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ladimir Putin정치외교학과2000021566이설령● Black Box, 수수께끼의 인물, 러시아의 제 2대 대통령 Vladimir Putin소련 붕괴 후 러시아의 목표는 민주주의 및 시장경제로의 전환이였다. 그러나 체첸전쟁 등과 같은 소수민족 분리주의 운동, 지방정부에 대한 연방정부의 통제력 약화, 경제위기의 심화 및 이로 인한 군사력의 약화 등의 문제가 노출되면서 러시아가 과연 정상국가로 발전하면서 민주주의 및 시장경제를 정착시킬 수 있을 것인가라는 의문이 제기되어 왔다. 이런 난관 속에 2000년 푸틴이 러시아의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중요한 시기에 중책을 맡은 푸틴이지만 사실 그에 대해서 알려진 것은 거의 없다. 그 까닭은 정계에 입문한지 5개월 만에 대통령직무대행, 그리고 3개월도 안되어서 러시아대통령에 당선된 시간적 제약성에도 있겠고, 푸틴이 16년간 KGB라는 비밀기관에서 근무했던 까닭도 있겠다. 유년시절, 대학시절 그리고 KGB 근무시절의 경험이 개인의 Personality에 어떤 영향을 미쳤고 이런 사적동기가 공적영역에 어떻게 투영되어서 오늘날 푸틴의 Political Leadership이 형성됐는지를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알아보려고 한다.● 참혹한 전쟁에서 살아남은 부모님Putin의 조부는 레닌과 스탈린의 요리사였다. 스탈린 주변에서 살아남은 사람이 적다는 걸 고려하면 조부는 운이 좋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중국과 북한과 비교해볼 때, 푸틴은 공산당 출신도 아니면서 러시아대통령이 된 것을 생각해보면 개인의 능력이 뛰어나거나 소련붕괴 후에 무능하고 독재적인 공산당에 대한 혐오가 러시아에서 크다고 생각해볼 수 있다. 푸틴의 부모님은 참혹한 전쟁터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2차대전 중 참전한 아버지는 독일과의 전쟁 중 수차례 작전에 투입되어 기적적으로 생환했지만 포탄을 맞아 다리를 평생 절게 된다. 아버지의 참전으로 아이들을 홀로 돌보던 어머니는 독일의 레닌그라드 봉쇄작전 중에 기아로 의식을 잃고 이미 죽은 걸로 판단되어 시신들 옆에 눕혀졌으나 마침 의식이 돌아와서 내뱉은 신음소리를 사람들이 듣고 시체안치실에서 나올 수 있었다. 푸틴의 형은 그 기간동안 병에 걸려 죽게 되고 산산이 찢어진 가족이 만난 곳은 병원이였다. 아버지는 포탄에 맞아, 어머니는 영양실조로 같은 병원에 입원했던 것 이였다.독일과의 전쟁 중에 행해진 레닌그라드 봉쇄로 하루 2만 명씩 질병과 아사로 사망했던 아수라장 같은 시대 속에서, 그리고 그런 상황 속에서 죽음의 문턱에서 되돌아온 부모 밑에서 자란 푸틴이 느낀 점은 안정된 질서를 유지할 수 있는 강력한 국가와 배고픔을 채워줄 부유한 경제의 필요성이였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취임 후에 정권안정 속에 강력한 국가, 부유한 경제를 이루려는 푸틴의 시도와 맞아 떨어진다.● 징그럽고 끔찍스런 공통주택에서의 어린시절 그리고 세례전쟁이 종결된 후 푸틴은 편의시설도 없고 온수도 안나오고 욕실도 없는 좁고 끔찍스런 공통주택에서 살게 되었다. 좁은 공간에 여러 사람이 모여 살다보니 어린 푸틴은 이집 저집 돌아다니며 주변 거주인과 친하게 지냈다. 특히 이웃집 아냐 할머니와 친하게 지냈는데 그 할머니는 교회를 다니던 기독교신자였다. 이 할머니 덕분에 푸틴은 아버지와 공산당원, 공장의 당 기구 서기 몰래 세례와 기독교문화를 받을 수 있었다. 아버지에 대한 자세한 언급이 없지만 세례를 반대하고 이후에 푸틴의 초등학교 선생님의 증언 『댁에선 아이들한테 뽀뽀하거나 다정다감하게 대해 주지 않았습니다』을 보면 자상한 면모 없이 차갑게 일에만 매진하는 푸틴의 성향은 어느 정도 아버지로부터의 애정결핍에서 기인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푸틴이 기독교문화를 받았다는 것이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라는 이유로 무신론을 강요하는 공산사회에서 푸틴은 성경을 통하여 공산정권의 모순성과 허구성을 깨닫고, 또 가난한 이웃의 따뜻한 정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유도와 첩보원의 꿈, KGB에 가기 위해 법학부에 들어가다『나는 열 살 무렵부터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놀이터나 학교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단순히 호전적인 기질만으론 부족하다는 걸 깨달았죠』라는 푸틴의 증언을 보면 가정내력 그리고 시대상황에서 생겨난 힘과 현실을 추구하는 경향이 유도의 승부욕과 성취욕을 통해 더 강해진 것 같다. 대학시절 푸틴은 삼보챔피온을 지냈고 유도 세계 선수권자와 경기를 할 만큼 상당한 실력을 보유하게 된다.그리고 우연히 본 영화 를 통해 군대도 하지 못한 일을 첩보원 한사람이 해낸다는 것에 강한 인상을 받고 KGB의 꿈을 키우게 된다. 그리고 KGB를 찾아가서 그곳에서 일하는 아저씨에게 ‘KGB에서 일하려면 어떡해야하냐’는 질문에 다소 귀찮다는 듯이 ‘아무대학이나 나오면 돼’ 라는 말에, 그래도 유리한 과라도 알려주라는 푸틴의 말에 지나가는 말로 ‘법학부’라고 던진 것이 푸틴을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 법학부로 가게 만들었다.아이러니하게도 KGB에 들어가기 위한 수단이였던 법학부에서의 경험이 이후에 KGB의 폐쇄성과 공산당 정권의 허구를 깨닫게 하는 결과를 만들어 내게 된다. 일례를 들면 KGB시절 어떤 안(案)에 대해서 팀회의를 하던 중 푸틴이 그 위법성을 지적하여 취소를 건의하자, 상관이 ‘우리에겐 법보다 지령이 우선이다’라는 답변을 내놓았고 이에 푸틴은 KGB가 자신의 상상과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국가목표인 강력한 국가권력의 확립과 경제 재건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법적, 제도적 확립을 강조하는 모습을 보면 그가 법학 공부를 통해 법에 의한 지배와 준수를 중요한 요소로 인식했음을 알 수 있다.● 베를린 장벽의 붕괴로 느꼈던 소련연방의 무력함그러나 가장 직접적으로 KGB와 구소련연방에 대해 푸틴이 좌절감을 느낀 것은 동독 근무중 벌어진 베를린 장벽 붕괴사건시의 경험때문이다.
정보화의 정치경제-정보격차(Digital Divide)의 문제● 생산수단으로서 정보와 정보격차문제계급을 분석하는 틀로써 Marx의 생산수단과 생산관계를 빌려 살펴보면 중세는 토지를 생산수단으로 한 지주-농노의 계급관계였고 근대는 산업혁명을 통해서 자본이라는 새로운 생산수단이 등장하여 자본가와 노동자라는 새로운 계급변화가 일어나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정보(지식수준)의 접근성과 가공능력에 따라 부가가치의 생산이 달라지는 정보화시대로 도래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새로운 정보기술에 접근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간에 경제적?정치적 격차가 심화되는 정보격차(Digital Divide)의 문제가 논의되고 있다.그러나 내 생각으로는 자본이 중세 봉건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명확하고 급격한 계급변화를 야기시켰던 것처럼 정보가 기존의 사회계급을 혁신적으로 Mobility를 증가시키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정보를 효과적으로 가공할 능력을 보유하기 위해서는 정보기기구입비용, 교육, 시간적 여유가 필요한데, 이러한 조건들이 이미 경제적 여유를 가진 산업사회 내의 기득권계층에 이미 유리하게 조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보화시대의 희망적인 관찰자들은 정보화의 도래가 기존의 계급을 완화시킨다고 했지만 나는 오히려 기존 계급관계를 고착시킬 기제로 작용할 가능성이 많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보격차를 좁힐 수 있는 방법은 나중에 다루겠지만 Timing과 국가의 노력이라고 본다. 국가의 노력은 후술하고 Timing부터 다루자면 정보화의 초기에는 고급정보의 접근도와 가공능력이 선점여부가 계급간의 Mobility를 증가시키겠지만 이미 상당부분 정보화로 인한 비대칭적 역학관계가 구축된 다음에는 이동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정보의 양과 이용에 대한 기술, 지식은 누적적이기 때문이다.● 정보격차의 원인그렇다면 개인마다 정보격차를 발생시켜서 불평등한 관계를 형성하는 원인은 무엇일까? 첫 번째로 들 수 있는 것이 정보를 생산하는 사람과 소비하는 사람의 비대칭적인 관계이다. 광고주와 소비자의 예를 들면, 상품에 대해 모든 정보를 알고 있는 광고주는 목적인 판매를 위해 소비자에게 좋은 점만을 부각시키고, 소비자는 그것을 받아들일 뿐 자신에게 불리한 정보를 알 길이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두 번째로는 정보인프라문제이다. 컴퓨터나 초고속 인터넷처럼 물질적인 수준에 관한 문제인데 이런 정보인프라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일정수준의 자본이 필요한데, 경제적 수준 차에 의해서 접근의 용이도에 따라 정보격차가 발생하는 것이다.세 번째는 정보를 식별하고 가공해내는 능력, 즉 교육수준에서 차이가 나는 것이다. 인터넷에 수없이 떠돌아다니는 정보 중에 허위와 진실을 구분해내고 부의 창출과 연결시킬 수 있도록 가공해내는 능력은 교육수준에 달려있기 때문에 개인별로 차이를 보이고 이는 정보격차로 이어지게 된다.● 정보화가 정치에 미치는 영향정보화에 대한 낙관적인 시각은 전자민주주의와 연결되어 있다. 시간적, 거리적 장애를 극복해서 정치적 발전으로 이어진다는 주장이다. 이와 반대로는 정보를 먼저 선점한 권력이 조지오웰의 ‘big brother'나 '판옵티콘’처럼 정보조작을 통해 다수를 감시, 통제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기도 한다. 이 대립되는 논쟁 중심에는 보안과 안정성이라는 문제가 놓여져 있다. 기술적인 결함이나 조작의 위험성이 제거된 후에야 전자민주주의의 가능성이 열릴 것이다. 이런 것들을 논외로 하더라고 ‘인터넷을 통한 민주화가 가능한가?’라는 질문이 들었다. 인터넷의 발달은 쌍방향성의 의사소통을 통해서 집단적인 참여와 association이 많아지게 된다. 이는 Putnam이 말하는 Social Capital과도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Putnam은 association의 참여가 확장된 자아와 민주주의에 대한 교육기능을 하게 되어 민주주의에 이바지한다고 보았다. 이 논리를 인터넷의 의사표현과 소통에 연결지어 생각해보면, 인터넷을 통한 활발한 정보교환과 커뮤니티 등 association이 저절로 민주주의에 이루어지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한 문제에 대해서 활발하게 의사소통만 일어난다고 정치적 발전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다양한 표현 속에서 합의를 이루어내고 갈등을 조정해내는 개개인의 virtue나 시민의 문화적인 자질이 정보화를 낙관적인 전자민주주의로도 Big Brother로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정보화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정보가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중요한 기제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주식이나 산업스파이의 예를 보면 알 것이다. 특히 산업스파이의 경우를 보면 정보가 경제에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것 외에도 국가 간의 정치적인 문제를 야기시킬 수도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위치를 가진다. 그러나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현재의 상황이 정보화시대로의 진입에 있어서 과도기여서 일 수도 있지만, 산업사회에 있어서 생산수단으로서 자본이 갖는 위치에 비해 정보는 그 역할이 제한적이라고 말하고 싶다. 정보특화된 업종이 아니면 정보가 실질적으로 물질적인 성취로 연결에 결정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 직장생활을 하거나 농사를 짓거나 자영업을 하는데 정보를 가공하고 생산하는 능력이 그렇게 부가가치로 이어지고 의존하는 모습이 보여지지는 않는다.● 정보격차의 해소방법과 우리나라의 특징‘정보격차의 간격을 좁힐 수 있겠는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앞서 이야기한 정보격차를 생성하는 원인을 살펴봐야한다. 그것은 장비구입비용, 교육수준, 시간적 여유이다. 낙관론자들은 가전기기의 예를 들어 처음 출시된 제품의 가격은 비싸지만, 기술적인 발전과 대중화를 통한 대량생산이 단가를 낮추어서 제품의 확산을 가져온다고 한다. 그러나 문제점은 그 가전기기의 가격이 떨어지는 것은 새로운, 신기술의 제품이 나올 때라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보가 대중화되서 따라잡히기 전에 또 새로운 정보가 나타나고 그 신정보의 수용은 장비구입비용처럼 경제적인 지원과 누적된 정보의 이점을 향유하는 기득권층에 우선적으로 돌아감으로써 정보격차의 해소는 어려움을 가지게 된다.
侍女들(Las Meninas)1985년 예술가와 비평가들 사이에서 가장 위대한 작품으로 꼽혔고 현대 미술의 거장 피카소는 44번이나 모방작을 발표해서 특별한 경의를 표시한 작품 . 벨라스케스의 집단 실물 초상화로 마르가리타 공주와 주변 인물을 그린 사실주의 기법의 대표작품이다. 이 작품은 기교들의 어떤 교묘한 체계를 바탕으로 비밀과 매력을 양산하고 있다. 다음부터는 그림의 주요 표상을 바탕으로 그 것들을 벗겨내는 작업을 할 것이다.1. 화가그림의 좌편을 차지하고 있는 거대한 캔버스의 뒷면과 화가. 화가는 자기를 담고 있는 그림에 나타나는 동시에 그가 어떤 것을 표현하고 있는 그림에 한꺼번에 나타날 수 없다. 이러한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가시성의 문지방에 위에 화가가 서 있는 것이다. 화가는 얼굴을 약간 갸웃함으로써 비가시적인 한 지점을 응시하는데 그 곳은 다름 아닌 우리자신(감상자)로 이어진다. 이것은 2가지 의미에서 비가시적인데 하나는 그 광경이 그림의 공간 내에서 표현되지 않음이고 둘째는 엄밀히 말해서 사각지대이기 때문이다. 화가의 눈에서부터 그가 관찰하는 대상에 하나의 숙명적인 線이 생기는데 그것이 우리(감상자)를 그 그림의 표상으로 연결시키는 것이다. 화가가 관찰하는 공간은 중립적인 장소로서 응시자와 피응시자가 끊임없는 교환에 참여하여 감상자와 모델 상호간의 역할을 뒤바꾸는 전환이 일어난다. 여기에 있어서 캔버스는 이 시선들의 관계가 발견 될 수 있거나 결정적으로 확립되는 것을 방해하는 역할을 한다. 구도적인 측면에서 보면 화가의 시선은 (유일하게 가시적인 지점=화가의 눈) 비가시적인 장소인 모델과 캔버스의 비가시적인 표면과 삼각형을 이뤄서 이 그림을 규정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2. 오른쪽 창문에서 나오는 빛오른편의 문틀에서 나오는 빛은 겹쳐있지만 상호환원이 불가능한 두 개의 공간을 비추고 있다. 하나는 그림의 표면과 그 그림이 나타내고 있는 입체적 공간이고 다른 하나는 감상자가 자리잡고 있는 현실적 공간이다. 이 빛줄기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방을 통과하면서 감상자를 화가 쪽으로, 모델을 캔버스로 나르면서 그림에는 나타나지 않는 창문으로 표현의 공통된 장소로서 쓰이는 그 일광의 전 흐름을 자유롭게 하고 있다. 오른쪽에 감쳐진 비가시적인 창문을 통해 모든 표현을 가시적으로 만드는 빛의 순수한 입체적 공간이 흘러나오고, 왼쪽으로는 가시적인 표면이 다른 쪽으로 표현 내용을 은폐하는 표면이 전개되는 기묘한 장치가 쓰이고 있는 것이다.3. 방 뒤편에 걸린 그림화가는 방 뒤편에 일련의 그림을 걸어놓았다. 빛의 근원을 알 수 없는 캔버스 안쪽의 가장자리의 백색선이 캔버스 전면에 빛을 뿌려주고 있다. 오직 스스로에게만 속한 이 빛 속에서 우리와 인식 가능한 형상들이 단절되었던 공간에 대한 전망을 열어 준다. 원래는 나타내기 위하였지만 위치, 거리 때문에 볼 수 없게 된 이 그림만이 원래 보여주려했던 바를 우리에게 어둠에도 불구하고 성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유일하게 가시적이지만 어느 누구(그림 내의 인물 中)도 그것을 주시하고 있지 않다. 가시성 자체인 이 그림을 누구도 볼 수 없고 현실화 할 수도 없고 거기에 비친 광경의 익은 과실도 맛 볼 수도 없는 것이다.4. 거울방 뒤편에 걸린 그림에 대한 무관심은 “거울”에서도 똑같이 이루어지고 있다. 거울에 등을 돌리고 있는 화가도 방의 중앙에 있는 인물들도 반영하지 않는 형태를 보이면서 거울과 동일한 공간 속에 존재하는 것들을 전혀 반영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무가치하게 취급할 수 없는 것은 그림에서 갖는 거울의 구도적 위치에 있다. 거울은 거의 중심에 있다. 거울의 상단은 화가가 그리고 있는 캔버스의 꼭대기와 밑바닥의 정 중앙을 지나가고 있는 선을 가정할 때 그 선과 거의 일치하며, 또 거울은 맨 끝 벽의 중앙에서 오른쪽에 위치해 있다. 이렇게 보면 거울은 완전한 표상을 담고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림 자체 속에 표현된 것에 대해서는 아무말도 하지 않은 체 외부 표면을 구성하는 필연적인 비가시적인 영역에로 진입하여 그 공간에 배치된 인물들을 파악하게 된다. 그럼으로써 모두의 시선 밖에 존재하는 것에 대해 가시성을 회복해 준다. 만일 그림이 앞으로 더 연장되어서 그 밑바닥이, 화가가 모델로 사용하고 있는 인물을 모두 포함할 정도로 낮아진다면 감상자가 볼 수 있는 것을 반영해 주는 것이다. 이것이 이 그림의 비밀을 푸는 가장 큰 열쇠이면서 이중적으로 비가시적인 부분을 캔버스의 중심에서 우리로 하여금 볼 수 있게 해주는 부분이다.5. 출입구에 선 남자출입구가 바깥쪽으로 움푹 패여 있고 조각된 문과 드리워진 커튼과 여러 계단의 음영으로 강조되어서 황금빛 밝음보다는 어둠 속에서 빛이 자기 주위를 맴돌면서 스스로의 평온을 찾고 있는 형태로 용해되고 있다. 거울과 마찬가지로 그이 눈도 장면의 안쪽을 향해 있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의 관심을 가지지 못한다. 그 역시 거울을 통해 지각되는 이마쥬들처럼 명백하지만 볼 수 없는 공간으로부터 온 사자(死者)일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차이가 존재하는데 그는 살과 피로 존재하며, 외부로부터 나타나서 표상영역의 경계에 서 있으며, 다른 의미로는 개별적인 반영이 아닌 직접적인 돌입이기 때문에 확실하다. 희미하고 축소된 거울상들은 현관에 나타난 남자의 크고 건장한 모습에 의해 도전 받게 된다.6. 공주와 그 주변 인물들그림의 중앙에는 회색과 장밋빛의 넓은 치마를 입은 공주가 있다. 그녀의 시선은 아마도 전면에 있는 감상자에게 향한다. 그림전체를 둘로 나누는 중앙선은 공주의 두 눈 사이를 지나고 그녀의 얼굴은 그림의 전 높이의 1/3지점에 있다. 이러한 구성에 중심 테마가 있음을 의심할 바 없으며 이 주제야말로 이 그림의 목적이다. 물론 이 주제를 증명하고 강조하기 위해 벨라스케즈는 중심 인물 곁에 무릎 끓고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제 2의 인물을 설정하는 전통적인 수법을 사용한다. 오른쪽의 또 다른 시녀는 고개를 약간 숙여 공주가 응시하는 곳을 바라보고 있다. 그 주변에는 난장이로 구성된 한패와 뒤쪽에는 두 宮臣이 있다. 이러한 식으로 배열된 8명의 인물은 우리가 이 그림을 보는 방식에 따라 두 개의 도형으로 구성될 수 있다. 하나는 X자형으로 왼쪽 꼭대기에는 화가의 눈, 오른쪽 꼭대기에는 남자 宮臣의 눈이 있으며, 왼쪽 구석의 바닥에는 캔버스의 모퉁이 오른쪽 구석에는 난장이가 있다. 그리고 이 X의 교차선에 공주의 눈이 존재함으로써 포커스가 맞춰지는 것이다. 두 번째 도형은 넓은 폭의 곡선으로 되어 있는데, 그 왼쪽 끝에는 화가가, 그 오른쪽 끝에는 남자 宮臣이 있다. 이 양 극점은 그림의 꼭대기와 바닥에도 설정할 수 있다. 그 곡선은 공주의 얼굴과 일치하며 공주의 시녀가 공주를 바라보고 있는 시선과도 일치한다. 이러한 두 개의 중심점이 존재하고 그림은 그 점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데 그 중심에는 공주가 존재하는 것이다.수직으로 보면 두 개의 선이 존재하는데 하나는 거울로부터 나온 선으로 표상된 깊이 전체를 관통한다. 다른 한 선은 공주의 눈으로부터 나온 짧은 선인데 단지 앞쪽만을 지나간다. 이 두 개의 화살표 모양의 선은 매우 좁은 예각을 이루면서 양자가 만나는 점으로 수렴하게 되는데 수렴점은 채색된 그림을 벗어나 그림보다 앞쪽에서 이뤄지면서 그림의 포커스가 회화 그 자체보다는 숨겨진 비밀에 집착하게 만드는 것이다. 사실 그 점은 불분명한 점이다. 우리는 그것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또 한편으론 불가피할 뿐 아니라 완전히 정의된 점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두 개의 중심적인 형상에 의해 결정되며 다른 점선들에 의해 확인되기 때문인데, 이 점선들은 그림 내에 그 연원을 가지는 동시에 그림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 왜 아이는 돌을 메달았을까?아이는 물고기와 개구리 뱀에게 돌을 메달고 동물들이 행동의 제약으로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 깔깔 웃는다. 단순히 호기심으로 메달았을 수도 있지만 아이의 웃음은 동물들의 고통이 즐기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 장면을 보고 나는 인간은 순자의 주장처럼 이기적이고 본래 탐욕적이여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이 문제는 인간이 왜 죄를 범하고 악행(惡行)을 되풀이하는지와 연관시킬 수 있다. Platon의 견해처럼 ‘억견의 세계(doxa)'이기 때문에 Idea를 기억해내지 못해서 그럴 수도 있고 정신심리학자 융(Jung. Gustav)에 따르면 사람에겐 그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원시적이고 야만적인 그림자가 존재해서 그럴 수도 있다. 프로이드(Freud)처럼 ego가 id를 적절히 통제하지 못해서 생겨난 누수현상일 수도 있다. 그러나 스님이 아이에게 돌을 메달아 불편함을 인식시키고 자신의 유희적인 행동이 생명을 앗아간 것을 알고 울음을 터트린다. 이 과정 속에 있는 깨달음에 도달하는 기제는 나중에 이야기하기로 하고 일단 아이의 울음을 보면 아이의 악행(돌을 메단 것)은 知(앎)의 결핍으로 생각된다. 자신의 행동이 야기시킨 결과의 심각성을 알자 아이는 깨닫고 울음을 터트리게 되는 것이다. 마치 소크라테스의 견해처럼 不知가 악행의 근원이고 知가 앎의 출발인 것이다.● 영원하지 못해서 고통스럽다청소년이 된 아이는 또래의 여자를 만나 사랑을 느끼고 섹스를 하게 된다. 어찌보면 사랑보다는 섹스라는 본능적인 욕망에 집착하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육체적인 쾌락 때문에 아이는 파계를 하고 속세로 나가게 된다. “네가 좋으면 남이 좋은 지 왜 모르느냐? 사랑이 영원할 줄 알았더냐?”라는 노스님의 말에서처럼 현실의 세계는 변화하는 세계, 거짓의 가능성이 농후한 세계이다. 또 감각적 경험적인 지각은 순간적이기 때문에 절대적 보편적인 진리에 이르기 위해서는 육체와 감각을 죽여야 한다는 플라톤의 주장처럼 영원하지 못해서, Idea가 아니기 때문에 고통스러웠던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주목할 만한 것은 노스님은 감각적인 쾌락이 영원하지 않고 고통의 근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아이가 속세로 가는 것을 막지도 그 당시에 깨달음을 주지도 않고 자연스럽게 거부할 수 없는 업보처럼 방치하는 점이다. 이 부분은 마지막에 다루기로 하겠다. 실제로 선배나 부모의 충고가 옳음에도 불구하고 선뜻 받아들이지 않고 행한 후에는 이미 늦어서 후회하는 현상은 깨달음의 어려움과 피할 수 없는 숙명론이 이 영화의 전반을 지배한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또 한 가지 드는 생각은 영원하지 못해서 고통스럽다면 거짓의 쾌락이라도 영원하다면 행복할 것이고 그것은 또 진리로 새로 자리메김 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스님의 閉와 청년의 閉의 차이점속세에 내려가서 소녀와 결혼까지 한 청년은 아내가 불륜을 저지르자 분노와 질투에 아내를 죽이고 스님이 있는 곳으로 도피를 온다. 선악과를 따먹고서(욕망에 대한 절제 실패) 에덴동산에서 쫒겨 난 아담처럼 세속의 번뇌를 해결하기 위해 다시 성스러운 장소(절)로 오는 종교적인 과정처럼 느껴졌다. 청년에 분노와 고통에 참지 못하여 눈과 귀를 막고 자살을 시도하자 노스님의 매질으로 호통을 치고 나무 바닥에 반야심경을 세기는 일을 시킨다. 이 작업을 통해 어느 정도 마음의 안정을 회복한 청년은 경찰서에 가게 되고 노스님은 청년이 했던 것처럼 눈과 귀를 閉하고 조용한 다비식을 거행한다. 동일한 閉하는 의식을 대비시켜보여준 연출자의 의도는 모르겠지만 나름대로 느낀 바를 하이데거(Heidegger)의 견해를 인용해서 해석해보려고 한다.청년은 자신이 선택하지도 만들지도 못하는 세상에 툭 던져진 피투성(被投性)의 존재로써 불안, 두려움, 허무감에서 도망치려는 의도에서 죽음을 선택하려고 했던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노스님은 죽음에 대한 선구적 각오성(플라톤의 의미에서 보면 Idea)을 바탕으로 더 이상 죽음에 얽메이지 않고 스스로 자신의 존재, 진정한 의미를 재획득한 후에 자신을 세계로 다시 던지는 기투성(企投性)의 선택이란 생각이 들었다.● Apatheia(내면의 평화로움)에 이르기까지출소를 마치고 나온 청년은 이제 노스님이 된다. 잔잔한 영상이 보여주는 새로운 노스님은 정념이 없는 부동심의 상태, 즉 정신의 의연함을 보여주고 있다. 플라톤적 의미로 말하면 이제 스님은 진리(aletheia)를 상기해 낸 것이다. 이제 그 방법에 주목해 보려고 한다. 이미 인간 정신에 내재해 있던 진리를 스님은 어떻게 재기억해냈을까?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에서처럼 스님은 idea의 모상, 그 그림자를 쫒다가 고통을 수반하는 혼란 속에서 먼저 깨달은 노스님의 도움으로 동굴을 벗어나 참된 진리의 세계로 접어들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노스님은 플라톤이 생각하는 철학자와 같이 먼저 idea의 세계를 보고 동굴에 있는 죄수들을 구하기 위해 다시 돌아간 철학의 의무를 행하는 사람인 것이다. 노스님의 도움으로 이상의 세계에 근접한 스님은 이제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숙명론 -깨달음을 얻는 데 시행착오는 필수적인가?혼자 절에서 수행하던 스님에게 얼굴을 가린 여인이 아이를 맡기러 온다. 얼굴을 가린 여인의 정체가 궁금했는데 밤에 아이를 두고 돌아가다 스님이 세수하려고 파놓은 구멍에 실족사하여 죽게 된다. 그 얼굴을 확인한 후 스님의 묘한 표정을 보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자신의 딸인 것 같다(자기 아내와 닮은 얼굴로 확인했을 가능성이 있다). 업보를 강조하는 불교적 사상 때문인 것 같다. 수 년이 지난 후 여인이 맡기고 간 아이는 처음 시작하는 봄에 등장하는 어린 스님의 모습과 정확히 일치하게 연출되고 있다. 돌을 메다는 대신 돌을 먹이는 것만 달라질 뿐 동물의 고통스러움에 깔깔 웃는 모습은 여전하다. 이것을 지켜본 스님은 또 다시 큰 돌을 자신의 몸에 메단 체 불상을 들고 산에 오르는 수행을 하는 걸로 이 영화는 마감을 한다.
영화의 전체적인 내용은 불을 가지고 사는 종족이 다른 종족의 침입을 받는 혼란 도중 실수로 불씨를 꺼트리자 종족의 전사 3명이 불을 찾아서 나서고 그 여행 도중에 겪는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엮은 원시판 로드무비이다. 시청 중에 느낀 언뜻 언뜻 스쳐나가는 생각과 의구심을 연장시켜보려는 노력을 짧은 글로 담아내겠다.● 불이 갖는 의미불이 있을 때와 없을 때의 대조적인 모습을 통해서 원시인에게 불이 가지는 의미를 구체화시키고 있다. 불이 있을 때는 편안하고 따뜻하게 먹고 쉴 수가 있었고 맹수의 존재는 위협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불을 잃어버리자 춥고 두려움에 떨고 피 흘리며 도망가는 사람들은 이리, 늑대의 먹이가 된다. 이 시대의 불은 오늘날에 생각되는 불이 아닌 것이다. 고대노예제 사회에서의 노예, 중세봉건사회에서의 토지,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자본처럼 권력관계를 결정짓고 사회구조를 형성시키는 매체인 것이다. 오늘날 같은 정보혁명사회에서는 지식정보를 가졌느냐 그렇지 못했느냐가 사회적 지위와 부를 결정짓는 것처럼 불 또한 그러했다. 그리고 그러한 희소자원에 대해서는 가지지 못한 자에게는 약탈의 동기를 제공한다.● 불이 가져다준 문명의 모습에 관해서불을 찾아 떠난 3명의 전사는 맹수의 위협을 피해 나무 위로 올라가서 오랜 시간 피해있는 장면이 있다. 이 부분은 인간의 본성과 문명의 의미를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맹수를 피하기 위해서 자기 동료를 밟고 올라가는 모습과 제한되어 있는 식량(새알)을 두고 다투는 모습(자기가 못 먹더라도 동료가 못 먹게 깨부수는 모습)은 Hobbes가 가정한 자연 상태(States of nature)이고 인간은 자기생존을 위해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벌이는 존재이다. 이런 상태에서 인간은 인간의 법칙이 아닌 자연의 법칙(적자생존, 약육강식)을 적용받게 된다. 그러한 인간의 이기적인 본성을 아닌 척하게 만드는 것이 문명이고 인간을 여타 다른 동물과 구별 짓게 만들어 주는 것이 또한 문명이다. 흔히 인간 이성에 대한 신화적 신뢰나 인간 종족 우월주의보다는 마르크스의 유물론적 시각이 더 적합한 장면이다. 물질적인 하부구조에 의해서 상부구조가 결정된다는 마르크스의 견해처럼 먹고 살만해야(=자기생존이 충족되야) 관념, 진리, 정의 등의 상부구조가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지금도 극한 상황에 닥치면 인간은 자기 생존을 위한 동물적인 모습을 보이고 사회, 문화, 교육 등은 그런 모습의 유출을 막는 인간의 제도적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Totemism의 기원을 찾아서불을 탈취한 3명의 전사는 식인종족에게 완전히 포위당한 체 위협을 느끼던 급박한 순간에 코끼리떼의 도움을 통해서 위기를 돌파하게 된다. 이러한 구성에도 흥미를 느꼈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코끼리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풀을 바치는 인간의 모습이였다. 그리고 코끼리의 모습은 인간의 제물을 허락하는 절대자의 그것이였다. 아마 이러한 경험들이 토테미즘을 형성하지 않았나한다. 경외의 대상인 코끼리를 숭배하고 그 동물을 집단적인 상징으로 여겨서 잡아먹는 것을 금지하는 원시형태의 종교가 이런 이유로 발생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의 불 획득에 조력한 코끼리는 이후의 모습을 예측해보자면 그 불 때문에 인간의 지배에 들어가게 된다. 두려움과 압도적인 힘의 대상이였던 자연이 인간이 만든 문명(=불)에 의해 극복되자 종교 역시 그 대상을 바꾸게 된다. 자연현상과 동물에 대한 경외에서 인간사회의 통치를 위해서 사회적 善에 가치를 부여하고 현재에 이르러서는 개인의 안녕(安寧)에 봉사하게 된 것이다.● 男과 女의 평등함은 인간이 만들어가는 것이다.인간은 본래 평등하게 태어나지 않았다. 신체적인 능력과 지능 모든 면에서 그러하다. 그러함에도 사람들이 위의 전제에 동의하는 것은 지식체계의 놀라운 반복작용이 진리라고 믿게 만들었으며 그러한 바램이 부추긴 것이 사실이다. 영화 속에 나타나는 남녀의 모습 또한 오늘날의 모습과는 많이 다르다. 여자는 남자가 성적욕구를 느끼면 자기 의사와는 상관없이 몸을 허락해야했고 아이 또한 사랑의 결실이 아닌 종족의 보존을 위해서 외부에서 데려온 남자를 통해서 기계적으로 생산해내야 했다. 그 당시의 남녀관계는 그 시대의 권력관계가 그대로 담겨있는 것이다. 사냥 능력에 적합하지 못한 신체(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한) 때문에 사회권력 관계에서 밀려난 것이다.데리다(Derrida)의 견해처럼 세계는 텍스트로 봐야한다.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사회현실과 논리구조를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해석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여자는 당연히 종속적인 것이 아니라 어떠한 사회구조가 그렇게 만들었는지 해체해서 이중적인 독해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것이 더 세계의 진실한 면모를 파악할 수 있는 수단인 것이고 반대로 말하면 오늘날 양성평등,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는 전제 속에 또 다른 흐름이 숨어있고 어떠한 가치 속에서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푸코(Foucault)의 말을 빌어 설명하면 당연시하는 진리는 없고 진리는 지식-권력관계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계보학적 접근을 통해보면 권력이 자신에 입맛에 맞는 지식을 만들어 지배적 동의를 이끌어내고 지식인 그에 봉사하는 것이다. 가부장제, 남성 우월주의, 인간종족우월주의 같이 당연시된다고 생각되는 이념들은 사회적 배경의 외부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의 일부로 존재하는 것이고 권력관계가 바뀌면 그러한 지식들도 바뀌게 되는 것이다.또 하나 주목하게 만든 것은 비오는 날의 원시인의 정사(情事)였다. 그전까지 영화에서 보여주는 성행위의 체위는 후배위였다. 이것은 여타의 동물들과 다름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장면에서의 체위는 정상위였다. 동물적인 쾌감이 기본적인 것은 변함이 없지만 정상위는 상대의 얼굴 표정을 읽을 수 있고 눈을 바라보면서 대화가 가능한 보다 인간적인 체위다. 이 장면은 동물적인 인류에서 문명인으로 진화하는 발전적인 모습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