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O학기과 목 명 : OOOO과 제 명 :「바다와 독약」독후감지도교수 : OOO 교수님바다와 독약(海と毒藥)-일본인의 종교성과 죄의식의 부재-제출일 : OO년 5월 O일소 속 : OOOO학 번 : OOOOOOO이 름 : OOO책에 대한 정보를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로 본 책의 제목은 나에게 내용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에 충분했다. 고등학교 때 줄줄 외웠던 김기림 시인의 「바다와 나비」와 유사한 제목도 그랬고, 바다 그리고 독약의 알싸하고도 어울리지 않는 관계가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의미하고 있는 것인지, 이러저러하게 많은 생각을 했다. 그 많은 생각과 질문의 대답은 작품을 정독하면 나올 것이기에 나는 책을 집어 들었다.일본의 대표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 수상 경력을 가진, 노벨문학상 후보로 여러 번 거론된 엔도 슈사쿠(遠藤周作)의 대표작 중 하나인 「바다와 독약」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규슈대학 의학부에서 실제 행해진 미군포로 생체해부실험 사건을 그 배경으로 하고 있다.첫 부분은 화자인 ‘나’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나’는 임신한 아내를 둔 가장이며 결핵 치료를 받고 있고, 도쿄의 변두리인 니시마츠바라 주택가로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는다. 원래 결핵 치료를 받던 병원을 너무 멀어 찾아가게 된 동네의 ‘스구로 의원’. 거기서 만난 의사 스구로는 왠지 인상이 차갑고, 얼굴색이 검푸르며 F시의 사투리를 구사하고 있었다. 변두리 의원의 의사라고는 믿기지 않는 숙달된 치료 솜씨를 가졌지만 ‘나’는 그러한 실력에도 불구하고 치료 때마다 무언가 불안감을 지울 수 없다. 그러던 와중에 처제의 결혼식 때문에 우연히 가게 된 F시에서 ‘나’는 스구로의 숨겨진 과거를 알게 된다.스구로의 과거로 거슬러 내려간 이야기는 스구로가 연구생으로 있단 F시의 병원을 그 배경으로 하고 있다. 무덤덤한 도다에 비해 유약하다면 그러한 스구로의 성격대비를 드러내 주고 있다. 이 부분에서 나온 다베부인과 무료 환자의 사건을 통해 등장인물들의 기본 성격을 잘 드러내고 있다. 또한 생체실험이 시작되기 전까지의 등장인물들의 상황들을 말해준다. 아사이조교수의 교활함 이라든가, 도다의 무심함, 그리고 스구로의 갈등. 하지만 내가 생각할 때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수술을 들어가기 전에 도다와 스구로가 나누었던 이야기로 생각된다.“신은 정말 있을까?”“신?”“뭐라 할까? …이상한 이야기로 들리겄지만, 인간은 자신을 억압하는 것으로부터, 운명이라는 것으로부터 도저히 벗어날 수 없겠지. 그런 것으로부터 해방시켜 주는 것을 신이라고 한다면 말이시”“글쎄…, 나로서는 모르겄네.”“나로서는 이제 신이 있든 없든, 상관 없어.”이 소설에서 종교성을 띤 부분은 표면적으로 이 부분이 전부이다. 이 이야기를 하며 스구로는 더 이상 신을 두려워하지 않고, 신을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죄악을 실행하려 한다. 어떻게 보면 스구로는 우리 평범한 인간상의 표현이라고도 할 수 있다. 갈등하고 고민하다 결국엔 죄악에 동참하는 스구로. 그의 결심을 뒤로하고 작품은 또 다른 방향으로 내달린다.사건의 또 다른 참여자였던 간호사 우에다, 그녀의 수기를 통해서 그녀가 이 일에 참여를 결심한 까닭, 그리고 그녀가 선망과 증오가 뒤섞인 시선을 보내는 힐다를 향한 생각들. 그리고 그 실험에 참여하기까지의 그녀의 행보를 그린다.그 다음 차례는 스구로의 친구 도다 츠요시의 수기이다. 자신이 자라며 저질러온 수많은 죄들을 죄의식을 느끼지 못한 채로 하나하나 이야기해 나간다. 오사카에서 의과대 우등생으로 자라며 겪었던 일들과 심리, 그리고 그의 자아가 그의 입을 통해 드러난다. 실험 참가 제의를 받고 도다가 생각했던 것은 신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양심이 아니라, 사회의 벌일 뿐이라는 것이었다,실험은 시작되지만 결국 스구로는 적극적으로 앞에 나서지 못한 채 뒤에서 가만히 바라보기만 한다. 실험을 하는 것은 사람을 죽이는 것, 즉 죄라는 것을 알지만 그것을 저지할 의지 따위는 없는 것, 그것이 스구로의 모습이었다. 이 소설에서 죄의식을 가진 단 하나의 인간이 바로 스구로이다. 그는 실험을 바라보다 주저앉는다. 실험을 참관하던 장교들 중 여러병은 수술 장면에 적응하지 못한 채 눈을 피하지만, 장교들 중의 악의 결정체는 실험대상인 포로의 간을 은밀히 부탁하는 잔인함을 보인다. 또한 중국 포로의 쓸개를 먹었다는 것을 자랑삼아 떠들어대는 인간성 부재의 장교도 있다.이러한 인간상을 통해 나타난 죄의식 부재는 그들이 어떠한 연유로 이렇게 되었는가에 대한 의문을 품게 한다. 이 물음에 대해 작자인 엔도 슈사쿠는 아래와 같이 말했다.“나는 다른 나라에서 태어나지 않고, 기독교의 전통도 문화도 역사도 전혀 없는 일본에서 태어났습니다. 신(唯一神)을 필요로 하지 않는 일본인은 죄의식에 대해서도 기독교와 상반되는 감각을 지니고 있습니다. 나는 일본인에게 죄의식이 없다고는 결코 단정하지 않지만, 죄에 대한 반응은 기독교를 믿고 있는 서구인과 우리 일본인과는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무언가 이러한 코멘트를 읽고 나서 내가 떠올린 생각은, ‘아. 그래서 일본인들이 우리에게 과거사와 독도를 가지고 노는 것에 대해 거리낌이 없는 것이군.’ 이었다. 틀린 생각인 것 같긴 하지만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역시 국가의 문제였다.이 소설을 끝까지 다 읽고 나서 보니 앞에서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던 요소들이 다시 새롭게 보이기도 했다. 주유소 주인의 전쟁터에서 싸움깨나 했다는 자랑도 작가가 일본인의 성향을 내보이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한 것이라는 것도 다 보고 나서야 알았다.하지만 나에게 가장 깊게 남은 장면은 스구로가 양장점의 서양남자 마네킨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장면이었다. 작가는 그 부분에 어떤 코멘트도 없었지만 아마도 그 때 스구로는 자신의 앞에서 죽어간 미군 포로들을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 다음으로 마음이 동(動)했던 부분은 ‘나’가 스구로의 진실을 알고 나서 치료를 받을 때 무한한 두려움에 “마취해 주세요.”라고 외쳤던 때이다. 읽을 때 스구로의 표정이 상상되었다.스구로는 그 때 무슨 생각을 했던 것일까. 그 과거에 사건에 대한 질긴 죄책감, 아니면 자신의 과거를 들킨 것에 대한 창피함일까. 그가 했던 말의 의미는 무엇으로 받아들여야 하나, 또 다시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어쩔 수 없었어요, 그때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자신이 없어요. 앞으로도 같은 상황에
2005년 1학기과목명 : 언론과 사회자 기 소 개 서소속: ○○대학교 행정학과학번: 00000000mmmmm..이름: ○○○.dd...............d1. 나의 출생과 배경저는 ○○○도 ○○군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살던 작은 농가에서 한산 이씨 ○○○파 31대손으로 태어났습니다. 태어난 지 백일이 조금 넘었을 때 서울로 이사와서 시골의 생활은 겪어보지 못했지만 태어난 곳이라 그런지 지금 가도 왠지 모를 편안함이 느껴집니다.저는 2녀 중 막내로 어머니 아버지와 4명이서 살고 있습니다. 저희 가족은 다른 집보다 유대가 깊고 대화가 많아, 집에 오면 밖에서 안 좋은 일이 있었더라도 마음을 연 대화를 할 수 있기에 답답한 마음이 금새 풀어집니다. 이렇게 든든한 가족이 제 곁에 있기에 저는 어떤 어려움도 다 이겨낼 수 있습니다.2. 나의 학창시절저는 초등학교는 서울에서 다녔고 중.고교는 경기도의 신도시에서 다녔습니다. 초등학생 시절의 저를 선생님들께서는 ‘호기심이 많고 사고력이 풍부하나 주의가 산만함’ 이라고 말씀해 주셨지만 제가 기억하는 초등생 시절의 저는 소극적이고 자기만의 세상에 살았던 것 같습니다.하지만 신도시로 이사를 하면서 저는 나름대로 저의 전환점을 찾게 되어, 친구들에게 마음을 열었고 중학교 때 부터는 학급 임원도 여러 번 하며 저의 능력(리더십, 추진력 등)을 키워 나가게 되었습니다.저는 초. 중학교 때 성적이 그리 좋지 못했지만, 부모님께 공부 좀 하라는 꾸중을 들은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무엇이든지 제가 깨달아야 한다는 부모님의 교육방식 때문이었는데, 저는 ‘공부를 해야한다’는 것을 고2 때 늦게나마 깨달아 늦게나마 대학의 꿈과 공무원의 꿈을 키우며 내신과 수능에 힘썼고 그 결과 2004년 당당히 ○○대학교 행정학과의 학생이 되었습니다.3. 미래를 위한 노력저는 전공 외에 어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영어와 일본어를 하는데, 공부라는 생각보다는 즐기는 기분으로 하고 있습니다. 영어는 글로벌 시대의 공통어이기 때문에 1학년 때부터 학교의 강의와 더불어 열심히 하고 있으며, 일본어는 교양과목으로 처음 접한 후, 일본어와 함께 일본의 문화에 흥미를 느껴서 계속 심화하여 공부하고 있습니다. 일어회화실력을 높이기 위해 일본인 친구과 만나고, 음성채팅도 자주 합니다. 기회가 된다면 저희 학교가 교류하고 있는 일본 요코하마의 오비린 대학으로 교환 유학을 하고 싶습니다. 사실 2학년 때의 최종 목표가 이것이기에, 시간이 날 때마다 일본어 공부를 하는 편입니다.저는 무엇이라도 확실히 하면 그것이 후에 저의 가치를 올려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무엇이라도 중간에 포기하지 않습니다. 또한 저는 주말 아르바이트를 하여 학비를 제외하고 제가 필요한 돈은 모드 제가 벌어 쓰는 편입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부모님께 손벌리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저의 근성입니다.4. 나의 장래대학 졸업 후 저의 최종 목표는 5급 공무원입니다. 어렵게 보이지만, 등산하시는 분들이 말씀하시는 ‘험한 산일수록 정복할 맛이 난다’ 라는 말처럼 어려울수록 더 열심히 하게 되니까, 목표를 높게 세운 만큼 준비하고 노력해 행정고시를 꼭 정복할 것입니다. 지망 부처는 흔히 행정의 꽃이라고 말하는 ‘재정경제부’입니다.
I. 들어가며...일본 대중문화를 떠올려 보면 빼놓을 수 없는 컨텐츠들이 있다. 애니메이션, J-pop , 게임 , 스타들을 연상하게 된다. 이러한 컨텐츠들은 공식적으로 일본문화가 개방되면서 TV와 인터넷등을 이용해 언제 어디서나 쉽게 할 수 있다. 일본의 대중문화 속에서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들을 상당히 확인할 수 있다. 그 중 인상적인 모습은 10년 가까이 아이돌 스타가 변함없이 가요계에서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연예인들 중 가수의 인기가 10년 가까이 이어가는 것은 근래에 보기 드문 현상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10년의 인기가 아닌 가수의 수명을 10년 가까이 이어간다는 것 마저 무리이다. 이처럼 일본에서 아이돌스타로서 군림하고 있는 그룹은 [모닝구 무스메]이다. 우리나라에서도 J-pop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알고 있는 그룹들이다. 우리나라의 대중문화 속에서는 일어나지 않는 이러한 현상이 일본에서는 가능한 것인지 의문이 생기게 된다. 또한 그러한 의문을 풀어가다보면 자연스럽게 지금의 일본 대중문화의 모습을 확인 할 수 있고, 우리나라에 대한 영향력도 알아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조는 [모닝구 무스메]라는 그룹을 소개하고 그들이 지금까지 가요계에 활동할 수 있는 이유에 대하여 알아보기로 결정하였다.먼저, [모닝구 무스메] 그룹에 대하여 알아 본 뒤 그들이 아이돌스타라는 명목아래 가요계에서 장수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서 살펴보겠다.II. 모닝구 무스메1. 모닝구 무스메의 탄생모닝구무스메의 역사는 97년 ASAYAN으로 올라간다. ASAYAN은 도쿄TV의 프로그램으로, 90년대 초에는 판매가 부진한 가게를 성공시키는 '신장개업'과 유사한 프로그램을 방영했고, 이후에는 오디션 위주의 프로그램으로 변화했다.예전에 한국의 모 방송사에서 공개 오디션을 열고, 멤버들을 뽑는 과정, 선발된 멤버들이 훈련 받는 과정을 방송하고 그들에게 일정기간 동안 가요프로 몇 위 안에 들지 못하면 해체하겠다는 미션을 주어 주목을 끌었던 적이구로서는 7번째 싱글이기도 한 이 싱글은 역대 모닝구 싱글 사상 최다판매기록인 164만장의 음반판매를 기록하며, 모닝구무스메를 최고의 아이돌 스타로 급부상하게 만들었다.최대 히트싱글, 7th LOVEマシ-ン-오른쪽 상단 이시구로부터 지그재그로사야카, 유코, 고토, 케이,낫치순으로졸업해서 '러브머신법칙'이란 말도생겨났다.8th 戀のダンスサイト이시구로 아야의 졸업(2000.1.5)이후 첫 번째 싱글.2000년 1월 26일 발매되어, 122만장 판매, 최고순위 2위.7번째 싱글 러브머신에 이어 밀리언셀러를 기록했다.경쾌하고 흥겨운 곡이다.9th ハピ-サマ-ウェディング3차추가(4기추가)멤버인 요시자와히토미, 이시카와리카,카고아이 쯔지노조미가 영입된 이후의 첫 번째 싱글이며.'하피사마 웨딩구(Happy summer wedding)'라고 부른다.2000. 5. 17에 발매되어 99만장이 팔렸다.고토마키가 영입된 러브머신이후, 연이은 싱글자켓마다고토마키가 중앙에 위치한 것이 이채롭다.★★ 3차 추가(4기) 멤버쯔지 노조미 카고 아이 요시자와 히토미 이시카와 리카11th 戀愛レボリュ-ション21戀愛レボリュ-ション21원년부터 모닝구무스메를 이끌었던나카자와 유코의 마지막 싱글.영어로는 'Love revolution21'이며2000. 12. 13에 발매, 98만6000장이 판매된 싱글.러브머신, 쟈피스 등과 함께 모닝구무스메의대표적인 히트곡이다.12th ザ☆ピ~スザ☆ピ~ス쟈피스(The peace). 해군복장으로 화장실 배경으로 찍은 뮤직비디오가 인상적인 싱글.2001년 7월 25일 발매되어 68만장 판매,최고순위 1위를 차지했다.13th Mr.MoonlightMr.Moonlight~愛のビッグバンド4차추가(5기)멤버인 다카하시 아이, 콘노 아사미, 오가와 마코토, 니이가키 리사가 참가한 첫 번째 싱글. 또한, 아베나츠미, 요시자와히토미, 고토마키가 남장을 하고 불러 화제가 되었던 곡으로, 뮤지컬 분위기이다.2001년 10월 31일에 발매, 총51만3000장 판매,최고순위 - 1위★★프로듀서 층쿠가 참여하는 오디션을 본다. 끝으로 합숙훈련을 통한 최종 오디션 등으로 구분된다. 이 합숙훈련까지 통과하면 모닝구 무스메의 일원이 된다. 그런데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단순히 인원선발을 위한 절차라는 의미만을 띄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 하나하나가 이벤트로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선택과 탈락이라는 드라마를 TV를 통해 내보냄으로써 홍보의 수단으로 활용한다.2)유닛과 셔플을 통한 활동의 확장(1) 유닛을 통한 활동의 확장유닛이란 각자 개별적으로 활동하던 팀 혹은 가수를 해체해 새로운 하나의 그룹으로 묶어서 단기적으로 활동하는 형태를 말한다. 유닛을 통한 활동은 모닝구무스메 멤버들도, 멤버들끼리 별도의 유닛을 구성하기도 하고, 헬로프로젝트 내의 다른 그룹이나 가수들과 유닛을 구성해 활동하기도 한다. 또한 오토메-사쿠라조처럼 모닝구무스메 전체가 2개조로 나누어 유닛을 구성하고 각각 싱글 활동과 콘서트를 갖기도 하고, 일부 멤버는 별도의 싱글활동도 한다.이처럼 복잡한 구성은 그룹의 특성과 상업적 측면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본체인 그룹을 운용하고, 또한 내부 인원으로 이뤄진 소그룹을 움직이는 거의 공백기간을 두지 않고 계속적으로 시청자들에게 모습을 보이는 방법을 통해 늘 새롭지만 지속적으로 시청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유닛에 소속사내의 비교적 인기가 떨어지는 그룹의 멤버를 끼워 넣어 인기의 동반상승을 꾀하기도 한다. 또한 모닝구무스메는 한 때 15명을 육박할 정도로 대규모 그룹이다. 따라서 멤버 개개인의 능력이 충분히 발휘되기 어렵고, 일부 멤버는 다른 멤버에 가려 빛을 못 보기도 한다. 그래서 초기 모닝구무스메의 탄포포, 풋치모니 같은 유닛활동은 아직 지명도가 그리 높지 못한 상태의 개인을 소개하는 역할을 했다.대표적인 유닛은 탄포포, 풋치모니, 미니모니, 사쿠라조와 오토메조가 있다.이러한 시스템의 모습은 우리나라에서도 근래에 많이 찾아 볼 수 있는 모습이다.그룹UN의 경우 앨범을 발매했지만 각각 솔로활동을 하였으며 그룹S의 경우에는 각각즈(Goods)다.모닝구무스메의 사진들이나 캐릭터를 넣어 만든 상품들을 ‘모닝구무스메 굿즈’라고 부른다. 물론 굿즈는 모닝구 무스메의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아이돌 스타들의 상품을 모두 통칭하는 것이다. 콘서트 비디오와 DVD, 브로마이드, 책받침 등은 말할 것도 없고 필통, 핸드폰줄, 부채, 우산, 티셔츠, 팔찌, 밴드, 수첩 등 그 종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모닝구 무스메 굿즈’ 및 ‘헬로프로젝트 굿즈’를 모아놓고 판매하는 ‘헬로프로젝트 오피셜샵’이 일본 주요도시 각지에 퍼져있다.6) 팬들과의 유대감 형성을 위한 활동일본 아이돌 스타들의 지속적인 인기비결 중의 하나가 바로 콘서트와 팬미팅, 스타와 함께하는 해외여행 등으로 팬들과 꾸준한 접속을 꾀하고 있다는 것이다. 작년 초 있었던 (2004.2.21~2.23) 등과 같은 이벤트를 통해 스타와 팬들간의 거리를 좁혀 더욱 친근한 이미지를 심어 줄 수 있고, 팬들과의 장기적인 유대감 형성에도 또한 도움이 된다. 물론 기획사 입장에서는 또 다른 짭짤한 부수입거리가 생기는 셈이다.IV. 오타쿠 문화우리나라에서는 아이돌 스타라는 명목아래 거의 10년 이상을 가요계 정상에 위치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사실이다. 하지만 일본에서 가능한 것은 앞서 말한 철저한 아이돌 시스템뿐만 아니라 일본의 오타쿠 문화가 존재하기 때문이다.1. 오타쿠의 의미- 한 분야에 열중하는 마니아보다 더욱 심취해 있는 사람을 이르는 말.오타쿠'는 1983년 일본에서 처음 사용되었는데, 원래의 뜻은 상대방이나 그 남편, 그 집안을 높여 부르는 '오타쿠'(御宅)에서 나온 말로 원래의 뜻과 구별하기 위해 가타카나(片假名)로 쓰인다. 또한 '당신', '댁'이라는 뜻을 지닌 이인칭 대명사의 일본어로 마니아보다 더욱 심취하여 집착하는 사람을 말한다. 한 가지 일에 몰두하여 광기(狂氣)가 있다는 뜻으로 낚시광, 바둑광, 골프광 등을 사용하였는데, 그들보다 더욱 깊이 빠져들어 있는 사람들을 오타쿠 라고 부른다.2. 오타쿠 와 팬 마니아의 변화까지 족집게처럼 집어내곤 했다. 이런 오타쿠들 때문에 일본 만화는 더욱 세밀해지는 경향을 보이게 되었다. 오타쿠들이 경영을 직접 하는 경우도 있다. 애니메이션 분야에서 안노 히테아키를 주축으로 가이낙스(GAINAX)라는 애니메이션, 게임 기업을 창설하였다.4) 영화의 질 향상관객의 감소로 한때는 사망 선고를 받았던 일본 영화가 1990년대 들어 약진을 거듭하고 있는 것도 영상적, 시각적 감성이 풍부한 신세대 오타쿠 감독들의 덕택이다. 1996년 일본 내 방화 부문 흥행1위를 차지했고, 미국까지 강타한 'Shall we dance?' 의 감독 스오 마사츄키, 양성애를 다룬 청춘 영화의 기수로 프랑스에서 절찬을 받은 '해변의 신밧드'의 하시구치 료스케 '오카에리' 라는 영화로 베를린 영화제의 최우수 신인감독상을 수상한 시노자키 마코토, 그리고 한국에도 열광적인 마니아 팬들을 확보하고 있는 이와이 순지등.이들 젊은 감독들의 강점은 수백 편의 영화 장면을 데이터 뱅크처럼 머리 속에 보유하고 있다는것이다. 영상문화 오타쿠들 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5) 오타쿠의 다른문화 코미케코미케란 코믹 마켓(Comic Market) 즉, 만화 시장이란 뜻을 담고 있다. '코미케'란 단어는 지금 일본 만화 판에서 '아마추어 만화 시장이란 뜻'의 일반 명사로 자리 잡았다. 시작되었을 때는 30여 개의 서클, 참가자 7, 8백명의 작은 팬의 모임이었지만, 회를 쫓을 때마다 증가해 현재는 2만2천 서클, 3일간의 개최에 30만 명이나 모이는 모임이 되었다. 지금의 코미케는 일본 만화 산업의 거대한 원형을 떠받치고 있는 밑바탕이다.코미케의 주된 목적은 아마추어 동아리들의 동인지를 사고파는 것이지만, '코스프레(costume play)'라 불리는 만화 캐릭터 분장 경연 대회를 비롯해 각종 게임 소프트웨어, 애니메이션, 팬시, 캐릭터 관련 트렌드 상품의 정보가 소개되고 확산되는 곳이기도 하다.2. 분야별 오타쿠 문화1) 애니메이션만화와 애니메이션은 오타쿠의 발상지라고 할 수 있다. 또 있다.
0000년 0학기과목명 : 일본연구과제명 : 철도원에 나타난 일본문화철도원에 깃든 일본인의 정서와 문화소속 : ??학과...학번 : 00000000이름 : ???......철도원, 일본어 제목은 鐵道員(ぽっぽや폿포야)라고 한다. 무언가 친근함을 느끼게 하는 소리를 낸다. 이러한 제목처럼 영화의 눈 내린 홋카이도는 우리나라의 시골을 보는 듯 했다. 처음 본 일본영화가 철도원이라 다른 일본영화와는 비교할 수가 없지만, 서정적인 스토리와 영상이 나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나의 감상문을 쓰기 전에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알아보려고 영화평을 보았다. 한결같이 일본의 장인정신이 무섭게 드러난 秀作이라고 호평을 했다. 내 생각도 그랬다. 영화에 나온 오토마츠도 아버지를 따라 철도원이 되어 딸이 죽을 때도, 아내가 죽을 때도 곁을 지키지 못하고 기차역에서 그의 직무를 다했고, 그런 무서우리만치 충실했던 장인정신에 나는 탄복할 수밖에 없었다. 언뜻 우리나라의 정서로써는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일본의 정서에서 생각해 보니 그렇게 했던 오토의 생각이 조금은 읽혀졌다.일본은 10여전 전까지만 해도 일반 회사도 공무원처럼 ‘종신고용제’ 라는 것이 있어 정년까지의 일자리를 보장해 주었다. 이러한 제도를 통해 오토마츠도 정년이 가까울 때까지 철도원에서 자신의 인생을 보냈던 것이었다. 이 제도를 통해 일본인들은 평생직장이라는 생각으로 한번 들어간 회사에 몸담았다. 지금은 젊은이들의 의식이 많이 달라져 직장을 옮기는 일도 빈번하고 회사들도 이 제도를 수정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지만, 과거의 이러했던 제도들과 일본의 장인정신이 합쳐져 오늘날의 경제대국 일본을 만들지 않았을까. 일본은 소도시의 작은 라면가게라도 3대째 이어서 하는 곳도 꽤 많다고 한다. 집안의 일을 이어간다는 자부심으로 할 것 같아서 장인정신의 양념으로, 왠지 라면의 맛도 더 좋을 것 같다.그리고 첫 부분에 나왔던 오세치 요리는 무언가 일본은 여자를 무시한다는 나의 고정관념을 조금은 바꾸어 놓았다. 정월에 여자를 쉬게 하기 위해서 먹는 요리. 우리나라와는 반대여서 신기하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명절만 되면 제일 고생하는게 엄마, 아내들인데 비해 일본은 쉬라고 음식도 미리 하다니, 정말 배려가 담긴 식문화 같다. 또한 오세치 요리는 하나하나마다 의미가 담겨있다는 것도 나를 놀라게 했다. 예를 들자면 우메보시(매실장아찌)는 우메보시의 주름을 노인의 피부에 비유해서 장수를 바란다는 의미이고, 연근을 먹으면 숭숭 뚤린 연근의 구멍을 통해 앞날을 볼 수 있는 지혜의 눈을 갖는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의 떡국의 의미와도 통하는 것 같다.철도원에는 유난히 죽음이 많이 등장한다. (아사다 지로의 원작 단편집의 다른 작품도 열병으로 죽은 유키코, 마지막을 혼자 보냈던 시즈에, 그리고 일터에서 죽음을 맞이한 오토마츠. 첫 장면의 장례식에서 철도의 노래를 부르던 게 기억에 남는다. 현재 일본에서는 장례형식이 99%가 화장이라고 한다. 토지를 아끼자는 취지에서 정부가 내놓은 시책을 일본 국민은 잘 따랐고 또한 불교가 융합된 일본의 문화도 그런 결과를 도출시킬 수 있었다. 아직은 매장 문화가 익숙한 우리에게 이 또한 낯설지만, 이러한 문화는 우리나라가 배워야 하는 문화임에는 틀림없다. 우리나라는 사람이 죽으면 대개 시신을 매장하려 하여 국토의 꽤 많은 부분이 묘지로 잠들어 있다. 비슷하게 좁은 나라이니 만큼 우리도 화장, 납골당 문화를 정부에서 적극 권장해야 할 것 같다.또한 오토에게 나타났던 딸의 유령도 일본의 죽음에 대한 정서와 감독의 센스를 드러내는 좋은 장치였다. 물론 원작에도 나온 것이지만, 여기서 내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여러 나이대의 딸이 나왔지만 공통적인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빨간’ 목도리였다. 유키코가 아파서 병원으로 가는 기차를 탔을 때도, 차가운 시신으로 돌아왔을 때도 오토마츠는 언제나 붉은 깃발로 그녀를 맞이하고 또한 보냈다. 그리고 먼저 간 아내도 빨간 조끼를 자주 입었었다. 영화의 뒤쪽에 유키코가 빨간 조끼를 입고 요리를 하던 것도 다 같은 맥락이다. 철도원에서 이러한 붉은색의 의미는 ‘가족애’ 인 것 같다. 흰눈이 내린 훗카이도와 붉은색의 오묘한 조화를 이루어 낸 것이다. 또한 훗카이도의 흰 눈은 죽음을 의미한다고 한다. 이러한 색의 조화로도 감독은 영화의 주제를 나타내고 있는 듯 하다.영화 중간에 잠시 나왔던 1960년대 일본의 노동운동은 오토마츠가 일의 보람을 느꼈던 때로 회상된다. 학생들의 취직을 위해 노조가 힘써서 열차를 운행하고, 자신의 힘으로 도울 수 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던 시절이었다. 패전 후 경제가 부흥하기 시작했던 때였고 또한 노조들도 자신들의 권리를 외치기 시작했던 때였다. 노조 자체는 1950년대에 발생했는데, 1960년대 가장 극렬한 운동을 했던 단체가 국유철도노조라고 한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이 시절에 철도노조위원장이었던 사람이 쓴 책도 있었다.아무튼 이러한 노동운동으로 철도원들, 그리고 다른 노동자들의 권리가 올라갔고 현재 일본의 임금수준과 대우는 유럽 선진국 수준이라고 한다.철도를 소재로 한 영화라 영화의 반 이상이 철도역의 풍경과 함께하고 있다. 호로마이 역의 열차는 53년을 달린 폐선 직전의 것인데, 보통 알고 있는 열차보다 크기도 작다. 오토마츠의 회상에 나오는 증기기관차는 아주 크고 사람도 많았는데 세월이 지나고 호로마이의 광산이 쇠퇴해서 사람들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여 호로마이 역도 한없이 작아져 버렸다. 이런 세월의 흐름에는 철도의 역사도 함께 흐르고 있다.
2004년 2학기“아이들과 함께하는 봉사 마인드”* 자기소개서 작성의 목적에 대한 설명.나는 대학교 1학년생으로 최근에 가게의 보수공사로 인해서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게 되었는데 간소한 용돈벌이로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는 중이다. 비록 아르바이트이지만 경력(11개월)을 살려 비슷한 어린이 시설이나 유아 상대의 점포에 아르바이트로 취업하기 위하여 자기소개서를 쓰려고 한다. 이것은 실제로 이력서와 함께 제출할 것이다. 어린이 전용 놀이시설은 거의 대기업 마트와 연계되어 있기 때문에 구직 시에 절차가 개인 업소에 비해 약간 복잡하다. 구직 서류에 적성파악을 위해 자기소개서를 첨부하기도 한다.내용은 나의 경력을 강조하며 고객에 대한 봉사 마인드가 투철하다는 것을 보여주게 구성할 것이다. 나의 평소 성격도 서술하겠지만, 주로 전의 점포에서 있었던 일화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려고 한다.1. ‘나’라는 사람은? - 아이들을 사랑하고 다방면의 능력을 가졌습니다.지나가는 아이들만 봐도 얼굴에 미소가 번지는 저는 올해 20살이 된 풋풋한 대학생입니다. 초, 중, 고등학교를 무난하게 졸업했지만, 노동 경력은 약간 화려한 편입니다. 자랑은 아니지만 중3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고 미용실, 패스트푸드 점포, 책 대여점, 대형 마트, 가장 최근까지는 마트와 연계된 놀이시설에서 안전요원으로 근무한 경력이 있습니다. 중, 고교시절에는 방학 때 꼭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하지만 공부도 소홀히 하지 않아 지금의 명지대 학생이 되었습니다. 저는 아이들을 아주 좋아하는 편이며 어리다고 무시하지 않고 잘 대합니다. 그래서 친척 동생들이 저를 잘 따르고 말을 잘 듣습니다. 그리고 저는 항상 고객님을 위해 유연성 있고 빠른 감동 서비스를 제공하여 전에 제가 근무하던 점포에 오셨던 고객님들은 저를 기억해 주시고 길에서 만나면 아주 반가워하십니다. 또한 행정학 전공이기 때문에 리더쉽과 통솔력이 몸에 배어 아이들을 잘 통제할 줄 압니다. 그리고 근무 환경에 적응력이 뛰어나 별다른 지도 없이도 일을 빨리 배우는 편이고 처음 보는 기계나 프로그램도 다른 사람에 비해 잘 다룰 수 있습니다. 그리고 OA에 탁월하여 엑셀이나 워드 작업은 기본적으로 가능합니다. 계산원 경력도 여러 번 있어 웬만한 계산기는 다 사용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체력이 좋은 편이라 쉽게 지치지 않아 장시간 근무도 문제없습니다. 그리고 아주 뛰어나지는 않지만 간단한 영어, 일본어 의사소통이 가능합니다.2. 나의 좌우명‘정직한 나의 길에 장애물이 있을 리 없다.’무엇이든지 정직하게 한다면 실패가 없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좌우명 이라기보다는 제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20년을 살면서 몸으로 느낀 저의 진리와도 같습니다.3. 학교 생활현재 서울??대학교 1학년 2학기에 재학 중이고 행정학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또한 동아리 Newsweek에서 정회원으로 활동 중이며, 장학금까지는 아니지만 꽤 상위권의 학점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건강을 위해 엘리베이터를 전혀 이용하지 않으며, 수업시간에도 허리 똑바로 펴고 강의에 열중합니다.그리고 같은 과 뿐만 아니라 다른 과 학생들과도 교우관계를 가지고 있고 선배들과도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오고 있습니다. 음주가무는 그다지 즐기는 편이 아니라서 다른 학우들에 비해 아주 건전한 생활을 영위합니다. 가끔 친구들이 “너 너무 웰빙을 추구한다~” 며 놀리기도 합니다만 그냥 웃고 받아넘기는 편입니다.강의가 끝나면 주로 집에 일찍 들어가거나 학교 근처의 영화관에 가서 내키는 영화를 보곤 합니다. 용돈을 거의 제가 벌기 때문에 절약하는 편이지만 연극이나 영화 관람에 드는 비용은 전혀 아끼지 않습니다. 영화를 특히 좋아해서 한달에 5편 이상은 꼭 보는 편입니다.4. 나의 경력중 3때 미용실 보조 아르바이트를 시작으로 여러 아르바이트를 전전하였습니다. 미용실에서는 손님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는 친절을 제공하는 법을 배웠고, 패스트푸드 전문점에서는 어떤 상황에서라도 빠르게 대처할 수 있는 대응 능력을 키웠고, 책 대여점에서는 연체금 지불 요구를 통해 껄끄러운 상황에서도 변함없는 부드러운 말투를 익혔습니다.그리고 어린이 놀이시설에서의 11개월 근무를 통하여 특히 여성 고객에게 어필하는 감동, 혁신 서비스가 몸에 배게 되었습니다. 제가 놀이시설에서 근무할 때 어떤 고객님께서 맡기고 가신 아이가 갑자기 심한 복통을 일으켜 매우 당황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그런 일이 처음이라 아주 놀랐지만 이내 침착을 되찾고 아이를 안아서 근처 병원으로 급히 달려가 진찰을 받게 하였습니다. 그 아이는 급성 맹장염이었고 저는 신속히 부모님께 연락을 드려 수술을 받게 해 일이 잘 마무리 되었습니다. 그 후로 그 고객님과 아이는 최근까지 제가 근무하던 점포에 자주 방문해 주셨고 카운터에 제가 없을 때는 꼭 저를 찾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