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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루스트-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소돔과고모라편
    프루스트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이 책을 접하기 전에 장편이라 부담감도 좀 있었는데 발표를 하게 되어 편을 골랐다. 막상 읽고 보니 주인공이 누구인지 정체를 파악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을 뿐 (첫 장면부터 숨어서 샤를뤼스 씨와 쥐피앙이 관계하는걸 보고 있었다)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주인공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일어나는 일들을 자연스럽게 서술하고 있기 때문인데 본인이 이야기의 주인공이자 때로는 다른 사람들의 속마음까지 자세히 묘사하는 초능력을 지닌 인물이었다.게다가 어찌나 박식하고 음악 미술 역사 지명(!) 언어! 모든 것에 통달했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안타까운 것은 프랑스어를 일본어로 번역된 것을 또 다시 번역했기 때문인지 문맥의 파악이 때로는 다소 어렵게 느껴졌는데, 곳곳에 숨겨져 있는 프랑스어만의 뉘앙스와 말장난 등을 이해하는데 있어 역시 원어를 알아야 더욱 이해를 잘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프루스트의 대표작인 는 그의 섬세한 문체, 아주 세밀한 묘사와 내면적 자아까지 아주 잘 표현한 작품으로 마치 한폭의 풍경화를 보는듯한 예쁜 사연이 담긴 그림 같은 작품이기도 했다. 의외의 부분에서 터져 나오는 유머감각이 너무 많은 묘사로 이루어진 책을 지루하지 않게 만들어주는 양념이었다.소돔과 고모라는 성서에 나오는 쾌락과 환락, 동성애에 빠진 저주 받은 도시로 알려져 있는데 여기서는 소돔을 남자 동성애자, 고모라를 여자 동성애자로 정의하였다. 흔히 소돔, 소도미 등을 동성애로 일컫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고모라가 레즈비언을 지칭함은 처음 알게 된 사실이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막상 프루스트가 레즈비언 쪽으로는 많은 정보가 없었음을 알 수 있었는데 소돔부분은 꽤 자세히 서술하고 본인이 그 세계에 들어가 본 것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었으나 알베르틴 부분에서는 단지 짐작을 하고 질투를 하는 단계에서만 머무른 것으로 보아 본인이 실제 접하지 않아서, 또는 거기까지는 상상력이 미치지 못했나보다.책을 읽으면서 프루스트의 만물박사적인 지식에 놀방향을 바꾼다. 그와 마찬가지로 여기 있는 암꽃은 만약 벌레가 오면 그 암술대를 요염하게 휘어, 벌레가 들어오기 쉽도록 새침하면서도 정열적인 색시처럼 표가 나지 않을 정도로 그 길을 줄여준다. 곤충에 의하여 이루어 지지 않는 교배는, 같은 종족의 다음세대에게 조상에게는 없었던 어떤 강건성을 가져다 준다. )11페이지샤를뤼스 씨의 태도가 변하자, 마치 어떤 비술법에 따르듯 쥐피앙의 태도 역시 곧 샤를뤼스의 그것에 어울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쥐피앙, 내가 늘 보아 온 겸손하고도 선량한 모습을 당장 버리고- 남작과는 아주 대조적으로- 머리를 쳐들고, 상체에 거만스러운 자세를 취하고, 한쪽 주먹을 볼꼴사납게 건방지게 허리 위에 놓고, 궁둥이를 불쑥 내밀고, 조물주의 섭리로 뜻밖에 나타난 땅벌을 향하여 난초꽃이 하는 듯한 교태스러운 자세를 지었다.14페이지- 남작이 돌아왔음남작은 만사를 빨리 처리할 결심으로 재봉사한테 불을 빌려달라고 했는데 곧 알아차리고"불을 빌려달라고 했는데 여송연을 안가져군“이때 환대의 법칙이 교태의 법칙을 이겨냈다.“들어가시죠 필요한 것을 다 드릴테니” 하고 말하는 재봉사의 얼굴에 경멸 대신에 기쁨의 빛이 떠올랐다.매우 희귀한 곤충과 사로잡힌 꽃 사이에 기적적인 교합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음을 이제 나는 의심하지 않았다.두 사람의 성교를 희귀한 곤충과 사로잡힌 꽃으로 묘사한 이 부분은 매우 충격적으로 다가왔는데 첫 번째 읽었을 때는 그냥 지나쳤으나 책을 끝까지 읽은 후 다시 읽어 보니 프루스트의 묘사력에 새삼 반한부분이다. 사실 책을 처음 접했을때는 너무 지루 한 감이 있어 책을 띄엄띄엄 읽었다. 흔히 하는 식으로 대강의 줄거리와 사건을 파악하려고 했기 때문인데 책을 어찌어찌 한번 읽고 나니 그런 식으로는 프루스트를 읽어서는 안된다는 느낌이 들어 기억나는 부분을 다시 골라 읽었다. 샤를뤼스씨와 쥐피앙의 관계를 표현함에 있어 특히 11페이지 부분이 가장 웃음이 나오는 장면이었는데 두 사람의 관계에 있어 굽신굽신하던 쥐피앙의 변화란! 저렇게 사랑의 그의 남자다운 모습( 뚱뚱한 외모 남성스러운 옷차림등) 과는 정반대로 그는 사랑에 있어서 약자가 되어버렸는데 모렐과의 관계에 있어 특히 그러하다. 군악대 출신의 모렐에게 샤를뤼스 남작은 잘해주고 싶어 안달이 나있다. 그를 사교계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게 하며 조금 더 잘해주고 싶어서 늘 이궁리 저궁리를 한다.굳이 두 사람의 관계가 남자끼리의 애정행각이어서가 아니라 무릇 모든 연애에 통용되듯 더 사랑하는 사람이 약자 이지 않은가. 애정을 쏟아 붓는 쪽이 약자이고, 태연자약하게 그 애정을 받으면서도 고마운 줄 모르는 쪽이 사랑의 강자인것이다.샤를뤼스 씨가 모렐에게 빠져들수록 모렐의 시건방짐은 끝이 없어진다. 하지만 그러한 모렐도 꼬리가 길어 샤를뤼스씨에게 뒤를 밟히고 마는데, 게르망트공작과의 밀회가들키고 마는 장면은 실소를 머금게 된다. 이러한 두 사람의 희극적 관계가 가장 안타까웠던 부분은- 후편에서 어떻게든 모렐의 관심을 얻기 위해 거짓 결투를 꾸며내 모렐을 다시 자기 곁으로 불러들이는 장면이다. 주인공은 그들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모렐이 자기에게 돌아와서 기뻐하며 그가 자기를 걱정하고 있다고 믿고 그가 만들어낸 거짓 결투에 스스로 도취되어있는 가련한 샤를뤼스 남작과 주인공이 전한 편지를 받고 자기의 군생활의 평판이 나빠질까 한걸음에 달려와 샤를뤼스남작을 겉으론 위로하면서도 속으론 계산속으로 가득 차 있는 장면이다. 이 광경에서 두 사람다의 마음을 잘 알고있는 주인공이 얼마나 그 둘의 애정을 비웃었을까.앙드레 지드, 보를레르 , 세익스피어, 더 올라가 소크라테스 같은 성도착자 들도 그 타기할 악습은, ‘나 역시 초록 동색이오, 하고 과감히 내뱉은 사람이 푸르스트 이전에 없었고 또 이 저주 받은 습성을 생생히 그렸다.조지 d.페인터에 따르면 프루스트는 회개의 정으로 가득한 성도착자이고, 지드는 의양양한 성 도착자였다 ( 지드의 입장에서 보면 이 소돔 주민에 의한 소돔 족속의 고발은 일종의 배신인 동시에 위선이었다. )샤를뤼스 남작의 모델에는 두사람이 있다고 하는데 물들 역시 겉으로 찬양하면서,만찬에 함께하면서 막상 속으로는 비웃고 있었을 프루스트.아니 비웃었을망정 그 둘의 관계(샤를뤼스씨와 모렐)에 자신의 연애관을 투영시키고 있는 프루스트가 아니었을까?프루스트는 자신의 것이 되는것에는 매력을 느끼지 못했었다고 한다. 즉 튕기는 상대에게만 애정을 느꼈던 것인데 그의 그러한 연애취향은 알베르틴과의 관계에서 잘 나타난다.알베르틴은 웃는 얼굴이 매력적인, 교양은 풍부하지 않으나 감각은 뛰어난 브루주아 계급의 아가씨이다. 가진것이 별로 없는 그녀는 대신 자신을 치장하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해왔으므로 모든 것을 가진 게르망트 공작부인보다 더 뛰어난 안목을 가졌다고 주인공은 생각한다.주인공은 그녀와의 관계에서 성적인 접촉이 있었는지 확실히 소설에 나타나지는 않지만 키스와 애무정도 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알베르틴이 주인공의 침실에 자주 나타났었던 것에 비하면 의외인데 이것은 아마도 프루스트 자신이 여자를 좋아하지 않았던 것에 기인한 듯 싶다. 프루스트는 자위에 강박작으로 몰입했다고 하는데 그 당시에는 그것이 병이라고 생각하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프루스트의 아버지는 그에게 매춘부에게 가라고 돈까지 쥐어주었다. 그러나 그는 오늘은 시간이 없어요. 라고 말하지 않는 늘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매춘부에게 흥분을 할 수가 없었다.그래서 책속에서 알베르틴을 만지면서도 관계를 갖지 않은것일까?주인공은 알베르틴을 좋아했다. 그녀가 대귀족 부인보다 딱히 뛰어난것은 없으나 감각적인 부분을 좋아했다. 때론 그녀에게 싫증을 느끼기도 했지만 그녀가 감추고 있는 무언가의 비밀을 눈치채감에 따라 그녀에게 집착하고 놓아주려 하지 않는다. 여자친구를 의심하게되는 부분은 여기서 부터이다.1편 257페이지. 코타르와 베르뒤랭네를 가려하다가 열차시간이 남아 마을의 작은 카지노에 들어갔다.그곳에는 아가씨들의 웃음 소리와 함께 상대가 없어 자기들끼리 왈츠를 추고있었는데, 주인공은 단지 카지노에 아가씨들과 남는 다는 사실이 즐거워 알베르틴과 앙드레의 춤 솜씨를 칭찬했는데 코다.이 순간 앙드레는 알베르틴에게 뭔가 한마디 해, 알베르틴은, 아까 내가 들었던 것과 똑같이 날카롭고도 심오한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나 그 웃음소리가 내게 가져다준 혼란은 이번엔 더 잔혹한 것이었다. 알베르틴은 그것을 앙드레에게 보이고, 관능적이고도 비밀스러운 어떤 떨림을 확인시키려는 모양이어서 미지의 잔치의 첫 또는 마지막 노래처럼 종이 울렸다.그후로 주인공은 알베르틴을 의심하기 시작하는데, 글쎄 여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녀들은 단순히 춤만 추었을지도 모른다. 춤을 추고 즐기는 그런 장면. 그런데 주인공은 한번 의혹을 품음으로써 더욱 더 그 의혹은 커져만 간다. 여중 여고를 나온 나로써는 알베르틴의 그런 소녀틱한 습성이 이해가 가기도 하는데, 뭐 우리 중에는 첫키스를 여자끼리 한다던지 한때의 호기심으로 서로를 이성으로 느끼는 경우도 종종 있었으니 말이다. 상황적으로 여자끼리 몰려있다보니 어쩔수 없기도 한데 개중에는 남자친구를 사귀는 경우도 있지만 남자친구를 사귀는게 금기시 되어있는 분위기다 보니 오히려 당당하게 여자를 사귀는(?) 상황도 발생하기도 했었다.하지만 추측컨대 둘 간의 관계가 아마 친구보다 조금 더 친밀한 그런 정도가 아니었을까?하지만 알베르틴은 평범한 소녀들보다는 자질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1편 280페이지알베르틴 “ 나는 갈매기를 썩 좋아해요 암스테르담에서 자주 보았어요. 갈매기는 바다 냄새를 풍겨요, 거리의 자갈들 복판에 까지 바다 냄새를 맡으러 오죠.”알베르틴의 습성에 대해 주인공에 다시금 의문을 품게 되는 부분이다. 주인공은 앙드레와 알베르틴을 격리 시키고 호텔의 젊은 여성 방문객도 알베르틴에게 호감이 있다고 느낀다. 주인공이 좀 오버해서 여자친구를 대한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뭐 알베르틴이 그리 뛰어난 미인도 아니고 우아한 것도 아닌데 왜저러지? 라고했엇는데 알베르틴이 저 대사를 하는 순간 나도 주인공의 의견에 동화되버리고 말았다. 그래! 알베르틴이 괜히 저러는게 아니야!그녀의 행동 하나하나가 다 의심스럽기 시작한다. 그녀도 모렐
    독후감/창작| 2006.09.29| 9페이지| 1,000원| 조회(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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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감상문]영화 블레이드 러너 감상문
    ?? 를 보고 나서나는 개인적으로 ‘암울’ 한 영화는 좋아하지 않는다. 배경색채가 어두운 영화, 주인공들이 허무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있는 영화, 배경이 빈민가인 영화...한마디로 구질구질한 영화는 딱 질색이다. 그러나 블레이드 러너는 주인공들이 목적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좋았다. 영화의 전반적으로 깔린 암울함이 있었지만, 그것보다 더 암울한 슬럼가의 모습도 있었지만, 리플리컨트들이 살아남으려는 노력과 모든 것을 놓은듯하지만 마지막 삶에 몸부림치는 데커드의 모습도 보았다. 자신이 리플리컨트임을 알고 고민하는 레이첼과 그런 레이첼과 사랑을 하는 데커드. -내 영어이름이 레이첼이라 왠지 그녀에게 더 의미를 부여해보고싶다-인조인간과의 사랑이 과연 가능할까? 싶지만 그토록 완벽한 인조인간과 사랑에 빠지지 않는 것도 무리일 것이다. 일단 표면만을 놓고 말이다. 이 영화를 제작한 것이 1982년이라는 것을 알고 정말 깜짝 놀랐다. 1982년 이면 내가 태어난 해인데, 그 당시 제작한 영화 치고는 촌스러운 그래픽이 없어 못 느낀 것일까. 영화의 배경을 2019년으로 설정 했다는 것으로 보아, 2005년인 지금 그렇게 가까운 미래를 그리진 않았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1982년에 생각한 2019년은, 2000년대는 디스토피아적 이었나보다. 세계는 ‘글로벌화‘ 되었긴 하다. 주 무대가 지구이고, 미국이고, 로스앤젤레스 이지만 영화 속에서의 사회는 슬럼화 되었고, 네온사인이 찬란하고 뭔가 들뜬 인파들이 있으며 그 사회에도 삶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있지만 도시는 반쯤 파괴 되었으며 시장은 중국인이 차지하고 있고 광고는 일본인들이 하고 있다. 아마 일본인들은 조금 더 높은 위치에서 경제를 주도하고 있을 것이다. 미국적으로 살아남은 것은 코카콜라와 버드와이저 뿐인 것일까? 아니면 세계의 경찰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는 미국답게 경제는 뺏길 지라도 평화를 지키는 ’경찰’만은 미국인들이 한다는 것일까. 영화에 전반적으로 깔린 어두운 배경은 경찰의 사무실이든, 거리의 시장이든, 데커드의 집안 이든 햇빛을 보여주지 않았다. 어두움속에 가끔 보여지는 인공적이고 강렬한 불빛만이 그들 곁에 있었다. 경찰은 데커드 같은 블레이드 러너- 헌터들을 데리고 혼란스럽고 불안정한 사회를 강력하게 통치하려고 한다. 아마도 완벽한 인간은 우주 식민지로 떠나보내고, 그런 인간들을 수행하기 위해 완벽한 노예인 레플리컨트들도 만들어 보냈을것이다. 무언가 모자란 사람들만 남아 있는 세계가 지구 이고 레플리컨트들은 인간과 섞여서 인간보다 완벽한 모습으로,인간의 마음을 가지고 인간처럼 사랑을 하고 살아가고 싶어한다. 교수님이 인터넷에서 찾지 말라고 하셨지만, 영화의 끝이 너무 궁금해 인터넷을 조금 뒤져 보았다. 우리가 수업시간에 미처 보지 못한 영화의 결말 부분은, 리플리컨트인 로이가 데커드를 살려주고 굉장한 명대사인 기억은 곧 사라지겠지, 빗속의 내 눈물처럼....을 남기고-아 이부분까지는 영화를 봤다. 그는 it's time to die-라고 말한 후 수명을 다해 죽어갔다고 한다. 또 영화의 뒷부분에서는 데커드가 레이첼과 함께 멀리 떠나는 것으로 끝났다고 하는데, 레플리컨트의 수명이 4년뿐인 것으로 보아 그녀도 머지 않아 죽을 것이다. 하지만 흥미로운 부분은 데커드가 꾼 꿈- 유니콘 꿈인데 이것이 그가 레플리컨트임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한다. 영화를 보는 동안 그가 레플리컨트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긴 했다. 교수님이 수업시간에 보여주는 영화이니 이 영화가 그냥 암울하고 폭력적인 영화만은 아닐 것이고 뭔가 작가주의에 가까울 텐데 그렇게 간단하게 단순한 의도를 가지고 만들진 않았을 것이다. 극장판과 다르게 감독판에서는 데커드가 레플리컨트 임을 좀 더 드러냈다고 하는데 기회가 되면 꼭 구해서 보고 싶다.
    독후감/창작| 2006.01.12| 1페이지| 1,000원| 조회(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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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eo징기스칸 평가B괜찮아요
    잭 웰치, 칼리 피오리나, 카를로스 곤, 히딩크 감독...지금까지 ceo라 하면 이런 사람들만을 떠올렸었는데 이란 제목은 의외였다. 흔히 칭기스칸은 위대한 정복자-그러나 약탈과 그 잔인 무도함으로 야만인으로 기록되어 있어 칭기스칸에 대한 이미지는 그다지 좋지 못한편이었다. 그들은 유목민이었고 문자 중심이 아니었다. 그에 대한 역사는 주로 침략당한 나라들이 기록한 것으로 부정적인 표현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이책을 읽음으로써 내 생각은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칭기스칸의 삶은 어떤 것이었는가? 칭기스칸의 삶은 유라시아의 광활한 초원에서 시작되었다. 그가 속한 부족은 나무도 없는 황무지를 떠돌아 다니는 유목민이었다. 그래서 그는 글을 모르는 야만인이었다. 기약할 수 없는 이동과 끝없는 전쟁, 잔인한 약탈이 그가 배울 수 있는 세상일의 전부였다. 절망조차 허락하지 않는 그 현실을 칭기스칸은 극복해 냈다. 그는 선대로부터 이어 내려오던 오랜 내전을 종식하고 몽골 초원을 통일한 다음, 바깥 세상으로 달려나갔다. 칭기스칸 시대에 정복한 땅은 777만 평방 킬로미터에 이른다. 이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정복자들-알렉산더 대왕, 나폴레옹, 히틀러가 차지한 땅을 합친 것보다 넓다. 이런 사실만으로도 그는 영웅의 반열에 오르는데 부족함이 없다. 그러나 단지 역경을 극복하고 엄청나게 넓은 땅을 단시일에 정복했다는 것만이 그가 추앙 받는 이유는 아니다. 그의 통치철학과 전략, 전술이 현재의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그냥 역사적 시사점으로 지나치기에는 너무 값진 것이다. 그러기에 저자는 칭기스칸을 ceo라 칭한 것이다.20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얇은 분량으로 읽는데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지만 ‘몽골’에 대한 저자의 관심이 남다르게 느껴졌다.저자의 약력을 살펴보니 이 책 이전에도 로 몽골을 소개한 책이 있었으며 2001년 몽골정부로부터 친선훈장을 받았고 몽골 국립대학과 칭기스칸 아카데미에서 명예박사학위를 수여했고 그와 관련된 강의도 많이 했다. 그렇다면 저자는 어떠한 생각으로 이런 책을 썼을까?지금부터 800년 전에 21세기를 살다간 사람들-칭기스칸과 그와 함께 했던 이들-의 성공 비결은 한마디로 ‘꿈’이다. 그들은 “한사람의 꿈은 꿈이지만 만인의 꿈은 현실이다“라고 믿었다. 미래를 향한 비전을 공유 한다면 얼마든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점을 그들은 알고 있었다. ‘꿈의 공유’,이것은 21세기적 삶, 특히 기업 경영의 키워드다. 나와 다른 사람에 대한 열린 사고를 할 때 비로소 꿈을 공유할 수 있다. 바로 그런 마인드로 제국을 건설하고 경영했기에, 정복자 몽골인들은 피정복자 중국, 아랍, 유럽인들과 어울려 150년을 살아 갈수 있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가난한 유목민들로 하여금 세계를 정복하고 피정복자들과 함께 살아가는 거대한 꿈을 꾸게 만들었을까. 각 장에서 칭기스칸과 유목민들의 역사, 삶의 철학, 정신, 문화, 사회 시스템 등의 성공요인을 하나씩 설명해 가고 있다. 그들이 왜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게 되었으며 어떻게 효과를 발휘하였는가를 설명하고 현대의 우량기업들 중 거의 비슷한 전략으로 성공을 거둔 기업들의 이야기도 함께 기술하고 있다.몽골 초원에는 이상기온에 따른 지독한 가뭄(gan)과 때 이른 강추위(dzud)라는 무서운 재앙이 있다. 농사는 애시당초 지을 수 없고 가축들이 굶거나 얼어죽고 나면 인간들도 더 이상 살 수 없게 되는 그런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는 것’이상의 가치는 없다. 살아 남기 위해서는 전쟁이나 약탈도 마다할 수 없었다. 그들이 동족끼리 죽고 죽이는 내전을 그치고 살 수 있는 길은 오로지 밖을 정복하는 길밖에 없었다. 게다가 그들은 ‘자연에 맞서는 생존본능’에서 비롯된 강인함을 지니고 있었다. 그 힘으로 살길을 찾아 나선 결과가 세계정복으로까지 확대되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농경정착민족과는 어떻게 다른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을 지니고 있었기에 승리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인가?농경정착민들의 우선 관심대상은 씨를 뿌릴 토지와 비를 내려 줄 하늘이다. 위(하늘)와 아래(땅)가 중요하다. 내 농사만 잘되면 부러울 것이 없기 때문에 옆 동네 일에는 관심이 없다. 땅을 많이 가진 사람이 부자가 되니 소유의식도 강해지고 계급이 발달하여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위, 아래가 중요하다. 정착사회는 이처럼 수직 마인드를 기초로 형성되는 수직적 사회시스템이 된다. 수직적 정착 사회에서는 모험이 필요치 않다. 자연히 창의력보다는 기억력이 중요해지고 머리가 좋다는 것은 곧 기억력이 좋다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기억력을 중시하는 사회는 미래를 사는 게 아니라 과거를 산다. 그런 사회는 닫힌 사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아예 갇힌 사회가 된다. 수직적 사고가 낳는 해악들이다.그에 반해 유목민들은 항상 옆을 바라 봐야 살아 남을 수 있다. 생존하려면 싱싱한 풀이 널린 초지를 끝없이 찾아 헤매야 한다. 살기 위해 위가 아니라 옆을 봐야 하는 수평 마인드의 사회가 유목사회이다. 사방이 트인 초원에서는 동지가 많아야 살고 적이 많으면 죽게 된다.그런 사회에서는 완전개방이 최상의 가치로 통한다. 그래서 그 사회는 출신이나 조건에 얽매이지 않는, 능력에 따라 무한가능성을 보장하는 사회가 된다.자리는 착취와 군림수단이 아닌 역할과 기능을 발휘하는 곳이다. 최고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은 통치자가 아니라 리더인 것이다. 수업시간에 배운 ‘팀형 리더’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유목민들은 리더를 자신들이 철저한 검증을 거쳐 선출한다. 선출된 리더에게는 절대 권한을 부여 하여 충실하게 따랐다.그러한 리더는 유목민 사회를 수평적 ,창의적으로 이끌었고 약육강식의 사회는 결과를 중요 하게 생각하였다. 협동 집단의식이 강했으나 배타적인 집단 이기주위와는 차원이 달랐다. 혈연, 지연, 학연이 없는 것이다.유목민들의 또 다른 특징은 바로 ‘공간’ 이 아닌 ‘시간’을 중심으로 사고를 한다는 것이다.이런 시간중심- 더 나아가 속도 중심의 사고는 정착문명의 사람들이 만리장성을 쌓으며 제 이익과 기득권 보호에 혈안이 되어 있을 때 유목민들은 길을 닦았다. 만리장성보다 더 소중한 인류 유산으로 일컬어지는 실크로드 이다. 이게 바로 유목민의 마인드가 정착민의 마인드와 다른 점이다.21세기인 지금 정착민의 수직적 사고로는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다. 오랜 정착문명의 의식들이 폐단으로 작용하여 새로운 이동형 문명이 태동하는 것이다. 닫힌 사회는 망하고 열린 사회만이 영원하다. 이는 글로벌 인터네티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 에게 매서운 교훈이 될 것이다.사람을 말이나 개라고 부르는 것이 농경사회에서는 모욕인 경우가 많지만 몽골 유목민들에게 그것은 최고의 찬사가 담긴 칭호였다. 칭기스칸의 곁에는 ‘4준마(駿馬)’, ‘4맹견(猛犬)’이 포진하고 있었다. 이 칭호는 그들이 자칭한 것이 아니라 그들과 싸웠던 적들이 붙여 준 것이었다. 적의 찬탄을 자아낼 만큼 그들은 무섭고 용맹했던 것이다. 4준마는 참모이거나 정책 쪽에서 활동한 측근들이었고, 4맹견은 전투의 지휘관들이었다. 그들의 역할은 다양했지만 하나같이 결속을 중시하고 배신을 혐오하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었다. CEO 칭기스칸의 곁에는 최고의 역량과 충성심으로 무장된 '안다‘와 ’너커르‘ 들이 있었던 것이다. 칭기스칸은 사람을 보는 눈, 넓은 포용력 그리고 인간적인 매력을 충분히 지니고 있었을 것이다. 대대적인 권한위양(임파워먼트)이 필요한 현대의 조직에서 ceo가 반드시 배워야할 덕목이다.당시 전쟁에서 승리한 부족들은 패배한 부족의 가축과 재산, 때로는 여인들까지 전리품으로 취했다. 그 과정은 적진에 먼저 도착한 순서대로 개인적인 약탈을 하는 일종의 선착순 약탈방식이었다. 이 방식으로는 맨 앞에서 싸우는 사람만이 득을 볼 수밖에 없었다. 다른 여러 가지 방식으로 전쟁에 기여한 사람들에게는 돌아오는 것이 없었다. 칭기스칸은 이런 불공평을 해소하여 조직 전체의 전투력과 사기를 높이기 위해 혁신적인 조치를 단행한다. 전리품을 공동의 몫으로 두고 공(功)에 따라 배분하였다. 개별적인 약탈금지로 모든 병사들은 성취욕을 불사르게 되었다. 전쟁에서 승리하면 기여한 만큼 반드시 대가가 돌아온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조직원들은 어디에서 일을 하든 최선을 다해야 다른 사람보다 많이 받을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조직 전체의 전투력이 높아지게 마련이다.현대 기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은 종업원의 숫자가 아닌 종업원 전체의 사기이다. 스톡옵션으로 대표되는 이러한 이익 분배제도는 성공적 기업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몽골군이 놀라운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스피드였다. 적들이 미처 대비할 여유를 두지 않고 바람처럼 들이 닥쳤다가, 바람처럼 사라져 버리는 기마군단이 우리가 그동안 역사책과 영화 등 에서 보아온 몽골군의 이미지이다. 넓은 초원을 가축을 돌보며 이동해야 하는 유목민족의 스피드는 전투수단이 아니라 이미 생업의 수단으로 체득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군대의 이동속도, 전투 시의 진격속도를 높이기 위해 불필요한 것은 소지하지 않고, 꼭 필요한 것은 가볍게 만들었으며, 병참기능이 따로 없는 군대를 운용하였다.
    독후감/창작| 2003.09.27| 5페이지| 1,000원| 조회(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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