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은 수업인데 ‘좋은’이라는 수식이 붙는 수업을 만들기까지는 엄청난 연구와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좋은 수업이 무엇인가 생각해보기 전에, 개념 정리를 해보면 이러합니다. ‘좋다 = 대상의 성질이나 내용 따위가 보통 이상의 수준이어서 만족 할만하다.’입니다. 즉, 교사와 학생에게 ‘좋은 수업’이란, 서로가 만족할 만한 정도의 수업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초등학교부터 지금까지 정말 많은 수업들을 들어왔습니다. 학교, 방과후, 학원 등 여러 장소와 다양한 방법으로 수업을 들어왔고, 지금도 듣고 있는 학생의 입장입니다. 그러나, 교생 실습을 해보고, 학원 아르바이트와 진로강사를 하며 조금씩 성장하고 있는 교사의 입장이기도 합니다. 제가 경험했던 내용들을 토대로, 무엇이 좋은 수업 즉 만족할 만한 정도의 수업인 것 같은지, 저의 의견을 써내려가 보겠습니다.첫 번째, 제가 고등학교 때 역사 선생님께서 해주셨던 수업방법입니다. 항상 이론수업을 하시기 전 학생들이 미리 공부할 수 있도록, 한 단원마다 발표자를 세우셨습니다. 그 발표자는 자신이 만든 학습지와 함께 학습목표에 맞추어 PPT 발표를 했습니다. 이후에는 선생님께서 랜덤으로 반 친구들에게 질문을 하시며, 그 학생이 틀리면 전체 감점, 맞추면 전체 가산점을 주시는 방식으로 진행하셨습니다. 그러다 보니 발표하는 학생은 더 책임감을 가지고 준비를 해왔고, 듣는 학생들도 수업에 집중을 하여 수업효과의 극대화가 되었습니다. 이후에 그 내용을 토대로 이론 수업을 진행하셨고, 학생들은 그 내용이 미리 숙지된 상태에서 설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저는 좋은 수업이란, 학습자가 방관자의 입장이 아닌 참여자의 입장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능동적인 참여를 할 수 있도록 흥미를 일깨워주고 집중할 수 있게 해주는 교사의 역량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두 번째, 제가 고등학교 때 국어 선생님께서 해주셨던 수업방법입니다. 이론보다는 독해방법이 더 중요했던 비문학 파트를 공부할 때의 일입니다. 선생님께서는 반마다 각 팀을 만들어 매일 독해방법과 풀이과정을 공유하게 하고 토론해보게 하셨습니다. 많은 팀이 있었음에도 모두가 끝까지 공부를 할 수 있도록 개인의 시간(아침자습, 점심시간, 저녁시간, 야자시간)을 쪼개가면서까지 틈틈이 도움을 주셨습니다. 또한, 늘 학생들에게도 배울 점이 있다고 하시며 칭찬해주시기도 했습니다. 이런 방식의 수업을 들은 저는 겸손의 자세를 배울 수 있었고, 선생님의 사랑과 관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문제를 왜 풀어야 하는 가’ 아닌, ‘어떻게 풀어야 하는 가’ 에 대한 방법을 연구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저는 좋은 수업이란, 교사와 학생 사이의 관심과 사랑이 가득했을 때, 즉 신뢰(정서적 안정)가 뒷받침 되었을 때 가장 효과적으로 나타난다고 생각합니다.
tip!엄 교수님께서는 먼저 단어의 의미를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분이세요.그래서 항상 시험 문제의 시작인 10문제 정도는 단어관련해서 나옵니다.그리고 서술형은 대부분 거의 끝에 배우는 과 관련해서 나옵니다.이번 서술형을 쓰실 때는 그 시대적 상황과 작가가 처한 상황과 연관해서 쓰시면 좋아요.#유형1 / 단어의 의미 쓰기 / 옆에 한자까지 같이 써놓으심.행권가전명혼우언방각본전기수도청도설술이부작서쾌환몽패관#유형2 / 객관식 또는 주관식?방각소설이 나타나지 않은 지역은?(나타난 지역: 나주, 경주, 안성, 전주)?조동일의 4분법 갈래론에서 ‘서정’에 해당하는 것은?(작품 외적 세계의 개입이 없는 세계의 자아와?세책소설의 형태적 특징 중 옳지 않은 것은??최초의 소설이라고 불린 작품은 다.?수이전은 ( )편저, ( )증보,?한국 고전 소설 가운데 가장 먼저 나타난 양식은 이다.?작자 논란이 없는 소설은 무엇인가요? (이때 답은 홍길동전이었음)
2022--------------------------------------------------------------------[시험 범위]: 월명사와 최치원, 김부식과 일연[문제유형 및 배점]- 단어의 의미와 개념쓰기 9문제 (각 3점)- O,X 5문제 (각 3점)- 빈칸채우기 6문제 (각 3점)- 서술형 3문제 (10점, 10점, 20점)--------------------------------------------------------------------* 단어의 의미와 개념쓰기 (각3점)_ 2문제는 기억이 나지 않아 빈칸인 점 양해바랍니다.1. 범패2. 필경3. 향찰4. 기전체5. 변통6. 신풍7. 응신8.9.* O.X 표시 (각3점) _1문제는 기억이 나지 않아 빈칸인 점 양해바랍니다.10. 향가는 갈수록 서정성이 증가하였다. (o)11. 최치원과 최행귀는 향찰 표기를 지향하였다 (x)12. 화랑세기는 김대문이 저술하였다. (o)13. 고려전기 향가는 점점 소퇴했다 (o)14.*빈칸채우기 (각3점)_1문제는 기억이 나지 않아 빈칸인 점 양해바랍니다.15.16. 김현감호는 에 실려있었던 작품이다.17. 을 진압하고 김부식은 삼국사기를 편찬하였다.18. 는 향가로 만들어진 것이며, 화랑의 정신적 지도자, 불교 승려를 의미한다.19. 육두품이 오를 수 있는 관직 이름은 이다.20. 도미처의 도미는 나라 사람이다.*서술형
고전비평론수업내용 과제학교명 :교수님 :학 과 :학 번 :성 명 :< 요약 >3. 두 시대의 충돌과 균열 : 이인로 VS 이규보① 깨진 술판 혹은 중세 문학사의 한 장면② 죽림의 냉소와 광객의 풍자③ 용사인가 신의인가④ 탁물우의인가, 우흥촉물인가⑤ 두 권의 시화집, 혹은 두 시대의 만남4. 건국이 만들어낸 역사의 두 갈래 길 : 정도전 VS 권근① 항거와 복종 사이② 정도전, 죽음으로 혁명을 완성한 사나이③ 권근, 사대의 문학 혹은 문치의 중세적 구현(④ 라이벌의 탄생)4. 사대부 문인의 두 초상 : 서거정 VS 김시습① 시대의 격랑이 만들어낸 인물② 천재적인 재능으로 이름을 떨치다③ 떠돌아다니는 삶과 만날 기약 없는 이별④ 넉넉함과 치열함의 시세계⑤ 웃음과 회락함의 지향, 현실에 대한 울분과 분노⑥ 잊혀지는 자, 되살아나는 자3. 두 시대의 충돌과 균열: 이인로와 이규보① 깨진 술판 혹은 중세 문학사의 한 장면이규보가 죽림고회(이담지)의 제안을 거절하며 지은 시② 죽림의 냉소와 광객의 풍자죽림고회 : 해좌칠현. 중국 ‘죽림칠현’을 모방.오세재 이인로 임충 황보항 조통 함순 이담지죽림칠현 : 강좌칠현. 위 진 교체기에 정치에 참여하지 않고 죽림에 모여거문고 술을 즐기며 청담으로 세월을 보냈으며 노장 사상을 신봉함.완적 혜강 산도 상수 유령 완함 왕융죽림고회는 죽림칠현과 마찬가지로 현실에 대한철저한 부정의 정신을 갖지 못하고 무신란 이전을 동경하며 출사를 욕망이인로 : 문종에서 인종까지 7대, 80년동안 권력을 장악한 (고려 전기 왕가의 외척) 경원 이씨 문벌귀족. 19세(1170년) 때 무신란이 일어나자 불문에 들어갔다가 환속함. 29세(1180년)에 과거에서 장원을 하여 벼슬에 나감. 개경을 향한 욕망을 가장 먼저 실현한 인물이규보 : 신흥사대부, 중소지주. 부친 이윤수가 호부낭중으로 개경에 경제적 기반 확보, 기존 문벌 귀족에 대한 적대 의식.이인로와 이규보의 관계를 설명하는 가장 흔한 방법은문벌귀족과 신흥사대부라는 사회집단의 관계를 통해 살피는 것이다.무있는 단어.신의 : 옛사람의 표현을 되풀이하기보다 새로운 착상과 표현을 중시하는 창작 방식.구귀족의 후예인 이인로는 용사 선호, 자신의 말처럼 자연스롭게 흘러나오는 상태 지향신흥사대부인 이규보는 신의를 선호, 답습을 부정하거나 혹은 답습을 넘어 생경하더라도 새로운 뜻을 표현하려 함.최자의 에서 ‘신의’에 대하여 언급“문을 닫고서 황정견과 소식 두 사람의 시문집을 읽고 난 다음에야 말이 굳세고 운이 맑은 소리를 내어 시작의 삼매를 얻었다.”“나는 고인의 말을 답습하지 않고 신의를 창출했다.”* 용사와 신의에 대한 학자들의 견해조종업 : 이인로는 용사론, 이규보는 신의론최신호 : 이인로는 형식 중심, 이규보는 내용 중심전형대 : 이인로는 기교주의, 이규보는 달의 주의용사는 수사론, 신의는 본질론민병수 : 용사는 표현기교, 시론의 대상이 아님.신의는 진부한 비유를 거부하는 시작법의 교양둘을 시론의 차원에서 파악한 기존 논의 자체가 문제.신의를 처음 말한 이는 이인로, 이를 최자가 즐겨씀.이규보는 신의를 말하지 않아쓰며, 신어를 말함.조현설(저자) : 이인로와 이규보의 용사와 신의의 놀란은 그것들이 창장 방법이라는 것을 몰라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문학관의 문제.당시 문단은 송나라 시 문학의 영향 아래 있었고 소식의 시가 전범으로 회자되고 있었는데.이규보는 당대의 시풍에 대해 탐탁지 않게 여김.-재귀영거체 : 옛 사람의 이름을 많이 쓰는 체-졸도이금체 : 옛사람의 좋은 뜻을 훔쳐서 제 것으로 삼아도 안되지만훔친 것마저 좋지 못한 체-만노불승체 : 강운을 근거없이 내어 쓰는 체-음주과량체 : 재주를 생각하지 않고 운자를 정도에 지나치게 내는 체-설갱도맹체 : 험한 글자를 쓰기 좋아하여 사람이 의혹되기 쉽게하는 체-강인종기체 : 말이 순조롭지 못한데 남에게 그것을 쓰게 하는 체-촌부회담체 : 보통 말을 많이 쓰는 체-능범존귀체 : 공자와 맹자를 들먹이기 좋아하는 체-낭유만전체 : 거친 말을 다듬지 않는 체이인로 : 소식 시의 운자를 쓴 시 및 소식의 시를 본받은를 부정하게 만듦으로써,물을 초월한 추상적 원리로사의 심을 설정하는 ‘심의 철학’을 부정기심: 기교를 부리고 속이는 마음.사사로운 목적을 위해 이해득실을 따지고 교묘하게 꾸미는 마음.⑤ 두 권의 시화집, 혹은 두 시대의 만남이인로의 파한집 : 한가로움. 문제의식의 상실, 과거에 대한 동경. 마음의 병을 치유하기 위한 목적. 현실의 모순에 대한 문제 제기 없음.이규보의 백운소설 : 이규보의 자찬은 아니며, 조선 중기에 동국이상국집에서 시와 관련된 부분 선별. 시 비평에 무게를 둠. 중국시에 대한 시적 자의식을지문덕, 진덕여왕, 최치원 등 중국에도 잘 알려져 있고 중국에 비해 손색이 없는 윌나라 인물들의 시에 대한 비평으로 꾸미고 있는데서 그런 자의식이 보인다.4. 건국이 만들어낸 역사의 두 갈래의 길: 정도전과 권근허균의 ‘정도전권근론’ = 허균이 정도전과 권근을 비교하면서 쓴 글 중의 일부이다.정도전과 권근 모두를 부정적으로 보되, 정도전을 더욱 부정적으로 평가하였다.정도전과 권근: 이색의 문하에서 공부, 비슷한 시기 고려왕조에서 벼슬,현실의 모순에 개혁적인 성향, 여말선초라는 역사적 전환기의 사람들,정도전은 제명에 죽지 못하고, 권근은 천수를 누렸다.① 항거와 복종 사이표전문제: 명나라에서 조선이 보내온 표전에 문제가 있다며, 정도전을 보내라고 요구한다.엄밀히 따지면 그 글을 지은 사람은 당시 대사성인 정탁이었고,정총과 권근이 교정한 것이 었으나, 명나라는 정도전을 요구했다.정도전이 가지 않자, 명나라는 계속 소환을 요구했다.정도전을 중심으로 요동지역을 공략하자는 의견이 구체화 된 것도 바로 이듬해부터이다.이처럼 요동 정벌을 계획하기도 하였으나, 얼마 후 1차 왕자의 난 때 죽임을 당한다.요동 공략 정책: 조준 계열이 강하게 반대했는데도 비교적 강력하게 추진 -> 정도전과 조준이 사이 악화이 이유에 대해, 명나라에 대한 사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보는 관점과국내의 사병혁파 문제를 해결하고 그 명분을 쌓기 위해서 취한 행동으로 보는 관점이 있다.1차 왕자의 난:왕자의 난 때 이방원에게 죽임을 당함.‘조선경국전’, ‘경제문감’ 등 저술, 문집으로는 ‘삼종집’이 있음.나주 귀양살이:하층민의 삶 목도, 민중의 힘 발견, 지식인의 역사적 책무와 자기반성,‘답전부’,‘ 금남야인’, ‘가난’등금남야인: 선비에 대한 통념을 제시한 후 금남에 사는 시골사람을 내세워 그것을 통박함.가난: 아내의 편지에 답장하는 형식을 취하여, 자신의 뜻을 드러낸다.선비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 자세를 진술함으로써 답장을 마련하다.“당신이 집안을 근심하듯, 선비는 나라를 근심해야 하는 것이며,성패나 영욕, 득실은 하늘이 주는 것이니 인간의 영역이 아니라는 것이다.”악장: 조선 건국의 합리성, 태조 이성계의 영웅적 활약구 왕조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왕조를 세운 주도세력으로 겪은 저간의 체험을새로운 왕조의 수립을 노래하고 후세에 전하기 위한 악장에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태조 이성계의 영웅적 모습 형상화로 인해, 새로운 왕조의 탄생이비범한 능력과 민심의 회구라는 측면에 힘입어 이루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드러냈다.「문덕곡」: 개언로·보공신·정경계·정예악의 4장(章).「납씨가」: 고려 공민왕 때 침입한 원(元)의 나하추를 태조가 물리친 공을 찬양.「궁수분」: 태조가 왜구를 물리친 공을 찬양동적, 남성적인 어조, 역종적 모습 묘사, 우리 군사의 힘찬 모습,계속되는 비교로 긴박함과 활동적인 모습을 보여줌.「정동방곡」: 위화도회군을 찬양정도전의 덕: 무와 불가분의 관계, 패도적 경향의 가능성③ 권근, 사대의 문학 혹은 문치의 중세적 구현권근: 본관 안동, 대대로 명현을 배출한 명문가 출신,공민왕 때 과거 급제조선 건구 후 태조의 부름을 받고 출사하여 예문관대학사를 지냄.명 태조의 명으로 응제시 24수 지음‘입학도설’, ‘오경천견록’,등의 저술이 있으며, 문집으로 ‘양촌집’이 있음.정도전 사후, 정도전의 직임을 이어받으면서정당문학, 참찬문하부사, 대사헌 등을 지내며 정치적 역량 발휘악장: 문집 ‘양촌집’에 악장으로 창장된 작품인 ‘화악시’, ‘천감’, ‘화산’, ‘신묘’,국공신이나 친척들이 그 나라를 다스리게 해서 살게 했던 중국.그러나 가운데 있는 나라가 천자의 나라인데,삼대가 보면은 스토리가 똑같다. 하상주하나라의 시조가 위였는데 쭉 가다가 걸이라는 폭군이 나왔다.하나라가 천자의 나라인데 지후국 중에 상이라는 나라의 탕이라는 사람이신하였는데 제후들과 함께 하나라를 치고 자기가 왕이 되었다.그러다가 주라는 폭군이 있었는데, 같은 역사가 반복되었다.문왕(아버지) 이후, 무왕(아들)이 주나라의 초대 천자가 되었다.은나라에서 주 라는 폭군이 있었는데, 강태공이 무왕을 도왔다.백이와 숙제는 은나라와 주나라 교체기에 작은 나라들이 있었는데옛 이름에는 형제의 이름에 백종숙계라고 해서 이름을 지었다. 형제간의 서열백이와 숙제: 고죽국의 두 왕자, 부친이 죽자 임금의 자리를 사양하고 떠남.주 무왕이 은나라 주왕을 정벌하러 갈때에 말고삐를 붙잡고 간하였음.이후 주나라의 곡식을 먹을 수 없다고 하면서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를 캐어 먹다가 굶어 죽음.대제학은 지금에는 공무험 시험과 같다.자기의 글의 스타일, 글에 대한 관념과 문학관을 과거를 보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준다.서거정이 명예롭게 여기는 대제학을 23년이나 했다.김시습은 어렸을 때, 세종대왕에게 불려가 “훗날 크게쓰일 것이다.”라는 소리를 들었다.고사에서 보면은, 위전조어도 늘그막에 용맹스런 장수가 되었다는 것은무왕이 신하로서 주를 쳤다. 이는 세조가 원래 신하였는데,단종을 물러나게 하고 자신이 왕이 된 것을 비유할 수 있고,굶어죽은 백이 숙제는 사육신, 생육신 같은 사람들을 비유한 것이다.계유정난: 수양대군이 단종 1년에 김종서와 황보인 등을 죽이고 정권을 장악한 사건,37명이 정난공신이 됨.세조의 왕위 찬탈 (1455): 단종이 수양대군에게 양위하고 상왕이 됨.1453년에 수양대군이 정권을 잡으면서, 정승들과 안평대군을 제거하였다.단종을 죽음으로 몰아서, 세조의 세력들이 자리를 잡았다.병자사화: 사육신사건, 박팽년, 성삼문, 이개, 하위지, 유성원, 유응 부 등이 명나라 사신을 창덕구에다.
고전비평론수업내용 과제학교명 :교수님 :학 과 :학 번 :성 명 :< 요약 >1. 세상과 불화한 두 ‘천재’의 갈림길 / 월명사 VS 최치원① 향가의 최고수와 한시의 뛰어난 작가② 비정한 현실과 불화한 천재들의 삶③ 고대에서 중세로 가는 갈림길④ 후예들의 어울림과 엇갈림⑤ 나, 너 그리고 우리2. 삼국의 여성을 읽는 두 ‘남성’의 시각 / 김부식 VS 일연① 삼국의 역사를 전해주는 진정한 맞수② 진부한 상식, 또는 확인③ 김부식, 가족의 이름으로 여성을 보다④ 불교적 시각에서 음미하려는 일연⑤ 탈주하는 자, 안주하는 자1. 세상 불화한 두 ‘천재’의 갈림길 / 월명사 VS 최치원① 향가의 최고수와 한시의 뛰어난 작가는 왕권, 천자, 군주를 상징한다. 월명사, 충담사, 융천사 등 ‘~사’은 향가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화랑의 정신적 지도자, 불교 승려(국내파)를 의미하기도 한다. 월명사는 실명이 아니기 때문에 어떤 사람인지는 잘 모른다. 융천사는 해성의 재앙을 없앴고, 월명사는 해가 두 개인 재앙을 없앴다고 나와 있기 때문에 천문관, 주술사의 성격을 드러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월명의 도솔가 향찰(“ 오늘~”)을 한시(“용루~”)로 번역시켰으며, 월명사의 덕이 미륵보살을 감동시켰다고 나와 있다. 월명사 향가의 대표작이는 가 있는데, 이는 죽은 누이를 제사지내는 노래이다. 종이돈 - 노잣돈, 불교의 서쪽세계 극락으로 잘 갔다는 의미한다. 무지개 - 지금은 굉장히 좋은 증조지만, 과거에는 재앙을 뜻하였다.삼국사기 신라본기 경덕왕, 땅의 일과 하늘의 일이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경덕왕 때는 14년 때 뿐만 아니라 많은 재앙들이 있었기 때문에 백성들이 얼마나 처참한 삶을 살았는 지 알 수 있다.- 신라 : BC 57~959. 676년 삼국통일[660년 백제 멸망, 688년 고구려 멸망, 676년 나당 전쟁 승리] 56대 992년- 신라 삼대상대 : 혁거세거서간(1) ~ 진덕여왕(28). BC 57~654중대 : 태종무열왕(29) ~ 혜공왕(36). 654~780. 가졌으나, 훗날 소멸되고 진골리 왕이 됨, 육두품~사두품은 일반 귀족이며 육두품은 듣나이라고도 함. 삼두품~일두품은 일반 평민층으로 훗날 소멸.신라는 골품제 사회였고, 최치원은 6두품으로 상층인물이었지만, 신분적 한계를 느낀다. 왕족만 아니었지 높은 편이었고, 6두품은 아찬 올라갈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성공한 삶이었지만, 만족하지 못하고 당나라 유학을 떠나 당 빈공과(외국인을 위한 특별 시험)를 보았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이방인이라는 외로움에 늘 시달렸다. 신라 말기에 최치원이 벼슬을 버렸다. 객관적으로 봤을 땐 상층의 삶을 살았음에도 를 만나지 못했다는 생각이 컸으며, 최치원의 이미지는 불우와 고독의 이미지였다.월명사 : 삼국유사의 기록외에는 알 수 없음, 사천왕사에 살았다는 점을 통해 유추가능사천왕사는 이처럼 신라의 운명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절이다. 문무왕떄 당나라가 침공해 올 것을 대비해 명랑법사가 세운 절이다. 바로 세운 것은 아니다. 간의로 건설하고 679년에 완공을 했다.사천왕사 : 674년에 당나라는, 신라가 도독부를 공격한다는 이유로 50만 대군을 일으켜 신라를 공격하려 함. 명랑법사가 사천왕사 건립을 건의했는데, 시간적 여유가 없자 임시로 건축하고, 679년에 창건한. 관련 기록은 삼국유사 기이 문호왕법민에 보임.백제가 660년에 멸망, 고구려 668년 멸망하여 삼국통일을 676년에 하는데, 당나라 세력이 나가지 않자, 674년에 당나라가 신라 침공. 그 세력을 추출하기 위해 나당 전쟁을 했다. 이때 세운 절이 바로 사천왕사이다. 이 절은 신라로 쳐들어오는 당나라 배 모두를 두 차례나 침몰시키는 법력이 있다.월명사가 사천왕사에 살고 있었다는 것은 그의 사상을 알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월명사가 사천왕사에 거주하는 국가의 안녕을 기원하는 승려, 화랑 집단에 속한 낭도승,월명사가 피리를 불며 달밤에 홀로 거닐었다는 것에서 적막한 삶을 일어낼 수 있음.* 종교적 초월과 현세적 곡독이 담긴 작품도솔가는 국가적 제의에서 불린 의식요인 까닭자기 집단 내부의 ‘동질성’을 확장시켜 나간 과정을 추적할 필요가 있음. 삼국은 중국으로부터 선진문물을 받아들여 중세 봉건국가의 기틀을 마련하였으나 중국과의 변별성을 명확히 인식함. 향(鄕)과 당(唐)의 구분. 신라의 삼국통일이 민족적 동질성 인식에 결정적 역할. 일 통삼한(一統三韓). 민족 의식이 향가 창작의 이념적 기반으로 작용. 고유문자가 없으므로 문학 활동은 구비전승 및 한문(漢文)으로 이루어짐. 우리말과 한문의 언어적 차이를 극복하고 자국어를 표기하는 방법이 7세기 무렵에 최종적으로 완결.일연, 삼국유사, 원효불기 => 우리말과 한문의 언어적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자국어 표기법을 개발하고자 부단히 노력한 것이 보여진다.삼국사기, 열전, 설총 => 향찰 및 이두식 표기로 인해 불완전하게라도 우리 민족의 사상과 감정을 표현 가능하게 됨.향가는 음악과도 불가분의 관계였으며, 향가는 ‘우리의 사유와 정서’를 ‘ 우리의 가락’에 실으려는 탐구를 통해 서정성과 대중성을 획득하였다. 월명사의 피리 역시 당적이 아닌 향적이었기에 감동을 줄 수 있었다.향가의 음악적인 측면도 고려해야 하며, 향가는 민족적 성격을 드러내고 있다.피리라는 것이 깊은 울림을 주는 것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중국의 피리 강적이 아니라,우리 식으로 향토에 맞춘 것이었기 때문에 감동을 줄 수 있었을 것이다.문무왕이 강에 은혜에 감동한다는 절인 감은사를 지어서 외벽을 막으려고 했다.향가의 민족문학적 위상: 왕·귀족·화랑·승려로부터 민중에 이르기까지두터운 향유층을 갖고 있음. 육두품 중심으로 향유된 한시(漢詩)와 뚜렷이 구별됨* 월명사가 서성대던 까닭향가의 성격 및 담당층에 대한 기존 논의1. 임금부터 하층까지 향유한 국민 문학.향가란 임금으로부터 하층민까지 두루 창작하고 불렀기에 국민문학으로 다루어야 한다.2. 임금·화랑·승려 중심의 귀족 문학.향가란 주로 임금, 화랑, 승려와 같은 귀족층에 의해 지어졌으며, 그렇지 않은 경우라고 해도 고도한 문화인 불교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귀족문학으로 다루 주었다. 선종과 구산선문. 선종을 중심으로 하는 교종과 달리 개개인의 수련 같은 것을 중시하는 성향이 있다. 육두품 지식인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게 된다.) 최치원 등 육두품 지식인은 민족어와 그 표기법[향찰]에 대한 열등감을 지니고 있었으며 보편 문어인 한문을 적극적으로 수용. 민족어 시가 향가 위축에 영향. 중세화최치원, 숙위하는 학생을 번국으로 방환해 주기를 주체한 장문 (주천숙위학생환번장_아뢰어서 청하다. 숙위는 밤에 호위하는 학생들, 되돌려보내다. 번은 울타리)최치원은 중국과 신라의 언어가 서로 다르다는 점에서 한계를 가장 ㅃㆍㄹ리 극복하는 방법으로 중세 보편문어로서 한문이라는 문자체계를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대신 그는 우리 고유 향찰식 표기를 부끄러워야했는데, 그 근거로 ‘지증마립간’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리하여 결국 차자표기를 버리고 한문을 보편문으로 체택하는 방향으로나아가게 되었고, 신라의 향가도 위축되었다.선종: 불립문자 주장. 복잡한 교리를 떠나서 심성을 도야하는 데 치중. 인간의 타고난 본성이 곧 불성임을 알면 그것이 불교의 도리를 깨닫는 것이라는 견성오도 주장. 개인주의적 성향. 7세기 선덕여왕 때 들어왔다가 9세기 초 헌덕왕에 가지산파가 생기면서 널리 퍼짐.선승: 대개 육두품 출신으로 당나라에 유학. 진감선사 비문의 기록을 통해 범패(梵唄)의 융성이 확인되며, 이는 향가의 존립 기반 위협④ 후예들의 어울림과 엇갈림고려 전기 문학사: 향가의 쇠퇴와 한시의 부상으로 설명.『고려사』 악지 「한송정」: 향찰 표기. 향가의 주술성 사라지고 (한시에 보였던) 서정성이 주조. 서정성은 주술성을 포기하고 획득한 것.『고려사』 악지 속악 「한송정」세상에서 전하는 말에 의하면 이 노래를 비파 밑바닥에 써서 둔 것이 중국 강남까지 흐르고 흘러갔는데 강남 사람들이 그 가사를 해석하지 못한 채 있었다. (노래의 뜻을 알지 못한 까닭은 한문이 아닌 향찰로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광종때 고려 사람 장진공이 사신이 되어 강남에 가화집 : 수의전, 고승전 : 해동고승전* 김부식과 일연, 그들의 사서삼국사기의 편찬 : 1145년유교주의의 통치이념으로 이런 사상사적 도전을 맞서 이들을 무력으로 진압했다. 돌이켜보면 그는 서경세력과 체질적 정치적으로 합치될 수 없는 인물이었다.서경천도운동 : 이자겸의 난 이후 개경파와 서경파 대림.제16대 예종과 제17대 인종이 서경천도에 관심을 보임. 묘청 정지상 백수한 등이 중심.이자겸의 난으로 불찬 궁성을 버리고 서경으로 천도할 것을 주장.개경쇠운론을 바탕으로 서경천도론 칭제건원론 공금론 등을 주장.개경파 : 김부식 중심의 문벌귀족. 신라 정통론. 화풍 귀족 불교. 유학서경파 : 서경 출신 중심의 신진 세력. 고구려 정통론.국풍. 민간 불교. 도참 및 풍수지리 사상인종 대는 신채호가 일컬었듯, “조선 역사상 1천년 이래 제 1대사건”인 ‘묘청의 난’으로 기억된다. 그건, 고려가 건국된 이래 꾸준히 진행되고 확대된 문벌귀족 중심의 유교주의적 통치이념에 대한 반발로부터 말미암은 사건이었다.묘청의 난 : 1135년에 묘청이 서경에서 조광 등과 함께군사를 일으키고 국호를 대위, 연호를 천개, 그 군대를 천견충의군이라 칭함.그러나 김부식의 지휘를 받은 관군에게 1년만에 서경이 함락되고 난은 진압됨김부식 : 신라 무열왕계의 후예.유교적 통치 이념으로 서경파의 사상사적 도전을 무력으로 진압.일연 : 비문에는 삼국유사 관련 기록 없음,1281년경에 삼국유사 완성. 1310년 간행. 권5에 ‘일연 찬’ 기록. 제자 무극이 부기일연은 몽고와의 항쟁 뒤에 들어선 새로운 개경 정부의 비호에 의해 불교사의 전면에 등장. 가지산파가 불교계의 패자로 군림. 일연은 당시 문신 무신 귀족의 후원으로 국존에 임명* 유가적 합리주의에 바탕을 둔 역사의식이자의 이자겸 등 외척 세력과 묘청 정지상 등 서경 세력의 반란을 진압한 뒤김부식은 새로운 역사관을 정립하기 위해 삼국사기 편찬김부식은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고자 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지난 역사를새롭게 정리한 새로운 전범을 내세울 필요가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