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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불교 문화와 역사
1.1. 불교와 사찰의 역할
불교와 사찰의 역할은 매우 다양하다. 사찰은 불법을 전파하고자 하는 승려들의 공동체적 삶을 영위하는 곳으로서의 기능을 하지만, 더 나아가 부처의 가르침과 경전적 세계를 알리고 영역을 넓혀 대중적 감화를 공유하며 후대에게 신앙을 이어주는 종교적 공간의 역할을 한다.
불교 신자들에게 사찰은 부처와 보살의 가르침이 실현되는 성스러운 공간으로 인식되었다. 대중들에게 불교적 가치를 효과적으로 전파하고 공유하기 위해서는 사찰에 영험함을 부여해야 했기 때문에, 사찰 연기 설화가 지어졌다. 이를 통해 사찰의 건립과정에 신비로운 요소를 가미하여 사찰의 신성성을 강조하고자 했던 것이다.
즉, 사찰은 단순히 승려들의 거처가 아니라 불교의 교리와 실천이 구현되는 핵심 공간이자, 대중들에게 불교를 전파하고 신앙을 고취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고 볼 수 있다.
1.2. 사찰 연기 설화
1.2.1. 사찰 연기 설화의 의미
사찰 연기 설화의 의미는 주로 사찰의 성스러운 공간적 위상과 불교적 세계관을 드러내는 데에 있다. 사찰 연기 설화는 신성한 존재의 출현, 영험한 사건의 발생, 불교적 가치관의 표출 등을 통해 사찰이 단순한 건축물이 아닌 불국토(佛國土)의 실현 공간임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낙산사 연기 설화에서는 관음보살이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으로 나타나 사찰 건립의 최적지를 알려주고, 석가의 화현이라 여겨지는 파랑새의 인도로 사찰이 건립되는 등 신령스러운 사건이 전개된다. 이를 통해 낙산사가 수월봉의 영험한 터전 위에 세워진 불국정토라는 점이 부각된다.
보문사 연기 설화 또한 문수보살과 관음보살이 화현하여 해명방 노인의 안내로 사찰 건립을 이끌어내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처럼 사찰 건립 과정에 초월적 존재들이 개입하고 신이한 사건들이 발생함으로써 사찰이 세속을 초월한 성스러운 공간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와 같이 사찰 연기 설화는 사찰이 갖는 불교적 의미와 가치를 드러내는 담론적 장치로 기능한다. 사찰은 단순한 불교 교단의 거점이 아니라 불법이 실현되고 불교적 세계관이 현현되는 성스러운 공간으로 형상화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대중들은 사찰이 가진 신성함과 영험함을 인지하게 되고, 나아가 불교에 대한 신앙심을 고취할 수 있게 된다.
1.2.2. 사찰 연기 설화 지은 인물
사찰문헌설화를 지은 인물(담당층)은 대표적으로 불승과 호불유자(불교에 호의적인 지식인)로 나뉘는데, 우선 불승은 사찰창건의 실질적 주체이면서 동시에 사찰의 기원을 전하는 첫 번째 증언자로써 사찰을 영험한 공간으로 구축해 나갈 의무감이 있기 때문에 설화를 쓰는 것을 당연한 일로 여겼으며, 아울러 그 현장에 머물며 모든 상황과 사건을 목도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불승이야말로 사찰설화를 지음에 가장 적합한 위치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이 쓴 사찰문헌설화는 사찰을 영험하게 처리하려는 의도로 정보제시로서의 목적보다는 서사지향적인 욕구가 나타나도록 하였다. 즉, 설화에 불교적 영험력을 강조하는 서사담론을 표현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특징이 나타난 설화로는 범어사의 창건설화를 들 수 있다.
다음으로 최치원, 이규보, 정약용으로 대표되는 호불유자들은 승려와의 개인적 친교, 가문이 종교를 믿음, 혹은 불교사상에 대한 조예가 깊다는 이유 등으로 이러한 사찰문헌을 지은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지은 사찰문헌설화들은 불승이 지은 설화들과 다르게 주로 절의 영험성보다는 역사 기술물로써의 의미를 강조하는 쪽으로 서사적 초점을 맞췄다. 따라서 사찰의 의미가 적잖이 퇴색될 수도 있다. 그러나 담론의 외연을 파악하여 불교사의 이면, 유불교류의 실상을 엿볼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전해진 설화로는 혜음사 설화를 들 수 있다.""
1.3. 사찰 연기 설화의 특징
1.3.1. 풍수 사상
사찰 연기 설화는 천문과 인문을 아울러 풀어가는 철학 사상적 차원의 풍수학과 민중들 사이에서 관행적으로 수용된 길지, 명당을 얻고자 하는 길잡이로서의 풍수관념이 담겨있다""
풍수적 원리는 민가의 삶을 지배하는 원리일 뿐만 아니라 사찰 창건 및 그 터를 정하는 가장 결정적이 지표로서 수용되었다""
도선(道詵)은 신라 말기의 승려로 우리나라의 풍수학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으며, 도선이 주요인물로 등장하는 사찰설화로는 규봉사, 선원사, 흥국사, 무위사, 완월사, 용삼사 등이 대표적이다""
도선은 이야기 상 절터를 찾지 못해 곤경에 처하는 부분에서 해결의 주체 혹은 조력자로서 등장하여 갈등이나 위기를 원만하게 해결해주는 역할을 한다""
이처럼 풍수적 원리가 사찰 연기 설화에 담겨있음은 사찰을 영험한 터로 인식하게 하고 포교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
1.3.2. 본지수적 사상
본지수적 사상은 절터가 본래부터 불국토로 점지되어 있었다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점지된 땅이 불지(佛地)라는 것은 사찰이 들어선 산의 내력을 밝히는 과정에서 흔히 밝혀지는데, 사찰이 있었다든가 불보살이 상주했던 곳임을 확인시켜 창사나 중창은 그만큼 필연적인 일로 인식되었다. 예를 들면, 금강산은 원래 '화엄경'에서 '담무갈보살'이 1만 2천의 보살들과 함께 항상 반야심경을 설법하던 곳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삼국유사'에서도 오대산은 다섯 개의 각 대에 보살들의 진신(眞身)이 항상 머물러 있는 곳이기 때문에 불연이 깃든 터라고 언급한다. 사찰로 정해진 터는 우연히 채택된 공간이 아닌 영험한 존재의 힘으로 선택된 터이기에 사찰을 건립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결론으로 귀결시킨다. 산 곳곳에 가르침이 서려 있고 보살이나 대승들이 머물렀다고 표현함으로써 장엄함을 연출할 수 있고 불교 신자들에게 성스러운 곳으로 느끼게 해준다.
1.3.3. 고승숭배사상
고승은 사찰이 성스러운 곳으로 인식되게끔 도와주는 가장 쉬운 서사적 매개인이다. 고승은 지상의 인간으로서 불법의 세계로 인도하고 부처의 가르침을 사람들에게 가르쳐주는 매개적 존재로 등장한다. 고승을 설화에 편입시키는 이유는 고승이 부처의 반사체가 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성현을 갖춘 인물이라야 사찰도 성현을 반사체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사찰의 입장에서는 고승의 후광으로 성스런 곳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삼막사의 창건설화의 경우, 창주를 2명으로 삼는 것도 부족하여 원효대사, 의상대사뿐만 아니라 윤필대사까지 건사의 주체에 포함하고 있다. 지금은 물론이거와 그 당시에도 인정받은 고승을 창사의 주역으로 삼다보니 그 사찰의 영험함과 역사성은 더 믿음이 가고 각별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창사한 이후에도 다른 명승들이 이곳에 머물렀다는 점을 언급하면서 삼막사는 성스러운 곳으로 인식되기에 부족함이 없는 내용을 갖추었다.
1.3.4. 산악숭배사상
아주 오래전부터 사찰이 광활한 터에 건립되기보다 산중에 지어지다 보니 누구든 산과 절은 상호의존적 존재로 보는데 익숙해 있었다. 전통적으로 산과 사찰을 상호 조화, 조응의 관계로 인식해 왔다. 우리의 의식 속에 산과 사찰을 동일시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