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마니아의 문화정책(Cultural Policy of Romania)한국외국어대학교루마니아어과 이 충 현1. 서론(Introduction)루마니아는 1989년 민주화 혁명이후 체제변환에 성공하여 현재까지 민주주의 국가로서 자유와 정의를 수호하고 인권을 보장하고 있다.현재 루마니아는 다른 동유럽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정치, 경제적으로는 EU(European Union, 유럽연합), 군사, 안보적으로는 NATO(North Atlantic Treat Organization, 북대서양조약기구)로의 가입을 국가 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삼아 모든 정책을 입안, 수행해 나아가고 있다.본 보고서에서는 루마니아 정부의 여러 가지 정책 중, 문화정책(cultural policy)에 대하여 살펴보고 현재 루마니아 정부의 문화에 대한 정책적 측면을 엿 보는데 그 의미가 있다.2. 본론(Main Subject)2.1. 40여 년간의 공산주의(The 40 Years of Communism)공산주의자들에게는 그들의 전체주의적 사상을 유지시키기 위하여 문화가 중대한 이데올로기적 매개체로 작용하였다. 그래서 큰 규모의 문화적 기관이나 단체는 모든 그들의 예술적 측면의 사항을 정치적인 도구로 증식시키고 촉진해야 했다.Verdery, Katherine; (1995); National Ideology Under Socialism: Identity and Cultural Politics in Ceausescu's Romania (Societies and Culture in East-Central Europe, No 7);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U.S.A.과거로부터 전해 내려온 순수한 루마니아적 전통은 국가정체성(national identity)과 지나친 민족주의적 자존심을 증가시키는 수단이었고, 역사는 외세의 이질적인 개입에 대항하는 명분으로 작용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예술은 민중들의 민족주의적 사상을 저해하는 요소로 여겨졌다.그래서 루마니아에 공산주의가 만연했던적 배경을 바탕으로 예술가들의 자유로운 예술 활동을 제안했다.루마니아에는 공산주의문화교육협의회(The Council of Culture Communist Education)라는 문화정책을 담당하는 기관이 있었는데, 공산당위원회의 직속기구로 공산주의문화교육협의회는 사회의 모든 문화단체나 예술인들의 조직을 직접 관리, 감찰하는 기구였으며 심지어는 시인들의 작품 활동에까지 개인적으로 간섭을 하곤 했다. 그들은 '공산주의자의 문화적 패턴'(communist's cultural pattern)을 설정하여 당신의 소련연방(Soviet Union)과 중국을 모델로 다각화된 막시스트-레니니스트(Marxist-Leninist)사회로의 발전을 위해 자유로운 문화, 예술적 활동을 제약하는 많은 법률을 제정하였다. 하지만 그러한 법률들은 단순히 공산당의 힘에 의존한 것들이었고, 모순적인 법률들이 많았다.2.2. 오늘날의 상황(Situation Today)혁명이후 루마니아행정부는 정부의 중앙집권적 기능을 지방으로 세분화시켜, 현재 42개의 시와, 2682개의 지방자치단체, 182개의 마을단위의 단체로 나누어져 있다.1989년 12월 루마니아 문화부가 만들어졌고, 현재까지 루마니아 국내의 문화정책 및 사안 등을 다루는 전문기관으로 발전되어져 왔다.1989년과 1992년 사이의 민주주의 정부 초기에 루마니아 문화부는 많은 기능을 각 지방의 지방정부나 하위기구에 위임했고 그로인해 자율적인 문화활동이나 문화기관의 조직이 용이하게 되었다.당시 새롭게 설립된 기관들을 살펴보면,-국립영화기술위원회(The National Council of Cinematography)-박물관위원회(The Museums Commission)-시청각위원회(The Audiovisual Council)-국립문서기록보관소(The National Archives)등을 예로 들을 수 있다.Workshop Program; (2000); Policies for Culture; Sinaia, Romania위 예에서 보듯, 가장 활것이다.하지만 새로운 문화정책의 수립 및 개혁 작업에서 체제변환 이후의 부작용이 나타나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으며 그로 인해 6년 동안 무려 9번이나 문화부 장관이 교체되었으며, 문화부 하위기관에서는 1년이나 1년 반마다 단체의 장이 교체되기도 하였다.Treptow, Kurt W.; Popa, Marcel D.;(1996); Historical Dictionary of Romania; Scarecrow Press, U.S.A.2.3. 루마니아 문화부의 역할(Role of the Ministry of Culture)루마니아 문화부는 중앙집권적이자 지방적인 법적 권력 모두를 가지고 있으며 동시에 각 지방은 물론 중앙정부의 문화를 담당하는 모든 기관을 대표한다. 각 지역단위의 모든 문화정책상의 발안권(發案權)은 문화부의 정책조정위원회의 심의를 받아야 하지만 정책의 수립의 자유는 법에 의해 보장 받는다.최근 2년 동안의 루마니아 문화부의 전략적 초점은 '2000년 루마니아 거시적 안정과 발전을 위한 기본적 문화정책(Basic program for macro stabilization and development of year 2000 Romania)'로 명명되어진 '문화적 위기관리(cultural administration crisis)' 수행이었다.즉 1989년 민주화 혁명 이후, 체제변환에 따라 일반 대중들이 겪게 되기 쉬운 사회 제도적 또는 문화적 충격을 줄이는데 초점을 맞추어 온 정책의 수행으로서 현재까지도 그러한 정책을 유지해 오고 있는 것이다. 구체적인 정책의 기조를 살펴보면,-새로운 체제에 맞는 문화부 내의 구조조정(internal restructuring of the Ministry for the new structure)-새로운 체제에 맞는 종합적 문화정책의 재개정(reformulating general cultural policy for the new structure)를 들을 수 있다.Workshop Program; (2000); Policies f치판단(priority to value)-기회의 균등(equality of opportunities)-문화정체성의 가치부여(giving value to cultural identity)2.4. 루마니아 문화부의 기능(Functions of the Ministry of Culture)1) 입법상의 기능: 다양한 문화정책상의 법안 수립2) 대외적 기능: 루마니아 외무부와 함께 국제적으로 루마니아 문화 소개3) 행정기관상의 기능: 행정부의 조직으로서 문화부문의 종합적 전략 수립, 문화단체들을 관리 감독하고 문화정책 수행을 위한 공조체제 확립루마니아 문화부의 기능을 개괄적으로 설명하면 위와 같다.문화정책에 관련된 법안입법이 입법상의 가장 중요한 기능을 차지한다. 실제로 문화부는 1991년 이후, 수많은 문화정책을 새로이 내 놓았는데 대부분 민주주의 국가로서 기본적으로 채택해야 할 것들이었고, 현재는 정책상 최우선 과제인 유럽연합(European Union, EU)으로의 가입을 위해 문화부문에서 다른 유럽 국가들과 함께 '유럽의 문화적 흐름(cultural trends of Europe)'에 함께 발을 맞추고자 노력하고 있다.1994년에는 문화부문의 민간단체(Non-Governmental Organization, NGO)에게 정부보조금을 지원해주는 정책이 발안되었는데 이는 민주주의 국가로서 대중의 문화활동을 자유롭게 보장해주고 지원해 주어야 한다는 민간단체의 요구에 의해 수립된 것이었다. 하지만 아직 이 법안은 의회의 승인을 받지는 못하고 있다.Sheehan, Sean; (1994); Romania (Cultures of the World); Benchmark Books; U.S.A.1991년에 제정된 저작권법은 1994년이 되어서야 의회를 통과했는데, 당시 서유럽 선진국의 법을 참고로 만들어 진 것이었다. 당시 동유럽국가들 중 가장 현실적이고 획기적인 저작권 관련 법안으로 평가 받았다.1998년에는 국립영화국(the National Office of Cinema)이 자율권이 원활히 이전되지 못하고 있어서 문화정책의 수행의 모호함이 남아있는 것이 사실이다.또한 이전의 공산주의체제의 사상이 루마니아 관인(官人)들의 머릿속에 잔존해 있어 루마니아의 예술인들에 대한 간섭이 예전과는 달리 전혀 없어졌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래서 얼마 전, 루마니아 예술인들의 지위가 사회적 이슈화되었었는데, 이 쟁점은 '루마니아 예술인들에 대한 일반선언(Common Declaration concerning art creators, artists and art interpreters in Romania)'을 가져오게 했다.위 선언을 실천하기 위해 문화부는 다음과 같은 정책 활동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첫째, 문화적 자원에 대한 더 나은 재정적 지원과 관리(better support and financial management of resources)둘째, 문화관계 법률과 문화정책과의 조화(better harmonization of laws)셋째, 더 나은 문화부문의 투자확대정책(better investment and acquisition policy)넷째, 시급한 문화부문의 현안을 위한 특수화된 문화위원회의 조직(organization of specialized commissions for the priority sectors of culture)이외에도 다른 행정부문과의 업무교류 및 연대, 특히 루마니아를 세계 각국에 알리기 위한 효과적 정책수립 및 정책 활동을 위해 외무부와의 긴밀한 공조체제가 필요하다.루마니아 정부는 향후 문화부가 수행해 나아가야 할 과제를 A, B, C, D 단계로 선정하여 구체적인 문화정책의 방향 제시하고 있다.Workshop Program; (2000); Policies for Culture; Sinaia, RomaniaA; 향후 10년에 걸쳐 수행할 정책-국가 유산의 보존(preservation of national heritage)-유럽연합 회원국들과의 문화정책 및 전략이 조화(harmonization of cultur
쇼펜하우어와 박정희(두 인물의 共通點에 대하여)1. 序論쇼펜하우어와 박정희, 단순히 생각해 보면 그들에게서 공통점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중세의 염세주의 철학가와 현대의 정치지도자, 그것도 20여년 가까이 정권을 유지했던 독재자. 언뜻 생각해보면 전혀 관련이 없을 것 같은 두 사람이지만, 그들의 사상과 행태를 살펴보면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염세주의(厭世主義)세상이나 인생에 실망하여 이를 싫어하는 생각를 주장했던 쇼펜하우어는 세상의 많은 것을 대상으로 자신의 의견을 표출시켰는데 그 중 그의 정치론을 살펴보면 그는 정치에 대해,'정치와 사회 문제의 유일한 해결방법은 소수의 현명한 자와 고결한 자가 전제정치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중세를 살았던 인물이기에 전제정치를 언급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1인에 의해 지배와 그에 따른 폐단의 존재를 충분히 알고 있으면서도 전제정치를 옹호하는 것 쇼펜하우어 자신의 염세주의적 사상을 잘 반영하는 것이다.그렇다면 전제정치란 무엇인가?전제정치(despotism, 專制政治)란 군주 귀족 독재자 계급 정당의 어느 것이냐를 불문하고, 지배자가 국가의 모든 권력을 장악하여 아무런 제한이나 구속 없이 마음대로 그 권력을 운용하는 정치체제를 말한다.바로 이 점이 100여년 후에 나타난 정치지도자, 박정희와 쇼펜하우어를 한 울타리로 이끄는 매개체이다. 전제정치가 곧 독재정치이기 때문이다.본 보고서를 통해서는 쇼펜하우어의 정치론과 박정희의 정치론을 공통점 중심으로 다루고 현대에 맞는 정치관이란 과연 무엇인지 쇼펜하우어의 정치론과 빗대어 유추해 보도록 하겠다.2. 本論쇼펜하우어는 자신의 정치론에서 전제정치와 아나키즘(anarchism, 無政府主義)모든 정치조직 권력 사회적 권위를 부정하는 사상 및 운동을 비교하며 전제정치의 우월성을 주장한다.그의 말에 따르면,'전제정치의 폐단은 한정되어 있으며, 그것이 행동으로 옮겨져도 피해를 입는 사람은 백만 명에 한 명 정도 이지만, 무정부 상태에서는 모든 백성들이 날마다 그 피해를 입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어떤 정치체제이든 무정부 상태보다 전제정치로 기울어지는 편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그가 활동했던 시기는 중세의 봉건주의와 전제정치가 주류를 이루었던 때이므로 현재의 민주주의나 사회주의체제는 배제하고 그의 사상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그는 인간이라는 족속이 본래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고뇌와 멸망의 운명을 짊어지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국가의 힘이나 인위적인 정치제도의 도움으로 보정과 노고가 제거되어 이 지구가 일종의 극락세계로 변한다 하더라도, 인간은 권태 때문에 서로 처참하게 싸우거나 인구과잉으로 기근이 일어나 전멸되고 말 것 이라고 말했다.그러면서 전제정치 체제하의 카리스마를 갖춘 지도자가 국가를 이끌어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즉 전제왕정을 토대로 한 절대 권력을 가진 국왕이 백성들을 지배하는 것만이 무정부 상태에서 나타나는 위험요소를 최소화시키고 백성들을 안전하게 보살필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이는 곧 인간의 정치적 본능을 인정하면서 한편으로는 그 정치적 본능을 통제하고 관리할 수단으로 쇼펜하우어는 전제정치를 제시한 것이다.하지만 전제정치의 이면을 잘 알고 있었던 쇼펜하우어는 전제정치를 수행할 지도자의 조건을 제시하면서 전제정치의 폐단을 줄여야 한다고 역설했다.그는 전제정치 지도자의 조건으로 정치에 대한 지적능력과 자신의 욕망을 조절할 수 있는 이성, 용기를 제시하면서, 그 예로 나폴레옹을 성공적인 전제정치지도자로 꼽았다.쇼펜하우어는 나폴레옹을 대다수의 인간 이상으로 포악하지는 않았던 인물로 평가하면서 그의 이성적인 면과 지도자로서의 용기를 크게 평가했다.즉 바람직한 지도자에 의한 전제정치체제에 의한 국가형태를 쇼펜하우어는 부르짖었던 것이다.그럼 이제 100년 후, 한국이라는 쇼펜하우어가 전혀 알지 못했던 나라의 한 정치지도자를 살펴보도록 하겠다.박정희. 그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가장 추앙받는 대통령이면서도, 한편으로는 가장 비난 받는 정치지도자이기도 하다.군부출신인 그는 1961년 5·16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쥔 이후 1979년 10월 심복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의 총탄에 맞아 숨을 거둘 때까지 국가 최고 권력자로서 한국을 이끌었던 지도자이다.그는 표면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를 바탕으로 한 정부를 내세웠지만, 그를 독재자로 꼽는데 이의를 제기하는 이는 한 명도 없을 만큼 그는 제왕적 정치권력을 행사하였고, 이를 쇼펜하우어와 연계시켜 생각해 보면 쇼펜하우어가 주장했던 전제정치를 한 셈이 된다.박정희는 대통령의 임기동안 강력한 권력과 리더십을 지닌 자신만이 어려움과 가난에 빠진 조국을 구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3선개헌', '유신개헌'주요 내용은 ① 전문에 민족의 평화통일이념을 규정하고, ② 법률유보조항을 두어 기본권 제한을 보다 쉽게 하였으며, ③ 통일주체국민회의를 설치하였고, ④ 대통령의 권한을 대폭 강화하여 영도적(領導的) 국가 원수(元首)로 하였으며, ⑤ 정당국가적 경향을 완화하고, ⑥ 정부가 국무총리를 중심으로 연대성을 가지게 하였으며, ⑦ 국회의 회기를 단축하고 권한을 약화하였으며, ⑧ 사법적 헌법보장기관인 헌법재판소룰 정치적 헌법보장기관인 헌법위원회로 바꾸었고, ⑨ 법관을 대통령이 임명하게 하였으며, ⑩ 대통령을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선거하도록 하였고, ⑪ 국민투표제를 채택하였으며, ⑫ 헌법개정절차를 2원적으로 하였고, ⑬ 지방의회를 통일달성시까지 구성하지 않게 한 것 등이다.등을 추진해 정권을 연장시켰다. 박정희의 이러한 정치행태를 쇼펜하우어가 주장한 전제정치와 비교해보면 전제정치의 20세기로의 회귀(回歸)라 간주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바꿔 말하면, 전제정치사상은 현대에 와서 국가의 체제적 환경의 변화에 따라 그 형태가 바뀌어 독재정치의 변형되어 나타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루마니아어의 문법적 특성(Caracteristica gramatical de limba rom n )한국외국어대학교동유럽학대학 루마니아어과199904122 이 충 현1. 서 론동유럽에 위치한 루마니아는 슬라브어 계통의 언어를 사용하는 다른 주변국들과는 달리 라틴어를 모어(母語)로 한 루마니아어를 쓰는 국가이다.루마니아어는 프랑스어와 이태리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와 함께 라틴어 계통에 속하는 언어로서 대부분의 라틴어 계통의 언어들과 비슷한 문법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본 보고서에서는 그러한 루마니아어의 문법적 특성을 살펴보고, 루마니아어를 학습하는 데 있어 문법이 지닌 중요성을 나름대로 유추해 보고자 한다.2. 본 론문법적 특성을 알아보는데 있어 문법의 기본 단위인 품사를 통한 조사가 가장 바람직한 방법일 것이다.2.1. 명사(Substantivul)2.1.1. 명사의 성(Genul substantivului)루마니아어의 명사의 특성 중 그 첫 번째는 각 명사의 성(性)이 나누어져 있다는 것이다. 이는 비단 루마니아어만의 특성이 아니라 라틴어 계통의 언어들은 물론 독일어, 영어 등 대부분의 서양어가 나타내는 공통적인 특징이다.루마니아어 명사의 성은 각각 남성(masculin), 여성(feminin), 중성(neutru) 세 가지로 나뉜다. 크게 여성명사와 중성명사의 분포수가 높다. 이 중 중성명사는 단수일 때는 남성으로 취급되며, 여성일 때는 복수로 취급된다.명사의 성을 구분하는 방법으로 각 명사의 끝에 오는 철자로 나누는 방법이 있다.남성명사는 대체로 자음으로 끝나거나 -u, -i, -e 등의 모음으로 끝이 난다.여성명사는 단어의 끝에 - , -e, -ea, -a, -i 등의 모음이 오며, 중성명사는 자음으로 단어가 끝이 나거나, -u, -e, -o, -i 등의 모음이 끝에 오게 된다.김성기; 1998; 『루마니아어 기초문법연습-한국외국어대학교 동유럽발칸연구소 총서』; 삼지사; 서울; p. 16~172.1.2. 명사의 수(Num rul substantivulu의 언어와 마찬가지로 루마니아어 역시 명사의 수를 나누어 사용하고 있다.영어의 경우 대부분 명사 뒤에 -s 를 첨가함으로서 복수명사를 만들지만 루마니아어의 경우 각 명사의 성과 맨 끝의 자음의 형태에 따라 복수로 전환하는 방법이 각기 다르다.1) 남성단수명사의 복수전환a) 자음으로 끝나는 명사: +i ex) profesor profesori, instructor instructorib) -e 나 - 로 끝나는 명사: e, 를 I 로 바꾼다. ex) arbore arboric) -u 로 끝나는 명사: -u 를 i 로 바꾼다. ex) codru codurid) -i 로 끝나는 명사는 단수, 복수가 동일하다. ex) unchi unchi, ochi ochi2) 여성단수명사의 복수전환a) - 로 끝나는 명사: 를 e 로 바꾼다. ex) cas case, colib colibeb) -e 로 끝나는 명사: e 를 i 로 바꾼다. ex) p dure p duric) -a 로 끝나는 명사: a 를 ale 로 바꾼다. ex) pijama pijamaled) -ea 로 끝나는 명사: ea 를 ele 로 바꾼다. ex) stea stele, cafea cafele3) 중성단수명사의 복수전환a) 자음, -u, -u 로 끝나는 명사: +uri 또는 +e ex) chip chipuri, bilet bileteb) -e 로 끝나는 명사: 단수, 복수형태가 동일하다. ex) nume numec) -o 로 끝나는 명사: +uri ex) radio radiouri4) 예외zi zile, sor surori. nor nurori, om oameni, vale vai, ou ou , cale c i 등2.2. 관사(Articolul)루마니아어 역시 다른 언어와 마찬가지로 부정관사와 정관사의 두 가지 형태로 관사를 나누고 있다.부정관사는 일반적인 사물, 즉 일반명사의 앞에 붙는 형태이며, 정관사는 명사를 한정시켜 지칭하는 경우 명사 뒤에 명사의 성, 수에 따른 다른 형태의 어미를 붙여 사용한다.2관사(Articolul nehot r t)부정관사는 명사의 앞에 한 단어로 붙게 되는데 명사의 성, 수, 격에 따라 각기 다르다.주격, 목적격의 남성, 중성단수명사에는 un, 복수에는 ni te,주격, 목적격의 여성단수명사에는 o, 복수에는 ni te 가 명사의 앞에 붙고,소유격, 여격의 남성, 중성단수명사에는 unui, 복수에는 unor,소유격, 여격의 여성단수명사에는 unei, 복수에는 unor 가 명사의 앞에 붙게 된다.2.2.2. 정관사(Articolul hot r t)정관사 역사 위의 부정관사와 같이 명사의 성, 수, 격에 따라 다르며, 부정관사가 명사의 앞에서 독립된 한 단어로서 첨가되는 것과는 달리 명사의 뒤에 어미가 붙어 정관사가 붙은 명사를 이루게 된다.1) 남성, 중성명사단수의 정관사a) 자음으로 끝나는 명사: +ul ex) om omul, pom pomulb) -i 로 끝나는 명사: +ul ex) ochi ochiulc) -u 로 끝나는 명사: +l ex) stilou stilould) -e 로 끝나는 명사: +le ex) nasture nasturele2) 여성명사단수의 정관사a) -e 로 끝나는 명사: +a ex) carte cartea, p ine p ineab) - 로 끝나는 명사: 를 a 바꾼다. ex) cas casac) -ea 로 끝나는 명사: +ua ex) cafea cafeaua, stea steauad) -a 로 끝나는 명사: +ua ex) pijama pijamaua3) 남성명사복수의 정관사남성명사복수 + 복수정관사 -i ex) studen i studen ii, profesori profesorii4) 여성, 중성명사 복수의 정관사여성, 중성명사복수 + 복수정관사 -le ex) studente studentele2.3. 형용사(Adjectivul)와 부사(Adev rul)루마니아어의 형용사 역시 관사와 마찬가지로 형용사가 수식하는 명사의 성과 수에 따라 형용사 뒤에 다른 종류의 어미를 붙여 형태가 다르게 나타난다.위치는의 앞, 뒤 양쪽에 모두 위치할 수 있으나 명사의 뒤에 위치하여 한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때 한정을 받는 명사는 정관사 혹은 부정관사의 형태로 바뀌어 쓰여 진다.루마니아어의 형용사의 형태는 크게 네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첫 번째로 항상 동일한 형태로 쓰이는 형용사가 있고(bej, bleu, gri, maro),둘째로 명사의 성과는 관계없이 명사가 단수일 때는 -e, 복수일 때는 -i를 형용사 뒤에 붙여 쓰는 형태가 있다(dulce, dulci).세 번째로는 명사가 남성단수와 중성단수일 때는 형태상의 변화가 없고, 여성단수일 때는 형용사 뒤에 - 가 붙고, 남성, 여성, 중성명사 복수를 한정할 때는 뒤에 -i 를 붙이는 형태가 있다(mic, mic , mici).네 번째로 명사가 남성단수와 중성단수일 때는 형태상의 변화가 없고, 여성단수일 때는 형용사 뒤에 - 가 붙고, 남성명사복수에는 뒤에 -i 가, 여성, 중성명사복수에는 -e 가 붙는 형태의 형용사가 있다(alb, alb , albi, albe)이문수; 1999; 『실용 루마니아어』; 한국외국어대학교출판부; 서울; p. 344위 사항을 표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형태단수복수남성중성여성남성중성여성4-, -u--i-e-e3---i-i2-e-i1-표 루마니아어 형용사의 변형 형태루마니아어의 부사는 형용사와 같은 형태로 쓰인다. 단 수식하는 대상의 성과 수를 판단할 수 없으므로부사는 형용사나 동사, 자기 아닌 다른 부사를 수식하기 때문이다.남성명사단수를 수식하는 형용사, 즉 형용사의 기본형태와 같이 그대로 사용된다. ex) Va sufla slab.2.4. 대명사(Pronumele)루마니아어 역시 다른 언어와 비슷한 종류의 대명사를 가지고 있다. 인칭대명사를 비롯하여 재귀대명사, 지시대명사, 소유대명사 등이 그것 들이다.본 보고서에서는 그 중 가장 비중이 높은 인칭대명사의 특성만을 살펴보기로 하겠다.루마니아어의 인칭대명사는 타 언어와 같이 4격-주격, 소유격, 목적격, 여격-과 여섯가지 인칭으로 영어와 마찬가지로 격에 따라 각 인칭의 형태가 다르다.루마니아어 인칭대명사의 한 가지 특성은 목적격과 여격은 강세형과 비강세형-약세형이라고도 한다.-으로 나뉜다는 것이다. 강세형은 문장에서 대명사를 강조할 때 쓰이는데 비강세형에 비해 사용 빈도수가 높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또 강세형 인칭대명사는 주로 문장의 뒤에 전치사와 함께 사용된다. 비강세형은 일반적인 인칭대명사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해도 좋다.인칭격123456남성여성남성여성주격eutueleanoivoieiele.소유격--luiei--lor여격강세형mieieluieinouvoulor비강세형mi-mi-i- ie-i, -i--ne--ni--v , v-,-vi--le-, -li-목적격강세형minetineeleanoivoieiele비강세형-m , m--te-l, -l,l--o-ne--v , v-i, -i,i--le-표 루마니아어 인칭대명사2.5. 동사(verbul)루마니아어는 라틴어로부터 유래된 언어이기 때문에 동사의 인칭변화가 체계적이고 비교적 복잡한 편이다.다른 언어와 마찬가지로 시제상, 현재, 복합과거, 단순과거, 불완료과거, 미래 등으로 나뉘며, 형태상 수동태와 능동태가 있다.각 동사는 주어의 인칭에 따라 한 시제에 여섯 가지 형태로 변화되며, 시제에 따라 각기 다르게 변함은 물론이다. 본 보고서에서는 동사변화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현재형의 변화에 대해 알아보겠다.동사라는 품사는 주어를 통해서만 그 기능을 다 할 수 있다. 주어는 위 대명사 부분에서 알아 본 바와 같이 여섯 가지 인칭으로 나뉘는데 문장 상에서 실제로 나타나기도 하고 생략되기도 한다. 루마니아어의 경우 각 인칭에 따른 동사의 형태가 각기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에 굳이 주어가 문장에 나타나지 않더라도 동사를 통해 주어의 인칭을 알 수 있다.주요 현재형 동사의 변화인칭기본형123456a fisunte tiestesuntemsunte isunta facefacfacifacefacemface ifaca iubiiubesciube tiiube tbi i
" 중국의 동북아 정책과 반패권주의 "제 1 절 서 론오늘날 국제질서는 과거 냉전시기의 이념적 대립에서 벗어나 구성원간의 상호협력 및 화해의 분위기를 조성해 나아가고 있다. 그러나 한·중·일 3국을 비롯해 러시아, 북한이 모여있고 세계의 경찰 국가를 자부하고 있는 미국 또한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동북아시아지역(이하 동북아지역)은 지난해 김대중 대통령의 방북 및 남·북 정상회담으로 동북아 긴장 완화의 기운이 넘쳤지만 전체적인 외교 노선의 강경 정책을 고수하는 미국 공화당의 부시 Jr.(이하 부시) 행정부 출범이후 다시금 이 지역에 긴장감도가 고조되고 있다. 또한 얼마 전 미 정찰기와 중국 전투기간의 충돌사건이후 미·중간의 관계가 악화되어 가고 있는 가운데 미국에 대항해 동북아지역의 반패권주의(反覇權主義)를 주창해온 중국의 대외정책에 대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에 반패권주의에 대한 나름대로의 평가와 중국의 전반적인 동북아정책을 살펴보고 전망해 보고자 한다.제 2 절 중국의 동북아 정책사중국의 동북아 정책은 대략적으로 중국 국내의 정세와 국제정세, 이 두가지 요소에 따라 결정되어 왔다.1949년 중국 공산당 성립 이후부터 60년대까지 중국은 대 북한 '절대적지지' 성향을 나타내었으며 사회주의 진영의 단합과 협력체제 구축을 위해 대북일변도의 정책을 추구하였다. 그런 이유로 중국은 김일성 주도로 이루어진 한국전쟁에 대해서도 제국주의 미국을 타파하고 조선에서의 사회주의체제의 공고화를 위해 '아무런 대가없이' 참전하였던 것이다.) 「국제관계와 한반도 통일」정경환, 세종출판사 `98, 제9장 p. 194즉 이 시기부터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들의 단합과 협력'을 주창한 것을 계기로 자유주의 진영의 대표격인 미국에 대한 반미주의의 감정이 싹트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1970년대 들어서는 이전까지 사회주의체제의 동맹관계를 지켜온 소련과의 이념노선의 차이, 영토분쟁 등의 여러 가지 요인으로 인해 중·소 관계가 분쟁관계로 전환되면서 그에 따라 중국은 이른바 '중국식 사회할 괴뢰정부였던 한국과 국교수교를 한 사실은 큰 충격이 아닐 수 없는 것이었다.) 북한은 한·중 수교가 이루어진 직후인 `92년 9월 27일 당시 한국의 노태우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중국을 제국주의에 굴복한 배반자라고 혹독히 비난하였다. - 북한 중앙방송, `92년 9월 27일그로 인해 제기된 것이 북한이 미국과의 관계정상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었던 것이다. 그러나 90년대 초 중국의 한국과의 국교정상화로 북한과의 관계가 경색해 진 것이 사실이었지만 북한과의 관계악화는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지역 전체의 평화적 질서유지와 자국의 안전보장에 불리한 역할을 하리라는 인식 하에 중국은 북한과의 관계복원을 통한 선린우호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다.제 3 절 동북아 정세현재 동북아 정세는 봄을 맞아 개화를 준비하던 개나리꽃이 갑작스럽게 날린 눈발에 꽃망울이 덮힌 격이라고 할 수 있다.90년대 초 한·중, 한·러 관계 정상화와 94년 미·북간의 제네바 핵 합의에 이어 가깝게는 지난해 김대중 대통령의 방북과 남·북 정상회담으로 조성된 평화와 안정의 분위기가 강경파의 미 부시 행정부의 출범에 이은 미·북간의 관계 악화와 미 정찰기와 중국 전투기간의 충돌사건으로 인해 된서리를 맞은 것이다. 이는 동북아지역에서 그 중요성을 간과하지 않으면 안될 북한과 중국을 상대로한 갈등의 양상으로 전개되어 동북아지역에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현재 동북아지역의 정세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첫째, 미국이 동북아지역에 대한 정치, 군사적 개입과 영향력 행사를 강화하고 있다. 이는 부시 행정부 출범이후 더욱 활발히 전개되어오고 있는데 `99년 코소보 사태 시 미군에 의한 주유고 중국대사관 오폭사건과 정찰기 충돌사건 등으로 중국의 반미감정을 더욱 자극시키고 있다.둘째, 동북아지역 내에 군사, 전략적 균형이 변화하고 있다. 미·일에 의한 전역미사일방어체계(TMD) 개발과 미국의 국가미사일방어체계(NMD) 추진선언 등으로 인해 미·일 간의 안보관계가 강화되는 반면 미·중·러 3국사이의 상호 불수호한다는 입장을 표명해 왔다.'패권주의'란 용어는 중국의 대외정책에서 줄곧 하나의 상용어처럼 쓰여져 왔는데 그 첫 발단이 된 것은 1972년 죠우언라이(周恩來)와 닉슨 미 대통령 사이에 이루어진 중·미 공동성명(상해공동성명)이었다. 이 성명에는, '그 어느 일방도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패권을 모색해서는 안되며, 그 어는 일방도 기타국가 또는 국가집단의 패권주의에 대해 반대해야 한다' 고 규정되어 있다.) 「중국의 신외교전략과 한중관계」 이영주, `98, 나남출판, p.172이 규정은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고려해보면 다분히 동북아지역에서의 소련의 팽창정책을 강하게 억제하려는 의도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중국의 입장에서 살펴보면 반패권주의의 대상을 소련 한나라로만 국한시킨 것이 아니라 미국에도 적용을 시켜 냉전시기의 양대 초강대국인 미·소로부터 자신들의 체제안정과 지역내 평화를 얻고자 했던 것이다.상해공동성명에 이어 '패권주의'란 용어는 1978년 체결된 중·일 우호조약에도 명시되었으며 현재까지 중국외교정책의 한 축으로 그 역할을 담당해오고 있다.소련이 붕괴된 이후 중국의 반패권주의는 미국을 대상으로 삼고 있다. 동북아지역에서의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중국 내부의 인권문제 등에 여러 차례 개입해온 미국으로서는 반패권주의를 주창해온 중국에겐 가장 큰 갈등관계의 상대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또한 전통적으로 사회주의 대 민주주의라는 이념적 대립의 양상으로부터 표출되어 온 반미주의가 1999년 코소보 사태시 발생된 주유고 중국대사관 오폭사건과 얼마 전 일어난 정찰기 충돌사건 등으로 인해 더욱 심화되었다.즉 반패권주의의 밑바탕에는 중국의 미국에 대한 반감이 자리잡고 있다. 다시 말해서 중국에겐 반패권주의가 우회적으로 반미감정을 표출시킬 수 있는 큰 명분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제 5 절 중국 외교정책의 목표중국의 외교정책은 중국의 역사와 전통, 공산주의 혁명의 경험 등과 밀접한 관련아래 전개되어 왔다. 그러므로 오늘날 중국의 외교행태 는 중국정부 수립 직후부터 지금까지 중국에게 있어 최대 현안이 아닐 수 없다. 정책결정 시 자신들의 역사적 경험을 상당히 중시하는 중국의 지도자들은 청조 말의 제국주의 전성기 때처럼 국경주변에 강력한 적대세력의 형성과 또 그들이 중국 본토에 미칠 압력 등에 대단히 민감하다. 그런 이유로 그들은 현재까지 줄곧 '반패권주의'를 내세우고 있고 소련과의 관계악화 이후 자체 핵 개발 추진 등 안보분야에 있어서 외부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 자립적이고 독자적인 토대를 확보해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자주적 독립의 확보 측면은 1970년대 소련과의 대립이 표면화되기 시작한 시기부터 대두되어 왔다. 중국은 소련과의 동맹관계가 깨지고 독자적 노선을 걷기 시작하면서 자신들의 독자적 역량확보만이 안보 및 독립을 유지할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영토 수복 및 통일을 통한 자존심 회복은 대만을 비롯해 만주, 내몽고, 티벳 그리고 남지나 해에 산재한 군·소도서까지 중국의 영토로 편입 혹은 수복시켜 자존심 회복은 물론 아시아 대륙에 있어서 중국의 영향력을 증가시키려는 중국의 의도가 깔려있다.경제발전의 목표는 낙후된 경제를 성장시켜 강력한 사회주의국가로의 전환을 의미하며, 대외적 권위확립 및 영향력 행사는 동북아, 특히 한반도 문제에 적극 개입하여 동북아지역에서의 자신들의 영향력을 높이고 미국에 대항하여 반패권주의를 고수, 달성해 나아가려는 의도라고 볼 수 있다.중국정부 초기 모택동은 '프롤레타리아국제주의원칙'을 고수하면서 자본주의 국가와의 반제투쟁을 전개하는 한편, 공산주의 국가들과는 평화공존을 추구하였다. 물론 비공산국가들 가운데 신생독립국을 포함한 제3세계와의 광범위한 평화공존이기는 하였으나 그것은 대체로 제한적이었고 폐솨적인 모습을 띤 극단적인 이데올로기 편향에 기인한 것이었다. 그러나 등소평 시대에 들어와 평화공존의 틀과 내용에 변화를 가져오면서 보다 실용주의적이며 개방적인 탈이념적 평화공존을 지향해 오고 있다.제 6 절 반패권주의의 구체화위 4절에서 언급한바와 같이 반패권주의의 전적으로 침략적인 대외확장을 말하는 것으로, 그 폐해는 주로 무력행위와 간섭에서 오는 것이다. ③ 패권주의는 고정된 사회제도의 근원이 없이 어떠한 사회제도 하에서도 가능한 것이지, 제국주의처럼 독점자본주의체제의 산물이 아니다.) 「國際政治學 論」梁守德·洪銀 , `94, 中央編譯出版社, p. 237즉 중국은 패권주의를 정책행위 자체에만 국한시킴으로써 그 어느 사회제도 또는 국가전체를 상대로 하는 것이 아니며, 더욱이 그 국가를 적국으로 간주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중국 측 논리의 패권주의는 국가간의 관계에서 무력의 직접적인 사용 혹은 무력을 동원한 위협으로 타국의 주권을 침해하고 국제법 준칙을 파기하는 그 어떤 사회제도나, 국가를 대표하는 정책이나 행위는 아닌 것이다. 따라서 반패권주의 투쟁에서도 정책과 제도, 내정과 외교를 명확히 구별해야 할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외교정책을 패권정책과 구분해야하며 다시 말해서 대외관계에 입각해서 그 패권행위 자체에만 대항해야 한다는 것이다.중국은 위와 같은 패권주의에 대한 모토를 토대로,첫째, 세계 각 지역의 충돌과 국제분쟁 및 강대국의 강권적 외교행위에 대해 패권주의를 반대하고 세계평화를 수호하는 정치적 입장을 계속 천명함으로써 세계정의를 지지하는 정치적 이미지의 정립을 실현한다.둘째, '중국은 영원히 제3세계의 편에 서며 영원히 우두머리가 되지 않을 것이며 패권을 추구하지 않는다.') 「鄧小平文選」제3장, p. 363즉 중국이 앞으로 어떻게 발전하는 가를 막론하고 영원히 침략, 확장정책을 펴지 않을 것이며 평화적 이미지 정립을 추구한다.셋째, 국가와 국가관계를 처리할 때 반패권적 정치입장과 개발도상국가와의 관계발전을 적절하게 구별하고 패권주의에 대한 반대를 강조할 뿐만 아니라 평화공존 5원칙의 기초 위에서 비록 패권주의 행위가 있다 하더라도 중국의 이익을 직접적으로 위협하지 않는 한 이들 국가들과도 정상적인 국가관계를 유지, 발전시킨다는 실용주의 외교노선을 견지한다.넷째, 국가이익을 수호하고 중국내정에 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