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kwn
Bronze개인인증
팔로워0 팔로우
소개
등록된 소개글이 없습니다.
전문분야 등록된 전문분야가 없습니다.
판매자 정보
학교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직장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자격증
  •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판매지수
전체자료 3
검색어 입력폼
  • 판매자 표지 영화 판타스틱  플래닛 감상문 감상평 중간 기말 레포트 과제
    영화 판타스틱 플래닛 감상문 감상평 중간 기말 레포트 과제
    영화 감상문만약 인간보다 먹이 사슬 위에 위치한 종족이 있다면 인간의 삶은 어떻게 될까? 르네 랄루가 연출한 판타스틱 플래닛은 그 상상에서 시작하는 프랑스 애니메이션 영화이다. 푸른 거인(트라그)들이 지배하는 이얌 행성에서 애완동물이나 장난감처럼 취급되는 작은 인간(옴)의 이야기이다. 상당히 그로테스크한 그림체와 음악을 보여주는데, 47년이 지난 작품임에도 세월을 초월하는 독창성과 강렬함을 뿜어낸다. 영화를 감상한 후 몇 가지 논점에 대해 얘기하는 형식으로 감상문을 구성하였다.1. 인간만이 다른 존재를 지배할 수 있는가?영화는 아기를 안고 쫓기고 있는 인간 여성을 모습부터 시작된다. 어떻게든 위험에서 벗어나고자 필사적으로 달리던 여성의 머리 위로 파란 손이 내려오더니 공중으로 여성을 들어올린다. 그리고 떨어뜨린다. 사정없이 땅바닥에 내팽겨쳐진 여성은 아기를 한번 바라보고는 운명한다. 파란 손의 정체는 거대한 외계인 아이들. 인간의 어린 아이들이 개미나 병아리를 가지고 비슷한 장난을 하는 것처럼 외계인 아이들도 아무런 목적없이 그저 심심해서 인간을 가지고 논 것이다. 인간에게 목줄도 채워지며 햄스터 강아지와 같이 애완용으로 사육되기도 하고 일부는 버려진 공터 같은 곳에서 야생으로 서식하기도 한다. 영화가 말하고 있듯이 우리 인간들은 현재 마치 우주의 중심인 듯이 사고하고 다른 생명체들을 다루고 있으나 어쩌면 언젠가 미래에 인간들보다 훨씬 더 고등한 외계 생명체가 나타나서 인간을 애완동물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다. 물론 이렇게 극도로 비현실적인 외계인 침공같은 문제로 고민을 하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 인간들도 끝을 알 수 없는 위대한 우주에서 모래 한 줌도 되지 않을 지극히 미미하고 작은 존재라는 것을 겸손히 받아드리고 다른 생명체들 위에서 군림하거나 그들을 조작하려는 생각을 하기보다는 그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좀 더 올바른 자세를 갖자 것이다. 비록 오래된 애니메이션이지만 곳곳에서 지금도 무시할 수 없는 현대 사회의 풍자들이 발견되어 신기하기도 하고 47년 전의 문제들이 고스란히 아직도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씁쓸하기도 하였다. 이 기괴하기도 하며 아름다운 영상의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차분하게 하나씩 풀어보는 것도 큰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2. 동물의 입장에서 생각해볼 기회/동물실험의 윤리적 보완그동안 동물 학대에 관련한 영화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었지만, 동물이 자력으로 인간을 응징할 수 있는 힘을 획득하고, 무시무시한 방법으로 인간들에게 복수를 하는 공통된 스토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예상 외로 저항할 수 없이 미약한 힘을 가진 동물들의 고통을 표현한 영화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이러한 고민을 해결해주는 영화가 이 영화이다. 정확히 말하면 애니메이션 판타스틱 플래닛에서 고통을 당하는 동물은 바로 인간 자신이다. 또한 거인들이 존재하는 외계 행성에서 손가락만한 인간들의 존재는 우리가 실험실의 생쥐를 보는 시각과 유사하다. 어린이들이 가지고 놀다 죽이기도 하고, 번식을 억제하기도 하며, 어떻게 하면 외계인들의 산업에 인간들을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지 고민한다. 결국 본 영화에서는 인간인 우리가 동물들의 현재 위치로 내려가서 그들의 상황을 가상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도록 해준다. 동물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존재 그 자체로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이들을 인간의 도구로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존재이다. 동물실험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의학발전이라는 선한목적을 위해 동물실험이라는 꺼림직한 수단을 사용해도 되는 것인가? 이에 대한 상반된 많은 견해가 존재한다. 이분법적으로 단순히 결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며, 각각의 상황에 따라 판단해야 할 문제라 생각한다. 예컨대, 동물실험이 연구를 위해 필수적인 과정이거나, 연구목적의 성과로 인한 이익이 아주 큰 경우, 그리고 연구에 의하여 동물개체 자체가 이익을 볼 수 있는 등의 경우에 실험동물에 대한 고통 절감장치 시행을 전제한다면 비윤리적이라고만 볼 수는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반면 실제적인 이익이 부족하거나 지나친 위해를 발생시키는 실험은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윤리적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보통 3R로 지칭되는 원칙이 동물실험을 수행할 때 고려해야할 기본 원칙으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동물실험 이외에도 연구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이것으로 대신하고 (Replacement), 가능한 실험에 이용되는 동물의 수를 줄이고(Reduction), 실험에 대한 개념, 실험방법, 기술 및 도구 등을 개선하여 동물실험의 필요성을 줄이는 동시에 동물에 가해지는 해를 줄인다(Refinement)는 것이다.3.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나아가야 할 길한쪽으로는 아무렇지도 않게 칼과 포크로 쇠고기를 잘라먹으면서, 다른 한쪽으론 동물을 껴안고 귀여워하는 인간의 모습. 소는 먹어도 되고 개는 안되는 것일까? 소와 개는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인가? 이처럼 동물권리에 관한 문제는 수많은 딜레마와 가치의 대립을 내포하고 있다. 어찌보면 동물의 권리를 논한다는 것 자체가 이 사회에 있어 아직은 시기상조일지도 모르겠다. 시민의 권리, 여성의 권리, 장애자의 권리등 사람의 권리도 아직 해결되지 못했는데 동물의 권리를 챙기다는 것이 말이다. 그러나 동물실험을 포함하여 동물윤리와 관련된 문제는 종을 넘어서는 광범위하고 복잡한 문제이며, 생명윤리의 마지막 종착역이다. 따라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사실 나는 동물의 권리와 윤리를 따진다는 것 자체가 지극히 인간중심적인 사고에서 나오는, 어찌보면 무의미한 일이라 생각한다. 권리와 윤리라는 개념자체가 인간을 위해 인간의 사고가 만들어낸 개념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인간을 위해 잔인하게 죽고 싶은 동물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게 개든 돼지든 말이다. 동물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당연히 모든 동물실험은 철폐되야 한다. 그러나 동물실험을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라 생각한다. 이유는 내가 호모사피엔스종에 속하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밖에 없다. 완벽하게 동물 실험을 배제할 수 있을 정도로 인간의 과학이 발달하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더 많은 인간을 살리기 위해 동물들을 이용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본다. 동물 실험이든 가축 사육이든 결론은 똑같이 인간을 위해 동물을 죽이는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동일하지만 과정에서는 수없이 많은 선택을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선택에 따라서 동물들의 고통의 양과 질도 결정되겠지만 그에 수반하여 인간이 얼마나 ‘인간성’를 유지하고 사회를 따뜻하게 유지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톱니바퀴와 같이 맞물려 돌아가게 되어있다. 아름답고 평화로워 보이는 자연의 세계이지만, 실상 내면을 그려보면 자연의 세계는 치열하다. 생존의 위하여 먹고 먹히는 살육전이 언제나 벌어지고 있다. 그곳에 자비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은 다르다. 다른 동물과는 달리 고도로 발달한 문명을 가지고 있고, 어쩔 수 없이 다른 생명체를 섭취해야 하지만 그 과정에서 그들의 고통을 최소화시켜줄 수 있는 배려심과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한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는 것이 바로 진정한 인간성의 발현일 것이다. 그렇지 않고 다른 포식자들과 마찬가지로 하위 생명체들을 단지 ‘먹이’로만 대한다면 결국 인간은 동물과 같은 존재가 되어버릴 것이다.
    독후감/창작| 2023.03.29| 3페이지| 2,500원| 조회(282)
    미리보기
  • 판매자 표지 봉준호감독 영화 설국열차 감상문 감상평 중간 기말 과제 레포트
    봉준호감독 영화 설국열차 감상문 감상평 중간 기말 과제 레포트
    영화 감상문기상 이변으로 인류에게 닥친 새로운 빙하기에, 살아남은 인류를 태우고 달리는 기차라는 독특한 설정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수평적인 열차의 외관과 달리 열차 안의 세상은 결코 평등하지 않다. 가축만도 못한 취급을 받는 꼬리칸의 사람들이 반란을 일으켜 앞쪽칸으로 나아가는 투쟁의 스토리 할 수 있다. 영화를 감상한 후 몇 가지 논점에 대해 얘기하는 형식으로 감상문을 구성하였다1. 열차 안은 어떤 사회일까?열차 안도 결국 작은 사회다. 이 열차 사회에서는 계급이 앞쪽 칸과 꼬리 칸, 그 칸들을 잇는 중간 칸으로 나뉜다. 우리 사회에는 계급이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예전처럼 뚜렷하게는 아니지만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는 희미하게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도 부자와 중산층, 서민이 있지만 자본가와 노동자로 구분할 수도 있다. 열차 사회는 고대 노예사회와 닮은 점이 많다. 지배층에는 왕인 윌포드와 향락을 즐기는 소수의 귀족들이 있다. 피지배층에는 아이들을 가르치거나 정원을 가꾸고 바퀴벌레 양갱을 만드는 중간 관리층부터 꼬리 칸과 감옥 칸에 있는 빈곤층이 분포해 있다. 열차안에는 더 이상 자본을 생산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열차 안에서도 계급을 구분하는 것은 근대 자본주의 사회와 마찬가지로 돈이다. 영화에서 메이슨이 연설 중에 꼬리 칸 사람들을 '무임승차자'라고 칭하였다.혹한이 시작되기 전이 근대 자본주의 사회였으니 자본으로 등급이 나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이유다. 그리고 이 체제를 유지할 수 있는 힘은 바로 엔진이다. 노예 사회에서 사회 질서를 유지한 것은 종교이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회 질서를 유지한 것은 자본이다. 자본주의에서는 기업이나 공장과 같은 생산수단을 통해 사회질서를 유지한다. 영화 속에서는 윌포드가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두가지 요소를 모두 사용한다. 윌포드는 엔진을 소유한 인물인 동시에, 월포드에게 고대노예제의 종교처럼 '성스러운' 이라는 단어로 신비하고 종교적인 힘을 부가하였다. 그는 엔진을 창조하고 소유했단 이유로 신의 대리인과 자본가와 같은 두 가지 힘을 모두 가질 수 있었던 것이라고 본다. 열차안의 사회를 통제하기 위한 교육이 해당집단의 권력자와 지배체제를 찬양하는 내용으로 윌포드의 독재를 정당화하는 수단이 된다. 이처럼 지배 이데올로기에 대한 세뇌는 종교와 밀접히 연관되어있다.2. 계급을 지키기 위한 투쟁, 계급을 탈환하고자 하는 투쟁양복 입은 남자는 폭력성을 의인화한 인물이라고 볼 수 있는데 동양인 요나를 지속적으로 노린다. 직접적인 이유는 같이 다니던 동료를 죽인 탓이지만 요나가 탈출할 미래를 가진 아이이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혁명을 목표했던 커티스의 폭력도 결국은 시스템 유지를 위한 수단이였으며, 양복입은 남자의 폭력도 이와 마찬가지라고 본다. 이와 같은 두 폭력성은 각각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을 대표하며, 서로에게 폭력을 가하는 모습은 방향성만 다를 뿐 대칭구조를 이룬다. 이러한 상징적인 구도는 열차가 u자 구간을 통과할 때 보이는 창문너머로 똑 같은 형태의 총격을 가하는 것으로 표현된다. 이는 통제를 벗어난 폭력으로, 자신의 편마저 살해할 정도로 이성을 잃은 양복입은 남자와, 빙하기로 인한 외부노출을 절대적으로 막아야 하는 열차의 창에 구멍까지 만든다. 즉, 통제를 벗어난 폭력이 열차, 즉 시스템을 망치는 것을 나타낸다고 본다. 폭력은 또다른 폭력을 불러올 뿐이고, 피지배계급과 지배계급의 주체만 바뀔 뿐이지 악순환의 연속됨이라 볼 수 있다.3. 진정한 진보에 대하여기차 칸의 진격은 역사는 진보한다는 서양식 역사관이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진보란 기차 안에서의 진격일 뿐이다. 낮고도 옅은 생각에서는 역사가 진보하는 것 같다. 하지만 동양인의 세계는 돌고 돈다. 기차는 돌고 돈다. 관점이 다른 이데올로기를 위해서 동양인인 남궁민수가 필요했다. 앞칸으로 진격하는 것이 진보가 아니라 기차 밖으로 나가는 탈격이 진정한 진보가 아닐까 한다.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남궁민수의 역할이다.“이게 하도 오래 닫혀 있어서 다들 벽인 줄 아는 모양인데, 이게 사실은 문이야”문을 따고 싶은 사람이 있고 문을 딸 수 있는 사람이 있듯이, 문을 깨는 사람이 있고 기차를 깨고 싶은 사람도 있다. ‘크로놀’을 마약으로 쓰는 사람이 있고 그것을 가지고 화약을 만드는 사람도 있다. 체제전복은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감독의 이야기는 남궁민수를 통해 나타난다.4. 미래를 여는 문은 어떤 것일까? 영화는 과연 해피엔딩으로 볼 수 있는가?꼬리칸 노인 길리엄과 엔진칸의 노인 윌포드는 현재 지배체제를 유지하고 안주하려는 기득권세력으로, 육체적, 정신적으로 늙어버린 존재들이다. 두 노인은 설국열차의 균형을 명분으로 내세우며, 미래로 나아갈 아이들을 현재를 위한 소모품으로 삼는데, 비인간적인 폭력과 비극을 유도하는 통제를 정당화한다. 하지만 마지막 부분에서 커티스가 하는 얘기와 커티스의 행동에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담겨져있다고 생각한다. 아이를 잡아먹으려던 사람들에게 노인 길리엄이 자신의 팔을 내주었고 꼬리칸의 분란은 멈추게 되었다. 또한 두 팔이 멀쩡한 것에 대해 죄의식을 가지고 있던 커티스가 망설임 끝에 자신의 팔을 내밀어 아이를 구했다. 잡아먹히려던 아이를 구해냈던 길리엄의 팔은 식인의 지옥에서 미래를 열었고, 엔진실에서 소모당하는 아이를 구한 커티스의 팔은 열차의 감옥에서 미래를 열게 된다. 월포드와 길리엄이 커티스에게 사랑하는 여자를 두 팔로 안는 게 좋다고 말하는데, 이는 새로운 미래를 위한 지도자로서의 희생은 포기하고 현재의 체제와 타협하라는 의미를 내포한 것이 아닐까 한다. 하지만 결국 커티스는 여자 대신에, 희생을 감수한 한 팔로 미래를 뜻하는 요나를 안아 끝까지 보호한다. 이를 통해 악순환을 벗어나 진정한 혁명과 미래로 이끄는 동력은 바로 지도자의 희생이라는 것을 알려준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수업시간에 북극곰에 대한 해석이 개인마다 분분했는데 나는 북극곰을 통해 열린 해피엔딩을 보여준거라고 생각한다.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하여 cw-7를 사용하였는데, 결말에는 지구온난화의 최대피해자인 북극곰을 등장시켜 희망의 메시지를 나타냈다고 본다. 또한 실제로 영화 오프닝 곡은 “This Is The End” 이지만 엔딩곡은 “This Is The Beginning”이라고 한다.
    독후감/창작| 2023.03.29| 3페이지| 2,500원| 조회(477)
    미리보기
  • 판매자 표지 영화 가버나움 감상문
    영화 가버나움 감상문
    영화 감상문이 영화는 레베논을 배경으로, 처절하게 가난한 한 가족에 대해 조명하였다. 아이를 계속 낳고 있지만 아이를 부양할 능력은 없는 부모와, 출생을 증명해줄 서류 한 장 없는 아이들의 이야기이다. 부조리한 결혼 풍습, 난민과 불법체류자들의 삶을 날것으로 보여주는 영화이다. 영화를 감상한 후 몇 가지 논점에 대해 얘기하고 마무리로 내 생각을 정리하는 형식으로 감상문을 구성하였다.선택할 수 없는 탄생과 그 삶속에서의 선택인간이 세상에 태어날 때는, 선택하지 못한다. 오히려 선택을 받는다고 볼 수 있다. 좋은 쪽으로 생각하면 축복이 가득한 것이지만, 나쁜 쪽으로 생각하면 스스로 결정할 수 없이 당하는 강요이기도 하다. 태어나보니 부모와 가정과 환경이 정해져 있고, 우리는 그것을 전제로 살아가는 이유를 찾아야 한다. 삶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살아가야 한다고 하니 살아 가기 위한 일들을 한다. 자인은 마지막 진술 때 이런 말을 한다. ‘사는 게 x같다, 자신의 신발보다 더럽다.’ 자인의 이러한 최후 진술은 관객들의 가슴과 머리를 세게 때린다. 자인의 부모도 마찬가지다. 자신들은 너무 삶이 힘들고 지치며, 자식들을 위해서만 살아왔는데 이러한 비난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너무 힘들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우리는 항상 아이들을 바라볼 때 부모로서만 바라본다. 아이들은 한 번도 자인과 같은 주장을 하지 못하고, 해야 한다는 사실도 모른다. 그저 주어진 삶에 고통받다가 그렇게 어른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자인은 정확히 그 지점을 지적한다. 자신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 왜 이러한 삶을 겪어야 하는지 어른들에게 묻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신을 그렇게 만든 사람들을 벌해달라거나,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어달라고 하지도 않는다. 단순히 ‘더 아이를 낳지 말아 줄 것’을 이성적으로 요구한다. 자인의 이와 같은 주장과 모습은 세상을 사는 어른들에게 큰 교훈을 가져다준다. 부모가 자신을 버리고 홀대할지언정, 자인은 동생들을 아끼고 보호했으며 스스로 그 삶을 버티기 위해 누구보다 노력했다. 심지어 불법체류자인 라힐이 체포되었을 때도, 자인은 라힐이 아들인 요나스를 버리지 않고 끌어안았고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물건을 제조해 파는 등 부단한 노력을 했다. 그런 자인의 시각에서 바라본 어른들은 아이러니할 수밖에 없다. 도대체 왜 자신을 낳은 것인지 이유를 알 수 없고, 왜 살아가야 하는지도 누가 알려주지 않았다. 출생신고조차 되어있지 않으며, 학교조차 다니지 않는 자인은 도대체 자신은 누구이며 어떤 경계선에 놓여있는지조차 알 수 없다.2. 어른의 기준은 무엇일까?어려보이는 아이의 치아를 본 의사가 말한다. 유치가 다 빠졌으니 12~13살일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관객의 눈에 작고 마른 그 아이는 열살도 채 되지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그 아이는 유치가 다 빠졌고 더이상 어린 아이가 아니다. 그렇다면 과연 아이가 아닌 어른의 기준은 무엇일까?생물학적 구별과 사회적 구별을 나누어 살펴보겠다. 자인은 유치가 다 빠졌기 때문에 생물학적으로 이미 어른의 영구치를 가졌다. 또한 그의 여동생은 생리를 하기 때문에 둘은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 본래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10대 중반이 되면 다음 세대의 삶을 잉태할 수 있다. 돌봄이 필요한 아이가 아니라 돌봄을 행해야할 어른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현재의 우리 사회에서 그들을 어른이라고 볼 수 없다. 돌봄을 받아야할 아이로 바라본다. 자인은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하고 싶지만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줄 서류조차 없다. 사회에서 요구하는 증명을 부모가 마련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인은 어른처럼 생각하고 행동하지만, 사회에서 어른으로 인정받지도 못하고 어른이 될 수 조차 없다. 그렇다면 자인의 부모는 어른이라고 볼 수 있을까? 그들은 출생 서류도 가지고 있으며 생물학적인 구별로 그들은 어른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어른 사전적 정의는 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다. 아이를 낳아놓고 그 아이들을 책임지지 않는 사람이 어른이라고 볼 수 있을지에 의문이 든다. 낳아줬다고 해서 다 부모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부모가 되기 전에 어른이 되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상태로 책임지지 못할 일들을 벌려놓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한 자인의 부모는 부모라 볼 수 없고 어른이라 볼 수 없다고 생각한다. 진정한 어른은 책임을 다하는 사람이며 타인에게 손을 내밀 수 있는 능력과 자격을 갖춘 자라고 생각한다.3. 직접적인 폭력만 아동 학대로 볼 수 있을까?감독은 아동 학대가 폭력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돌보지 않는 무능력 역시 학대라는 입장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에 더불어, 오랜 기간 이어져 온 문화라고 하지만 조혼을 가장한 매매혼과 같은 잘못된 문화는 바뀌어야 한다는 사실 역시 확실히 알리고 있다. 자인은 자신을 낳은 것, 그리고 돌보지 않은 것에 대한 부모의 무책임과 무능력을 고소한다. 또한 영화는 답답한 현실을 구원하는 방법으로 종교를 끌고 들어온다. 불법 체류로 수감되어 있는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는 종교인들과 사하르의 죽음을 새로운 생명의 잉태라는 신의 선물로 포장하는 엄마의 얼굴은 혐오스럽기 그지없다. 아이들 때문에 자신들도 죽을 만큼 힘든 삶을 살고 있다고 호소하는 부모들의 입장은 그저 상황에 대한 회피일 뿐이다. 반면 자인은 자신이 고소한 부모의 처벌이나 구금을 원하지 않고, 단지 더 이상 아이를 낳지 못하게 해달라는 말은 어쩌면 무책임한 부모로부터 아이들을 구원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마지막에 자인이 새로운 출생을 증명하는 서류를 갖기 위해 웃는 장면은 동정이 아닌 공감으로 다가선다. 학대가 때려야만 학대가 아님을 확실하게 알려준 너무 강렬했던 영화이다.가버나움은 이스라엘에서 예수가 오병이어의 기적을 비롯하여 다양한 기적을 일으킨 곳이다. 기적은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다. 자연에서는 결코 발생할 수 없는 일이며, 고통받는 이들에게 필요한 축복이다. 영화에서 자인은 더이상 아이를 낳지 말아달라고 말한다. 아이를 낳는 일이 생물학적으로 자연스러운 흐름이라면 그것을 거스르자고 말한다. 반드시 신적인 존재가 행하는 기적이 아니더라도, 자연을 거스르는 인위적인 일은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이 더이상 불행을 발생하지 않게 막는 일이라고 한다. 그것이 우리가 행할 수 있는 기적의 형태일지도 모른다. 그나마 영화는 희망이 보이는 엔딩을 보여준다. 재회하는 티게스트와 요나스, 신분증을 받게된 자인. 하지만 이들의 특별한 이야기가 해피엔딩으로 끝난다고 해서 모든 일이 끝나지 않았음을 안다. 그들의 앞날이 어떠할지, 그들처럼 회복되지 못한 이들이 얼마나 더 많을지 우리는 가늠할 수 없다. 그렇기에 우리에겐 가버나움이 필요하다. 기적이 행해지고, 고통받는 이들이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 오기를 바란다.
    독후감/창작| 2023.03.29| 3페이지| 2,500원| 조회(428)
    미리보기
전체보기
해캠 AI 챗봇과 대화하기
챗봇으로 간편하게 상담해보세요.
2026년 05월 25일 월요일
AI 챗봇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 AI 챗봇입니다.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3:27 오전
문서 초안을 생성해주는 EasyAI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의 20년의 운영 노하우를 이용하여 당신만의 초안을 만들어주는 EasyAI 입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작업을 도와드립니다.
- 주제만 입력하면 AI가 방대한 정보를 재가공하여, 최적의 목차와 내용을 자동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 장문의 콘텐츠를 쉽고 빠르게 작성해 드립니다.
- 스토어에서 무료 이용권를 계정별로 1회 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체험해 보세요!
이런 주제들을 입력해 보세요.
- 유아에게 적합한 문학작품의 기준과 특성
- 한국인의 가치관 중에서 정신적 가치관을 이루는 것들을 문화적 문법으로 정리하고, 현대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비교하여 자신의 의견으로 기술하세요
- 작별인사 독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