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생리학 족보"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조선시대 인구 및 의학의 변화
1.1. 조선시대 인구 통계의 변화
1.1.1. 조선시대 인구 동향
1.1.2. 인구 통계 기반이 되는 영아 사망률
1.2. 질병의 발병과 접근
1.2.1. 조선 초기의 질병과 의학적 접근
1.2.2. 전란과 대기근 시기의 질병
1.2.3. 조선 말기 질병과 의학의 변화
1.3. 동의보감과 조선 의학의 발전
1.3.1. 동의보감의 편찬 배경과 특징
1.3.2. 동의보감을 통한 의학 발전
1.3.3. 조선시대 의료기관의 변화
2. 참고 문헌
본문내용
1. 조선시대 인구 및 의학의 변화
1.1. 조선시대 인구 통계의 변화
1.1.1. 조선시대 인구 동향
조선시대 인구 동향은 조선 건국 이후 지속적인 증가세를 보였으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전란을 겪으면서 큰 폭의 인구 감소를 겪었다.
조선 건국 시 인구는 약 700만 명 정도로 추정되었으나, 임진왜란으로 인해 약 20만 명의 사상자와 5만 명의 포로가 발생하여 전체 인구가 상당 부분 감소했다. 이후 병자호란 당시에도 인조의 항복으로 인한 군사적 피해는 크지 않았지만, 청의 급격한 군 철수 과정에서 천연두의 확산으로 많은 인명 손실이 있었다.
전란 이후 조선은 국토 복구를 위해 노력했으나, 17세기 지구 전체의 기온 하락으로 인한 '소빙하기'가 도래하면서 농업 생산력이 크게 저하되었다. 이로 인해 전란의 피해를 복구하기도 전에 더 큰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다. 특히 1670년의 경신대기근은 당시 조선 인구의 약 10%에 해당하는 100만 명 이상의 희생자를 낳으며 전대미문의 재난이었다.
이러한 전란과 대기근을 거치며 조선의 인구는 지속적으로 감소하다가, 19세기 후반 근대화 과정에서 점차 회복세를 보이게 된다. 조선시대 인구 변화는 전쟁, 자연재해, 전염병 등 다양한 외부 요인에 크게 영향을 받았으며, 이는 당시 농업 중심 사회의 특성상 불가피한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1.1.2. 인구 통계 기반이 되는 영아 사망률
조선시대 인구 통계의 기반이 되는 영아 사망률은 당시 의학수준의 낮음과 열악한 생활환경으로 인해 매우 높은 수준이었다.
건강한 생활을 유지하고 질병을 예방하는 것이 치료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성리학적 가치관이 지배적이었던 조선 초기에는 영아 사망률이 매우 높았다. 신분제가 엄격히 유지되던 당시 상황에서 왕족과 양반 계층에게만 상대적으로 양호한 의료서비스가 제공되었을 뿐, 대다수 백성들은 의료혜택에서 제외되어 있었다. 특히 산모들이 위험한 상황에서도 자연분만을 고집하거나 미신에 의지하는 경우가 많아 산모와 태아 모두 위험에 노출되었다. 또한 열악한 위생환경과 영양실조 등으로 인해 영아기의 생존율은 매우 저조했다.
조선 중기의 전란과 대기근 시기에는 영아 사망률이 전례 없이 높아졌다. 지속된 전쟁과 기근으로 인해 국가와 국민 모두가 극심한 어려움을 겪었고, 이에 따라 영양실조와 전염병 등이 만연하여 영아들의 생명을 크게 위협했다. 특히 병자호란 이후 발생한 경신대기근 당시에는 영아들의 사망률이...
참고 자료
이민웅,『임진왜란 해전사』, 청어람 미디어, 2004
이준호, & 이상임『조선시대 기상이변에 따른 재해 발생과 공옥(空獄) 사상의 교정적의미 고찰–소빙기‘경신대기근’을 사례로』, 교정담론, p.269-296, 2017
이경록,『조선초기 성리학적 의료관과 의료의 위상』, 의료사회사연구 제 1집, p.9-37,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