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포로기 역사 예언자 분석"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서론
1.1. 연구 목적
1.2. 연구 방향
2. 포로기 역사
2.1. 포로기의 시대적 상황
2.1.1. 유다의 멸망과정
2.1.2. 바벨론 포로기
2.2. 신명기 역사
2.2.1. 개념정의
2.2.2. 편집장소 및 연대
2.2.3. 신명기역사와 예언서와의 관계
3. 포로기 예언자들
3.1. 힐기야의 아들 예레미야
3.1.1. 활동장소 및 연대
3.1.2. 예레미야 예언의 특징
3.2. 부시의 아들 에스겔
3.2.1. 활동장소 및 연대
3.2.2. 에스겔 예언의 특징
3.3. 제2이사야
3.3.1. 활동장소 및 연대
3.3.2. 제2이사야 예언의 특징
4. 결론
5. 참고 문헌
본문내용
1. 서론
1.1. 연구 목적
본 연구의 목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역사서 수업을 통해 배운 바벨론 포로기를 정리하고 보다 깊이 이해하는 것이다.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하고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가게 된 포로기라는 고통과 수난의 시기를 살펴보고자 한다.
둘째, 포로기에 활동한 선지자들의 신학적 특징과 메시지를 중점적으로 탐구하여 포로기 예언자들을 깊이 있게 이해하는 것이다. 포로기라는 심각한 위기의 순간에 예언자들이 어떤 메시지를 선포했는지를 살펴봄으로써 그들의 신학과 메시지를 연구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포로기의 역사에 비추어 이 시대를 진단하고 나아가 교회와 세상에 선포할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발견하고자 한다.
1.2. 연구 방향
본 연구의 방향은 다음과 같다.""
우선 포로기의 시대적 상황을 살펴봄으로써 유다의 멸망과정과 바벨론 포로기에 대한 이해를 높인다. 특히 이 시기에 나타난 신명기 역사의 개념과 신명기 역사와 예언서와의 관계를 검토할 것이다.""
다음으로 포로기에 활동했던 예언자들, 즉 예레미야, 에스겔, 제2이사야의 활동장소와 연대 그리고 그들의 예언의 특징을 중점적으로 살펴볼 것이다. 이들 예언자들이 포로기라는 심각한 위기의 순간에 어떤 메시지를 선포했는지, 그리고 그들에게서 드러나는 신학들을 분석하여 이 시대에 교회와 세상에 주는 시사점을 도출하고자 한다.""
2. 포로기 역사
2.1. 포로기의 시대적 상황
2.1.1. 유다의 멸망과정
므낫세의 아들로 왕위에 오른 아몬은 2년이라는 매우 짧은 재위기간으로 암살을 당하게 되고, 그 아들 요시야가(주전 640-609) 8세의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올랐다. 요시야는 앗수르의 혼란한 틈을 타서 유다와 예루살렘에 있던 산당과 일월성신의 제단, 아세라 목상들의 모든 우상들을 제거하였다. 더 나아가 요시야 통치 18년에 발견된 율법서를 통해 그의 개혁은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이스라엘에 있어서 가장 심각했던 위기는 주전 612년부터 시작해서 587년까지 계속된다. 그때 세계사적으로 중요한 일이 발생하였는데 그것은 당시까지 세계를 제패하고 있던 앗시리아 제국이 멸망하는 것이다. 주전 612년 앗시리아 제국의 수도였던 니느웨가 바벨론 군대에게 함락되었다. 그리하여 612년부터는 바벨론 제국의 시대로 접어들게 되었다.
앗시리아 제국은 워낙 막강한 나라였기 때문에, 수도가 함락되었다고 해서 즉시 멸망되지는 않았다. 앗시리아 제국은 니느웨가 함락된 후 하란으로 옮겨가서 바벨론 군대에게 저항하였다. 한편 이집트의 왕 느고2세는 쓰러져 가는 앗시리아를 도와주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북진하였다.
유다의 요시야왕은 609년에 북진하는 이집트 군대를 저지하기 위해서 므깃도로 군대를 이끌고 나간다. 그러나 워낙 힘의 격차가 컸기 때문에 요시야왕은 이 므깃도 전투에서 전사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 여호아하스가 즉위하게 되었다.
여호아하스는 불과 3개월밖에 재위하지 못하였다. 이집트의 왕 느고2세는 그를 퇴위시키고 요시야의 둘째 아들 여호야김을 왕위에 앉혔다. 이때부터 이스라엘의 역사는 혼돈과 퇴락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여호야김은 이집트에 충성을 바쳐야 하는, 말하자면 이집트의 봉신 왕이 된 것이다.
605년에 들어와서 고대 근동의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이었던 갈그미스 전투가 벌어졌다. 이 전투에서 당시 양대 세력이었던 이집트와 바벨론 간에 일어났는데, 결국 바벨론의 승리로 끝이 났다. 이 전쟁의 승리로 바벨론은 시리아와 팔레스틴 지역에서 주도권을 장악하게 된다.
바벨론이 승리한 것을 본 여호야김은 친이집트 정책을 바꿔 바벨론 쪽으로 선호하게 된다. 그래서 604-601년 동안 유다는 바벨론에게 조공을 갖다 바친다. 그러다가 601년에 이집트와 바벨론 사이에 또 한 번의 전투가 벌어진다. 이 전쟁에서 누가 이겼느냐는 것은 확실하지 않은데,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바벨론이 승리하지 못하고 철군을 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유다 왕국에 다시금 영향을 미쳐서 유다는 이전처럼 친이집트 정책으로 바꾸게 된다. 여호야김은 바벨론에게 충성하다가 이집트 편으로 돌아섰던 것이다. 이에 바벨론의 느브갓네살 왕이 유다를 응징하기 위해서 마침내 예루살렘으로 597년에 들어오게 된다. 느브갓네살은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고 많은 보물들을 바벨론으로 가져갔다. 그런데 예루살렘 성이 함락되기 직전에 여호야김 왕이 죽는다.
여호야긴이 ...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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