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학기를 중국에서 교환학생을 하고 돌아와 호기심에 신청했던 “한국 문화재의 이해” 수업이 어느덧 막바지에 이르렀다. 처음 강의를 들을 때에는 조금 많이 지루하겠구나 라고 생각했었는데, 강의를 듣다보니 몰랐던 부분도 알게 되고 그냥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을 되었다. 기말고사 레포트를 어떤 것으로 정해서 쓸까 고민하다가 처음에는 집주위에 있는 “통일전망대”에 대해서 써볼까라고 생각을 해봤었다. 아직은 문화재 정도는 아니지만 훗날에 북한과 우리나라가 통일이 된다면 분단과 이산가족의 아픔을 지니고 있는 “통일전망대”가 문화적으로 가치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하지만 그것보다 내가 지금하고 있는 전공에 관한 문화재가 전공을 공부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거라 생각이 들어서 전공인 중국 관련 문화재에 대해 한번 써보려 한다.중국은 오랜 역사만큼 그에 따른 수많은 문화재들이 있다. 우리들이 흔히 알고 있는 만리장성, 진시황릉, 자금성, 태산 등등. 그중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정해진 것도 정확하진 않지만 몇 십점에 이르는 것으로 알고 있다.하지만 이런 것들 보다는 이번학기에 배웠던 비슷한 내용의 문화재와 흔히 알려지지 않은 문화재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명칭백자 춘화도 접시년대청대초중 1644 ~ 1820재질백자 오채 접시크기넓이 원둘레 180 mm , 두께 34mm , 무게330g사용용도부인이 남편에게 성관계를 요구할 때 이 접시에 맛있는 후식을 담아서 남편에게 주고 남편은 이를 맛있게 먹고서 부부간에 성행위를 하는 청구서임.◎성문화 문화재특징중산층 이상의 여인네들이 편족을 하고서 생활하는 편족문화와 성문화를 엿볼 수 있는 역사적 사료임.설명중국에서는 청나라 시대 때에 여자들에게 아주 조그만한 신발을 신겨서 발이 커지지 못하도록 하는 풍습이 생겨났다. 어린 여자 아이가 자라면서 발이 커지는데 신발을 아무리 작은 것을 신겨도 커지는 발을 막지 못하므로 발목을 띠로서 묶어 발바닥이 커지는 상태를 인위적으로 제한 하였던 것이다. 이때 아이의 상태에서 중국의 여인네들은 어떻게 생활을 하였을까 궁금하다. 그중에서 sex 할때는 어떻게 편족을 처리하고서 성관계를 즐겼을 까도 궁금하며 그 시대 중류층 이상의 사람들이 생활상태는 침구의 상태,장식의 상태 등등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사료적 가치를 지닌 역사적 유물이다명칭녹유수선화형 옥문정 세정용도자기년대송대 960-1276크기높이 74mm 굽의경 100중간굽외경170 바깥외경 236용도여성의 질 세정용성교후 남여성기 세정용설명우리 인류가 지구상에 존재하면서부터 우리는 성생활을 하면서 살아왔다천과 지, 음과 양, 남과 여, 이 모든 것이 상호보완, 협조, 조화 하면서 살아왔다. 신이 우리인간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은 남과여의 성을 선물한 것이라 하겠다.본 작품은 녹유 수선화형 옥문정 세정용 도자기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하겠다.옥문정이라 하면은 여성의 음부인 질과 내부을 애기한다.수선화는*무리를 지어서 꽃을 피는 특징이 있다.*동양에서는 청초함 순결함을 의미한다.*가장 일찍 첫봄에 꽃을 피운다.*물속에 있는 것을 수선이라 했고 동양중국에서는 수선화의 속명인 나르키수소(narcissus)는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나르키소스라는 청년의 이름에서 유래하여 자기주의, 자기애를 뜻하고 있다.여성의 질을 표현하는 내부 깊은 속에서는 수염국화가 만개되여 희열과 기쁨의 극치를 이루는 형상을 하고 있으며, 매화꽃은 만개하여 마치 나비가 훨훨 날아 기쁨과 즐거움으로 행복과 즐거움이 극치를 보는 것 같다. 난초는 그 부드러움과 여성의 절개가 어우러져서 마치 환희와 희열과 탄성이 터지듯이 여성의 꽃이 붉은 선혈이 절정을 이루듯이 매화, 난초, 국화의 꽃으로써 인간만사의 최고의 희열과 기쁨과 행복과 줄거움과 오르가즘의 최고의 희열을 만끽하며 즐기는 내용으로 영원히 했다. 그와 같이 행복을 누리는 동안에 작별에 해당되는 열매에는 생명수속에 정자와 난자 등이 자유로이 유영을 하는듯한 표현으로써 작품화시켰다. 생명샘의 수초들 또한 풍성한 가운데 윤택함과 풍요로움을 누리고 있고, 대음순에 해당살아 움직인다.옥문장이라는 용도를 확실하게 표시해주는 내용은 고대문자 중에 길할 길자가 있는데 길할 길자가 2개가 옆으로 표시되어 있는데 중국에서는 이 공알표시는 여성이 남성에게 몸과 마음과 정성을 전부 준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또한 중국에서는 성의속어로도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특징이와 같이 완벽한 용도의 옥문정은 전무함옥문정은 사용하는 본인 외에는 사용 할 수가 없으므로 당대 또는 그 자손이 산산히 개어 부수워 버리는 연고도 완벽한 작품을 구할 수 없음.외형과 내형을 수선화꽃모양으로 제작했음이 특징.여성은 그 청초함과 절개에 멋이 있듯이 수선화, 매화, 난초등과 같이 그 내용을 절묘하게 조합하였음고대어의 길할 길자의 변형인 문자들은 여성의 공알 표시인 속어를 담고 있음.명 칭돌도끼년 대양소 문호유적 신석기 시대 5000-6000년전크 기390g 길이105cm *50mm *38mm560g 길이129mm*55mm*46mm출토지중국 앙소 유적지 지금의 여산중국 중요 박물관 등에서 전시중임특 징인류 문명의 기점문회재임황하 문명의 유물임설 명세계 4대 인류문명 발생지중의 나일강 문명과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인도 겐지스강 문명과 중국의 황하강 문명이 4대 인류문명 발생지이다.이중 중국의 황하강 유역의 신석기 시대의 유적인 돌도끼이다이 돌도끼는 황하강 유역에서 출발한 인류가 도구로 사용하기 시작하는 기점 문화로써 그의 가치가 대단이 크다.◎하얼빈의 731부대731부대는 중국 흑룡강성 하얼빈에 있던 일제 관동군 산하 세균전 부대이다. 교환학생기간이 끝나고 다녀온 곳으로 본 건물 빼고는 아직까지는 터만 간간이 남아 있는 곳 이다. 일본은 1936년에서 1945년 여름까지 전쟁포로 및 기타 구속된 사람 3,000여 명을 대상으로 각종 세균실험과 약물실험 등을 자행했다.1936년 만주 침공시 하얼빈 남쪽 20km 지점에 설립한 세균전 비밀연구소로 출발하였으며. 당시 방역급수부대로 위장하였다가 1941년 만주 731부대로 명칭을 바꾸었다. 설립 당시의 사령관은 1930년대 초 곤충·동상·페스트·콜레라 등 생물학 무기를 연구하는 17개 연구반이 있었고, 각각의 연구반마다 마루타라고 불리는 인간을 생체실험용으로 사용했다.1940년 이후 해마다 600명의 마루타들이 생체실험에 동원되어 최소한 3,000여 명의 한국인·중국인·러시아인·몽골인 등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만행의 흔적을 없애기 위해 살아남은 150여 명의 마루타들까지 모두 처형한 것으로 알려졌다.종전 후 이시이 시로를 비롯한 부대원들은 세균전 연구결과를 모두 미군에 넘기는 조건으로 전범재판에 회부되지 않고 면책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정부는 일본의 전쟁범죄를 세계에 알리기 위해, 731부대의 시설을 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을 추진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23개 시설을 대상으로 2001년 3월초부터 본격적인 복원공사를 진행 중에 있다전시된 마루타 실험 장면 전시회에 마네킹으로 만들어 놓은 마루타 해부 모습최근 중국인들은 기분 좋은 소식 하나를 들었다. 왕희지(307~365)의 명필 '상란첩'(喪亂帖)이 그들 앞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상란첩은 붓을 떼지 않고 쓰는 연면체(連綿體)의 가장 대표적인 예로 여겨왔으나 고국 중국이 아닌 일본에서 소장해왔다. 그러다가 1300년이 흐른 지난 13일, 오랜 노력 끝에 일본 도쿄 박물관과 상하이 박물관 교류행사를 통해 되찾게 된 것이다. 물론 상란첩은 약탈이 아니라 정식교류에 의해 일본에 건너간 것이었다. 나라시대 중-일 교류를 튼 감진화상(鑒眞和尙)이 일본 황실의 요구에 따라 왕희지의 글씨를 가져갔던 것이다. 일본의 옛 자료 목록인 에도 상란첩이 나온다.하지만 대부분의 문화재는 굴곡의 역사 속에서 뒤틀린 운명을 맞아야 했다. 중국인들로서는 쉽게 잊히지 않는 근현대사의 두 장면이 있다. 하나는 영국 및 프랑스군(1860년)과 8군 연합군(1900년)이 베이징에 쳐들어왔을 때다. 당시 황제의 공간인 베이징은 제국주의 군대에 의해 점령됐고, 이 과정에서 군인들은 성과 민가의 5월 26일, 후베이성 마청(麻城) 출신 왕원록(王圓?)이 깐수성 둔황(돈황)의 한 동굴을 치우다가 갈라진 틈 사이에서 수많은 서류를 발견했던 사건이다. 문외한인 그에게도 그 서류들은 중요하게 보였다. 그러나 제국주의 세력이 베이징을 점령했던 그 당시에 위에서는 그 서류의 중요성을 알아보지 못했다. 대신 러시아의 블로체프, 헝가리의 스타인, 프랑스의 바시흐, 일본의 요시카와 고이치로 등이 차례로 동굴을 방문해 수많은 두루마리 서적들을 자신들의 나라로 가져갔다. 그 서류는 유교와 불교관련 경전들이었다. 이후 중국은 자국 3대 지역학 중 하나인 돈황학을 미국이나 프랑스 도서관에서 복사해온 마이크로필름으로 연구하는 처지가 됐다. 이런 대사건이 아니라도 중국에서 국외로 유출된 문화재 수는 (국공내전 속에 대만으로 건너간 문화재를 제외하고도) 수천만 건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그런 중국이 최근 "문화재여 돌아오라"는 구호 아래 문화재 되찾기에 나섰다. 공식 반환요청에서 경매시장 매입, 민간차원의 구매 등 가능한 모든 방법이 동원되고 있다. 중국이 갑자기 문화재 되찾기에 열정을 쏟는 이유는 무엇일까?중국정부가 문화재 되찾기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은 지난해 4월. 중국 정부는 '문화재 보호계획'을 발표하고 각국에 불법 유출된 문화재 반환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100년 전 문화재를 약탈당했던 약소국에서 벗어나 세계 양대 헤게모니 국가 중 하나가 되었다는 점과 1조 달러에 달하는 외환보유고가 배경이 됐다.중국 정부는 '해외유출 문화재 구원전문기금'으로 정부재단과 국영기업, 국립박물관 등을 통해 문화재를 사들이고 있다. 세계적인 명성의 뉴욕 크리스티 경매장의 경우, 출품된 중국 고미술품의 25%가 중국으로 넘어왔을 정도다. 이렇게 해서 현재까지 중국정부가 되찾은 문화재가 5만여 점에 달한다.사실 중국 정부의 이런 노력은 이미 수년 전부터 시작됐다. 2000년, 중국 군부가 운영하는 바오리(保利)그룹은 1860년대 영국과 프랑스군에 도난당했던 원숭이-황소-호랑이 청동두상을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