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동지 팥죽음력으로는 11월 중기(中氣)이며, 양력으로는 태양이 적도이남 23.5도의 동지선(冬至線 : 南回歸線)과 황경(黃經) 270 도에 도달하는 12월 22일 또는 23일을 가리킨다. 대설의 다음이며 소한의 앞이다. 24절기 중 가장 큰 명절로 즐겼다.동짓날에는 팥죽을 쑤어 먹는다. 동지 팥죽은 먼저 사당에 올리고 여러 그릇에 나누어 퍼서 장독, 곳간, 헛간, 방 등에 놓아둔다. 그리고 대문과 벽, 곳간 등에 뿌리기도 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팥죽의 붉은 색이 잡귀를 몰아내는데 효과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동지 팥죽은 잔병을 없애고 건강해지며 액을 면할 수 있다고 전해져 이웃 간에 서로 나누어 먹었다.동지 때는 '동지한파'라는 강추위가 오는데 이 추위가 닥치기 전 보리밟기를 한다. 이때는 땅속의 물기가 얼어 부피가 커지면서 지면을 밀어 올리는 서릿발로 인해 보리 뿌리가 떠오르는 것을 막고 보리의 웃자람을 방지하기 위해 과거엔 겨울 방학을 앞두고 학생들을 동원해 대대적인 보리밟기를 하기도 했다.동짓날 한겨울 기나긴 밤에는 새해를 대비해 복조리와 복주머니를 만들었다. 복조리는 산죽을 쪄와 사등분으로 쪼개어 햇볕에 말리고 물에 담근 뒤 그늘에서 건조시켜 만든다.쌀에 든 돌이나 이물질을 가려낼 때 사용하는 복조리는 새해부터 정월 대보름까지 복을 사라며 "복 조리 사려"를 외치며 다녔다. 대보름이 지난 뒤 팔러 다니면 상놈이라 욕을 먹기도 했다. 복조리를 부엌 부뚜막이나 벽면에 걸어두고 한해의 복이 그득 들어오기를 기원했다.동지가 초승(음력 11월 초순)에 들면 애동지, 중순에 들면 중동지, 그믐(하순)에 들면 노동지라 하며, 애동지에는 팥죽을 쑤지 않고 대신 팥 시루떡을 쪄서 먹었다 한다.동지는 대설 15일 후, 소한 전까지의 절기로, 양력 12월 22일경이 절기의 시작일이다. 음력으로는 11월 중기이다. 동지는 태양이 가장 남쪽에 이르는 남지일이며, 태양의 남중 고도가 1년 중 제일 낮아 밤이 가장 긴 날이다.우리나라에서는 동지를 '다음해가 되는 날'. 민가에서는 붉은 팥으로 죽을 쑤는데 죽 속에 찹쌀로 새알심을 만들어 넣는다.이 새알심은 맛을 좋게 하기 위해 꿀에 재기도 하고, 시절 음식으로 삼아 제사에 쓰기도 한다. 팥죽 국물은 역귀를 쫓는다 하여 벽이나 문짝에 뿌리기도 한다. 한편, 궁중에서는 관상감에서 만들어 올린 달력을 '동문지보'란 어새를 찍어서 모든 관원들에게 나누어 주는데, 이 달력은 황장력, 청장력, 백력 등의 구분이 있었고, 관원들은 이를 다시 친지들에게 나누어 주었다.이러한 풍속은 여름에 부채를 주고받는 풍속과 아울러 '하선동력'이라 하였다. 또한, 내의원에서는 전약이라 하여 쇠가죽을 진하게 고아 관계, 생강, 정향, 후추, 꿀 등을 섞어 기름에 엉기게 하여 굳힌 후 임금에게 진상하여 별미로 들게 하였다.그 밖에 고려, 조선 초기의 동짓날에는 어려운 백성들이 모든 빚을 청산하고 새로운 기분으로 하루를 즐기는 풍습이 있었다.2. 동지 팥죽의 유래가. 민간에서 전해지는 팥죽의 유래옛날 중국 진나라의 공공이라는 사람에게는 늘 말썽을 부려 속을 썩이는 아들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 아들 때문에 하루도 맘 편한 날이 없었는데, 어느 동짓날 그 아들이 그만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죽은 아들은 그만 역질 귀신이 되고 만 것입니다.역질이란 천연두라는 무서운 전염병으로 그 당시에는 역질이 마을에 돌면 마을 사람들 대부분 꼼짝없이 앓다가 죽어 버리니 공공은 자신의 아들이었다 해도 그냥 둘 수가 없었습니다.공공은 생전에 아들이 팥을 무서워 했다는 기억을 떠올리고는 팥죽을 쑤어 대문간과 마당 구석구석에 뿌렸습니다. 효과가 있었던지 그 날 이후로 역질은 사라졌고 이를 본받아 사람들은 역질 귀신을 물리치기 위해 동짓날이 되면 팥죽을 쑤었다고 합니다. 옛사람들은 붉은 색은 귀신들이 싫어하는 색이라고 생각했기에 곡식들 중에서도 유난히 붉은 색을 지닌 팥을 그런 용도로 사용했다 합니다.나. 불교에서의 팥죽의 유래옛날 신라 시대의 이야기입니다. 젊은 선비가 살았는데, 사람은 참으로 진실하였으나, 집안이 궁핍 심으면 고추농사가 풍년이 되는 등, 수년간 많은 재산을 모으게 하여 그 선비를 부자로 만들어 주었습니다.허나, 이상한 것이 그 과객은 늘 한밤중에 찾아와서는 날이 새기 전 닭이 울면 사라졌습니다. 주인인 선비는 재물은 남부러울 것 없이 많이 모았으나, 세월이 갈수록 몸이 계속 야위어가더니 마침내 몸이 아파오기 시작했습니다.병색이 너무나 심하게 짙어지자, 그 선비는 어느 스님에게 여쭈어 보았는데, 스님께서는 그 과객에게 싫어하는 것이 무엇이냐? 고 물어보라 하였습니다. 시키는 대로 했더니 그 과객은 백마의 피를 가장 싫어한다 하였습니다. 젊은 선비는 스님의 말씀을 새겨들은 이후로, 점점 그 과객이 무서워지기 시작했습니다.결국 선비는 자기 집의 백마를 잡아 온 집안 구석구석 백마의 피를 뿌렸더니 그동안 친절하던 과객이 도깨비로 변해 도망을 가면서 선비에게 저주를 퍼붓는 것이었습니다.그러나 그 이후로 그 선비는 건강이 다시 좋아졌습니다. 그런데 해마다 동짓날이면 이 과객이 잊지 않고 찾아오는지라 젊은 선비가 스님께 해마다 백마를 잡아서 피를 바를 수 없으니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하고 방도를 묻게 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그렇다면 팥물이 백마의 피와 빛깔이 같으니 백마의 피 대신 팥죽을 쑤어 그것을 집에 뿌리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동짓날 팥죽을 끊이는 유래라 하기도 합니다.삼국지의 전략가 제갈량이 남만(베트남)을 평정하러 갔을 때 노수의 귀신들이 사람의 목을 원하는지라 밀가루로 사람의 머리 모양을 만들어서 제사를 지낸 것이 만두의 유래라는 이야기를 꺼내며, 자비정신이 넘치는 불교의 동지 이야기가 만두의 전설과 비슷한 점은 바로 불교의 불살생자비 방생이 그 근원을 이루고 있다고 보는 견해를 밝히는 이도 있습니다. 또 초순에 동지가 들면 그 해는 애기 동지라 하여 일반가정에서는 팥죽을 끊이지 않고 절에 가서 팥죽을 먹고 돌아오는 풍습도 있습니다.이렇듯 우리는 동지의 전통을 사찰에서 맛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민속을 종교적 차원에서 받아들여 더욱 그 의미를 심화시킨달로 음으로 인식한 음양관에 의해 동지는 음이 극에 도달한 날이지만 이후 낮이 다시 길어지기 시작하여 양의 기운이 싹트는 다시 말하면 태양이 죽음으로부터 부활하는 날로 받아들였다. 사실상 새해의 시작을 알리는 날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 날을 아세 즉 작은 설날로 생각한 것이다. 이날에는 팥죽을 먹어야 한 살 더 먹는다고 했다.중국의『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 "공공씨의 재주 없는 아들이 동짓날에 죽어서 역질귀신이 되었는데, 그 아들이 생전에 팥을 두려워하여 팥죽을 쑤어 물리친다."는 기록이 민간에 회자되고 있다. 조선시대 민속을 정리한『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도 "동짓날을 아세라 하여 팥죽을 쑤어 먹는데, 팥죽을 쑬 때 찹쌀로 새알모양으로 빚은 속에 꿀을 타서 시절 음식으로 먹는다. 또한 팥죽은 제사상에도 오르며, 팥죽을 문짝에 뿌려 액운을 제거하기도 한다."라는 기록이 있다.중국이나 우리나라의 동짓날 시절음식인 팥죽이 축귀와 관련이 있음을 밝히고 있다. 팥은 붉은 색깔을 띠고 있어서 축사의 힘이 있는 것으로 믿어 역귀(천연두) 뿐만 아니라 집안의 모든 잡귀를 물리치는 데 널리 애용되었다. 동짓날 팥죽을 쑤어 먼저 사당에 올리고 각 방과 장독, 헛간 등 집안의 여러 곳에 가져다 놓고 삼신과 성주신께 빌기도 하고, 부정한 액을 소멸시키고자 솔잎으로 팥죽을 사방에 뿌리기도 했다. 또 전염병이 유행할 때는 우물에 팥을 넣으면 물이 맑아지고 질병이 없어진다고 믿었다. 팥이나 팥죽과 관련이 있는 이런 행위들은 현대에도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가령 새로 집을 장만하거나, 이사를 갈 때면 집안 여기저기에 팥을 뿌리거나, 팥죽을 쑤어서 뿌리기도 하고, 상점을 오픈 했을 때나 차를 구입했을 때도 액을 소멸하는 의미로 팥을 뿌린다. 색이 붉어 양색이므로 음귀를 쫓는 데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는 팥에 부여된 주술적 의미 때문이다. 부적에서도 알 수 있듯 붉은 색은 귀신을 쫓아내는 기능이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우리의 여름 상품 중에 팥빙수가 있다. 이것은 팥에 대한 우리 민동지, 하순에 들면 노동지라 했는데, 애동지가 들면 그 해는 아이들에게 좋고, 노동지가 들면 노인들에게 좋다는 풍습이 있어 애동지 때에는 굳이 팥죽을 쑤지 않았다. 올해는 동지가 11월 10일 이기에 애동지에 해당한다. 그렇다고 팥이 소용없는 것은 아니다. 이 날에는 팥죽 대신에 팥시루떡으로 액을 물리쳤던 것이다.동짓날의 팥죽에는 새알심이라고 하는 단자를 넣는다. 이를 지방에 따라서는 옹심이, 오그랭이, 옹시래미라고도 부르는데, 이 새알심은 팥죽의 핵심이다. 새알심을 통해 우리의 건국신화에 나타나는 난생설화의 전이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고구려를 건국한 주몽신화, 신라를 세운 박혁거세신화, 가야를 건국한 김수로왕, 신라의 석탈해 등 낯익은 이야기들이 모두 알과 관련이 있다.새의 알이든 곡식의 알(알곡식)이든, 남성 성기의 알이든, 닭의 알이든 알은 생명탄생의 전 과정이다. 세상의 모든 물건에는 영이 있다는 만물유령관이 지배하고 있었던 고대인들에게 곡식의 알과 새와 동물의 알은 신비의 대상이었고, 다산과 재생의 상징이었다. 굳이 신화에서 알을 통해 태어나는 신이한 출생과정이 강조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동짓날 자기 나이 숫자대로 새알심을 먹어야 비로소 한 살을 먹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동짓날의 새알심은 신화시대의 인식이 동지의 풍속으로 이어지는 소중한 단서이다. 이 새알심은 죽음에서 소생하는 태양을 상징하기도 하고, 천신의 대리자인 새의 알이기도 하며, 다산을 상징하는 닭의 알일 수도 있고, 생명과 풍요를 상징하는 곡식의 알이기도 하다. 알은 새로운 생명과 탄생의 출발을 가능하게 하며, 다산과 풍요를 보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동짓날 팥죽을 먹음으로써 해가 죽음에서 소생하듯이 지난 해 일어났던 좋지 못한 모든 것을 소멸시켜버리고 새롭게 새해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내년은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좋은 해라니 우리의 미래는 밝지 않겠는가. 동짓날 팥떡을 만들어 새 희망을 가져보자.4. 동지 팥죽과 관련된 설화옛날에 중국의 어느 마을에 공씨 성을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