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1. 세계박람회에 대한 이해
1.1. 세계박람회의 정의와 목적
세계박람회(World Expo)는 일종의 전시회로서 일반 대중의 교육과 계몽을 주된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인류가 성취한 발전 성과를 전시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보여줌으로써 새로운 발전을 추구하는 것이 세계박람회의 목적이다.""
세계박람회의 본질적인 목적은 세계 각국이 이룩한 산업과 문화 활동의 성과를 전시하고 상호 이해와 교류를 심화하며, 이 과정을 통하여 대내적으로는 국민을 계몽하고 대외적으로는 인류 상호간의 이해 증진과 발전을 도모하는 데 있다.""
세계박람회는 교육과 계몽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동시에 인류가 쌓은 부문별 업적의 확산과 개최 지역의 개발 그리고 관련된 분야에서의 과학기술 개발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1.2. 세계박람회의 역사
1.2.1. 기계 문명과 산업화의 전시장 (1851 ~ 1900)
1851년 런던 박람회는 19세기 중반 대영제국의 위세가 절정에 달하던 시기에 개최되었다. 18세기 후반에 본격화한 산업혁명으로 엄청난 부를 축적한 대영제국은 이를 세계 각국에 과시하고자 하였다. 1851년 5월 1일 영국 런던 하이드파크에서 빅토리아 여왕의 부군 앨버트 공이 "인간의 모든 영역을 진보시키고 이 세상 모든 나라의 평화와 유대를 강화하자"며 세계박람회 개최를 선포하였다. 이는 산업혁명의 맹주 대영제국의 위용과 리더십을 만방에 떨치는 국제행사이자 영국민의 통합과 자부심, 애국심을 고취하는 대 행사였다.
런던 박람회의 최고의 작품은 수정궁이었다. 철근, 유리, 목재로 지어진 가로 563m, 세로 124m의 거대한 직사각형 구조물에 중앙 42m 높이의 돔 지붕을 가진 이 건축물은 당시로서는 초고속 건축물이었다. 조셉 팩스턴이 설계한 이 건축물은 철골, 유리 공업을 발전시켰고 인류 최초의 수세식 공중화장실도 갖추고 있었다. 전시물은 기계류와 중공업 제품, 실생활용구, 신규 발명품 등 약 100만 여 점에 달하였다. 1851년 런던 박람회를 목격한 세계인들은 과학기술 개발의 중요성을 깨닫고 과학기술이 인류를 더 나은 미래로 이끌 것이라는 확신을 얻게 되었다.
이듬해 1855년 파리 박람회가 개최되었다. 이 박람회는 새로 즉위한 나폴레옹 3세의 제2제정에 정통성을 부여하려는 의도에서 추진되었다. 박람회장에는 미술의 전당인 몽테뉴거리와 기계류 전시장인 센강변이 마련되었다. 이 박람회에서는 와인, 재봉틀, 사진 등이 전시되어 예술품 전시가 박람회의 전통이 되었다.
1862년 런던 산업 및 예술 국제박람회에서는 열차와 선박용 엔진, 화학공업의 발달, 전기 통신 분야의 진보가 두드러졌다. 기술과 과학의 비약적인 발전이 이룩된 산업혁명 시대를 대표하는 박람회였다. 하지만 크림전쟁, 남북전쟁 등 유럽 각지에서의 전쟁 발발로 인해 박람회에 대한 회의론과 무력감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1867년 파리 박람회는 "노동의 역사"를 주제로 석기시대부터 19세기까지 인류의 노동 형태와 생산물을 전시하여 국제도량형 통일의 계기를 마련하고, 무역과 상업의 중요성이 대두되었다. 또한 처음으로 박람회에 오락과 유흥 기능의 부대시설이 설치되어 세계박람회의 성격이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1873년 빈 박람회와 1876년 필라델피아 박람회, 1878년과 1889년 파리 박람회 등이 개최되며 박람회는 서양 문명의 진보를 상징하는 행사로 자리 잡았다. 필라델피아 박람회에서는 자유의 여신상 팔 부분이 전시되었고, 1878년 파리 박람회에서는 과학 기술의 발전상이 선보였다. 1889년 파리 박람회에서는 에펠탑과 기계류 전시관이 세워져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처럼 1851년부터 1900년까지의 세계박람회는 기계 문명과 산업화의 전시장으로서 인류 문명사의 발자취를 보여주었다.
1.2.2. 과학, 상업, 문화 교류의 현장 (1904 ~ 1939)
과학, 상업, 문화 교류의 현장 (1904 ~ 1939)이다.
20세기로 넘어오면서 세계박람회의 무대가 유럽에서 미국으로 완전히 기울었다. 1893년 시카고박람회, 1904년 세인트루이스박람회, 1915년 샌프란시스코박람회, 1933년 시카고박람회, 1939년 뉴욕박람회 등이 그러했다. 이 박람회들은 세계를 대중문화와 대량 소비의 시대로 이끄는 원동력이 되었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체제를 기반으로 미국 상업주의 발달의 발판이 되었다.
20세기 초 유럽에서는 '미니' 박람회가 개최되었다. 벨기에의 1885년 앤트워프, 1888년 브뤼셀, 1894년 앤트워프, 1897년 브뤼셀, 1905년 리에주, 1910년 브뤼셀, 1913년 겐트 박람회와 이탈리아의 1902년 토리노, 1906년 밀라노, 1911년 토리노(이탈리아 왕정복원 50주년 기념) 박람회가 대표적이다.
1. 1904년 세인트루이스박람회
1904년 루이지애나 매입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개최된 세인트루이스박람회는 '교육'이라는 목적의식을 내세워 '이상적인 시민'이 되려면 과학 기술 발전에 충분히 교육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개막식을 장식한 것은 1400km 떨어진 워싱턴에서 보낸 루스벨트 대통령의 무선전보였다. 가장 돋보인 시설과 전시물로는 캐스길버트가 설계한 페스티벌 홀, 교통의 전당, 다양한 자동차 160여 대 전시, 쌍엽 비행기구, 아이스크림 등장 등이 있었다. '파이크'라 명명된 세인트루이스 박람회장의 놀이공원도 큰 인기를 끌었다.
2. 1915년 샌프란시스코박람회 / 1916년~17년 샌디에이고박람회
1915년 샌프란시스코박람회는 '파나마 운하 개통 기념'을 주제로 하였다. 1901년 버펄로, 1905년 포틀랜드, 1909년 시애틀 등 미국 각 도시가 경제 활성화를 위해 박람회를 개최했다. 이들 박람회는 경제적으로 큰 영향을 미쳤다. 샌프란시스코박람회 개최 당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해 유럽 국가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지만, 가장 돋보인 시설과 전시물로 신고전주의 양식의 돔 지붕, 독일 제조사의 장거리 전화와 축음기, 헨리포드의 대량 생산 자동차 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