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악기의 종류 ♪타악기란 '두드리거나 흔들어서 소리를 내는 악기'를 뜻한다.타악기는 모양과 크기, 악기 제조에 쓰인 재료에 따라 그 종류가 매우 다양하며, 음향상의 원리(acoustic principle)와 소리를 내는 방법도 각기 다르다. 대부분의 악기들은 쳐서 소리 내지만 흔들거나 긁어서, 혹은 문질러서 소리내기도 한다.건반을 이용하거나, 핸들을 돌려 소리 내는 것도 있으며, 새소리 호각은 불어서 소리 내는데, 이러한 여러 가지 악기들을 넓은 의미로 타악기라고 한다.타악기는 팀파니, 실로폰, 차임, 비브라폰 등과 같이 음높이가 있는 유율악기(有律樂器)와 큰북, 작은북, 심벌즈, 트라이앵글, 탬버린, 캐스터네츠, 탐탐 등과 같이 음높이가 없는 무율악기(無律樂器)로 구분되어진다.♪ 유율 악기 ♪1)팀파니(Timpani)관현악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악기로 반구 모양의 통에 한 장의 피막(皮膜)을 친 것으로, 음고를 판별할 수 있는 소리가 난다. 통으로는 구리가 많이 쓰이며 크기에는 규정이 없으나 막면 지름이 56∼80cm가 보통이다. 2개가 한 쌍을 이루며 3개 이상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막은 헤드라고 하며 송아지의 등가죽이 가장 좋다. 화학 합성막도 쓰이는데, 전자에 비해 음질이 떨어진다고는 하지만 튼튼하고 습기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막의 장력(張力)을 연주자가 조정해서 조율하는데 대체로 5도의 범위에서 변화시킬 수 있다. 조절방법에는 틀 둘레에 있는 나사로 하는 경우와 통을 회전시키는 방법 등이 있으며 페달식이 보급되어 음고를 연주할 수도 있고 글리산도의 효과도 낼 수 있다. 음질은 채의 종류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2)실로폰(Xylophone)목금(木琴)이라고도 부르며 나무로 만들어졌다. 부드럽고 맑은 음색으로 19세기 후반부터 유럽에서 예술음악으로 사용되었다.독주용으로 주로 쓰이고 관현악에서는 별로 쓰이지 않는다.연주회용 대형의 실로폰에는 공명관이 있는데, 이것을 ‘마린바’라고하며 음의 높이가 명확한 맑은 음색을 지니고 있어 명쾌하면서도 약간 딱딱한 느낌을 준다.채는 탄력 있는 등나무로 되었고, 꼭지는 원하는 음색에 따라 나무 ·에보나이트 ·고무 등을 쓴다. 채는 양손에 하나씩 드는 것이 보통이나, 화음 연주의 경우에는 한 손에 2개를 든다. 음에는 여운이 없기 때문에 트레몰로 주법이 많이 쓰인다.3)차임(Chime)보통 차임 벨(Chime Bell)이라고도 부르며, 쇠로 된 긴 관을 서너 개부터 십 여 개 정도 늘어 매달고 나무망치로 친다. 음색은 맑은 종소리와 비슷하다.채는 탄력 있는 등나무로 되어있고, 양손에 하나씩 들고 연주하는 것이 보통이나, 화음연주의 경우에는 한손에 2개를 든다.음에는 여운이 없기 때문에 트레몰로 주법이 많이 쓰인다.4)비브라폰(Vibraphone)철금(鐵琴)의 일종으로 발음체가 쇠로 만들어졌으며, 전기 동력장치에 의하여 음을 길게 여운을 남길 수 있다. 음색은 달콤하며 부드럽고 독특한 비브라토의 여운이 있다. 여운이 길기 때문에 목금처럼 동일음을 연타하는 트레몰로 주법은 쓰지 않으며, 댐퍼 장치가 있어 페달로 조작한다.♪ 무율 악기 ♪1)큰북(Bass Drum)악기 가운데 대표적인 타악기로 통의 마구리에 동물 피막을 팽팽하게 씌워 울리게 하는 악기를 말한다.관현악에도 쓰지만 특히 행진할 때 Marching Band에서 많이 쓴다.기보는 낮은음자리표에 리듬만 적는다.2)작은 북(Side Drum)큰북과 함께 Marching Band에서 많이 쓰이고, 기보법은 큰북과 같다.3)심벌즈(Cymbals)두 개의 둥근 구리쇠 판을 마주 부딪쳐서 소리를 내며, 폭발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오케스트라나 취주악에서는 주요 타악기의 하나에 속한다. 가장자리를 맞부딪치는 소형과 깊은 것, 얕고 대형인 것 등 그 종류가 많다. 관현악에서는 클라이맥스의 강조를 비롯하여 다양하게 쓰인다.4)트라이앵글(Triangle)트라이앵글은 세모꼴로 된 조그만 쇠막대로 때려서 소리를 낸다.둥근 강철봉을 한쪽 변이 약 18cm 되는 세모꼴로 굽혀 정점을 달아매고 같은 강철봉으로 만든 쇠막대로 밑변을 쳐서 소리를 낸다.트레몰로 주법은 열려 있는 두 변의 안쪽을 연타 한다.음색이 청명하고 귀여운 소리가 여운 있게 난다.
『유망한 인터넷 비즈니스의종류에 대해서』-생활정보와 비즈니스--목 차 -Ⅰ. 서 론◇ 들어가기◇ 인터넷 비즈니스란 무엇인가?Ⅱ. 본 론◇ 인터넷 비즈니스의 대표적인 유형-서비스의 특성에 따른 분류-서비스 객체에 따른 분류◇ 성공한 인터넷 비즈니스 사례 연구-옥션(www.auction.co.kr)-네이버(www.naver.com)-엔씨 소프트(www.ncsoft.co.kr)◇ 유망한 인터넷 비즈니스 종류-광고수입형-마케팅형-판매형Ⅲ. 결 론Ⅰ. 서 론◇ 들어가기앞으로는 구두로든 문서로든 어떠한 계약이던 간에 전자상거래로 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 아닌 예언처럼 인터넷의 급속한 확산으로 인해 전자상거래 등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비즈니스가 주도적인 산업으로 자리 잡고 있다.그리고, 인터넷 비즈니스는 근래에 큰 수익을 창출하고 있는 사업 중에 하나로써 누구나 web-site만 구축할 수 있다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사업 item으로 떠오르고 있다.날로 경쟁이 치열해지고, 변화의 조류가 가히 혁명적이라 불리는 인터넷 비즈니스는 무엇이고 어떤 유형의 것들이 있는지 알아보자.◇ 인터넷 비즈니스란 무엇인가?인터넷 비즈니스란 인터넷을 매개로 한 제반 거래행위 일체를 가리키는 말로서, 인터넷을 이용하여 다양한 형태의 상품 및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에 대한 보상을 받는 모든 거래행위를 뜻한다. 인터넷을 전략적인 도구로 활용하여 다양한 경영활동을 수행함으로써, 인터넷으로부터의 수익창출이나 원가절감을 달성하고자 하는 비즈니스가 이에 속한다.인터넷 비즈니스의 필수 불가결한 요소로써,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정보가 흐르는 구조와 함께 수익의 원천이 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과 이를 가능하게 해줄 기술과 시장 전략이 필요하다.Ⅱ. 본 론◇ 인터넷 비즈니스의 대표적인 유형-서비스의 특성에 따른 분류구분사업 분야주요 기업포털인터넷 관문에 해당하는 사이트를 바탕으로 인터넷 활용의 전 분야를 포괄Yahoo, Naver, Daum, Empas 등판매인터넷을 통한 상품 판매Dell 컴퓨터, DHC Ko업을 뜻하는 B(Business)와 구매자 개인을 뜻하는 C(Consumer or Customer),그리고 정부를 뜻하는 G(Government)로 나누었다.이들의 상호 거래 관계에 따라 몇 가지 유형이 나타난다.구분관 계적용 기관의 예B2C기업과 소비자간 거래인터넷 쇼핑몰, 방송, 신문, 증권 사이트 등B2B기업과 기업간 거래, 기업이 기업을 대상으로 각종 물품을 판매철강분야 애니 스틸 닷 컴,산업기자재 분야 파텍21 등C2B개인과 기업간 거래, 역경매로서, 구매자 쪽의 구매 파워가 있다.주로 고가품의 공동구매 형식(www.kimsbid.com)C2C개인과 개인간 거래, 경매 사이트옥션과 G-Market 같은 경매 사이트C2G개인과 정부간 거래국세 관련 업무(www.hometax.go.kr)B2G기업과 정부간 거래중소기업청의 기업 지원책(www.smba.go.kr )◇ 성공한 인터넷 비즈니스 사례 연구성공한 인터넷 비즈 사이트의 사례를 통하여 그들이 성공 할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인지 어떤 전략을 사용하였는지를 알아보자.-옥션(www.auction.co.kr)옥션은 “누구나 사고파는 즐거움이 있는 곳”, “우리가 만드는 열린 시장”이라는 모토 아래 국내 최초로 인터넷 경매를 선보여 국내 최대의 전자상거래 업체로 성장하였다.지난 1999년 매출액 15억 원, 영업이익 42억 원 적자라는 성적표를 보여주었던 기업이불과 몇 년 사이에 매출액 1조원에 기업가치 1조 5천억 원에 달하는 거대기업으로성장한 것이다.옥션은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낙찰 수수료 부과”로서 기존 포털 사이트들의수익창출 원천 이였던 광고수익의 불안함을 배제 할 수 있어 확고한 수익기반과 함께건실한 경영의 틀을 마련할 수 있었다.옥션의 특이할 만한 사항중 하나는 My Auction이라는 것이 있는데,관심물품을 등록하거나 자주 가는 판매자의 상점을 등록해 두면 구매자의 스타일에 맞게자동적으로 물품을 등록해주어 쇼핑의 편의를 제공하는 서비스이다.이를 문헌정보학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SDI 개 대하여 구매자가 제시한 가격을 직접 매기는 경매의 방식으로판매자와 구매자 모두 Win-Win 할 수 있는 가치를 부여하였다.기존 쇼핑몰이나 오프라인의 매장에서 정찰제 가격에 익숙했던 소비자들에게 처음에는낯설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누구나 안전하고 보다 경제적으로 거래할 수 있기에매출액이 1조원에 달하고, 향후 지속적인 성장을 보장받게 된 것이다.-네이버(www.naver.com)“지식인“ 하면 바로 떠오르는 단어가 바로 네이버 닷컴이다.닷컴신화를 이룬 몇몇 기업 중 대표라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네이버이다.네이버는 아직 일반인들에게 인터넷이란 개념이 생소했던 시기인 1993년 국내독자기술로 된 한글 검색엔진을 개발?연구한 삼성SDS에서 사내 벤처 형태로 시작된사업의 일환이었다. 독립적인 개발의 필요성을 느끼고 1999년에 네이버 닷 컴이라는독립법인을 자본금 5억 원으로 설립하게 되었다.당시는 스타크래프트와 리니지, 포트리스, 맞고 등 온라인 게임 산업의 성장이하루가 다르게 폭발적으로 증가하던 시기였다. 네이버 측은 새로운 온라인 게임을 개발하고 브랜드 이미지를 확보하기에는 이미 늦었다고 판단하고당시 보드게임의 선두주자였던 한게임과의 합병을 결행한다.사명을 NHN(Next Human Network)로 변경하고, 빨리 움직이는 것보다는 옳은 방향으로움직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기지아래, 야후, 라이코스, 구글 등 인터넷 검색 포털 사이트의 대표적인 외국 사이트 들을 제치고 토종 서비스로서 인터넷 항해의 관문 역할인포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자본금 5억 원에서 시작한 회사가 현재는 경상이익이 약 300 억 원에 달하고 있다.이런 초고속 성장을 하게 된 것은 온라인 게임의 성장과 일본, 중국에의 기술 제휴 등여러 가지 요인이 있지만 대표적인 이유 중 하나가 지식IN 이라는 카테고리의도입 때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지식IN 이라는 서비스는 이용자가 던진 Query에 대해 다른 이용자들이 답변을 해주는Q&A 서비스이다. 단순한 이 서비스가 네티즌들에게 폭발적인 사용을 의 황제주라 하면 대명사격으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엔씨소프트였다.현재는 코스닥에서 증권거래소로 상장이 되어 증권거래시장에서도 상당한 실력을행사하고 있다고 한다.엔씨소프트 하면 무엇인지 잘 모르지만, 리니지라고 하면 웬만한 네티즌들이라면적어도 한 번 쯤은 들어보았을 것이다.초창기 리니지라는 게임은 불안정한 서버와 1달 이용료 3만원이라는 악조건 속에서도끊임없는 베타테스트와 업데이트를 통해 자본금 8억으로 출발하여 현재 시가총액1조 5천억에 달하는 거대 기업으로 성장하였다.온라인 게임이라는 콘텐트를 가지고 이렇게 성장 할 수 있었던 요인은독특한 게임 모티브에 있었다. 게임 내의 캐릭터 자체가 유저 본인을 대신하는 RPG 형식을 취함으로서, 슈팅게임과 액션 시뮬레이션에 익숙한 국내 유저들에겐 생소하였다.캐릭터를 키워가며 아이템을 얻게 만드는 일종의 소유 욕구를 자극하고,우리 국민 정서에서 특히나 중요시 되고 있는 혈연, 지연 등을 매개로 한일종의 게임내 공동체인 혈맹이란 개념 도입은 게이머들에게 현실과 게임을 착각하게만들 정도의 중독성을 불러일으켰다.사회적으로도 큰 문제가 될 정도였던 게임 내 아이템의 현금 거래 등은 아직도일부 기성 세대 들에게는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으로 남아있다.탄탄한 스토리를 바탕으로 게임 개발과 업데이트에 과감한 비용을 투자하며,거액의 스카웃 비용을 지불해 가며 세계최고의 게임 기획자들을 섭외하는 등,성공한 후에도 투자를 아끼지 않는 전략은 매달 3만원이라는 게임 이용료에도 불구하고수많은 게이머들을 컴퓨터 앞에 앉혀놓게 하였다.◇ 유망한 인터넷 비즈니스앞서 살펴 본 바와 같이,성공한 몇몇 기업들은 적은 자본으로 시작하여 현재는 매우 큰거대 자본을 지닌 업체로 성장을 하게 되었다.어떤 사업 아이템이 앞으로 인터넷 상 비즈니스에서 수익을 창출해 낼 수 있을지 알아보자.-광고 수입형 :이 모델은 아마도 가장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 상에서의 수익창출 구조로 생각 하고 있는부분일 것이다. 광고 수입형은 현존하는 대부분의 포털 사이트들의 형태이다.말 그말고 다른 형태의 광고 수입을 얻을 수 있는 원천이 있다.바로 인터넷 메일을 통한 정보제공이다. 쉽게 설명하자면 하루에도 수없이 들어오는광고성 스팸메일이 바로 그 실례이다. 이 광고성 메일의 콘텐트를 개발하는 것이다.이미 일본에서는 메일을 통한 정보제공 콘텐트가 발달되어 있다고 한다.광고 메일을 대행하여 보내준다거나 메일 내용에 대한 웹 디자인 등을 통해서광고수익이 창출 될 수 있을 것이다.개인이 광고 수입형 형식을 취하게 된다면, 정보 검색을 대행해 주는 업종도 유망하다.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을 이용하여 포털 사이트와 필요한 해당 분야의 전문 사이트를검색하지만 원하는 정보를 얻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즉, 웹상에서 어떤 질문을 던지면 웹페이지에 그에 해당하는 답변을 제공해주지만,검색 엔진 자체에 한계가 있다.모든 검색 엔진에는 스파이더라는 프로그램이 Query에 알맞은 답변을 제공하고자,정해진 규칙(ex:10초간 검색, 일치하는 단어만을 검색 등)에 의해 실행되어지고 있다.하지만, 웹페이지에 재현되는 정보는 많지만, 정작 내가 찾고자 하는 답, 즉 정확률이떨어지게 되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이 때문에 전문적인 정보 검색사가 유망한 직종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이용자가 원하는 답을 text 형식으로 바로 제공해주거나 편집, 가공하여 다른 형식으로제공하는 등 정보의 질과 검색의 난이도 정도에 따라 어느 정도의 수수료를 받고서비스를 수행하는 것이다.-마케팅형 :현존하는 게임서비스 모두가 이 마케팅형에 속한다고 보면 된다.모든 게임 서비스들은 초기에 베타서비스를 통하여 무료로 게임을 제공한다.우선은 무료로 서비스를 제공하여 사용자들을 끌어 모은 후 데이터베이스화 하여사용자들에게 다양한 상품광고와 마케팅리서치, 상품 판매 등을 통하여 수익을창출하는 것이다. 채팅 커뮤니티에서 보여주고 있는 아바타 서비스나 싸이월드의미니홈피 등도 이 분류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형식이 바로 마케팅 형식이라 할 수 있다.비즈니스 블로그 형태의 사업을 펴는 것이다.어
『거꾸로 읽는 세계사』를 읽고...학 과 :학 번 :성 명 :1. 서 론책을 선택하기 전에 우선 필자의 이름을 눈 여겨 보았다. 전공과는 많이 다른 분야이기에 알지 못하는 저자명 뿐 이었지만 유독 눈에 들어오는 이름이 있었다.유시민. 현재 열린 우리당 국회의원이고, 한나라당 전여옥 대변인과 자주 설전을 벌이는 인물로 대학생이라면 한 번 쯤은 언론매체를 통해서 접해보았거나 관심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인물이었다.평소에 관심을 갖고 있던 정치인이라서 “거꾸로 읽는 세계사”를 읽고 과제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책장을 펴고 항상 그렇듯이 저자 소개를 우선 읽어보았다. 서울대 재학 중에 2차례나 민주화 운동으로 옥고를 치르기도 했던 그는 민주화와 관련된 책을 몇 편 저술하였다.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던 그가 왜 하필 역사와 관련된 책을 썼는지 의문이 들기도 했지만, 제목에서도 느껴지듯이 기존의 역사를 조금은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겠거니 짐작을 하고 책장을 넘겼다.책은 총 14 개의 소제목으로 구성되어있었다. 그 중 몇 개를 선택하여 서평을 써보고자 한다.2. 본 론2.1. 피의 일요일 - 혁명과 전쟁의 시대가 열리다역사 속에는 표면적으로 비치는 것보다 알 수 없는 음모가 서려있고 지배층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민중을 속인다. 대부분의 역사가 이렇다고 봐야할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민중들은 이에 속으며 살아가고 있다. 그런 것을 잘 볼 수있는 사건으로 ‘피의 일요일’ 제시할 수있다.1905년, 일요일 제정 러시아의 짜르(황제) 니콜라스2세가 사는 동궁 앞에 약 20만 명의 노동자와 가족들이 모여들었다. 여자와 노인, 어린아이들까지 많이 섞인 노동자들의 대열은 평화로웠다. 그들은 아무런 무장도 하지 않고 짜르의 초상화를 들고 “하느님이시여! 짜르를 구해주소서”라는 찬송가를 부르면서 행진했다. 그들은 소동을 일으키기보단 자비로운 아버님이라는 짜르에게 호소를 하러 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동궁의 광장에 도착했을 때 민중들을 맞이한 건 짜르의 무장한 군대였고 그 근대는 민중인해 5백 명 이상이 죽고 수천 명이 부상을 당했다. 이 사실로만 민중들을 속였다고 말하지 않는다. 이 민중을 이끈 가퐁이라는 신부에 주목을 하게 된다. 당시 러시아에서는 3개의 세력이 있었다. 나로드니키라 칭하는 인민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 그리고 입헌군주제를 실시하자고 주장하는 온건 개혁주의자들이다. 가퐁은 이 3개의 세력 어느 것에도 속하지 않는 인물이었다. 그렇담 그는 누구인가? 그는 32세의 젊은 신부로서 휴머니스트로 노동자들을 교회의 정신적 영향력 아래서 순화시켜보려는 희망을 지니고 있었다. 당시 러시아에는 경찰사회주의 라는 것이 있었다. 노동자들이 사회주의자의 선동에 감염되어 짜르에 저항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서 짜르 경찰이 고안한 것인데 수많은 경찰 스파이들이 노동자 속에 잠입하여 노동운동을 온건한 방향으로 이끌려고 했다. 가퐁은 경찰보다는 신의 은총을 받은 교회가 이 일에 적합하다며 나섰던 것이다. 말하자면 가퐁은 경찰의 스파이인 것이다. 가퐁도 민중의 편은 아니었다. 위기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한 술책에 민중들은 이용당한 것이다. 진짜 민중을 위한 사람은 없는 것인가 민중들은 바보인 것인가 언제까지 당해야 하는 건지 씁쓸함을 감출 수가 없다.2.2. 드레퓌스 사건 - 진실의 승리와 더불어 영원한 이름‘드레퓌스 사건’이란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는 그 사건에 대해 잘 알 수 있도록 서술해 놓았다. 힘 있는 자들. 즉, 프랑스 군 수내부에서 위신을 위해 아무 죄도 없는 한 사람을 국가전체의 적이라고 생각하게 만든 사건이다. 그 사람이 왜 죄인이 된 것일까? 그 이유는 너무 간단하다. 드레퓌스가 유태인이라는 것 때문이었다. 1894년 9월 어느 날, 프랑스의 참모본부 정보국은 프랑스 주재 독일 대사관의 우편함에서 훔쳐낸 한 장의 편지를 입수했다. 프랑스 육군의 “기밀문서명세”’였다. 그것은 한 평범한 유태인 장교를 불행하게 만들었다. 프랑스는 시민혁명의 대명사로 ‘자유?평등?박애’의 정신을 가진 나라이다. 하지만 이 사건으로 거짓과 음모의 나라인으로 모는 나라가 혁명의 나라라는 이름이 걸맞지 않다. 드레퓌스에게 죄를 씌운 프랑스는 반대 세력을 죽이기 위해 갖은 방법을 동원했다. 이 사건으로 위신을 챙기려던 프랑스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세계의 비판을 받으며 몇 십 년 만에 대통령의 사과로 끝을 맺혔다. 너무도 영화 같은 사건. 이 사건 전체의 박진감과 극적 반전 등 어느 영화가 이 보다 더 할까라고 저자는 서술했다. 진실을 추구하는 용감한 사람들과 거짓으로 무장한 사람들 간의 대립 이 영화에서 아직은 선이 이긴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전자의 사람들은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이고 후자의 사람들은 현실에 안주하려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전자의 사람들 즉. 변화가 이긴 것이다. 힘없는 사람들의 승리 그러나 그 승리를 하기까지 많은 피를 흘렸다. 애초에 지배층이 잘 했어도 힘없는 사람들이 피해를 입지는 않았을 것이다.아직도 적자생존의 법칙이 존재한다. 이 책 전체에서 그 법칙을 볼 수 있었다. 힘이 없는 것이 무슨 큰 죄라도 되는 것처럼 사람들은 당하고 있었다. 물론 나도 힘이 없는 사람 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생각 할 줄 알고 분노 할 줄도 안다. 언제까지 당할 거라고 생각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드레퓌스 사건으로 위신이 땅에 떨어진 프랑스이지만 한 때는 군주제를 타파하고 시민국가를 건립한 혁명의 나라이다. 민중이 일어나면 나라를 바꿀 정도로 무서운 것이다. 지배층은 알아야한다. 자신들만이 인간은 아니다. 힘이 있든 없든 같은 세상에 태어난 이상 존엄성을 가진 인간이다.2.3. 일본의 역사왜곡-일본제국주의 부활 행진곡이 책에서 나온 사건들은 이면에 음모들이 서려있었다.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세상은 적자생존의 법칙대로 살아가고 있다. 모든 것은 계획대로 진행되고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은 꼭두각시처럼 움직이고 있다. 힘 있는 자들은 자기들에게 불리한 일이 생기면 다른 것을 터뜨려 무마하려한다. 어떤 핑계나 변명으로 진실을 가리려하고 있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말이다.그것을 제일 잘 보여주는 것이 일본의 교과서있었지만 따지고 보면 훨씬 전에 이미 일본은 우리나라를 야금야금 삼켜 가고 있었다. 36년 간 우리를 지배했던 일본은 그간에 저지른 만행들을 자기들이 유리한 쪽으로 해석하고 있다. 불리한 것은 안 했다거나 다른 쪽으로 설명한다. 대표적인 것이 소위 군국주의자들이 하는 “한국은 우리가 아니었으면 근대화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한국을 전제군주정치에서 구해주었고 철도나 산업시설을 놓아주었기에 한국은 빠르게 발전한 것이다”라는 망발을 한다. 이런 소리를 아직까지 하는 그들의 정신 상태가 궁금하다.현재 일본의 젊은이들은 경제적 풍요 속에서 자라나 국가의식 같은 것이 없다한다. 마이홈(my home)세대라 하여 자신의 인생을 즐기는 것만이 유일한 관심사인 것이다. 그래서 정치적인 것에 무관심하다. 일본의 군국주의자들은 바로 이 같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대일본 제국’과 사무라이 일본정신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기 위한 캠페인을 전개했다. 그것이 ‘역사 왜곡’이다. 자라나는 세대가 배우는 역사교과서에서 제국주의 침략전쟁을 미화하는 내용을 주입하고 소련과 중국을 가상적인 적으로 하는 냉전 이데올로기와 적대의식을 고취시키는 선동을 일삼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대다수의 일본 젊은이들은, 조선과 중국에서 닥치는 대로 파괴하고 죽이고 불태운 ‘대일본제국’의 잔학행위를 모르고 있다. 이것은 거대한 음모이다. 자신도 속이고 미래까지 속이는 거대한 음모이다.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현재 일본학생들이 자라 세계로 나갔을 때 그들이 알고 있는 역사를 말하면 그들은 바보 취급을 받을 것이라고. ‘그 때의 영광을 다시 한번’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이것이다. 일본만이 아니다. 미국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 증거로 이라크를 침공을 들 수 있다.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깨닫지 못하고 있다.안타까운 것은 아직도 우리나라는 일제의 잔재 하에 있다는 것이다. 민주주의가 실현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무력이 우세하고 인권유린과 친미 친일의 사대주의, 경제적 대일 의존 등 이것들은 의식하지 않았지만 일본 식민지 대하듯 하는 것도 우리가 남과 북으로 갈린 것도 따지고 보면 모두 일본의 소행이다. 그런데도 일본은 자신들의 만행을 가리려 한다. 미국도 마찬가지이다. 남이 하면 죄고 자신이 하면 발전이라 떠든다. 역사는 진실해 질 수는 없는 것일까 꼭 무엇인가로 가려져야 하는가? 이 책에 나온 사건들은 음모와 함께 진실을 숨기기 위해 저지른 일들을 얘기해주고 있었다. 진실이 보이지 않는 역사들 이제는 다른 부분도 의심스러워진다.2.4. 미완의 혁명 4.19-자유의 비결은 용기일 뿐이다이 책에서 우리의 4?19 혁명을 서술하며 자유의 비결은 용기일 뿐이다라고 써놓았다.낚시꾼은 굉장히 큰놈이 물린 거라고 생각하고 기분 좋게 낚싯줄을 당기기 시작했으나 얼마 후 물 위에 나타난 것을 보고 그만 벼락이라도 맞은 듯이 몸이 굳어져버렸다. 더러운 마산항의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열여섯 살 난 김주열이라는 소년의 시체였던 것이다. 마산 시민들은 눈앞에 끌어 올려 진 시신을 보고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AP통신, 1960년 5월 2일)1960년 4월 11일 오전, 실종 28일 만에 마산 중앙부두에서 발견된 김주열 군의 시신은 눈에서 뒷머리까지 길이 20㎝의 미제 최루탄이 박힌 참혹한 모습이었다. 그가 실종된 것은 제4대 대통령 및 제5대 부통령 선거가 실시된 3월15일이었다. 이승만 정권은 자기당 대표인 이기붕을 부통령에 당선시키기 위해 갖가지 부정선거를 자행했다. 부정선거의 아버지 이승만은 경찰과 공무원을 선거운동에 동원하고 군소 정당 후보들의 입후보 등록서류를 강탈하는가 하면 학생들이 상대당의 선거유세장의 가지 못하도록 일요일에도 등교를 시켰다. 또 70억 환이나 되는 선거자금으로 금품을 물 쓰듯 뿌려대고 테러를 가했다. 이런 일이 자행되는 가운데 2원 28일 대구에서 전국 학생 데모의 도화선이 불을 붙었다. 몇 개의 고등학교에서 학생 수천 명이 학원의 정치도구화에 반기를 든 것이다. 이날도 일요일 등교를 명했다. 학생들은 이를 규탄하며 거리로 뛰어나와 경찰과 충돌했다. 이 군이다.
중국역사의한 시기에 관하여≪아편전쟁≫『목 차』Ⅰ. 머 리 말1. 최대의 중화제국, 청2. 두 번의 아편전쟁3. 서구 시스템의 도입4. 청일전쟁과 중화세계의 붕괴Ⅱ. 본 문1. 명의 멸망과 청의 지배체제 확립2. 영국의 삼각무역과 아편전쟁3. 영프러에 유린당한 청 제국Ⅲ. 맺 음 말Ⅰ. 머 리 말1.최대의 중화제국, 청여진족은 명 제국의 멸망을 틈타 베이징을 점령하고 저항하는 한족을 쫓아낸 뒤 천하통일을 이루고 1636년 국호를 청이라 하였다. 청 제국은 자기들의 풍속인 변발을 강제하는 한편 과거로 유능한 인재를 등용하는 등 유연한 통치를 했다.강희(康熙), 옹정(擁正), 건륭(乾隆) 3대(1661~1795) 약 130년 간이 전성기였다. 청 제국의 지배영역은 타이완, 몽골고원, 칭하이, 티베트, 네팔, 동터키스탄으로 확대되어 사상 최대의 중화제국이 되었지만 19세기에는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다.2. 두 번의 아편전쟁산업혁명 후에 영국은 청으로부터 대량의 홍차를 구입하고 그 대가로 아편을 밀수했다. 아편이 만연하여 대량의 은이 유출되자 청 제국은 아편무역을 엄금했지만 영국은 아편전쟁에 의해 불평등조약(난징조약)을 강제로 체결하고 중화세계를 세계자본주의 속으로 편입시켰다. 1851년 기독교의 신을 상제(上帝)로 바꿔놓고 평등사회를 추구하는 태평천국의 난이 일어났다. 태평천국은 난징을 도읍으로 하여 청 제국과 대치했다. 그것을 이용하여 영불 양국은 1856년에 애로전쟁(제2차 아편전쟁)을 일으켜 이권을 확대하고 전후에 중화제국을 국민국가 질서에 편입시켰다.3. 서구 시스템의 도입서구 제국이 강대한 군사력을 배경으로 중화세계로의 진출을 강화하자 청 제국은 그에 대응해야만 했다. 청은 1860년대부터 `중체서용(中體西用)'이라는 슬로건 아래 서구기술을 도입했지만(양무운동), 중화제국의 틀은 존속시켰다.4. 청일전쟁과 중화세계의 붕괴일본과 청 제국은 갑오농민전쟁(동학농민혁명)에 개입하기 위한 청군의 출병을 계기로 청일전쟁을 개시했다. 전쟁에서는 일본이 승리하고 중화질서는 동아시아세계의 내부에서부터 무너졌다. 그 후로 구미 제국의 진출이 본격화했다.Ⅱ. 본 문1. 명의 멸망과 청의 지배체제 확립기근과 과도한 군사비 부담으로 생활이 파탄에 처한 농민들은 1628년 싼시의 봉기를 시작으로 화베이 일대로 반란을 확산시켰다. 반란집단 중에서 두각을 나타낸 역졸 출신의 이자성은 수십만의 군대를 이끌고 1643년에 시안을 점령하고는 황제칭호를 사용하고 국호를 대순(大順)이라고 정했다. 그는 명의 주력군이 만리장성의 동쪽 끝 산하이관에 갇혀 있는 것을 알고 1644년에 50만 명의 군대를 이끌고 베이징을 함락시켰다. 그때 숭정제는 황녀를 직접 살해한 후에 환관 한 명을 데리고 지진성 북쪽 징산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 명제국 277년간의 역사가 어이없이 막을 내린 것이었다.이자성을 내쫓고 베이징에 입성한 도르곤은 명의 마지막 황제를 위해 사흘 간 상복을 입기를 청하고 편찬에 착수하게 하는 등, 스스로 명제국의 후계자임을 강조했다. 그는 한족에게 여진족의 풍속인 변발을 강요하고 중국이 여진사회가 되었음을 인정하게 하는 한편 명 제국의 관료 시스템을 거의 그대로 이어받아 중앙관청에서는 동일한 자리에 여진족과 한족이 같은 숫자로 임명되었다.1673년에 청조의 재정수입 중 거의 절반 정도의 경제력을 지닌 오삼계 등의 삼번은 청이 취해온 억압정책에 반항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반란군은 강력하여 8년 간에 걸쳐 전쟁을 계속했는데 한때는 청 제국의 남반부를 지배할 정도였다. 당시 20세이던 강희제는 군의 진두에 서서 과감하게 싸워 1681년 평정에 성공하고 청 제국의 지배질서를 최종적으로 확립하였다.2. 영국의 삼각무역과 아편전쟁◆ 급속하게 쇠퇴하는 청 제국건륭제가 죽은 이듬해인 1796년에 후베이, 쓰촨, 싼시, 깐수 등 4성에서 일어난 백련교도의 난은 9년이 지나도 진압되지 못하다가 제국의 3년 분 세출에 해당하는 거액의 비용을 들여 가까스로 진정시켰다. 그 때문에 국고도 바닥이 나버렸다.청은 약 90만 명의 군(팔기 24만 명, 녹영 64만 명)으로 질서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이 반란을 진압하지 못했기 때문에 각지의 지주가 조직한 향토 자위단, 의용군에게 의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재정적으로도 군사적으로도 청은 궁지에 몰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시기에 산업혁명을 거쳐 현저하게 힘을 기른 유럽 세력이 영국을 선두로 동아시아 세계로 진출해왔다.◆ 홍차를 원하는 영국18세기 후반이 되자 광동에서의 무역은 영국 동인도회사가 거의 독점하였다. 주요 상품은 홍차였고, 영국 측의 수입초과였다. 당시 중국인은 녹차를 일주일 정도 발효시킨 우롱차를 즐겨 마셨는데 영국 상인은 오래도록 발효한 홍차를 싸게 사들여 유럽에 보급시켰던 것이다.홍차는 서인도제도에서 산출되어 가격이 하락한 설탕과 짝을 이루어 유행했다. 그러나 광동의 무역은 공행이라는 특권적인 중매 상인단에 의해 독점되어 있어서 그 대가로 대량의 은을 지불해야만 했다.미국 독립전쟁 이후에 은의 조달이 곤란해진 영국 동인도회사는 벵골 지방에서 아편 전매권을 손에 넣고 개인 상인을 통해 청에 밀수시킴으로써 무역의 균형을 회복하려고 했다. 본국산 면포를 인도에 수출하고 인도산 아편을 중국으로 밀수출하는 대신에 중국으로부터 홍차를 사들여 본국으로 운송한다는 삼각무역이었다.◆ 청 제국을 좀먹은 마약, 아편아편은 Opium의 음역이며 양귀비의 미성숙한 열매에서 분비되는 유액으로 만드는 마약으로 오랫동안 흡음(吸飮)하면 중독이 되고 결국에는 폐인이 돼버린다. 약품으로 가지고 온 아편의 해독을 깨달은 청은 처음에 수입을 금지했지만, 관리가 뇌물을 받고 밀수를 묵인해 주어 지배층을 중심으로 아편 흡음의 풍습이 급속하게 확대되었다. 1800년에 292.4톤이던 것이 1830년에는 약 1,280톤, 1838년에는 2,560 톤으로 밀수 아편을 늘어가기만 했다. 1820년부터 1840년까지 당시 유통되고 있던 은의 20%에 해당하는 약 1억 원의 비용이 해외로 유출되었다. 당시 농민들은 작물을 은으로 바꾸어 세금을 지불했기 때문에 은의 가격폭등은 농민의 생활에 타격을 주어 사회불안이 확대되었다. 영국이 가지고 들어온 막대한 양의 아편은 관료층의 부패 확산, 아편의 유행, 은의 대량유출과 은가의 폭등, 농민의 궁핍화라는 일련의 타격으로 이어져 청 제국은 그 충격으로 인해 당장이라도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 단호하게 아편을 근절한다아편문제로 골치를 앓던 도광제는 당시 관계에서는 소수파였던 엄금파의 관료 임칙서를 흠차대신(欽差大臣)으로 발탁하여 광동에 파견했다. 광동에 도착한 임칙서는 군대를 동원해 영국 상관을 포위해 물과 식량보급을 끊어놓고 아편 제출을 요구하여 창고 대신 쓰는 항구 밖에 정박해 있는 거대한 선박에 쌓여 있던 약 1,280톤의 아편을 몰수했다. 그는 해안에 구덩이를 파고 생석회와 함께 아편을 바닷 속에 던져 넣어 태우는 방법으로 막대한 양의 아편을 소각했다. 임칙서는 아편을 일절 들여오지 않겠다는 서약서 제출을 요구했지만 영국의 상무관은 재산권 침해라며 저항하고 상인들을 상선에 오르게 하여 본국에 구원을 요청했다.◆ 흑선 함대에 굴복한 청 제국1840년에 영국군이 광동 해상에 나타나면서 아편전쟁이 개시되었다. 광동의 방어체제가 굳건하다는 걸 깨달은 영국군은 함대를 북상시켜 수도 베이징의 외항, 텐진에 정박했다. 세계정세에 어두웠던 조정은 흑선 함대의 위용에 혼비백산하여 임칙서를 신장의 일리지방으로 유배시키고 아울러 노회한 관료를 내세워 교섭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그러나 영국군은 인도에서 1만 명의 병력을 증강하여 한꺼번에 난징으로 몰려왔다. 난징 함락을 두려워한 청조는 1842년 난징에 육박한 영국함 콘월리스호의 선상에서 난징 조약을 체결하고 영국 측의 요구를 전면적으로 수락했다.난징 조약은 중화제국의 체면이 완전히 구겨진 굴욕적인 내용이었다. 바다로부터의 신흥세력 진출에 대해 청 제국과 동아시아세계는 동요하기 시작했다.이 조약에서 청은 홍콩 섬의 할양, 상하이 등 5개항의 개항, 공행 폐지, 몰수아편 대금 6백만 달러 지불, 영국 전비 보상 등을 인정했다. 또한 이듬해 추가조약에서 차를 제외하고 일률적으로 5%의 관세(관세자주권 상실), 영사재판권, 최혜국 대우 등을 인정했다. 1844년에는 미국, 프랑스가 같은 내용의 조약을 체결해 청 제국은 자유 무역권에 편입되었다.3. 영프러에 유린당한 청 제국◆ 경합하는 영국과 러시아약체화한 청 제국의 상황을 이용하여 북으로부터 압력을 넣은 나라가 크림전쟁(1853~56)에서 영국에 패한 러시아였다. 헤이룽강(아무르강) 유역에 대한 러시아의 군사진출이 격화되었다. 그에 대해 바다로부터 진출하여 세력기반을 굳히려고 한 나라가 영국이었다.◆ 무리한 애로전쟁(Arrow War)아편전쟁 후에도 내륙국가인 청 제국의 시장에 진출할 수 없었던 영국은 러시아에 대항하는 의미도 있고 해서 태평천국의 난이 시작되자 자연스런 중국 진출을 노렸다. 1856년에 광저우에서 영국 선적의 밀수선 애로호가 나포되었을 때, 영국 국기가 모욕을 당하는 사건이 일어나자, 이것을 빌미로 같은 해에 광시성에서 선교사가 지방관헌에 의해 살해당한 프랑스를 끌어들여 청조에 대한 억지에 찬 전쟁, 애로전쟁(1856~60)을 개시했다. 영프 연합군은 광저우에서 북상하여 텐진에 이르고 궁지에 몰린 청조는 1858년에 텐진 조약을 체결했다.◆ 영프 연합군에게 점령당한 베이징일단 강화조약을 체결하기는 했지만 조약에 포함되어 있는 영프 양국과의 대등한 외교관계 수립을 둘러싸고 청조 내부에서의 대립이 계속되어 양국 공사와 황제의 대등한 예의를 인정할 수 없다는 움직임이 강했다. 패배를 인정한 이상 유럽식 외교방식을 채택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중화의식이 그것을 가로막았던 것이다.1859년에 양국 공사를 태운 함대가 텐진에서 공격을 당하자 1860년에 2만 명의 영프 연합군은 베이징을 점령하여 청을 굴복시켰다. 그때, 베르사유 궁전을 본떠서 건륭제가 거액을 쏟아 넣어 건설하게 한 위안밍원(圓明園)은 철저하게 약탈당하고,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 불태워졌다.
감상문중국여인들의 전족과 목 명 :학 번 :학 과 :이 름 :『목 차』Ⅰ. 머 리 말전족이란 무엇인가Ⅱ. 본 문전족의 기원과 확산전족의 진행단계천족운동과 전족습속의 종언Ⅲ. 맺음말Ⅰ. 머 리 말◆ 전족이란 무엇인가전족이라는 관습은 여성의 발을 옥죄어 기형적으로 작게 만드는 것으로서 10세기 후반 중국 사회에 도입된 이래 20세기 초까지 존속했다. 처음에는 지배계층의 일부에서 시작되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광범위하게 확산되어 후대가 되면 일반 농민층에까지 파급되었다. 전족은 통상 대여섯 살 어린아이 때 시행하는데 그때의 고통이란 이루 형언할 수도 없는 지경이라고 한다. 이런 고통을 거쳐 여성의 발은 10cm도 채 안되는 앙증맞은 크기로 자리잡게 된다. 전통시대의 지식인들은 전족에 대해 최고의 상찬을 보냈다. 전족을 묘사하는 문학작품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고 한다. 이러한 전족의 습속은 작은 발을 아름답다 여기는 미감각으로부터 연원한 것이었다. 여성에 대한 성적인 차별과 사회적 제약도 전족이 확산되는 데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Ⅱ. 본 문◆ 전족의 기원과 확산전족이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여성의 발을 베로 옥죄어 오그라뜨리는 것이다. 그것도 철부지 어린아이의 발을 칭칭 동여매어 뼈의 성장을 정지시켜 버린다. 그리하여 완성된 기형적인 10cm 미만의 굽은 발을 두고 전통시대의 지식인들은 상찬해 마지 않았다.전족의 기원을 두고서는 이미 전통시대부터 수많은 논의가 있어왔다. 혹자는 후한부터라느니, 남북조부터라느니, 더 내려가 당조 부터라느니 하는 논설을 펴고 또 그것을 나름데로 논증하려 했다. 그러나 당대 이전 전족의 존재라 들고 있는 것들은, 한 대의 조비연이나 남조 제(齊)동혼후(東昏侯)의 반비(潘妃), 그리고 당현종시기의 양귀비 등과 같이, 사실상 이례적으로 발이 작았던 여성들의 사례일 뿐이다. 실제로 당대 이전의 기록에서 전족여인이 등장하는 사례는 전무하다고 한다.전족의 본격적인 출현은 오대(五代)에 이르러서 나타나게 된다. 유명한 풍류가이자 문학가이기도 했대) 후주는 6척 높이의 금연(金連)을 만들어 온갖 보화로 장식한 후, 후궁인 요랑으로 하여금 비단으로 발을 졸라매고 그 안에서 춤추게 했다. 이때의 풍경이 너무도 인상적이어서 당시의 후궁과 무희들이 다투어 이를 모방했고 이로써 전족의 풍조가 생겨났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전족이 출현했다해도 오대까지는 남당의 궁정, 그것도 일부 무녀와 후궁만이 전족을 행할 뿐이었다. 그러다 전족이 궁정내 일부 특수계층의 고립된 행위에서 벗어나 민간에 유포되기 시작한 것은 북송말기인 12 세기부터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부터 문인들의 작품에 전족에 관한 기록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또한 세간에 전족용 신발인 궁혜(弓鞋)가 상품으로 유통되기 시작했던 것도 바로 이 시기였다. 그 만큼 이때가 되면 전족의 사례 및 궁혜에 대한 수요가 증대되었던 것이다. 특히 전족의 유행을 주도한 것은 수도인 동경 개봉의 지배계층 부녀자들이었다. 이들이 전족을 하자 그 풍조가 점차 지방의 도시로, 그리고 여타 사대부층으로 확산되어 갔다.전족이 사회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한 송대라는 시대는 여성의 지위란 점에서도 중요한 획기를 이루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학이 발전하고 체제 교학화하면서 남녀간 준별과 여성의 지위저하가 두드러졌기 때문이다. 전족의 등장과 확산은 바로 이러한 이학 내지 정주학(程朱學)의 발전과 평행 하는 것이었다.남송 시대에 접어들면서 전족의 확산은 더욱 가속화된다. 북송시대 전족의 풍조는 북방, 그중 에서도 일부 대도시의 상층 부녀자에게만 미쳐있었다. 그런데 남송 시대를 통해 전족은 남방으로 전해지고 나아가 남송 치하 거의 전역에까지 파급되어 갔다. 그렇지만 이때에도 전족은 궁중의 여인들이나 가기(歌妓)들에게만 보편적인 것이었을 뿐, 사대부 계층의 부녀자 가운데에는 여전히 전족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전족이 사대부층 전반의 보편적인 풍조로 자리잡게 되는 것은 원대의 일이었다.명청 시대가 되면 전족은 지배계층의 범위를 벗어나 일반민중에까지 확산된다. 또 한족은때문에 명의 뒤를 이어 중국을 지배하는 만주족의 청조는 수차에 걸쳐 전족을 폐지하고자 시도하였으나 결국 민간의 압도적 전족 풍조를 막아내지 못하고 급기야 만주족 자신들도 전족을 채용하기에 이른다. 당시 전족이란 사실상 신분의 상징물과 같은 역할을 하는 존재였다. 따라서 일반인일지라도 상업 등으로 약간만이라도 치부하게 되면, 무엇보다도 먼저 가정 내 부녀자들에게 전족을 강요하고자 했다. 특히 화북지역과 같이 전족의 풍조가 심했던 지방에서는 평민층 여인들도 대부분 전족을 따라야 했다. 이러한 경우 생계를 위해 가사노동은 물론 힘든 농사일까지 처리해야 하는 그들에게 있어 전족은 이만저만한 고통을 수반하는 것이 아니었다.요컨대 전족은 10세기 말에 최초로 등장하여 시간의 추이와 더불어 갈수록 확산되어 갔다. 처음에는 궁정의 후궁과 무녀들이 전족을 시작하였고, 그것이 수도의 상층 부녀자에게 전파되었다가, 점차 지방도시의 지배계층 부녀자들에게, 그리고 원대를 거쳐 명청 시대가 되면 지배계층 뿐만 아니라 일반인에게까지 확산되어 갔다.◆ 전족의 진행 단계전족은 크게 4단계로 진행된다.처음단계가 시전이다. 일종의 예비 단계인 셈이다. 큰 발가락은 제외한 나머지 4개의 발가락을 묶어 최대한 발꿈치를 향해 굽힌 다음 천으로 동여맨다. 그런 다음 실로 꿰매고 끝이 뾰족한 가죽신을 신기고 나면 제일단계는 끝난다. 고통의 시작이다. 통증이 오고 발이 후끈 거리므로 전족은 대게 서늘한 가을에 실시 되었다고 한다.시전이 끝나면 이번에는 3일에 한번씩 천을 풀어 소독을 하고 다시 힘껏 동여맨다. 이것을 시긴이라고 부른다. 보통 6개월이 걸린다. 이때 피부는 이미 허물어지고 난 상태다. 심하면 썩어 고름과 피가 범벅이 된다. 물론 악취도 나고 이 단계가 되면 굽은 발가락 사이에 티눈이 많이 생긴다. 그러면 바늘로 퍼낸다. 이렇게 수차에 걸쳐 소독과 동여매기를 거듭하는 동안 발가락은 발바닥을 향해 굽어 들어간다. 전신의 체중을 8개의 발가락으로 지탱해야 하기 때문에 너무도 고통스러워 일어설 수한다."말을 듣지 않으면 큰 발이 된다. 평생 처녀 귀신이 되고 싶으냐?"당시의 여인들에게 큰 발은 귀신보다도 더 무서웠다.시긴은 하고 나서 반년이 지나면 이번 단계는 긴전이다. 발가락은 이미 굽었으니까 이제는 발등을 굽힌다. 발등은 자연히 곡면이 되고 발바닥은 움푹 파이게 된다. 이 단계 역시 반년이 소요된다. 이 단계가 되면 심한 경우 발가락이 아예 떨어져 나가는 경우도 있다.물론 이 단계도 시긴 보다 고통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다. 최후의 단계는 이만이다. 역시 반년이 소요된다. 이제 고통은 좀 가라안는다. 발바닥을 더욱 굽혀 마치 공처럼 휘게 만든다.이때가 되면 큰 발가락도 자연히 아래로 쳐지게 되어 전체의 발 모양이 아담하게 자리잡게 된다. 가장 이상적인 발 사이즈는 10센티미터 정도라고 한다. 그래서 그것을 삼촌 근련이라고 불렀다.그렇다고 여인들이 전족의 굴레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다 청결을 유지해야 한다. 적어도 3일에 한번 정도는 동여맨 천을 풀어 씻어야 하며 발톱도 깎아 주어야 한다. 물론 평생을 동여매고 있어야 도로 아미타불을 면할 수 있다. 여자를 노리개로 취급하던 때의 이야기이다.전족을 하고 나면 바로 서기가 어렵다. 그래서 마치 어린애가 걸음마를 배우듯 걷는 법을 다시 익혀야 한다.뒤뚱거리는 모습에서 중국의 남자들은 쾌감을 맛보았던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옛날 중국 남자들은 너무도 잔인했다고 볼 수 있다.전족을 하게 되면 바로 그 순간부터 여성은 활동력이나 노동력을 거의 상실하게 된다. 또 전족을 한 발은 어떠한 경우에도 남성에게 드러내 보이면 안되기 때문에 긴 치마로 감추어야 했다. 보행 자체도 몹시 불편해져서 아장아장 걷게 된다. 따라서 자기 발로 갈 수 있는 거리는 자연히 제한되기에 이르고 먼 거리를 가야할 때는 반드시 남의 도움에 의존해야만 했다.이로써 여성은 생산이나 노동으로부터 소외되어 주체적인 인격이 아닌 관상물 내지 애완물로 격하되어 버린다. 거동이 불편하다 보니 그 활동공간도 자연히 규방으로 제한되었다. 그리하여 전족하고 그 결과 철저히 남성에 의존하게 하는 작용을 했다. 동시에 남성의 입장에서는 전족이란 여성에 대한 효과적인 통제를 가능하게 만드는 장치이기도 했다. 요컨대 전족은 여성에 대한 예교적인 속박에 부응하는 관습이기도 했던 것이다.또한 전족은 그 출발부터 남성 중심사회의 심미적 수요 및 관능적 욕구와 긴밀한 연관을 지니고 있었다. 특히 전족이 상류층 부녀자들 사이에 보편적으로 자리잡기 시작한 원대 이후가 되면, 여성의 전족은 그 자체 남성들에게 성적인 상징물로 인식되기에 이른다. 전족한 발은 신체의 그 어느 부위보다도 가장 은밀한 부분이자 성적 매력의 결집체로 이해되었다. 그러므로 여성의 발은 남편이 아니면 접촉할 수도 살펴볼 수도 없었다. 특히 맨발을 외간남자에게 보인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만일 어떠한 남성이 여성의 젖가슴이나엉덩이를 만지는 행위는 실수라든가 아니면 다른 어떠한 이유로 변명할 여지가 있는 반면, 여성의 발을 만지는 것에 대해서는 어떠한 해명도 불가능했다.심지어 전족은 여성의 보행을 불편하게 하여 불가피하게 엉덩이 근육을 발달시키고 이로 말미암아 성행위시의 성감을 증폭시킨다고도 생각되었다. 전족은 총체적으로 성을 직접 연상시키는 매개물이었던 것이다.이와 같이 전족이 성적인 상징물로 자리잡으면서 남성이 여성의 발을 애무하는 것은 성행위 직전단계로 인식되었다. 따라서 어떠한 여성이 남성에게 발을 내맡긴다는 것은 바로 자신의 육체 모두를 허용한다는 의미가 된다.한편으로 전족은 신분을 상징하는 존재이기도 했다. 여성의 활동력과 노동력을 박탈하는 전족은 그 만큼 당사자가 생산노동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용모야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선천적으로 주어지는 것이지만 전족 만큼은 본인의 인내력과 정숙도, 그리고 가정교육의 정도를 반영해주는 것으로 여겨졌다. 아담하고 예쁜 전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은, 본인의 순종적인 성향과 엄한 가정 내 훈육을 보증하는 것이라 생각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예쁜 여인보다도 오히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