행하면서, 가발을 땋고, 말아 올리고, 정교하게 쌓아 올리는 등의 기교를 부려 착용하였다. 이에 레이스, 꽃, 깃털 등의 헤어 장신구들을 이용해 더욱 화려하게 만들었다. 근·현대에 이르러 과거에 비해 비교적 단순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다양한 헤어 컷의 등장과 헤어염색, 펌제 등 헤어 스타일링을 위한 제품들의 등장으로 보다 개성 있고 다양한 스타일들을 접할 수 있다. 동양의 경우 사상에 따라 머리카락은 신체 중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부위 중 하나이다. 따라서 꾸밈을 위해 머리카락을 자르는 경우는 없었으며 훼손하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삼국시대까지 다양한 형태로 머리를 꾸미다가 조선시대에 이르러 경우 나이, 신분, 혼인의 유무, 성별에 따라 머리 모양을 연출하는 데에 정해진 풍습이 내려왔다. 어린 아이부터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경우 남녀 불문 머리를 한 갈래로 땋아 내리고, 기혼인 경우 남성은 상투, 여성은 쪽진 머리나 얹은머리 모양을 하게 된다. 신분별로는 왕족, 궁중, 귀족, 서민, 특수계층에 따라 머리 모양이 나뉘게 된다. 동양에서의 머리 모양은 사회적 상징성뿐만 아니라 효를 나타내는 정신적인 상징성,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세시풍속의 주술적 의미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2.2. 화장

화장에 있어서 그 역사도 깊은 것을 알 수 있는데, 연구에 따르면 5만 년 전 네안데르탈인들도 조개껍데기에 화장용 색소를 담아 화장도구로 이용하기도 했다고 한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눈 주위를 검게 칠하는 진한 아이라인을 그린 것을 볼 수 있는데, 단순히 치장의 의미를 넘어서 뜨거운 사막의 모래바람에 눈을 보호하기 위함과 신의 보호가 있을 것임을 믿는 주술적 의미도 담겨있다. 그리스 시대에서는 올리브 오일, 벌꿀, 눈썹을 그리기 위한 목탄, 레드 오커로 만든 립스틱 등 천연 재료를 사용한 화장이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종교의 억압을 받던 중세 시대에 주춤했던 화장은 다시 르네상스 시대에 부활하게 되는데, 대부분의 화장품은 비싸서 소수의 상류층만 사용할 수 있었으며 화려하게 꾸미는 행위는 귀족들의 부와 능력을 나타내는 상징이기도 하였다. 상류층일수록 하얀 피부를 갖게 된다는 생각에 흰 피부를 상징하기 위해 백연광을 발라 납 성분에 중독되어 단명한 경우도 잦았다. 중국에선 기원전 3000년경부터 화장을 즐겨하였으며 손톱을 칠하며 계급을 나타내기도 하였다. 쌀가루에 꿀을 넣어 팩을 하기도 하고 난초나 라일락등의 천연 향을 가미해 사용하기도 하며, 붉은색 안료에 기름을 섞어 립스틱을 만들고 꽃잎으로 볼 화장을 하기도 하였는데, 이는 현대의 화장품에도 아직까지 응용되고 있다. 일본은 흔히 '게이샤 화장'이라고 알고 있는 독특한 화장법을 가지고 있는데 얼굴을 하얗게 칠하고 눈 주위를 붉게 하며 입술을 빨간 꽃물을 들이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백옥 같은 피부를 귀하게 여기며 하얀 피부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였다. 신라의 경우 '화랑'의 화장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화려한 색이 있는 화장을 즐겼으며 조선시대에 이르러 기생은 화려한 색조화장, 신분이 높은 부인들은 자연스럽고 연한 화장을 즐겨 하며 신분에 따라 화장법이 나뉘게 된다. 8-90년대까지 진하고 화려한 화장이 유행하고 가수나 배우 등 연예인들이 트렌드를 주도하게 된다. 2000년대에 이르러 자연스럽고 마치 화장을 하지 않은 듯한 화장법이 유행하게 되고, 현재 한국의 화장법과 화장품은 K-Beauty라고 불리며 세계적으로 열풍을 일으키기도 한다.


1.3. 결론

머리 모양과 화장법은 시대에 따라 사회적 지위와 계급, 경제력을 나타내는 사회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으며 정신적·종교적인 해당 시대적 사상에 영향을 받기도 하였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개인의 취향, 개성, 선호도에 따라 개성 있고 자유로운 스타일을 추구하고 있으며 각종 헤어기기나 케어용품, 화장품과 도구 등의 다양한 제품들이 니즈에 맞게 개발되어 상용화 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처럼 미용의 역사는 단순한 외모 관리의 차원에서 벗어나 사회 전반의 변화와 맞물려 발전해왔다고 ...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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