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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평론] 황석영론--객지에서 상생의 공동체로(손님을 중심으로) 평가C아쉬워요
    황석영론--객지에서 상생의 공동체로(손님을 중심으로)역사의 현장에 작가가 있었다는 것은 작가나 역사 모두에게 행운이다. 그런 점에서 황석영은 행운아인 동시에 우리의 역사에도 행운이다. 그는 70년대에는 베트남과 산업현장에 있었고 80,90년대는 광주와 북한에서 또한 독일에서 통일이 되는 과정을 고스란히 지켜보고 있었다. 이러한 역사적 체험을 바탕으로 그는 자신의 작품을 만들어 나갔으며, 생생한 그의 리얼리즘은 바로 여기에 기인한다. 베트남전에서는 『무기의 그늘』로, 산업화 현장에서는 『객지』, 『삼포로 가는 길』로 화답했으며, 광주항쟁은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라는 르포로. 감옥과 독일에서의 삶은 『오래된 정원』으로, 그리고 북에서의 경험은 『손님』을 통해서 표출된다. 이처럼 다양한 세기말적인 사건들을 경험했지만 그의 작품들은 묘한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각 작품마다 황석영의 공통되는 문학적 코드가 담겨있는 것이다. 우선 황석영의 작품에는 주변인 혹은 버림받은 자들의 외침이 들어있다. 그들은 항상 권력에서 비켜서 있으며 역사의 큰 톱니바퀴 밑에서 신음하고 있는 자들이다.1) 거세된 자들의 방황우선 이들의 특징은 고향으로부터 버림받은 존재들이라는 사실이다. 이들의 고향은 공간적인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들의 고향은 황석영의 『입석부근』에 나오는 바위벽 틈새에 있는 은밀하고 포근한 어머니의 자궁과 같은 바위굴 같은 것이다. 여기에는 가고는 싶으나 이제 갈 수 없다는 근원적 거세의식이 가로놓여져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이들은 고향으로부터 내던져진 존재들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인물들의 특징은 황석영의 삶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외가의 가족 이야기이기도 한 『韓氏年代記』나 그 자신이 어머니에 대해 고백하듯이 남한에서의 삶은 주인의식으로서의 삶이라기 보다는 나그네로서의 삶에 더 가까웠다. 그들은 지금 임시적으로 존재할 뿐이다. 고향은 어디에도 없다. 『객지』의 동혁은 숙부의 엽서를 찢음으로써 자신의 고향없음 을 구체화시켰으며, 『이웃사람』의 나 역시 고어두웠으며 두꺼운 커튼이 항상 굳게 창문을 가리고 있었다. 또한 그는 고향에 가게 되었다는 동생 요섭의 말에 서울엔 왜? 라는 말로 묻는다. 그에게 황해도 신천 찬샘골은 더 이상 고향이 아니었다. 그러나 요한이 고향을 완전히 잊었던 것은 아니다. 요한은 월남해서 재혼하고 3년전까지 같이 살던 아내가 있었다. 그러나 요한은 요섭에게 한번도 너의 형수라든가 내 아내라든가 하는 말로 그이를 표현 한 적이 없었다. 다만 그에게는 안성댁 이었다. 요한의 무의식 가운데는 고향에 있는 아내가 자리잡고 있었다. 여기엔 자신의 현재 삶이 임시적이라는 의식이 깔려 있다. 공간적인 고향은 잊혀졌는지 몰라도 인간관계로서의 고향은 아직도 요섭의 마음 한구석엔 남아있는 것이다. 이러한 모순은 고향에 대한 부재의식을 더욱 심화시키는 기제로 작용한다. 요섭도 고향에 대해 말을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맨해튼에 있는 허름한 스낵에서 만난 김선생에게 고향에 대해 밝히지 못하고 있다.고향이 어디세요?김선생님이 볼펜을 꼬나잡고 돋보기 너머로 요섭을 건너다보았다.평양...네, 평양입니다.평양 어디 몇 번지요?요섭은 아무렇게나 말해버렸다.평양시 선교리요 (21)요섭은 가해자가 아니었지만 가해자 아닌 것덜이 어딨어! 라는 소메 삼촌의 말처럼 모두가 고향에 대해 말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 또한 처음 꿈에서 들리는 캄캄한 구덩이 속에서 올라오는 바이올린의 미세한 떨림 은 요섭에게 씻을 수 없는 개인적 체험이 되어 고향을 말할 수 없는 것으로 봉인해 버린다. 산 자 뿐만이 아니다. 죽은 자도 고향 없기는 마찬가지다. 그들은 갈 곳을 알지 못한다. 어딘가에 자리잡지 못하고 허공에 뜬 채로 맴돌 뿐이다. 그래서 마지막 장에 나오는 뒤풀이는 더 뜻이 깊어진다. 죽은 자를 향해서 너두 먹구 물러가라 는 말은 그들이 아직도 가지 못하고 떠돌아다닌다는 것을 전제한다. 그들은 곳곳에서 불쑥 뛰쳐나온다. 자신의 고향에 가지 못하고 산 자 곁에서 물끄러미 그들을 쳐다보는 것이다. 있어야 될 곳에 있지 못하는 것하게 된다. 이러한 자본에 의해 현재 이 곳 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부재의식 가운데 사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런 점에서 팜 꾸엔이나 오혜정 역시 피해자이기는 마찬가지다. 황석영의 유일한 추리소설이기도 한 『심판의 집』에서 역시 돈에 대한 탐욕으로 자기 자리 에서 이탈하는 모습이 나타난다. 『돼지꿈』,『장사의 꿈』, 『객지』, 『삼포로 가는 길』등에서는 고향을 등지게 한 실체를 산업화, 도시화로 명확하게 나타낸다.『한씨연대기』에서는 본격적으로 분단이 이탈의 원인으로 등장한다. 한영덕은 분단의 역사를 고스란히 개인사로 담고 있는 인물이다. 분단에 의해 모든 삶이 잘려나간 한영덕의 삶을 통해서 분단상황에 대한 작가의 인식이 나타난다. 그러나 장편이 아닌 중편이라는 점과 한영덕의 과거사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문제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한계도 지니고 있다. 또한 일찍이 우리 문학은 크게 분단문학 의 연장선이라고 갈파한{) 황석영, 『객지에서 고향으로』 (서울: 형성사, 1985), 179쪽.황석영이지만 그의 작품 가운데 분단의 문제가 적게 다루어진 측면도 있다. 그러나 출옥후 그의 작품들은 분단을 우리 사회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로 나타낸다. 『오래된 정원』은 광주항쟁에서 21세기를 얼마 안 남긴 1998년까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윤희 아버지의 삶이 그 이전까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게 한다. 좌우익의 갈등은 이미 해방 전부터 시작되었으며, 분단상황에서 전향서를 쓰고 나온 아버지의 삶은 현우의 삶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한다. 윤희는 이 둘을 연결시켜 주는 매개체로 작용하며 아버지 당대의 문제가 과거가 아닌 현재진행형으로 아직도 계속 지속되고 있음을 나타낸다.『손님』역시 분단을 다루고 있으며, 죽은 자가 산 자 곁에 서서 그것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음을 일깨워주고 있다. 죽은 자를 출몰시켜 그들로 말을 하게끔 하는 작가의 의도는 그 일이 잊혀진 과거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우리는 잊고 있었는지 모르지만 죽은 자는 계속때 종교의 역할은 현상태 유지와 기득권 보호로 맞춰진다. 가난하던 이들이 땅을 분여받아 굶주리지 않게 된 것은 예수님의 행적으로 보더라도 훌륭한 일 이었지만 자신이 부리던 사람에게 땅을 빼앗기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니다. 기독교도 이전에 그들은 이미 유산자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표피적으로는 기독교와 막시즘의 싸움이지만 사실상 무산자와 유산자의 계급갈등의 다름 아니다. 단지 기독교는 막시즘에 대항하는 유산자들을 묶는 형식적 끈으로 작용할 뿐이다. 외부적으로는 손님이라는 탈을 쓰고 싸웠지만 이미 내부적으로 모순된 상황에서 갈등이 내재되어 있었다. 손님은 이 갈등을 첨예화시키며 그들의 행동에 알리바이를 제공해 줄 따름이다. 이런 점에서 박물관장의 저희끼리 그랬시니 천벌을 받았지. 논밭은 온 천지가 텅 비구 빵때쑥대만 도깨비처럼 자랐대서요 (107)라는 말은 일면 타당하다.또한 작품가운데 눈여겨볼 인물이 바로 소메 삼촌이다. 소메 삼촌 역시 기독교인이다. 특별히 『손님』에는 몇 가지 기독교인들의 유형이 나타난다. 대표적 인물은 요한과 요섭, 그리고 소메 삼촌이다. 요한은 기독교를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철저히 사용한다. 자신은 십자군이었으며 공산당원은 사탄이었다. 이에 대해 요섭은 중간자적 입장에서 개인의 영혼 문제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 요섭이 인용하는 성경구절이나 기도는 다분히 개인적인 성격이 강하다. 각 자의 양심에 호소하며 화해를 시도한다. 이에 반해 소메 삼촌은 일찍부터 사회적 문제에 눈을 뜬 인물이다. 일경에 잡혀가서 고문으로 돌아가신 선생님을 보고 신학교에 가는 것을 포기한다. 고향에 내려와서 농사를 지으면서도 읍내에 나가 강선생이 만든 좌익성향이 있는 야학에 나가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한다. 그렇다고 신앙을 버린 것도 아니다. 더 투철한 신앙인이 되어간다. 그는 기독교연맹 신천군 위원을 맡아달라는 순남이의 부탁을 받고 새벽까지 마당에 나와 앉아 통성기도를 하며 고민을 하는 인물이다(191). 아직도 난 교인이다. 길구 당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나를 소상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황해도 신천군 일대에서 학살이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이 당시 미군 보고서에 나와 있는 것으 로 밝혀졌다. http://www.imbc.com/tv/culture/cantell/vod.html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제 47회 황해도 신천 사건당시 미국은 우리나라의 실제적인 통치권자로서 이것을 막을 수 있는 힘이 있었지만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러한 행동은 비단 황해도 신천에서만 그랬던 것이 아니다. 남한의 신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 4.3 제주 항쟁(우연히도 실제 학살된 인원도 신천과 비슷한 3만명정도였다), 20만 명 정도가 학살된 것으로 추정되는 보도연맹 사건, 여운형 암살 등 해방 초기 남한에서의 좌익 인사 암살을 이끌었던 백의사 사건 등에서 미국은 자신의 통치를 원활하기 위해 이를 묵인하고 있었다. 앞으로 이러한 미국의 행동은 분단문학의 선상에서 더 논의되어져야 할 것이다.3) 휴머니즘적 미학을 위하여이러한 문제에도 불구하고 황석영은 뭔가 희망의 자리를 남겨놓는다. 황석영은 투철한 인간의지와 현실, 그리고 역사의식에 바탕을 둔 건강한 그의 리얼리즘을 내놓는다. 카칸(M. Kagan)은 "예술작품은 현실을 묘사하는데 있어 구체적이어야만 한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반드시 어떤 이상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만일 예술작품에 이상적이고 보편적인 차원이 없게 되면, 그것은 자연주의로 바뀌어서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된다"고 했다.{) Victor Terrass, Belinskij and Russian Literary Criticism: The Heritage of Organic Aesthetics, University of Wisconsin Press, 1974, 6쪽. 이태동, 역사적 휴머니즘과 미학 의 근거, 『세계의 문학』봄 (1981); 58에서 재인용황석영의 문학이 나름대로 자기 위치를 지키는 이유중 하나는 바로 이러한 이상과 희망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부조리한 권력이나 환경에 찢겨져있다.
    경영/경제| 2002.11.27| 8페이지| 1,000원| 조회(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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