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1.서론2.본론1) 독도가 우리 땅인 이유(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2) 독도가 일본에 넘어가면 안 되는 이유3) 독도의 가치1.독도의 군사적 가치 및 해양 과학적 가치2.독도의 지질학적 가치4)일본이 독도에 관심을 갖는 진짜 이유 - 독도주변 해역에 천연 가 스 층이 존재한다.5) 독도영유권에 대한 한ㆍ일 주장분석1. 일본의 주장과 의도2. 우리나라의 입장3. 독도에 대한 한 ■ 일간의 논쟁3. 결론1. 서론우리는 일본에 대해서 말할 때, 흔히 가깝고도 먼 나라 라고 말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은 동북아경제의 중심에 있으며, 지리상으로 볼 때 가깝게 위치하고 있지만, 과거 역사적으로 일본은 우리나라를 침략하기 위해 많은 전쟁과 학살을 일삼아 왔으며, 1905년 을사조약을 체결, 우리나라의 정신과 문화를 무참히 짓밟아 버리는 등 우리에게는 씻을 수 없는 과거를 준 원수와 같은 나라로 인식되어 있다. 국민적 정서가 일본을 적대시하는 분위기 속에서도 최근에 월드컵을 공동 주최하고, 또한 활발하게 경제교류를 하고, 일본 대중문화를 전면개방하면서 차츰 양국간 관계가 개선되어 화해적 분위기로 가는 듯 하였다. 그러나 그때마다 터져 나오는 일본 고위관료들의 망언과 신사참배, 그리고 일본역사교과서의 왜곡문제, 일본극우단체들의 독도영유권주장등으로 우리나라 국민들의 감정을 자극하고 있다.그 중 최근 양국간에 첨예하게 대립되고 있는 독도 영유권 문제에 대해서 살펴보려 한다. 독도문제는 양국간 영토권의 문제이며, 영토의 수호문제는 각 국가들의 정책의 최우선순위에 두고 있는 중요문제이기 때문에 양국간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독도문제에 대해서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는 배타적 경제수역 (EEZ : Exclusive Economic Zone)의 선포는 영토의 경계선 확정, 어업문제, 그리고 독도의 영유권 등이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중요 문제로 큰 쟁점이 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일본이 최근 독도 영유권 문제를 도발적으로 다시 꺼내는 이유는 경제수역의 유리한 설군성이 작성한 , 1905년 동경박물관에서 펴낸 , 1936년 일본육군참모본부에서 나온 등의 자료 등에서 독도가 한국의 영토임을 밝혔다. 기인 1899년(광무 3년)에 당시 중등과정 신식교육기관에서 활용됐던 제 1권에 삽입 돼 있는 지도 대한전도에는 울릉도 옆에 '于山'이라는 표기와 함께 섬이 그려져 있으며 좌 측 상단에는 '光武 3년 12월 15일 學部 편집국 刊'이라는 표시가 선명히 적혀져 있다. 강원도 울진현에 속해 있던 독도를 1900년 고종황제의 칙령 41조에 의해 독도를 울릉군의 한 부속도서로서 공식적으로 강원도에 편입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일본이 독도를 1905년 시마네현에 편입시켰다고 주장하는 것보다 5년 앞선 것으로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 사실을 뒤엎을 수 있는 귀중한 발견으로 평가된다.'독도'라는 이름은 1906년 울릉군수 심흥택에 의해서 처음 사용되었으며,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경상북도에 편입되었고, 2000년 4월 7일을 기점으로 행정구역상 주소를 경상북도 울릉군 독도리 산1~산37로 정하였다.또한 일본인 교수, `개정 일본여지노정전도' 분석 일본이 독도 영유권 주장의 가장 확실하고 오래된 근거로 제시하는 1779년 나가쿠보세키스이(長久保赤水)사 발행 `개정 일본여지노정전도(日本與地路程全圖)'가 오히려 독도가 한국땅 임을 입증하고 있다는 주장이 한 일본인 교수에 의해 제기됐다.세종대 일어일문학과 호사카 유지(保坂祐二.49) 교수는 12일 "문제의 지도에 독도가 표시돼 있으나 당시 에도(江戶) 막부가 조선영토임을 확인한 울릉도와 함께 표시돼 있고, 이들 섬이 있는 부분에는 다른 일본 영토에 그어져 있는 경.위도선이 없다"면서 "이는 독도도 조선땅 임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호사카 교수는 이날 오후 부산외대 아시아지역연구소 초청강연에서 "이 지도에 표시된 부산과 경상남도 부분에도 같은 이유로 경.위도선이 그어져 있지 않다"면서 이같이 밝혔다.이 지도는 외무성 등 일본 정부는 물론 학계에서도 독도 영유권 주장의 대표적인 근거고 한다. 이 독도 해양과학기지를 통해 독도주변해역의 해양상태를 보다 명확하게 파악하여 기상예보모델의 초기값 중 해양상태를 나타내는 값을 보다 정확하게 입력시킴으로서 보다 적중률 높은 기상예보가 가능함은 물론, 지구환경 연구, 해양 산업 활동 지원과 해양오염방지에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하지만 이 계획은 일본과의 관계를 우려해 무산되었고 얼마 전 다시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한다. 만약 이 때 해양과학기지를 건설했다면 전 세계에 떳떳하게 독도가 우리 땅이라고 주장할 수 있었을 것이다.실제 1993년 10월 북한 청진항 동쪽 300km 해상에서 러시아가 핵폐기물을 투기한 행위가 환동해권 국가인 한 국 및 일본을 극도로 자극하였으며, 이후 동해 내에 투기된 오염물질의 이동, 확산, 분해, 해저 침적과정 등을 이 해하고 정확히 예측하는 과학적 검토가 요구되고 있다.(동해의 해수 및 물질순환에 관한 연구 3차년도 최종보고 서. 과학기술처. 1997)2. 독도의 지질학적 가치앞서 잠깐 언급되었지만, 독도의 생성연도는 지금으로부터 약 450만년 전부터 250만년전 사이인 신생대 3기의 플라이오세(Pliocene epoch)기간의 해저 화산 활동에 의해 형성되어졌으며, 이 시기는 울릉도(약 250만 전 1만년 전)및 제주도(약 120만년 전 1만년 전)의 생성시기 보다 앞선 시기이다. 생성시기로 따진다면 울릉도, 제주도의 형인 셈이다. 애국가의 표현대로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는다면', 독도는 더 이상의 작은 바위섬이 아니고, 높이 2천여m의 거대한 산의 꼭대기라고 한다. 지질학적으로 보면 독도는 동해의 해저로부터 해저의 지각활동에 의해 불쑥 솟구친 용암이 오랜 세월동안 굳어지면서 생긴 화산성 해산이다. 이러한 독도는 원래 동도, 서도가 한덩리인 화산섬이었다. 몇 십만년의 세월이 흐르며 바닷물에 의해 침식작용 과 바람에 의한 풍화작용을 거듭하며 원래 부드러운 성질의 돌이 천천히 깍여져 갔다.(파랑에 의한 해식작용) 이러한 해식작용의 결과로 칼독도인근해역을 거쳐 일본 서부연안을 향해 유전지대가 펼쳐진다고 한다. 30만㎢의 광활한 대륙붕에서 단지 30개의 시추공만을 꽂았을 뿐이며(일본은 38만㎢의 대륙붕에서 175개의 시추공을 꽂았다고 한다), 이중 12개는 외국계회사가 국내에 석유를 팔려면 의무적으로 한반도 대륙붕에서 석유를 탐사해야 한다는 의무조항 때문에 그나마 형식적으로 시추공을 박았다고 한다.금번 러시아 과학원의 연구소에서 제공한 동해의 '하이트레이트층' 의 분포추정 지도나 석유발견지도의 경향을 보았을 때 독도주변해역의 해양석유자원의 보유가능성은 매우 명확하다고 하며, 그 경제적인 가치 또한 매우 높다 고 한다독도주변해역의 새로운 경제적 가치를 정부는 분명 상기해야 할 것이며, 결코 독도주변해역의 경제적 가치와 무관하지 않을 일본정부의 독도영유권 주장을 의미 깊게 상기해 야 할 필요성이 재기된다.5) 독도영유권에 대한 한ㆍ일 주장분석1. 일본의 주장과 의도일본은 독도가 우산도(于山島)혹은 삼봉도(三峰島)로 호칭되었다는 것이, 우산도를 울릉도 이외의 섬에 결부시키는 것은 곤란하다는 것이다. 또한 우산도는 울릉도의 별칭에 지나지 않고 삼국사기, 동국여지승람, 지봉유설 기타 모두 신라 지증왕때, 우산국을 정복하여 우산국이 울릉도인 것을 명기하고 있다. 또한 우산국과 울릉도를 구별하고 있는 문헌은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뿐이지만, 그 문헌에도 우산과 울릉을 한 섬으로 기록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승람의 부도, 팔도총도와 강원도 부도는 조선 동해안에 거의 같은 크기의 두개의 섬을 그려 조선해안에 가까운 것을 우산도로 먼 것을 울릉도로 하고 있다. 만약 그 우산도를 우리가 독도로 한다면 울릉도는 독도의 동측에 존재하게 되어 현실과 모순 된 다는 것이다.일본정부는 동국여지승람을 조선이 오랫동안 울릉도를 방치함으로서 동해에 관해 지식이 결핍된 시기의 기록이며, 한 개의 울릉도를 우산, 울릉 두 섬으로 잘못 기재할 정도로 엉터리이며, 우산, 울릉, 무릉, 우릉 내지는 울릉은 모두 울산을 다른제시하면서 계속하고 있으며, 잦은 돌출행동과 망언들을 통해 우리가 추진하고 있는 독도에 대한 실효적 점유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국제법적인 항의 명분을 쌓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둘째, 세계2차대전후 제정된 일본의 비무장에 대한 자국의 헌법이 개정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일본은 군사대국화를 시도하고 있으며,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유엔 상임이사국의 증설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국제적 역할관계의 변화는 일본으로 하여금 독도문제에 대하여 보다 강도 높은 압박을 우리에게 취할 것으로 예측된다.셋째, 독도문제를 유엔(UN)으로 의제로 제기할 가능성이 많다. 일본은 독도문제를 유엔의제로 상정하려 할 것이며, 한국은 이를 당연히 거부할 것이다. 이는 군사적 위기를 야기시킬 것이며, 이렇게 되면 독도문제는 자연스럽게 유엔의 개입이 필요하게 된다는 논리이다. 일본은 이러한 포석을 깔고 계속적인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며 한국 국민들을 자극 할 것으로 예측된다.2. 우리나라의 입장독도가 우리의 영토임을 나타내는 관련 자료들은 많이 있다. 특히 우리의 고문서 및 역사적 사실에 나타난 사실을 보면 다음과 같다.한국의 울릉도 및 독도의 명칭에 관하여 울릉도는 무릉(武陵), 우릉(羽陵), 및 울릉도로 호칭되었고, 독도는 우산(于山)혹은 삼봉도로 호칭되었다. 한편 독도가 현재의 호칭으로 불리어지게 된 것은 그 섬모양에 의한 것이다. 즉 한국의 경상도 방언 중 암석은 독(獨)으로 호칭되고 따라서 독도는 암석도를 의미한다. 또한 떨어진 섬이란 의미도 우연히 발음상 같은 맥락을 가진다. 성종실록에 의하면 울진현장에 우산 및 울릉은 본현의 정동방해(正東方海)에 위치하고 이들 섬간은 가까워 청명(淸明)하면 서로 볼 수 있다 라고 게재 되어있다. 또한 독도는 조선초기부터 삼봉도 라고 불리었다. 조선의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서기 1476년 김자주를 대장으로 하는 독도조사단은 삼봉도를 항해하였고, 동측을 조사하여 돌출된 3개의 암석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섬의 도면을 그려 돌아왔다 라는 보고를.
1.조보란조보는 조선시대 승정원에서 주로 조정의 소식을 게판 필사하여 지배계층인 양반관료들에서 반포한 전근대적 신문적 매체로서, 긔별?긔별지?조지?저보?저장?저지?난보?한경보라고도 하였다. 이러한 조보는 이조 초기에서 1895년까지 발행된 일종의 관보라고 할 수 있는다. 따라서 조보는 한국 언론사 연구에서 가장 집중적인 관심을 모아온 대표적인 언론전사 현상으로서 그 기원과 성격, 언론사적 위상에 대한 천착이 상당수준 이루어져 온 셈이다.한국 신문의 시원을 어디에 두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견해들이 많이 제기되지만, 전근대적 언론현상 또는 신문적 매체로서 조보를 지목할 수 있다. 현재까지 알려진 조보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조선 중기인 1520년(중종 15) 3월 26일자 《중종실록》의 기사이다.조보의 기원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의 설이 있다. 조선시대의 선조조, 세조조, 중종조, 등의 견해가 제시되고 있다. 최근의 연구에서는 조선 초기설이 강력하게 대두되고 있다 지금까지의 연구결과를 종합해보면, 조선초 초기에 조보의 형태가 존재한 것으로 보고 그것이 제도적으로 확립된 시기는 대체로 중종조에 이르러서의 일이라고 하겠다.이희승 편 [국어대사전]에는 조보를 기별과 같은 것으로 보고, “승정원에서 처리한 일을 날마다 아침에 적어서 반포하는 일 또는 그 적은 종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승정원에서 처리한 일이란 조선조 봉건권력체제에서 절대 권력자인 왕의 명령과 지시의 출납을 맡은 승정원을 거쳐 처리된 일을 말한다. 따라서 조보는 조정에서 처결된 사항을 승정원에서 정리, 게판하고 필사케 하여 반포한 기별지로서, 왕의 통치 행위와 관련된 사항이 내용의 대부분이지만 간혹은 천재지변과 기문기사도 들어 있었던 일종의 관보와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프랑스인 M. 쿠랑의 《조선서지》에서 <이 신문은 매일 오전에 나오므로 이는 그 전날 저녁부터 밤에 이르는 사이의 전교와, 또 그날 아침의 전교도 포함한다>고 기술한 것으로 보아 정기적으로 매일 발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2.조보의 발행과정조보는 승정원에서 발행하였는데 이 과정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승정원은 승지와 주서 그리고 서리로 구성되어 있는 왕의 비서기관 격이다. 왕의 전교나 윤허가 내린 주요 국사는 다시 승정원으로 전달되고 주서와 서리는 이들 승정원의 공사 가운데서 조보를 통해 반포할 뉴스기사를 정리하여 게판하며 각 관청에서 파송된 기별서리들은 이를 서사하여 해당관청의 장에게 분송했다. 이 기별서리들이 모여 있는 곳을 기별청 이라고 하였다.조보의 제작과정에서 볼 때 최초의 기사작성 및 편집자는 승정원의 주서와 서리라고 할수 있다. 따라서 각 관청에 파견한 기별청의 기별서리들이 승정원 주서와 서리들이 선정, 게시한 기사를 필사해서 이를 각 소속 장에게 보냄으로써 조보의 ‘커뮤니케이션 과정’은 일단 완료되는 셈이다. 기별서리에 의해 기사가 필사될 때도 그 독자의 관직, 연고지 등의 조건에 따라 기사의 ‘취사선택’이 달리 이루어지는 것은 물론이다. 또한 조보는 서울의 독자들에게는 전날 오후부터 취합한 기사를 필사하여 매일 배달하였으나 지방의 독자에게는 5일 내지 10일 때로는 한 달간의 기사가 필사되어 배달되기도 했다.)3.조보의 기사조보의 기사내용은 다양하다. 이것은 뉴스원과 내용자체를 기준으로 분류될 수 있다. 뉴스원에 따라 분류하면 ①국왕의 전교와 윤음 ②관리의 임면과 부임 ③경관각사의 주사 ④ 지방각도의 장계 ⑤천재지변과 기문기사 등이다. 내용자체를 기준으로 분류하는 경우, ①정사 ②숙배 ③인사 ④제향 ⑤사직소와 비답 ⑥왕의 거동이나 외교 등으로 범주화된다. ‘정사’는 관원이 사직, 휴직, 휴가를 승정원을 통해 왕에게 요구하는 것이다. ‘숙배’는 관리로 임명된 사람이 휴지ㄱ, 휴가를 승정원을 통해 왕에게 요구하는 것이다. ‘사직소와 비답’이라 함은 관원의 사직을 청원, 건의하는 상소와 이에 대한 왕의 답변이다.한편 조선조 시대에는 조보 외에도 그와 유사한 전근대적 신문현상으로서 ‘분발’, ‘정사’, ‘소차’, ‘영기’ 등 특수한 기능의 신문적 형태가 존재하였다. 이것은 조보가 조선왕조의 지배계급을 이루고 있는 양반관료들의 신속하고 다양한 뉴스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기득권계층의 우월한 지위 유지를 위한 보다 적극적인 정보추구 욕구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하겠다.)4.조보의 크기조보의 크기는 일정하지 않으며 세로 35㎝ 가량이었다. 제호와 기사의 제목은 없었으며 발행일자만이 적혀 있을 뿐이다. 서체는 <긔별글씨>라고 불리는 초서체, 사용문자는 한문이었으나 이두식표현을 섞어쓰기도 하였다. 배포범위를 제한하기 위해 필사만을 허용한 듯한데, 원칙적으로 현직?전직 고위관리들에게만 배포되어 일반 대중에 미치는 직접적인 영향은 적었다. 그러나 백성들을 유교의 이념에 따라 행동하게 함으로써 조선왕조의 봉건체제 확립에 공헌하였고 사대부 계급에게는 오늘날의 신문과도 같은 기능을 담당했다고 할 수 있다.)5.조보의 글자조보는 각 관청의 기별서리들이 손으로 직접 베껴서 한성, 지방의 관청, 양반층에게 보냈는데, 많은 내용을 빠른 시간 안에 써야 하기 때문에, 기별서리들은 글씨를 휘날려 특유의 필체가 있었다.)6.민간조보의 발행과 민중언론조선조 선조 10년에 민간임에 의해 조보가 잠시 동안 인행, 발간된 일이 있었으나 선조가 탄압하여 더 이상 나오지 못했다. 서울의 민간인들이 중국의 통보를 본받아 의정부와 사헌부의 허락을 받아 유료의 민간조보를 인쇄하여 발행했던 것이다. 그러나 선조가 우연히 이를 발견하고 민간의 조보 발행은 첫째로 사국을 사설하는 것이고, 둘째로 나라의 잘못을 다른 나라에 선전하는 것으로서, 이를 군주에 대한 부도로 규정, 민간조보 관련자들을 잡아들여 엄벌하였다. 이로써 민간조보는 약 석 달 만에 폐간되어 벼렸고, 이후 우리나라는 3세기 동안 민간신문 없는 시대를 가지게 된 것이다.)7.조보의 폐지에 따른 신문사적 의미민간조보는 비록 3개월 남짓 만에 없어져 버렸지만 다음과 같은 신문사적 의미가 있다. 첫째 활자로 인쇄하여 매일 발행했다는 것은 필사한 조보에 비해 진일보한 것으로 우리의 인쇄문화가 상당히 발전했음을 의미한다. 둘째 민간인들이 판매의 목적으로 정부의 허가를 받아 인행했다는 것이다. 민간인들이 조보를 인쇄하여 관청과 지방의 경주인등 독자에게 판매하여 영리를 추구했다는 것은 오늘날 민간신문 경영방식의 일단을 엿보게 하는 것으로, 후일 민간신문 발전의 중요한 밑받침이 되었다. 셋째 조보에 비해 내용이 비교적 다양했던 것으로 보인다. 독자인 양반 사대부들의 환영을 받았다는 것은 수서한 조보에 비해 ‘인쇄’가 정교하여 보기에 편리한 점도 있었지만, 취급한 뉴스에 있어서 훨씬 다양하고 광범위한 취사선택이 이루어졌기 때문인 측면도 있다.이러한 민간조보는 발행 후 석 달도 못되어 선조에 의해 폐간되어, 그 이후부터 민간에 의한 조보의 인쇄, 반포를 엄금하고 서책의 인쇄출간 때는 정부의 허가를 받도록 함으로써 민간에 의한 인쇄, 출판 및 언론문화의 성장, 발전풍토가 크게 훼손시켰다. 또한 인쇄매체를 통한 민중언로 및 공론 현상의 가능성마저 일찌감치 제거해 버렸다. 이것은 봉건적 전제군주체제 하의 억제, 탄압지향적인 ‘언론정책’과 규제일변도의 ‘문화정책’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8.조보의 폐지가 우리사회에 끼친 영향민간조보의 폐지와 함께 선조 이후 고종에 이르기까지 약 300년 동안 한국 사회는 민간신문 없는 시기였다. 이 기간에 오늘의 선진 여러 나라는 근대화를 위한 몸부림을 계속해왔다. 언론은 근대화에 상당한 기여를 했고 일정한 역사적 사명을 다하였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지배계급은 민중의 의사와 언론을 무시하고 사회적 언로마저 철저히 차단하려고 하였다. 언론의 사회적 역할과 기능에 대한 인식이 전혀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국론의 분열에 기인한 7년의 임진왜란, 조선조 후기 들어 일어난 각종 민란과 민중생활의 도탄, 일제의 강점 등 역사적 비극은 정부와 지배계급이 평소부터 민중의 언론을 강압하고 여론을 무시함으로써 올바른 정치를 할 수 없었던 데 큰 원인이 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율곡 이이나 조광조 등 일부 지배계층의 개혁적 언론과의 대두는 시대적 의미가 컸었다. 그러나 당시 그것이 사회적 세력을 확보해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하나의 지배적인 사상이 되기에는 봉건체제의 벽이 너무나 두꺼웠다고 하겠다. )
최근 저출산에 대하여...우리 사회는 저출산으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급속한 구조 변동을 겪고 있다. 이로 인한 파급력은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 전반에 걸쳐 엄청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지금과 같은 추세를 방치할 경우 우리 사회는 큰 재앙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정부는 이 같은 위기감 속에 저출산 대책 마련에 착수했으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저출산의 주요원인보통 저출산은 자녀양육부담이 주 원인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인구 장래는 극히 암울한 것이 현실이다. 저출산 고령사회로의 급속한 진입에 따라 역피라미드형 인구 구조가 불가피하다는 진단이 있다. 이 같은 추세가 사회 전반에 미칠 파급효과는 상상하기 어렵다. 다만 국력 쇠퇴의 결정적 요인이 될 것이라는 데는 별다른 이견이 없다.우리의 합계출산율은 세계 최저 수준이다. 지난 1993년 1.67명이었던 것이 2000년에는 1.47명, 2002년 1.17명, 지난해 1.19명으로 떨어졌다. 이는 전 세계 평균인 2.69명에 비해 절반도 못되는 수준이고, 선진국 평균인 1.56명에도 턱없이 모자란다.이 같은 현상에 대응하기 위한 정부도 여러 가지 정책을 펴고 있지만 아직은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이번 과제를 위해 자료를 조사하다가 알게 되었다.현재 우리나라는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정부차원에서 또는 각 지방정부차원에서 출산장려를 위한 인센티브를 실시하고 있다.정부차원에서는 당장 내년부터 여성의 출산휴가 부담을 지기로 하고, 90일분의 출산휴가 수당을 고용보험기금에서 전액지원해주기로 최근 당정간 합의가 있었다. 또한 직장 내 보육시설의 의무설치를 확대하고, 2007년부터는 유치원에 대한 전액 무상교육도 실시하기로 하였다.황수경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여성의 경제활동참가를 확대하는 것이 앞으로 한국경제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며 “국가와 사회가 여성의 육아부담 등을 책임져야 자유롭게 노동시장에 진입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또한 내년부터 공기업과 일정규모 이상의 대기업 중 여성을 많이 고용한 기업에 가산점을 주는 등 각종 혜택을 받게 된다. 이 기업들은 직급별 남녀 근로자 현황을 매년 보고하고, 이중 여성 고용이 일정수준에 이르지 않을 경우 여성고용 목표 및 확대 시행계획을 수립해 정부에 제출해야 한다. 노동부는 28일 여성고용 확대와 차별개선을 위한 이 같은 적극적 고용개선조치제도를 포함한 남녀고용평등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정부가 미국 등에서 이미 실시하고 있는 적극적 조치를 도입키로 한 것은 일부 기업이 여성인력 고용을 늘리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여전히 미흡하다는 판단 때문이다.또 여성 고용률 증가를 통해 저출산ㆍ고령사회시대에 대응하는 한편 기업의 인사관리 측면에서의 성별차이보다는 능력과 성과에 기반한 제도 구축 등으로 생산성 향상과 인력활용의 효율성을 꾀하기 위한 조치이다.노동부는 기업이 제출한 자료를 토대로 고용평등 계획의 적정성과 고용평등계획 이행실적을 평가해 우수한 기업에 대해서는 행정적ㆍ재정적 인센티브를 부여할 계획이다. 노동부는 이를 위해 올 상반기 중 관련 전문가로 구성된‘고용평등평가센터’를 설치, 운영하고 고용개선 프로그램 매뉴얼 개발 및 대상기업 지원 등 적극적 고용개선 조치가 확산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이 제도의 도입에 앞서 지난해 노동부가 공기업 및 근로자 1000인 이상 대기업을 대상으로 남녀근로자 현황을 조사한 결과 여성고용 비율은 공기업이 20.9%, 대기업은 33.3%로 1000인 미만 기업의 평균 37.3%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또한 지방정부차원에서는 각 시군별로 다양하게 출산장려정책이 시행되고 있다. 특히 남해군의 같은 경우는 셋째아이를 출산 하였을 때 300만원을 지원한다고 한다. 물론 첫째아이 둘째아이에게도 약간의 장려금이 지급되는 것은 물론이다. 강원도, 제주도, 충청도등 각 시군도 액수는 다르지만 이와 비슷한 출산장려정책을 채택하고 있다.하지만 이와 반대로 울산시는 관내 18세 미만의 아동인구가 29%를 차지하고 있으며 지난해 셋째아이 출산도 1200명에 달해 인구분포 특성상 저출산이 큰 문제가 되지 않아 올해 타지역 자치단체의 출산장려책을 지켜본 후 대책 마련을 결정한다는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또 출산장려금을 일부 지급한다고 아이를 더 낳을 가정은 그렇게 많아 보이지 않는다며 실효성에 의문까지 제기하고 있어 출산을 계획하고 있는 주민들로부터 비난을 사고 있다. 눈앞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미리 대책을 세우지 않는 것은 틀림없이 잘못되 정책이다.저출산에 대한 설문조사결과(메신저이용)를 나의 생각과 정리이외에도 중앙정부 및 지방정부에서 저출산을 해소하기 위해 추진하는 정책들은 수도 없이 많다. 이들 모두 서술하게 되면 분량이 너무 많아 질 것을 염려하려 하여 지금부터는 저출산에 대한 나의 생각들을 기술해 보고자 한다.우선 나는 이 과제를 작성하기 위하여 신문기사와 보건복지부, 노동부, 여성부 등 여러 홈페이지를 검색해 보고, 주위 친구들에게 메신저를 통한 설문조사도 실시하였다.우선 결론부터 내린다면 대부분 결혼을 해서 1명의 자녀를 가질 것이라고 한다. 그에 대한 이유도 거의 비슷하였다. 우선 양육비에 대한 부담이 가장 높이 나타났으며 다음으로 불투명한 미래에 대해 확신이 서지도 않는데 차라리 2명, 3명 낳았을 경우 들어가는 양육비를 한명에게 몰아주겠다는 대답도 많이 있었다.또한 자녀를 위해 자신의 직장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에는 부정적인 대답이 많았다. 결혼을 위해 또는 자녀를 위해 직장을 포기할 수 있겠냐는 질문에는 차라리 결혼을 포기하는게 더 좋을 것 같다는 대답도 있었다. 이에 대한 보충설명으로 자신이 이때까지 결혼을 하기 위해 대학을 다닌 것도 아니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공부를 해왔는데 결혼이나 출산 때문에 직장을 포기한다는 것은 생각도 하기 싫다고 하였다.
1.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프로이드는 원래 신경질환의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의사였다. 프로이드가 그이 접근방법에 정신분석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것은 896년이다. 그는 자기 자신을 대상으로 하여 정신분석을 시작하였고 자신의 분석을 위하여 특히 꿈에 관심을 가졌다. 그는 그의 환자들의 꿈이 잠재의식적인 의미에 대한 열쇠를 제공해 준다는 사실을 발견하였으며, 자신의 꿈을 통해 그것의 중요성을 확신하였다. 프로이드는 1900년에 이라는 책을 발간하면서 그는 꿈의 현재적 내용과 잠재적 내용을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프로이드에 의하면 꿈은 언제나 겉으로 보면 매우 우스꽝스러우나 그 내면을 살펴보면 어떤 내적 논리를 발견할 수 있다. 꿈의 대부분은 꿈을 꾸는 사람의 일상적 경험에서 흔히 나타나는 것들이지만 그 내적인 내용을 고려할 때 거기에는 언제나 일상생활과 거리가 먼 것처럼 보이는 한 가지 핵심적인 주제가 있는데 이는 꿈을 꾸게 하는 충동들을 나타낸다. 이것은 대부분 억제된 충동으로써 의식적으로는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그 기저에는 꿈이 충족시키고자 하는 억압된 욕구가 존재한다.프로이드는 1904넌에 이라는 책을 발간하였는데, 이 책에서 프로이드는 잘못 말하거나 틀리게 쓰는 것과 같은 행위들도 그 밑에 깔려있는 무의식적 동기를 드러낸다고 주장하였다. 1905년에는 라는 책과 가 출간되었는데, 여기서 그는 유아의 성욕에 대한 견해를 최초로 체계적으로 진술하였다. 1913년에 출간된 에서는 원시도덕과 종교의 정신분석을 시도하였다. 1930년대에는 문명의 심리학에 대하여 저수란 이라는 책이 출간되었다.여기서 정신분석에서 사용되는 주요 개념을 살펴보면 무의식과 심적 에너지, 본능, 리비도가 있다. 먼저 무의식은 정신분석학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이다. 무의식은 정신생활의 근본 저장소이다. 의식은 마음이라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고 의식의 밑에는 무의식이 잠겨 있으며, 의식적 현상은 무의식의 영향 하에 이루어진다. 무의식은 기본적으로 심리적 동기를 제공하는 행동에 대한 투쟁한 방법으로 반응하도록 하는데 말일 자아가 합리적인 방법으로 불안을 상대할 수 없을 때는 비현실적인 것에 의존하게 되는데 이때 사용되는 것이 방어기제로 다음과 같은 종류가 있다. 첫째, 억압은 사회적이나 윤리적으로 용납될 수 없다고 생각되는 욕구나, 충동, 사고 등을 자신의 무의식 속으로 숨겨버리는 것을 말하며, 둘째 반동형성은 실제의 욕구나 충동과는 반대되는 행동을 함으로써 금지된 욕구나 충동의 표출로 갖게 될 불안으로부터 자아를 보호하는 것을 말한다. 셋째, 투사는 자신의 결점이나 약점을 무의식적으로 다른 사람이나 사물에 전가시켜 비난함으로써 자신의 결점이나 약점 보호하는 것을 말하며, 넷째 합리화는 현실을 왜곡시켜 불합리한 추리를 통해 자존심을 보호하는 것을 말한다. 다섯째로 전위는 덜 위협적인 상대에게 전가 (남편에 대한 화풀이를 자식에게)하는 것을 말하며, 여섯째 승화는 억압된 충동이나 욕구의 발산을 사회적으로 용납되고 인정되는 방향으로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마지막으로 고착과 퇴행은 좌절과 불안이 그 개인에게 너무 클 때 그 이전의 만족스러웠던 시절의 행동양식으로 돌아가는 행동기제를 말한다.다음으로 프로이드의 인성이론을 살펴보면 프로이드는 인성이 이드와 자아, 초자아로 구성되어 있다고 보았다. 이드는 즉각적인 만족을 추구하며 이성이나 논리에 지배되지 않는 맹목적인 성격을 가진다. 즉 이드는 고통을 피하고 쾌락을 추구하려고 한다. 그리고 자아는 대부분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하여 후천적으로 발달되지만 유전되기도 하고 성숙과정에서 자연히 성장되기도 한다. 여기서 자아의 에너지는 인성의 세 구성요소를 총괄하는 역할을 한다. 다음 초자아는 도덕적이고 재판적인 기능을 수행하며 이상적인 것을 대표하고 현실이나 쾌락보다 완전성을 추구한다. 종합해보면 자아는 이드로부터, 초자아는 자아로부터 형성이 된다. 또한 이드는 자아에게 본능에 충실할 것을 강요하는 반면, 초자아는 자아에게 무조건 도덕률에 따를 것을 강요한다. 프로이드는 삼적 에너지의 분배에 의하여 인간의 행동론을 사회행태론 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그의 이론이 인간적 차원에서의 행동에 관심을 두었기 때문이다. 즉 그의 이론의 주된 관심은 인간의 사회적 행위이다. 미드는 인간의 행위는 사회적 차원에서만 이루어 질 수 있다고 강조하였다. 그는 행태주의자와는 달리 인간행동의 내면적인 과정도 고려하였는데 이는 인간행위와 동물의 행동 간의 차이점을 부각시키기 위한 것이었다.미드는 쿨리가 이미 주어진 것으로 가정했던 마음의 기원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하며 마음은 자아의 활동적 측면을 지칭하는 것으로서 자아와 같은 과정을 거쳐 형성되고 마음이 의사소통을 통하여 형성되며 의미 있는 상징을 사용하여 자신과 대화할 때 존재한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마음은 인간의 반성적 사고와 추상적 사고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미드는 마음을 유기체와 환경과의 관계 속에서 설명한다. 모든 유기체는 환경에 대한 끊임없는 적응과 조정의 과정 속에 있는 것이며 환경은 어느 유기체에게나 같은 상태의 것이 아니고 유기체도 환경에 대해 동일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미드는 자극을 유기체 스스로의 필요에 의하여 선택된 것이라고 보았다. 인간의 지각은 능동적인 선택이 작용하는 것이지 외부의 현상이 자동적으로 의식에 투영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행위에 반드시 계산이 따르게 되는데 인간이 자기 행위의 결과를 고려하게 된다는 것은 곧 그에게 마음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미드에게 자아는 또 하나의 중요한 개념이다. 인간이 자신의 행동에 반응을 보일 수 있는 것은 자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즉 인간은 자아가 있음으로 해서 남에게 행동을 취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기 자신에게도 행동을 취할 수 있다. 미드는 자아의 발달을 설명하면서 일반화된 타자라는 개념을 사용하였다. 일반화된 타자란 한 집단이나 사회의 보편적인 태도가 조직화된 것으로서 이는 그 집단에 속해 있는 개인에 의하여 행위의 기준으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개인은 자신이 속한 집단 전체의 맥락에서 집합적인 타자의 태도를 받아들임으로써만 속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왜냐하면 집단은 개인에게 행위의 맥락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미드에게 행위는 네 가지 단계적인 측면을 가지는데 충동적 측면, 인지적 축면, 조작의 과정, 달성의 단계가 그것이다.마지막으로 미드의 이론은 인간행위가 상황정의를 어떻게 하는가에 의하여 결정된다는 점을 확실히 하고 상황정의는 상징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임을 분명히 한점, 사회학적 관점을 통하여 인간의 자아나 마음이 생리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과정을 통하여 형성됨을 강조한 점, 언어가 자아와 마음의 형성과정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분석한 점, 자아에 대한 이론을 통하여 인간이 수동적으로 환경의 영향을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창조적인 측면을 부각시킨 점, 마음을 개인 속에서 이루어지는 사회적 과정의 재현으로 봄으로써 인간이 사회의 축소판임을 지적한 점, 인간행위는 하나의 과정이지 사건이 아니므로 이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사적, 사회심리학적 상황이 고려되어야 한다는 점, 사회가 어떻게 공동의 기대와 이해를 형성하고 발전시켜 나그는지를 보여준 점, 인간은 상징을 통하여 상대방과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타인과의 협동적 활동이 가능하다는 점과 이런 의미에서 사회는 합의에 기반한다는 것을 보여준 좀 등에서 사회심리학의 발달에 크게 기여했다고 할 수 있다.3. 레빈의 인지학레빈은 미드가 몸담고 있었던 베를린 대학교에 재학하면서, 미드와 마찬가지로 철학과 심리학을 공부하였다. 그는 게슈탈트학파의 한 사람이긴 했으나, 물리적 사건과 심리적 사건이 조직되는 형태는 유사하다는 초기 게슈탈트학파의 정설에 동의하지 않았다. 초기 게슈탈트학파가 지각의 문제에 주로 관심을 기울였던 데 반해, 레빈은 행위의 동기 쪽에 더 관심을 가졌던 것이다.레빈은 인지학에서 장이론을 주장한 인물이다. 레빈은 실험법을 사용한 사회심리학적 연구를 발전시키고 사회심리학을 고유의 학문영역으로 발전시키는데 커다란 공헌을 한 학자이다. 또한 레빈은 게슈탈트학파의 한 사람이지만 종래의 게슈는 개개요소가 아니라는 것이다. 더욱이 행위는 항상 현재의 시점에서 발생하므로 레빈의 견해로는 과거의 사건들을 분석에 포함시킬 필요가 없다. 과거의 사건이 현재에도 개인의 심리적 경험의 일부를 이루는 경우에만 과거는 행동의 결정요인이 된다는 것이다.레빈의 장이론은 특히 집단의 행위를 이해하고 분석할 때 사용된다. 그는 개개인의 생활공간에 대한 연구로부터 집단내의 개인행위에 대한 집단의 영향력에 대한 연구로 발전하였다. 장이론에 의하면 집단은 기본적으로 그 집단을 이루는 개개인의 집합이 아니고 개개인을 포함하는 일련의 관계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집단을 구성하는 것은 개개 구성원들의 특성이 아닌 관계의 상호의존성이다. 레빈은 지도자의 훈련이나 음식 습관의 변화, 범죄, 알코올 중독, 편견에 대한 연구를 통하여 개개인 각자를 변화시키는 것보다 집단을 형성하여 그 집단 속의 개인들을 변화시키는 것이 더 쉽다고 보았다. 집단의 가치가 변하지 않는 한 개인은 변화에 저항할 것 이라고 보고, 이를 음식 습관의 변화에 관한 연구를 통해 입증하였다. 그이 연구에서는 집단토론과 집단의 의사결정과정이 주부들로 하여금 강의를 통하여 우유를 소비하게 했던 것보다 더 많은 우유를 소비하도록 유도하였다. 이러한 집단에 대한 강조와 집단행위에 개개인을 중요하게 포함해야 한다는 필요성에 대한 레빈의 주장은 1960년대와 70년대에 미국에서 유행하였던 민감성 훈련운동에 큰 기여를 하였다. 그리하여 레빈을 민감성 훈련의 아버지라고도 부른다.4. 스키너의 행동주의스키너는 현대적 행태주의를 정립한 학자이며 주된 관심사는 행동의 통제를 다루는 문제였다. 그는 행동의 속성에 따르는 결과를 조작함으로써 행동을 통제할 수 있다고 봄으로써 Thorndike의 조작적 조건화이론을 계승하였다. 그는 특히 방법론적 측면에서 실험실 안에서 조작된 자극에 의해 발생하는 특정행동의 빈도를 양적으로 분석함으로써 경험적 관찰만을 토대로 한 정확하고 객관적인 연구만을 인정하고 주로 쥐나 비둘기를 이용하여 연구하였다..
1.여행을 떠나기전에*여권/비자우선 일본을 여행하기 위해서는 여권과 비자가 필요하다. 우선 여권은 경남도청으로 가서 여권발급신청서를 작성하여 제출한다. 그리고 여권을 발급받으면 부산 일본영사관으로 가서 비자 신청을 한다. 비자같은 경우는 신청한 다음날에 발급받을수 있지만 여권은 자칫 잘못하면 제 날짜에 발급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여유를 가지고 신청해야 한다.*배낭먼저 배낭은 중간크기의 것을 준비했다. 왜냐하면 일본에 도착해서 계속 배낭을 메고 다녀야하는 이유와 너무 큰 배낭은 기내에 반입이 되지않아 배낭을 찾는데 허비해야하는 시간을 절약한다는 이유와 일본에서 이용해야할 코인라커도 가장 작은 사이즈를 이용할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다. 그리고 배낭좌우에 지퍼가 달린 것을 준비하였다. 이는 자주 꺼내어 사용해야 하는 물건들을 편하게 꺼내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배낭에 짐을 채울때는 불필요하거나 애매한 물건들은 과감히 빼야한다. 또한 여행중에 생길 짐을 대비해서 배낭의 1/3정도는 비워두고, 옷가지들은 너무 많지않게 가지고 가야 배낭의 무게를 줄일수 있다.*카메라내가 일본에 가는 가장 큰 이유는 사진을 찍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카메라를 챙겨가야 한다. 하지만 내가 사용하는 카메라는 무겁기 때문에 잠시 고민을 하게 되었다.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배낭을 줄이고 카메라는 가져가는 것이다. 이번 여행 계획을 짜면서 알게된 것은 우리나라 대형마트에서 24판짜리 감도400의 필름이 3000원정도하는데 일본에서는 동일한 필름이 5롤에 1000엔정도로 우리나라보다 싸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필름은 일본 현지에서 사기로 결정하였다.2.여행준비물*여권, 비자, 항공권, 여권용 증명사진, 여행경비*배낭, 보조배낭*의약품(소화제, 안약, 종합감기약, 밴드, 파스, 두통약)*의류(속옷3벌, 양발3켤레, 바지·셔츠1벌씩, 모자)*개인위생품(수건2개, 칫솔, 치약, 면도기, 비누, 샴푸, 왁스)*비상식량(초콜릿, 비스킷 소량)*여행노트, 필기구, 시계, 계산기*우의, 휴대용화장지*여행자보험가입-우선 증명사진은 여권을 분실했을 경우를 대비해서 챙겼고 보조배낭은 예상치 못한 짐이 발생했을때를 대비하였다. 그리고 비상약은 일본은 약값이 많이 비싸기 때문에 기본적인 약은 챙겨가는게 낫다고 판단하였으며 속옷은 2벌만 챙겨가려고 했지만 혹시 비가 와서 하루만에 마르지 않았을때를 대비해서 3벌씩 챙겼다. 바지와 셔츠는 1벌씩만 챙겼고 츄리닝은 생략하였다. 그리고 가볍고 칼로리가 높은 초콜릿과 비스킷을 비상식량으로 챙겼고, 노트와 필기구는 여행일지를 작성하기 위해서 챙겼다. 마지막으로 혹시르 ㄹ대비해서 여행자 보험을 가입해야한다. 이로써 여행준비물은 끝이 났다.3.비행기를 타면서*항공수속-국제선 비행기를 타야하기 때문에 2시간 전에 공항에 도착해서 수속해야한다. 특히 남보다 일찍 수속을 마치면 앞자리에 배정을 받을수 있고 현지에 도착했을때도 남들보다 먼저 입국수속을 마칠수 있기 때문에 필요없는 시간을 줄일수 있다. 탑승수속이 끝나면 공항이용권을 구입해야한다. (김해공항19000원)*출국심사-탑승수속이 끝나면 출국심사장으로 이동하여 출국심사를 받아야 한다. 이때 여권과 보딩패스, 출입국기록카드를 심사관에게 제출한다.*입국심사-일본에 도착하면 입국심사를 받아야 한다. 이때는 여권과 일본 출입국기록카드를 제출해야 한다. 이때 입국사유가 관광이면 대부분 무사통과이다.*세관-입국심사가 끝나면 짐을 가지고 면세 카운터로 간다. 그후 세관에 도착하면 방문목적이나 체제 일수, 신고할 물건의 유무를 묻게 되고 통과하면 입국이다.=>출입국과정은 아주 간단한 것이므로 남들이 하는대로만 하면 된다.4.일본여행 일정여행일 / 일정 /숙소10월12일 /부산출발 오사카관광 /오사카10월13일 /오사카관광 /오사카10월14일 /오사카관광후 교토로 이동 /교토10월15일 /교토관광 /교토10월16일 /교토관광후 고베로 이동 /고베10월17일 /고베관광후 오사카 이동 /오사카10월18일 /간사이공항에서 귀국5.일본여행 세부일정*오사카에도시대(1603~1868)를 통해 이라고 불리며 전국의 주요 산물이 모이는 사업도시로서 대단히 번영한 도시이다. 그리고 서일본 지방 최대의 도시라고도 할수 있다. 또한 맛있는 음식을 위해서라면 모든 재산을 써도 아깝지 않다는 전통을 갖는 곳이다.[반바쿠공원]-오카모토 타로씨의 작품인『태양의 탑』을 심볼로 하는 EXPO'70 가 개최되었던 자리를 이용한 광대한 공원. 공원내에는 국립 민족학 박물관, 국립 국제미술관, 일본민예관 등 문화시설과 그 밖에 유원지인 엑스포랜드도 있어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하루종일 즐길 수 있다.[기시와다]-열광적인 『단 지리마쓰리(축제)』로 이름난 성시 기시와다의 심볼이다. 성의 1층과 2층은 기사와 다시립 향토 자료관이 되고 있다. 그리고 성의 주변에는 [단지리]회관이 있다.[시텐노시]-593년에 창건된 일본최고의 절이며, 여러번 소실과 재건이 되풀이 되었지만, 중후한 여러 건조물과 그들의 배치는 창건당시와 똑같은 모습을 현재도 간직하고 있다.[오사카성]-16세기말의 패자인 도요토미 히테요시가 만들었으며, 당시 장대한 규모를 자랑했다[OBP]-오사카 비즈니스파크로 높은 빌딩 숲을 연상한다.*교토천년 고도의 우아함이 숨쉬는 역사의 도시로 일본의 대표적 관광 도시이다.교토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공항도 없어 오사카에서 전차나 버스로 갈아 타야 한다.교토역 주변에는 [교토 타워], [히가시혼간지], [니시혼간지], [유곽 시마바라], [교왕호국사]가 있고 제일가는 비즈니스가 가와라마치 주변에는 와카시(일본식 과자) 가게, 고서점 등이 늘어서 있고 비교적 조용하며 도심의 산책코스이고 또 [교토 문화 박물관]이 있다.중심부 시조와 니조에는 서민적 분위기의 사찰 [미부데라], [니조성]이 있고 일본의 황궁 [교토고쇼], 서민에게 휴식처를 제공하는 [다다스노모리]가 있다.이 외에도 [교토 국립 박물관], [교토 도자기 회관], 메이지유신의 시신이 잠들어 있는 사적지가 많은 [고다이지], 고급 요리집과 다실 등이 많은 유흥가 [기온],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극장 [미나미자], [오카 자키 공원], [헤이안 신사], [은각사], [금각사], [교안지], 단풍잎이나 벚꽃 잎이 바람에 흩날리는 듯한 모습에서 이름지어진 [아라시야마 산] 등 역사적 유적지와 일본 정통 문화를 알 수 있는 곳이 많다.*고베고베는 오사카에서 전차로 30분정도 걸리며 세계에서도 유수한 항구와 아름답고 번화한 시가지, 그리고 삼림이 풍부한 롯코산을 함께 갖는 매력적인 도시이다. 항구를 중심으로 한 교통의 요충으로서 오래 전부터 번영해 왔다. 또한 시가지에는 옛날의 모습을 남긴 옛외국인 거주지나 난킨마치, 성 양식 저택이 밀집된 기타노등 이국정취가 넘치는 곳이 많다. 그리고 나다는 일본주의 본거장으로서 유명하다.[포트아이랜드]-유람선이 발착하는 포트터미널, 청소년과학관, 유원지, 스포츠센터, 국제회의장등 컨벤션시설도 있다.[나다의 일본주]-나다는 오랜 역사를 갖는 일본주의 본거장이다. 주조 자료관 등에서 옛날의 일본주 만들기의 모습을 소개하는것 외에 시음이나 쇼핑, 식사도 할 수 있다.[스마]-스마는 간사이 지방 유수의 해수욕장, 스마 해변 수족관이나 사적 등이 있는 스마데라도 인기가 높다.[아리마온천]-시가지에서 자동차로 30분거리에 있는 아리마온천은 일본최고의 온천으로서 유명하다. 철분을 많이 포함하며 아카유라고 불리는 킨센과 라디움이나 탄산을 포함 하는 무색투명한 긴센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