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 차 >Ⅰ. 신도시 개념 및 우리나라 신도시 개발2~3신도시2우리나라 신도시 개발2~3Ⅱ. 사업 개요 및 현안 사항3~7수도권 2기 신도시3~7성남 판교5화성 동탄15화성 동탄25김포 한강5~6파주 운정6광교6양주(옥천 · 회천)6~7위례7고덕 국제화7인천 검단7오산세교37~8Ⅲ. 문제점과 대책 사항8~9Ⅳ. 참고문헌 및 사이트9Ⅰ. 신도시 개념 및 우리나라 신도시 개발신도시신도시란 자연발생적으로 성장한 도시가 아니라 처음부터 계획적,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도시를 말한다. 기존의 대도시에 의존적인 도시나 대규모 주택단지를 신도시에 포함시키기도 하지만, 엄격한 의미의 신도시는 생산, 유통, 소비의 기능을 고루 갖춘 경제적 독립도시(자족도시)를 의미한다. 본격적인 신도시 개발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전후 복구사업의 일환으로 범세계적으로 이루어졌다. 현재 세계 여러 나라의 개발 여건과 목적이 각국마다 다양하게 됨으로써 한마디로 신도시 개념을 확정짓기는 어려운 실정이다.우리나라 신도시 개발우리나라에서 현대적 의미의 신도시가 본격화된 것은 산업화가 시작된 시기와 비슷하다. 60년대 이후, 우리나라 신도시는 대체로 ‘국토 및 지역개발 목적의 신도시’, ‘대도시 문제해결 목적의 신도시’라는 두 가지 정책 목표에 의해 추진되었다. 60년대 당시 산업화가 본격화되기에 앞서 국토와 지역의 경제적으로 낙후된 현상들을 완화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신도시를 개발하려 하였다. 이후에는 계속해서 대도시 주변으로 인구가 집중함으로써 도시문제 등이 발생하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 신도시를 개발하려 하였다.1950년대전후복구 시기로서 비계획적 시가지 확장형태의 도시개발.토지구획정리사업에 의한 환지방식사업 위주.1960년대공업화 및 경제개발저책의 본격가동과 더불어 현대적 의미의 신도시가 최초로 건설.우리나라 최초의 현대적 신도시 울산신시가지.(개발사례 - 광주대단지, 영동지구 및 여의도 등)1970년대중화학공업 육성정책에 따라 임해지역에 산업기지도시 건설.신공업도시인 창원 계획 때 신도시라는 용어 도시를 건설하게 되었다. 5개의 신도시는 업무 · 주거 · 상업 · 공용의 청사 · 체육시설 및 공원 · 녹지 등 생활편익시설이 완비된 도시로 종합적인 계획을 수립하여 건설되었다.이후에도 계속해서 정부는 수도권 2기 신도시를 건설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2기 신도시를 개발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2기 신도시가 도입된 것은 1기 신도시 개발 이후 도출된 문제점들을 극복하기 위해서였다. 1990년대 조성된 1기 신도시는 주택가격 안정이라는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개발 이후 자족성 부족, 수도권 인구 집중 유발 등의 비판여론이 제기됐다. 정부는 이후 주택 공급 정책을 소규모 분산적 택지개발과 준농림지 개발로 방향을 선회했다. 주택공급을 위한 택지공급 수단으로 중소규모의 공영개발과 민간의 준농림지 개발을 유도한 것이다.2000년대 초반에 주택가격 폭등을 맞으며 중소규모 개발과 민간 난개발에 대한 비판여론은 정점에 달했다. 반면 이 시기에 수도권 1기 5개 신도시는 주거환경이 안정되면서 신도시에 대한 여론은 점차 호의적으로 전환됐다. 상황이 이렇게 바뀌자 당시 정부의 선택은 2기 수도권 신도시 개발이었다. 주택시장 안정을 위한 지속적인 택지공급, 중소규모 개발의 비효율성 개선, 규모의 경제를 통한 양호한 정주여건과 지역성장 거점 형성이라는 대전제가 밑바탕에 깔렸다.이 국토현안보고서에서는 수도권 2기 신도시들의 사업 개요와 현안 사항, 문제점과 그 대책 사항들에 대해 다룰 것이다.Ⅱ. 사업 개요 및 현안 사항수도권 2기 신도시구분성남 판교화성 동탄1화성 동탄2김포 한강파주 운정광교양주(옥정 · 회천)위례고덕 국제화인천 검단오산세교3위치경기도 성남시 판교동 일원경기도 화성시 동탄면 일원경기도 화성시 석우동, 반송동, 동탄면 일원경기도 김포시 김포2동 일원경기도 파주시 교하읍 일원경기도 수원시 이의동 용인시 상현동 일원경기도 양주시 옥정동 외 10개 동송파구 거여동 장지동 성남시 창곡동, 하남시 학암동경기도 평택시 서정동 고덕면 일원인천시 서구 불로동, 원당동, 마전동, 당하 도시발전을 도모하며, 계획적 공영개발을 통한 수도권지역의 지속적인 택지공급에 기여하고자 개발에 착수하게 되었다. 성남판교지구는 서울도심과 20㎞, 강남과 10㎞거리에 위치하고 성남의 신시가지인 분당과 인접하여, 수도권 동남부권역의 중심지역으로서 성장 가능한 지리적 장점을 가지고 있다.가로망은 5개의 간선도로를 통해 지역 간의 연결을 도모하고, 생활권과 중심지역을 연결하는 내부간선도로망을 구축하였다. 신도시 개발로 인해 가중될 교통량은 주요간선도로의 신ㆍ증설 및 전철의 개통에 의해 분담 처리될 것이며, 대중교통 활성화를 위하여 판교역사 환승주차장을 건설하고, Non-stop 광역버스, 지역 간 셔틀버스를 운행할 계획이다.성남판교신도시 전체 주택건설용지의 76%는 공동주택용지로, 공동주택용지의 35%는 임대주택용지로 계획하였다. 각 생활권에는 근린공원과 어린이공원을 적절히 배치하고, 주요 도로변에는 완충녹지대를 설치하여 쾌적한 주거환경 조성을 위한 계획을 수립하였다.② 화성 동탄1수도권 과밀억제권역 외곽에 중핵역할을 하는 거점도시를 건설함으로써 서울 집중형 공간구조를 탈피하여 수도권 균형발전을 유도하고, 개발압력이 높은 지역의 무질서한 개발행위를 사전에 예방하기 위하여 화성 동탄1 신도시 개발을 추진하게 되었다. 서울로부터 약40㎞에 위치한 화성 동탄1 신도시는 북쪽으로 수원과 접하며, 동쪽으로는 용인시, 서쪽으로는 화성시, 남쪽으로는 오산시와 접하고 있어 수도권 서남부권의 거점도시로서의 성장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가로망은 서울과의 연결을 개선하되, 지역 중심도시로서 인근 도시들과의 원활한 교류가 중요하므로 주변지역인 병점, 오산, 수원과의 지역 간 연결 개선을 위한 간선가로망체계를 형성하면서 불필요한 통과교통을 배제하는 안전하고 쾌적한 가로망 체계를 구상하였다.화성 동탄1 신도시에서 공동주택은 86%를 차지하며 공동주택의 30%는 임대주택으로 조성되었다. 길이 2.1km에 이르는 축상형 중앙공원을 중심으로 각각의 의미와 주제에 따라 공간계획을 차별화하여 다양하 균형발전을 위한 개발거점을 확보하는 동시에 기반시설 확충 및 주택공급에 신도시 개발을 추진하게 되었다. 김포 한강 신도시는 인천국제공항, 김포공항,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등이 인접하여 수도권 서북부 지역의 교통 요충지로 성장하고 있다.단독주택, 블록형 단독주택, 연립주택, 아파트, 주상복합아파트 등 다양한 형태의 주거환경이 제공되도록 계획하였다. 한강 역세권 등 일상생활로부터 접근이 용이한 위치에는 공공공지와 광장을 배치하고 보행과 자전거 등을 통해 주거지와 연결되는 보행 동선축을 형성할 예정이다.⑤ 파주 운정일산ㆍ교하ㆍ금촌 택지개발지구와 인접하여 개발압력이 가중되고 있는 지역으로서 개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각종 개발행위를 보다 체계적으로 정비ㆍ관리하여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낙후된 수도권 서북부 지역의 생활거점을 형성, 대북교류의 교두보로서 역할을 담당하기 위해 신도시개발을 추진하게 되었다.도로계획은 지역 간 광역교통을 지구 남, 서단으로 통과 처리하고 동서간과 남북 간을 연결하는 상징가로로 계획하였으며, 내부는 통과 교통을 배제할 수 있는 루프형 생활문화가로를 계획하였고 녹지축과 연계된 보행자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소생활권 간에 유기적으로 연결되도록 계획하였다.주택은 약 8만여 세대이며 전체 주택용지의 약 80%가 공동주택용지로 공급될 것이다. 신도시 중앙에 약88ha의 중앙생태공원을 조성하고 하천 및 신도시 전체를 거미줄처럼 연결하는 실개천을 중심으로 수변경관을 조성할 계획이다.⑥ 광교첨단지식기반산업 위주의 자족형 복합기능을 갖는 수부도시를 조성함으로써 주변 지역 일원의 교통체계개선 및 중심생활권 기능을 유지하여 수도권 남부지역의 계획적ㆍ체계적인 재정비를 통한 균형개발과 서울에 집중되어 있는 주택수요 분산에 기여 하고자 추진하게 되었다. 서울도심과 35km, 강남과 25km 거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수원 동북부와 용인 서북부에 위치한 수도권 남부 도시발전축의 중심지역으로서 성장 가능한 지리적인 장점을 가지고 있다.교통망은 광역행정 및 자족기능 유치에 따 도시적 편의성과 쾌적성을 조화시킨 도시를 계획하였으며, 소득ㆍ연령이 상이한 계층들이 더불어 생활을 영위하는 사회적 혼합주거지를 형성하였다.⑧ 위례공급확대방안의 핵심 사업으로 강남지역의 주택부족, 특히 중대형 주택부족으로 인한 주택시장 불안을 근본적으로 해소하기 위하여 서울시 강남지역과 근거리에 위례신도시 개발을 추진하게 되었다.도로 및 공간구조계획의 기본방향은 기존 주변 전철 역세권과 주거공간을 연계하는 신교통시스템, 녹도로 구성된 보행 네트워크 등을 계획하여 대중교통 이용자의 편의를 도모하였다.양질의 주택을 강남지역에 공급할 수 있게 되어 주택시장 안정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공급세대수의 43%를 중대형아파트로 배정하여 강남 수요를 흡수하는 동시에 임대주택을 31% 계획하여 서민층의 주거안정을 도모할 계획이다. 자연과 어우러진 환경도시로 조성하기 위해 지구북측에 대규모 공원과 지구 내 2개 소하천을 중심으로 청량산 수림대와 연계되는 녹지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이를 보행체계와 통합하여 보행자 중심의 걷고 싶은 가로환경을 조성할 계획이다.⑨ 고덕 국제화고덕 국제화계획지구는 행정중심복합도시 추진에 따른 수도권 남부 공간구조의 발전적 개편과, 평택항을 중심으로 한 서해안시대 대중국 전진기지의 교두보 확보를 위해 수도권 남부지역의 거점으로서 개발을 추진하게 되었다. 또한 미군기지 재배치 및 이전계획에 따라 평택지역의 발전을 촉진하고 외국인과 공존ㆍ발전할 수 있는 새로운 도시모델로서 신도시 개발이 검토되었으며, 수도권 남부지역의 안정적인 택지공급에 기여하고, 아산만권 대규모 산업단지 조성과 장래 평택항 활성화에 따른 개발압력의 효율적 수용으로 양호한 생활기반을 조성하기 위해 개발이 추진되었다.대규모 국제업무단지와 행정타운을 조성하여 도시의 중심성을 강화하고 광역생활중심기능이 배치되도록 계획하였으며, 도시 자족성 기능을 확보하기 위해 첨단지식연구단지 및 물류. 유통 중심지를 조성하였다.⑩ 인천 검단수도권의 균형개발을 도모하고 인천-김포-고양-서울을 연결하는 서북다.
서론- Vidal de la Blache를 선택한 이유프랑스 학계에서는 일찍이 지리학자 비달 드 라 블라쉬(Vidal de la Blache, 1845~1918)가 라첼의 영향을 받아 인문지리학과 가능론을 정립하였다. 우리는 그의 이름에 대해 오해를 가지고 있다. Vidal de la Blache 란 Blache 영지의 Vidal 가문이란 뜻으로 Vidal이 성(姓)이다. 그러나 외국인의 이름은 뒷부분이 성(姓)이라는 인식 때문에 Blache가 성인 줄 알고 블라쉬라고 불렀다. 그러나 서구인들은 ‘비달’이라고 한다.이러한 비달을 관심 있는 학자로 선택한 이유는 바로 프랑스 지리 학계에 남아있는 그의 영향력 때문이다. 프랑스의 지리학은 비달로부터 시작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의 영향력은 대단하다. 비달 이후 프랑스의 지리학계에서 활동하는 학자들 대부분이 비달의 2세대, 3세대 제자들이라는 사실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그의 제자들은 비달의 지역론과 환경론에 관한 지리학적 사조를 계승, 발전시켜 ‘비달학파’를 형성하여 20세기 지리학의 한 주류를 이루고 있다.그 뿐만 아니라 프랑스는 어느 나라보다 지리학의 비중이 높고, 다른 분야에 많은 영향력을 행사해왔는데, 전통적인 프랑스의 지리학은 전문적인 계통지리보다는 지역지리 중심의 지리학이었다. 이 또한 비달의 영향이다. 비달은 지리학이란 지역지리학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그리고 또 다른 이유로는 그가 ‘가능론’을 정립 · 발달시킨 학자이기 때문이다. 고등학교에서 한국지리를 배운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능론’에 대해 공부를 한 적이 있을 것이다. 그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환경가능론’을 정립 · 발달시킨 학자이다. 어떠한 이론이 학계를 지배하고 있을 때, 그와 대비되는 이론을 정립 · 발달시킨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비달은 그것을 해낸 인물이다.본론- 비달의 생애* 지리학 수학시기 : 낭시 대학 재직시절1845년 남부 프랑스의 페제나스(Pezenas)에서 출생한 비달은 프랑스의 많은 학자들을 배출한1871년의 프러시아전쟁에서의 패배 후, 중등교육개혁에 따라 지리학을 중시하게 된 것을 외적 요인으로 들 수 있다. 게다가 낭시 대학의 역사학 · 지리학 강좌에 비달이 임명되었고, 그는 지리학을 전적으로 강의하게 되었다. 이렇듯 당시의 교육개혁, 특히 낭시 대학이 취한 교육방침의 변화라는 외적 요인과 비달 사진의 내적 동기가 결합되어 지리학자로서의 길을 걷게 되었다.한편 낭시 대학 재직시절, 같은 대학의 교수진과 함께 프랑스 여러 지역을 연구하는 한편독일을 자주 왕래하면서 페쉘(O. Peschel), 리히트호펜(F. Richthofen) 등과 친분을 갖게 되었다. 독일지리학계의 지속적인 관심, 특히 라첼이 인류와 인류의 활동에 대한 연구에 생물학적 관찰법을 도입하고, 인문적인 요소를 지리학의 모든 면에 접목시켜 자연 또는 생명을 기초로 해서, 지리학의 통일성을 확립한 점에 크게 감명을 받으면서 비달 자신도 환경론에 대한 연구에 더욱 관심을 쏟으며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하게 된다. 이렇게 하여 바로 비달의 환경가능론적인 연구가 전개된 것이다.* 파리 고등사범학교 재직시절1877년에 마침내 그는 모교인 파리 고등사범학교 교수로 초빙되어 1898년까지 20년간 활동하였다. 처음 부임했을 때 고등사범학교의 지리학과는 불과 3년의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었고, 지리학이라는 학문은 역사학 연구를 위한 보조학문으로서, 전문 과학 이전의 수준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고등사범학교에 부임한 이후 지리학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특히 지리학과의 위상이 격상되기 시작하였다.뒤이어 그는 1989년 지리학을 전공한 교수로는 최초로 소르본 대학의 교수로 임명되어 1909년까지 활약하였으며, 이 시기야말로 비달에게는 지리학자로서 최고의 전성기였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1809년 소르본 대학에 세계 최초의 지리학강좌가 개설되었다. 그러나 약사학자인 힘리(A. Himley)가 지리학강의를 겸하고 있었던 상황이었으며, 1892년 힘리가 사망하자 지리학강좌가 공강으로 되어버렸고 나중에 드전체를 개관할 수 있는 이론적 근거를 제시하는 것이 지리학의 임무임을 강조하고 있다.또한 그는 대학에서 강의한 내용을 종합 정리하여 『여러 국가와 여러 국민 : 프랑스를 둘러싸고 있는』을 집필하였다. 이 책은 독일, 특히 프러시아 시절의 국가적, 국민적 특성의 형성을 역사적이고 지리적인 관점에서 명료하게 밝힌 교과서 형식의 지리서이다. 이 책을 통해서 지리학과 역사학은 서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그의 지리학적 관점이 보다 뚜렷해지고 있다.이 외에도 그의 업적 중에서 높이 평가받는 것을 들라면 단연 지리학 전문지인 《지리학 연보(Annales de Geographie)》를 1891년 ‘드브와’와 함께 창간한 일이었다. 이 학술지야말로 그가 당시 프랑스를 대표하는 진 지리학의 창안자로서 자부심과 긍지를 일깨워 준 전문지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비달을 비롯한 당시의 지리학자들은 여러 편의 논문을 이 잡지에 발표했으며, 특히 지면을 통해 지리학자로서 지리학의 전문적 연구를 망각하고 있는 사람들을 일깨워 지리학 본연의 연구 자세를 촉구하는 역할도 했다. 이 잡지에는 지리학자뿐 아니라 지질학자와 식물학자, 역사학자 등 지역연구에 관심이 있는 모든 뛰어난 인문들의 연구물을 다수 게재하면서 학계에서 인정을 받게 된다. 특히 외국의 지리학계에서도 호평을 받으며, 프랑스 지리학의 명성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이를 계기로 비달 자신도 학계로부터 존경과 신뢰를 크게 얻게 되었다.그밖에도 그는 『지리학 문헌 연감』을 출간하여 끊임없는 연구 활동을 대내외에 과시하고 당시 프랑스를 대표하는 지리학자로서 그의 존재를 확실히 알리게 되었다.* 파리 대학시절과 인생의 황혼기파리 고등사범학교에서 시작한 지리학자로서 활발한 생활은 1898년에 파리 대학 문학부에 지리학을 전공한 최초의 교수로 부임한 것으로 이어졌고, 어느덧 그도 인생의 황혼기를 맞게 되었다.파리 고등사범학교 시절부터 그의 강의는 달변과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수강생들에게 끊임없는 호평을 받았으며, 파리 대학에서명을 밝힌 비달은 마침내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지게 된다.▶지리학을 빛낸 24인의 거장들(p. 132~137)- 비달의 업적* 지역연구의 독보적 존재파리 고등사범학교 시절부터 그가 남겨놓은 업적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지리학 연구에 있어서 대표적인 그의 업적은 지역연구와 환경론에 관한 것이다.지역연구에 관한 그의 대표적인 업적으로 우선 『프랑스 지리(Tableau la Geographie de la France)』를 들 수 있다. 이 책은 프랑스 총서의 제1권으로서, 비달이 프랑스 각지를 구석구석 실제로 답사한 결과를 정리한 것이며, 프랑스의 지리학적 상징물로 알려진 책이다. 교통이 발달한 오늘날에도 한 나라를 구석구석 답사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 책은 프랑스 내에 그의 발자취가 남아 있지 않은 땅이 없을 정도로 세밀한 현지 조사를 통해 저술되었다. 그렇다고 대충 훑어보는 식의 여행이 아니었다. 세밀한 현지조사를 통해 지역의 특징과 그 역사를 현지 토착 언어로 묘사하였으며, 지역을 기술하는데 있어 핵심사항을 놓치지 않고 세밀한 주의를 기울여 경관의 특징을 표현하였다.지리학은 문헌을 이용한 연구만은 아니라는 그의 일관된 학문적 경향은 바로 이러한 실천을 통해 확고하게 굳어진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프랑스라는 국토의 다양성과 이질적인 문화의 교류와 결합을 통한 통일성 등을 자연과 인간적인 측면을 모두 반영하여, 가히 예술성이 느껴질 정도의 훌륭한 문체로 표현했다고 호평을 받았다.이 책은 자연환경의 특징뿐 아니라 자연을 인간화하는 인간의 행위를 집약한 역사적 내용도 포함하였으며, 지역은 지질적인 여러 요소들의 접촉과 교류에 의해서 형성되었다고 하는 그의 유기체론적 사상을 잘 드러내고 있다.결론적으로 프랑스를 사랑하고, 환경을 인간화하는 사람을 지리학의 최대 인자로 취급한 비달의 인문주의적 사고가 깊고 폭넓게 표현되어 있는 책이다. 이 책이 출판된 이후 당시 지리학자들에게 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들의 호기심도 사로잡아서, 지리학의 관심을 일반인들에게까지 폭넓게 분위기는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비달이 교수로 임명될 당시 두 명의 교수가 더 있었다. 그런데도 비달이 죽을 때까지 30년간 프랑스 전국의 지리학 교수 30~40명이 모두 비달 한사람의 제자였다고 한다. 비달과 함께 교수가 되었던 다른 사람들 밑에는 제자가 없고, 모두 비달 한사람의 제자라는 것이다. 이렇게 프랑스의 지리학파는 학맥과 인맥으로 맺어졌고, 그래서 논쟁이 없는 학계가 되었다. 프랑스 지리학자들은 1960년대까지도 자신들을 비달 학파라고 불렀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비달의 전통에서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없는 것이 프랑스의 지리학계라고 볼 수 있다.비달학파는 촌락 사회경제사, 사회사적 향토사 등 역사적 접근을 추구하여, 프랑스에서는 역사학과 지리학이 구분이 안 될 정도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주로 산업화 이전의 촌락 사회를 연구하였다고 한다.* 프랑스의 지역구분실제로 비달은 1910년 행정적인 면에서 볼 때 프랑스 전 지역을 17개의 지역 단위로 구분해야 된다고 제시하였는데, 이러한 지역구분은 프랑스가 지역계획을 수립하기 위해 1950년에 설정하였던 22개의 경제지역과 거의 일치하는 패턴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그의 방법론은 19세기의 산업혁명을 겪었던 지역들을 연구하는 데는 적합하지 못하였다. 그 자신도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하여 1917년에 저술한 『동부 프랑스』에서는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운하와 철도의 개설로 인해 값싸고 빠른 교통수단과 대량생산방식이 그 지역을 어떻게 재구조화시키고 있는지 고찰하였다. 그는 도시와 그 주변지역 간의 경제적인 상호작용과 교통결절지의 역할이 지리적 패턴을 결정하며, 지역단위의 규모도 확대되어야 함을 인식하였다.-비달의 이론* 환경가능론지리학은 지표면의 현상들을 연구하고 인간과의 관계를 고민하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즉, 크게 봤을 때 자연과 인간 사이의 관계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가를 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관계에 대한 전통적인 생각은 ‘자연 환경이 인간의 삶의 모습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이.
서론그동안 유럽을 포함한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그 어떤 국가에서도 지리학을 중요시하게 여기는 곳이 없었다.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지리학 분야보다는 역사학 분야를 비롯한 다른 분야에 좀 더 관심을 보이고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세계화 시대에 세계 여러 곳을 여행하고 그 지역과 관련된 매체를 접하면서 그 지역이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모른다면 얼마나 우스운 꼴이 되겠는가? 그만큼 지리학은 앞으로 보다 중요한 학문이 될 것이다.그렇다면 어떠한 면에서 지리적 지식이 중요한 것일까? 우선, 급격한 기후 변화는 세계 질서에 심각한 현실적 위협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중국의 경제적 부흥은 새로운 냉전을 불러올 잠재력을 지닌 중국의 정치적 영향력과 군사력 앞에서 무색해졌다. 테러는 더욱 격렬해져서 전 지구적 반란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유럽 통합은 주춤거리고 있으며, 러시아의 민주화는 실패의 길에 서있다. 그리고 세계화 시대에 아프리카의 전망은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더욱 나빠지고 있다.이러한 상황에서 지리적 교양이 국가 안보와 직결되고, 그래서 우리의 빈약한 지리 지식은 점점 경쟁이 치열해져 가는 이 세계에서 심각하고 중대한 결함으로 작용한다. 지리적 통찰은 지정학적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중대한 요소임이 틀림없으며, 문화 영역에서 경제 영역에 이르기까지 여러 분야의 의사 결정을 하는 데 꼭 필요하다.이 책은 지리학 전공분야의 책이 아닌 일반교양서로 봐도 무방할 정도로 세계의 정세에 대해 이해하기 쉽게 풀이해 놓았다.본론* 왜 지리학이 중요한가세계의 정세를 알기 위해 지리학을 공부하기 전에 지리학이란 무엇인가? 지리학이란 ‘땅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한 전반적인 연구’를 하는 학문이다. 이러한 지리학은 인간 세계와 자연 세계를 함께 다룬다. 이러한 면에서 단순한 ‘사회’과학은 아니다. 지리학자들은 빙하 작용, 해안선, 사막의 사구, 석회 동굴, 날씨와 기후, 심지어 동식물에 대해서도 연구한다. 한편 도시 계획에서부터 국가와 지역 간의 경계 구획 등에 대해서도 연구한다하나에 국가 간에 분쟁이 일어나기도 한다.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동해와 독도의 영해 · 영토 문제로 매번 일본과 감정적으로 대립하지 않는가? 고의적으로 국경선을 변경하여 주변 국가들과 분쟁을 일으키는 경우가 적지 않게 나타나고 있다.제대로 된 지도를 제작하고 또 제대로 볼 수 있는 방법을 기르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사로운 오해에서 비롯된 문제가 더욱 큰 문제로 다가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변화하는 지구 환경시대가 지나면서 사람들은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자원, 경관 등을 가만히 두지 못하였다. 어떻게든 개발을 하고 자원을 얻어 상품을 생산을 하고 이익을 만들기에 급급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세태를 반영하여 자연환경은 어떻게 되었는가? 지구온난화가 나타나고 그로 인해 해수면이 올라가고 허리케인 재난과 여름의 폭염이 닥치며 가뭄이 심해지고 사막화가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이러한 변화하는 지구 환경에 지리학은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지리학의 한 분야인 자연지리학은 대륙의 진화에서부터 빙하기의 충격, 기후 변화, 생물지리학에 이르기까지 지구의 시스템을 형성하는 모든 상호작용 메커니즘을 다룬다. 이 장에서는 그 중, 지구라는 행성의 탄생에서 비롯해 생물의 탄생과 진화, 그리고 빙기와 간빙기에 대해서 논하고 있다.환경이라는 것은 인간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이다. 현재는 우리 모두 조금씩 더워지고는 있지만 비교적 안정된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더워지거나 추워진다면 인간은 변화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도태되고 말 것이다. 그만큼 환경은 인간의 삶에 있어 중요한 것이다.이러한 환경을 조사하고 연구하여 변화를 예측하는 것이 바로 지리학이다. 지리학은 지질구조에서부터 지형, 기후 식생 등을 연구하는데, 사실 이러한 분야는 지리학에서만 연구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각 분야별로 연구하고 종합적인 결과를 도출할 수 있는 분야는 지리학뿐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이를 통해서 변화를 예측하고 우리는 그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조금씩 그 변화에 적응해도 높아지지도 않은 형태를 띤다.지난 2세기 간, 특히 20세기 들어 지구 인구가 폭발한 사실은 이제 상식이 되었다. 산업혁명이 시작된 직후인 약 200년 전까지만 해도 지구의 총 인구는 불과 약 9억 명에 불과했다. 이는 현재 인도 한 나라의인구보다도 훨씬 적은 것이다. 1820년 세계 인구는 10억 명이라는 이정표에 도달했고, 이 인구가 다시 두 배로 증가하기까지는 1세기 이상, 정확히11년이 결렸다. 그 다음부터 본격적인 악순환의 소용돌이가 개시되었다. 그로부터 불과 45년 후인 1975년, 20억 명이 40억 명으로 불어났고, 현재의 증가율대로라면 이 숫자는 약 2035년에 다시 두 배로 불어나 80억 명에 이를 것이다.세계를 통상적인 방식으로 부유한 지역과 빈곤한 지역으로 나누었을 때, 부유한 지역보다 빈곤한 지역에서의 인구증가율이 더 높다. 앞으로 그 격차는 더 벌어질 것이다. 이 빈곤한 다수의 주민들은 어디에 거주하게 될 것인가? 오늘날 이미 ‘개발도상’ 지역으로 부상하고 있는 신생 도시들이 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가족관계, 인구 중 젊은 세대의 비율, 기대수명, 취학률과 문자 해득률, 세속적 라이프스타일 등 많은 변수들이 전 세계적으로 변화할 것이다.세계 인구는 출생률에 일부 예측하지 못한 급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20세기 인구 폭발은 결국 안정화로 이어질 것이다. 이것이 지구의 미래에 무엇을 의미할 것인가는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정보에 근거한 추측 범위를 넘어서는 일이다.인구의 분포는 기후 환경과도 연관되어 있다. 앞서 말했듯이 기후가 너무 건조하거나 한랭하면 인간이 살 수 없는 환경이 된다. 그래서 인간은 보다 살기 좋은 환경을 찾아 이주를 하게 되었고, 이 후에 대체적으로 중위도 열대 · 아열대 기후와 온난건조 기후 지대에 정착하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이 현재에 들어서 지역별 인구밀도의 차이를 만들어 낸 원인이 되고 있다. 이러한 자연환경 외에도 종교 · 관습 · 정치 · 전염병 등에 의해 이주를 하게 되고, 인구밀도의 차이가 나타난다. 독주는 계속될 전망이다.그러나 이러한 미국의 독주를 멈출 존재가 등장하였으니 바로 ‘중국’이다. 중국은 4대 문명의 발생지 중 하나로서 유구한 역사를 지닌 국가이며, 그에 따른 찬란한 문화적 유산을 지닌 국가이다. 이러한 중국은 마오쩌둥이 이끄는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공산국가가 되었다. 그 이후 세계무대에 본격적으로 나서지 않았었다. 그러나 공산주의 체제로 인한 국가적 빈곤 및 기아현상이 증가하자 중국은 사회주의 체제는 유지한 체,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 체제를 도입하였다. 이 후 중국은 본격적으로 서구와의 문호를 개방하였다.경제적인 부를 얻게 되면, 그 힘으로 다른 국가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도 커지는 법이다. 문호를 개방한 동시에 중국은 본격적으로 세계무대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빠른 속도로 성장하였다. 그리고 아직 개발도상국가에 머무르고 있긴 하지만, 곧 미국을 앞선 강대국이 될 자질을 갖춘 유일한 국가로 떠오르고 있다.게다가 중국은 영토가 넓고 인구가 많다. 현재 중국의 인구는 약 13역 명 정도로 전체 인류의 5분의 1 이상을 차지하며, 성장률이 감소하고 있는 지금도 매년 900만 명씩을 세계 인구에 새로 보태고 있다. 이런 수치를 접하면 중국 땅이 남김없이 사람으로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고 상상할 수도 있지만 그 반대이다. 중국 인구의 95%는 전체 영토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동부 지방에 집중되어 있으며, 그 동부 영토 중에서도 인구밀도가 희박한 지역이 드넓게 펼쳐져 있다. 이는 서부 영토에 산지가 많고 소수민족이 많아 개척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서부 지역을 개척한 후 드러날 중국의 성장력을 생각하면 두렵기까지 하다.그러나 최근에 들어서 이러한 중국도 주춤하기 시작하였다. 몽골과 티베트와의 사이에서 일어난 영토문제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질타를 받고 있으며, 경제성장도 주춤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전부터 서부 지역에 거주하는 중국 소수민족에 대한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 상황이며, 동남아시아에 이주하여 거주하고 있는 화교들에 대한인해 대립중이고 이로 인해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에,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에 서로 테러를 일으키고 있다.그 밖에도 1997년에는 이집트의 룩소르에서 서구 관광객들을 다수 살해하였고, 1998년에는 케냐의 나이로비와 몸바사에 있는 미국 대사관을 폭파했다. 그리고 1999년 모스크바를 비롯한 몇몇 러시아 도시에서 아파트 건물을 파괴했다. 부시정권 시절의 미국 역시 ‘악의 축’이라든지, 이라크와의 전쟁 등, 이슬람 국가들에 대한 행동과 발언으로 인해 테러를 모면하지 못하였다.한국은 주위 국가들로부터 딱히 원성을 듣게 되는 빌미를 제공한 적이 없었기에 테러에 대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지 않는 국가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최근 계속된 파병으로 인해 대표적인 테러집단인 ‘알카에다’가 우리나라에 경고를 함으로써 테러에 대해 더 이상 안전을 보장받지 못하게 되었다. 이렇듯 점점 테러 위험의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테러리즘에서 반란으로앞서 말했듯이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이 전 세계적으로 가장 활발히 테러를 일으키고 있다.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이 선호하는 몇 가지 지리적 조건과 환경이 있다. 첫째로, 제 기능을 못하거나 실패한 국가는 테러리스트가 침투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제공한다. 무질서를 틈타 테러 세포가 정부 권력을 초월하거나 혹은 정부의 묵인 아래 조직 및 군사 행동을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소말리아 또한 상당히 위태로운 상태에 놓인 실패한 국가이다.둘째로, 테러리스트들은 혼란스러운 대규모 도시를 선호한다. 이런 도시에서는 은폐된 채 익명으로 활동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익명으로 활동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전화, 은행, 모스크, 돈세탁 사업 등의 편의 시설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도시 간의 전화 메시지를 감청하고 송금을 추적하는 일은 가장 효과적인 대테러 전략이지만, 도시 규모가 크고 비공식적일수록 이 일은 어려워진다.셋째로, 테러리스트들은 조직망을 가동하거나 공격을 모의하는 동안 지역 주민과 뒤섞일 수 있는, 거칠고 외딴 벽지의 환경을 선호하기도 한다. 특히었다.
한국촌락의 근간 : 종족 촌락촌락 형성의 주인공 ‘종족 집단’종족이란 자신의 아버지 계통의 남자 중심 혈연 집단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예부터 ‘종 족 집단’이라는 용어를 일반적으로 사용해 왔다. 종족 집단이 형성한 촌락을 지칭함에 있어서도 ‘종족 촌락’이라고 한다. 한국의 촌락 지역에는 종가와 종족 촌락을 비롯한 종족 집단과 관련된 경관, 장소, 영역 등이 무수하게 분포한다. 일제 강점기 조사에 따르면 한국 촌락의 1/3정도가 종족 촌락으로 밝혀졌는데, 이는 종족 촌락이 한국 촌락의 근간이 된다는 점을 말해준다.종족 촌락은 언제, 어떤 배경에서 등장했는가?종족 집단의 형성과 조직은 14~17세기에 활발했다. 고려 말에서 조선 초, 당쟁이 극심했던 시기, 왜란과 호란과 같은 전란기는 인구 이동을 초래하였고 종족 촌락을 형성하였다.종적 촌락이 발생하는 장소는 높은 지위에 올랐던 조상의 출신지인 경우가 있다. 이는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하나는 정치적 현달이 마을 단위의 토지 확보를 가능하게 해주는 요인이라는 점, 다른 하나는 정치적 현달과 토지 확보를 이루어낸 인물이 종족 집단을 마을 단위로 거주할 수 있도록 한 정신적 구심점이 된다.종족 촌락의 입지는 종족이라는 집단적 시야에서 상징적이고 의미 있는 장소들에 해당한다. 본관지나 새롭게 마련된 근거지가 그러하다. 본관지에서는 토착 세력임을 과시하려는 의도가, 새로운 근거지에서는 집단 거주와 현달한 조상을 매개로 하여 존재를 부각시킴으로써 모사회에 적응하기 위한 목적이 내포되어 있다.촌락의 공간구성1) 풍수 사상을 기반으로 한 마을 입지와 집단 권력의 정당화유력한 종족 마을은 풍수지리적으로 명당이라 불리는 장소를 차지하고 있다. 배산임수의 배치를 행한다. 촌락 전면의 들판은 마을의 생산기반이 되고, 배후의 산지는 방풍 기능 등 여러 가능을 한다.2) 마을 높은 곳에 위치하며 최고 권위자로 군림하는 종가종족 촌락에서 종가는 공간적, 정치·사회적으로 권력의 핵심에 해당한다. 이러한 배경으로 종가는 풍수지리적 측면에서 기가 용출하는 지점에 자리 잡게 된다. 마을을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도록 고도가 높은 장소에 위치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종가가 갖는 높은 사회적 지위를 공간적으로 각인하기 위한 의도가 숨어 있다.3)종가의 배후에 자리하며 권력의 근원이 되어주는 사당과 선조 묘역종가의 배후에는 조상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이 위치하고 그 뒤로는 선조 묘역이 배열된다. 보통 마을 뒤의 주산에 선조 묘역이 조성되는데, 묘소가 명당에 자리해야만 조상과 후손이 서로 기가 통하여 자손이 부흥하다고 간주되기 때문에 종족 촌락 일대에서 가장 의미 있는 공간에 마련되기도 한다.경관이 내포한 의미와 전략1) 마을의 정신적 지주를 모시는 경관 : 재실과 사우종가를 비롯한 양반가에서는 집 뒤편의 한쪽에 사당을 마련해 두고 정기적으로 직계 조상을 제사지낸다. 그 조상이 크게 현달한 경우, 지역 사회 차원에서 그를 제사지내기도 하는데 그의 위패를 모셔놓은 건물이 바로 사우이다. 이는 나중에 서원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사우는 정치·사회적 관계를 반영하고 집단적 계보 의식을 자극시키는 상징 경관임을 알 수 있다.재실은 종족 집단의 중시조나 파시조를 제사지내기 위한 건물을 말한다. 재실은 보통 그의 묘소 앞 근처에 건립되며 선산이나 위토 부지에 입지하는 것이 보통이다. 묘소를 지켜주는 묘지기 혹은 산지기는 제사를 준비하는데, 재실을 통한 제사는 종가의 역할과 권위를 부각시켜주며, 종가는 종족 촌락을 유지시키는 매우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재실은 종족 집단의 결집을 강화하는 기능과 함께 집단 정체성을 상기시키는 장소이기도 하다.2) 권력을 과시하는 경관 : 정려와 신도비정려란 국가가 충신, 효자, 열녀를 표창하기 위하여 해당 인물의 출신지에 세운 정문을 말한다. 정려는 집의 대문에 세워지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의 경우 마을 입구에 건립함으로서 국가 수준에서의 표창 사실을 과시하는 동시에 마을 영역의 경계를 표시하게 된다.신도비는 종2품 이상의 관직을 역임한 사람에게 세워진 것이 원칙이다. 신도란 고관의 죽은 혼령을 신령으로 간주하여 그의 무덤으로 가는 길이라는 뜻인데, 이런 의미에서 신도비 역시 무덤으로부터 다소 떨어져 무덤으로 가는 길의 초임에 세워지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신도비는 종족 집단의 권력을 과시하는 경관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종족 촌락의 입구에 세워져 주변 마을과 자신들의 경계를 표시하는 한편 지역 사회의 종적 집단 간 위계질서를 세우는 데에도 기능을 하게 된다.
1. 서론인간은 기원전 그 이전부터 완벽하진 않지만 도시를 형성하고, 그 속에서 살아왔다. 그리고 우리는 앞선 세대가 만들어놓은 도시를 연구하고, 그 도시 속에서 살아감으로써 도시 속에서 발생하는 많은 문제들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시대별로 분명 다르다. 고대 도시의 시민들은 아직 사람들끼리 사회를 이루고 살아가는데 필요한 기본적인 개념이 부족하였기 때문에 치안과 같은 그 시대의 사회에 전반적으로 지켜져야 할 사항들이 형성되지 않아, 그것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고대도시는 관개시설이 지금처럼 체계적이지 못해, 가뭄이 발생하면 농사를 짓지 못해 굶어죽는 이들도 많았다. 그리고 중세 도시에서는 상업이 발달해 길드에 의한 독점과 같은 경제적 문제가 심각했을 것이다. 이처럼 시대별로 도시가 안고 있는 문제는 다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현재 살아가고 있는 현대도시는 과연 어떤 문제를 안고 있을까?2. 본론현대도시의 문제점은 ‘도시의 과밀화 현상’과 그로 인한 ‘교외화(suburbanisation)현상’일 것이다. 모든 사회적 기능이 도시에 집중됨으로써 발생하는 과밀화 현상은 이제 손쓸 수 없을 정도로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교외화 그 자체는 문제가 안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이 한 공간에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발전할 경우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지금부터 우리나라의 수도권의 도시의 과밀화 현상과 교외화 현상, 그리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1) 수도권과밀화 현상으로 인한 여러 문제점수도권은 서울특별시, 인천광역시, 경기도를 포괄하는 지역이다. 최근에는 교통의 발달로 접근이 더욱 용이해진 충청지역까지 수도권으로 포함하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수도권은 수도가 지니고 있는 여러 문화 ? 사회 ? 경제 및 기타 중추 관리기능에 의존하여 형성된 기능지역이다. 조선이라는 나라가 서울에 도읍을 정한 이래 서울과 연계된 수도권에는 정부기관, 주요 은행과 오피스, 신문사와 방송국, 주요 체인상점, 학교, 한마디로 한 도시의 다운타운과 같이 중심가 역할을 한다.연도수도권강원권충청권전라권경상권제주권1970~19752,179,039-247,262-560,423-954,589-325,213-24,8101976~19801,822,674-213,162-501,579-825,132-114,269-31,2741981~19851,724,523-167,573-451,088-673,919-342,922-14,1211986~19901,520,296-236,683-315,508-691,659-252,387-5,2561991~1995736,091-115,28221,087-361,955-276,718-2191996~1999220,347-2,77092,667-92,831-218,4331024* 전국의 권역별 순전입 인구의 변화 - 기획재정부 조사통계국, 인구이동통계연보-이렇듯 나라의 행정 ? 문화 ? 경제 등과 같은 기능이 수도권에 집중하자 수도권은 접근성이 뛰어난 공간이 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인구까지 수도권에 집중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1970~95년의 기간 중 우리나라 총전입인구의 53.1%가 수도권으로 유입되었다.위 표에서 보다시피, 기타 지역에서는 인구가 감소하는 것을 볼 수 있지만 수도권에서는 변함없이 인구가 유입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렇게 인구가 한군데에 집중되면 어떤 문제점이 나타날까?? 환경문제인구의 서울과 수도권으로의 집중은 주민의 삶의 질을 크게 저하시키고 있다. 서울은 매일 503만 톤의 물과 3만 9,000톤의 연료, 4만 4,000메가와트의 전력을 소비하고, 그 부산물로 대기오염물질 2,400톤, 수질오염물질 442만 톤, 생활폐기물 1만 6,000톤을 배출해 내고 있다. 수도권 전체로 보면 용수 및 각종 에너지 소비에 있어서 전국 소비량의 55%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로 인한 오염물질의 배출량은 전국의 1/3에 달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서울과 수도권의 대기, 물, 토양은 심하게 오염되고 있다.전국과 수도권의 대기오염물질배출량을 비교하면, 전국의 주요 지역에 오존주의보가 자주 발령되고 있다. 급증하는 교통량으로 인한 교통정체와 혼잡이 그 주범으로 밝혀지고 있다.수질오염 역시 심각하다. 수도권 주민의 식수원인 팔당호도 1급수를 초과하고 있으며 계속 수질이 악화되고 있다. 팔당호의 수질오염은 주변지역의 농업 ? 축산 폐수와 생활하수가 제대로 처리되지 못한 채 강과 호수로 유입되기 때문이다. 1990~97년 동안 팔당호의 수질을 악화시키는 가축수가 50% 이상 증가했으며, 축산농가의 영세성으로 분뇨처리시설을 제대로 갖추고 있지 못하다. 그리고 수도권의 생활폐기물 역시 무시할 게 못된다. 전국 면적의 12%에 불과한 수도권에서 전국 생활폐기물의 절반이 집중되어 배출되고 있다.수도권에는 인구와 기능이 집중되어 있어서 환경오염도 심화되었고 삶의 질도 열악한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각종 환경문제들이 연이어 표출되고 있으며, 막대한 환경투자와 시설확충에도 불구하고 환경개선에 큰 효과를 보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그리고 수도권의 에너지 소비구조 및 산업구조 역시 지구온난화와 같은 국제환경문제에 취약한 구조로 진행되어 문제를 만들고 있다.? 교통문제사람이 많을수록 그 사람들이 타고 다니는 자동차 수도 증가한다. 그럴수록 교통체증 역시 심해진다. 우리나라 전체 차량의 47.7% 이상이 수도권에 집중해 있다고 한다. 급속한 차량증가와는 달리 도로시설의 공급은 연평균 1%에도 못 미쳐, 현재 서울의 도로율은 매우 낮은 수준이다. 그 결과 평균주행속도가 낮아 서울에 근무하는 직장인의 대부분이 1시간 이상을 통근에 소요하고 있는 실정이다.대중교통 역시 문제가 심각하다. 서울과 경기도 간의 경계를 넘어 운영하는 버스의 경우도 급증하는 수도권지역의 교통수요를 감당하지 못해 첨두시간대에는 일부 노선의 경우 차내 혼잡도가 200%를 넘으며, 목적지까지 한 번에 도착하지 못하여 다른 교통수단이나 다른 버스노선으로 환승해야 하는 불편 등이 있다. 지하철의 경우 신속하고 정확한 수송수단이라는 장점이 있어서 이용승객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대수의 증가에 비해 투자재원의 부족과 용지확보의 어려움 등으로 인한 주차시설 공급의 절대부족에 있다. 이러한 주차문제의 특징은 도심과 주거지, 그리고 시간대에 관계없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도심에서는 주차공간의 부족으로 자가용 이용이 크게 제한받고 불법주차 차량대수가 날로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불법주차는 이면도로와 가로망의 교통체증으로 연결되어 전반적인 교통여건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교통사고율 역시 날마다 증가하고 있다. 수도권은 우리나라 전체 교통사고 발생건수의 38%를 차지하고 있다. 수도권 내에서도 서울은 발생건수가 감소하고 있지만, 차량이 급증하고 서울에 비해 도로요건이 열악한 주변 인천 경기지역은 교통사고 발생이 계속 증가하여 1995년에는 교통사고율이 서울을 능가하였다.우리나라는 집집마다 자동차 한 대씩은 꼭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자동차에 비해 여전히 낮은 도로율, 그로 인한 물류비의 증가, 배기가스에 의한 환경파괴 등은 시급히 해결해야 하는 사회문제로 남아 있다.? 주택문제열악한 주택사정은 서울의 경우 더욱 극심하다. 서울시에서 자기 집을 가지고 있는 가구는 다섯 집 중 두 가구 꼴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전세 혹은 월세 거주자인 것이다. 주택문제는 여러 가지 사유에 의해 자기 집을 갖지 못하는 가구가 늘어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주택보급상황은 대도시지역에서 더욱 저조하다. 주택부족은 집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주택을 공급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더군다나 핵가족화의 빠른 진행과 독신가구의 수가 늘어남에 따라 집을 필요로 하는 가구가 급속히 늘어나고 있어 주택부족양상은 가속화되고 있는 실정이다.주택문제는 왜 야기되는 것일까? 거시적으로 볼 때 많은 사람과 산업 활동이 한 군데로 집중하기 때문에 제기되는 문제이다. 물론 이렇게 집중하는 사람과 산업 활동을 수용할 수 있는 집과 땅과 돈이 있다면 주택문제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산업구조의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산업구조의 비농업화는 곧바로 농촌인구를 도시로난 문제점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이러한 문제들이 계속 심해지면서 도시는 과포화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 도시의 집중화를 감소시키는 새로운 현상이 나타났는데 그것이 바로 교외화 현상(suburbanisation)이다. 교외화 현상이란 도시적 시설이나 기능들이 도시로부터 도시주변 지역으로 확산되어 나아가는 과정을 말한다.수도권의 교외화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1970년 이후 수도권에서는 새로운 공간변화가 나타나는데 그것이 바로 인구 ? 공업 ? 소비기능 등이 중심도시인 서울로부터 점점 흩어지는 교외화 현상이다. 도시가 커지면 점차 거주, 공업, 상업 등의 중심도시기능은 도시외곽지역 혹은 교외지역으로 분산된다. 그 중 규모가 큰 도시나 주변지역은 소규모의 인구밀집지역이 분산형으로 이루어진다. 교외화가 전개되는 배경에는 중심도시의 노후화가 한 몫을 차지한다. 왜냐하면 주택, 공장, 오피스 등이 노후하게 되면, 이것을 개수해서 사용해야 하는데 보수비용이 엄청나게 들며 새로운 내용을 부가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중심도시의 노후한 주택에는 저소득층이 이주해 오고 중산층은 다시 교외지역으로 거주지를 이전하는 과정이 나타난다.교외화의 개념은 두 가지로 정의할 수 있다. 하나는 협의적 의미의 교외화, 곧 거주교외화의 개념이다. 거주교외화란 중심도시의 거주기능이 중심도시 주변지역에 원심적으로 확대하는 현상과 그 과정을 의미한다. 그리고 거주교외화가 진행되는 지역을 거주교외지역으로 정의할 수 있다. 거주교외지역 주민은 중심도시로의 통근 ? 통학이 일반화되어 있고, 전에 중심도시에 거주하다가 이주해 와 중심도시로 통근하는 사람들이 절대다수를 이룬다. 거주교외지역에서는 인구가 증가하여 새로운 주택이 건설되며, 비농업적 토지이용, 특히 거주용도로의 토지이용이 활발히 전개된다.다른 하나는 광의적 의미로 교외화로 중심도시의 거주기능 이외의 다른 도시적 기능이 중심도시 주변지역에 원심적으로 확대되어 새로운 교외지역이 형성되는 현상과 과정을 의미한다. 중심도시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