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예술과 순수예술의 정의에 대한 다각적인 접근‘통속성은 배격되어야하는가’에서 필자는 고급예술이란 순수예술을 지향하며 예술적 가치를 우선으로 삼는 창작활동이며 대중예술이란 통속적 가치를 목표로 삼는 활동이라 정의내리고 있다. 그러나 그 정의가 모호하여 글을 읽는데 혼란을 주고 있다. 특히 순수예술을 지향하는 창작활동을 고급예술이라 정의내리는것은 상대적으로 대립구도에 놓여있는 대중예술을 저급예술로 취급하는 듯한 느낌을 주며 실제로 글 중간에 ‘흔히 B급문화라고 불리는 대중예술’라는 표현은 대중예술가들을 폄하하는 글쓴이의 주관적인 시선을 마치 다수의 의견인양 드러내는 오류를 범한다. 또한 순수예술의 사전적정의가 ‘순수한 예술적 동기에 의하여 창조된 예술’ 인 것을 생각하면 과연 순수예술과 고급예술의 차이는 무엇인지도 모호하다.차라리 순수예술과 대중예술로 표현하는 것이 합당한 듯 하다.특히 대중예술과 순수예술의 차이에 상업성을 배제하는 대목에서는 의아함을 품게 되었다.본문을 읽으며 상업성의 개입시점이 순수예술과 대중예술을 가르는 기준점중 하나가 될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내가 생각하는 상업성 개입시점에 따른 순수예술과 대중예술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대중예술로 불리는것들, 가요,뮤지컬공연,만화 등은 작가의 창작단계에서 이미 상업성이 결부된다. 대중의 기호에 잘맞는 예술이라는 것은 곧 대중이 소비해야 존재할 수 있는 예술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뮤지컬의 경우에 작품성과 관계없이 특정 관객을 유치하기위해 스타플레이어를 기용하기도 하고 , 가수나 작곡가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보다는 음악챠트1위를 위해 후크송과 같은 트렌드에 맞는 음악들을 만들어내야한다. 일러스트레이터들은 주문받은 컨셉에 맞는 ‘팔리는’캐릭터를 주관과 관계없이 만들어내야하고 만화가들은 스토리가 진부하다, 주인공의 컨셉이 대중적이지 않다 는 이유로 원고를 편집자에게 퇴짜맞고 수정하기 일쑤다. 드라마의 대본도 시청자들의 성화에 죽기로 되어있던 주인공이 살아나기도 한다.순수예술에서는 상업성이 개입하는 것은 대개 작품이 완성된 다음이다. 순수예술을 만드는 예술가들은 혼자 자신의 예술성과 독대하며 작품을 만드는 경우가 많다. 그들 창작의 영역에는 자본이나 제3자의 의견등은 끼어들 공간이 없다. 베토벤은 혼자 하는 산책에서 곡의 레파토리를 구상하였으며 이때는 누가 와서 말을걸거나 심지어 부딪혀도 생각에 잠겨 알아채지 못했다고 한다. 유명한 ‘운명’또한 이러한 고독속에서 쓰여졌다. 작품을 쓸 당시 베토벤은 귀머거리가 되기 직전이었고 생활고에 시달리고있었지만 5년이나 걸려 운명 교향곡을 완성했다. 그리고 소설가 이외수는 ‘벽오금학도’를 쓰기위해 방에 창살을 달고 10년간 외출을 삼가며 칩거했다. 이와 같이 순수예술은 예술가의 예술가의 내면에서 창작되며 타인의 개입을 예술가 스스로 지양한다. 상업성의 개입은 이작품이 예술가의 손에서 완성된 이후에시작되고 , 작품을 보고 호감을 느낀 누군가에게 소비되기도 하고 때로는 잊혀지기도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