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목명 입력]? 주제 : 5주차 2강에서 목표관리에 대해 학습했습니다. 목표관리란 무엇이며, 목표관리의 장단점을 설명하고, 일상생활에서 이를 어떻게 응용할 수 있는지 본인의 의견을 제시하시오.Ⅰ. 서론최근 국내기업 임직원을 대상으로‘회사와 팀의 목표를 알고 있는지’ 묻는 설문조사에서 회사의 목표를 완전히 이해한다고 답한 응답자 비율은 39%에 그쳤다고 한다. 회사와 개인 간 정보 공유가 잘되지 않는다는 방증이 아닐까. 기업이 생존하고 성장하기 위한 경영전략으로 ‘목표관리(MBO·Management by Objectives)’는 이러한 정보 공유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본 과제에서는 목표관리의 개념과 장단점을 살펴보고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고자 한다.Ⅱ. 본론목표관리(Management? by Objectives, MBO)란, 경영학의 창시자로 평가받는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가 1954년에 저술을 통해 주창하면서 알려진 개념으로, 조직에서 상급자와 하급자가 공동의 합의된 목표를 설정하여 목표 달성을 위해 노력하고 그 결과를 평가하는 일련의 과정을 말한다. 과정의 첫 번째 단계로 상급자와 하급자는 조직의 최종 목표를 공유하고 이에 따라 하위 부서와 개인의 목표를 함께 수립한다. 목표를 수립할 때는 네 가지의 기준을 가지고 세워야 한다. 목표는 구체적이어야 하고 기한이 명시되어야 하며 도전할 수 있고, 측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목표를 수립한 후에는 그 목표 달성 과정에 대한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계획 실행의 주체인 하급자와 상급자가 함께 고민하여야 하며, 이에 따라 하급자는 계획에 따라 과업을 수행하고, 상급자는 하급자를 지원하면서 과업 수행이 올바르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확인하고 방향을 잡아주어야 한다. 마지막으로는 목표 달성도 및 성과를 평가할 때의 판단 대상이 되는 성과표준과 성과평가의 절차에 대해 합의한다. 상황에 적합한 평가 주기를 설정하여 하급자는 본인의 성과를 스스로 평가하고 상급자는 하급자의 과업 수행 정도를 평가한다. 단, 이때 하급자의 태도는 평가대상이 아니며 오직 기간 내 달성도만을 객관적으로 평가한다.목표관리(MBO) 경영전략은 국내외 다수 기업에서 도입하였으나 장점만 있지는 않다. 단점도 분명 존재하며, 이에 따라 찬반양론이 대립하고 있어 기업의 특성과 환경에 맞게 전략적으로 적용해야 한다. 구체적인 장점부터 살펴보자. 가장 큰 장점은 회사와 개인의 목표가 연결성을 가지게 되어, 개인의 노력이 조직 전체의 성과 향상으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는 점이다. 상급자와 하급자가 함께 적절한 목표를 설정했기 때문에 하급자가 어떤 과업이 중요한지,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스스로 파악할 수 있으며, 자연스럽게 목표 달성에 대한 동기부여도 된다. 상급자도 하급자와 사전 합의를 했기 때문에 함께 설정한 목표 달성을 위해 하급자를 어떻게 지원해야 하는지 파악할 수 있어 좋다. 조직 전체의 측면에서도 목표관리 전략은 상급자와 하급자가 대면 협의를 한다는 점에서 구성원 간 원만한 관계 형성과 원활한 의사소통에 도움이 되어 긍정적이다. 그러나 말했듯이 목표관리는 단점도 있다. 적절한 목표설정 자체부터 어려울 수 있다. 상급자가 하급자의 역량을 파악하지 않은 상태에서 목표를 설정하게 되면 더욱 어려울 수 있다. 또 목표 달성에 매몰되어 쉬운 목표에만 지나친 관심을 기울이거나, 단기 목표만을 강조하게 될 수 있다. 상급자가 본인의 의무를 하급자에게 목표를 알려주는 정도에 그친다고 망각하며 과도한 서류작업을 요구하게 될 수도 있다.장단점이 있지만, 장점이 더 많다고 생각한 많은 국내외 기업이 목표관리를 기업 경영에 도입했고, 성공 사례로 글로벌 맥주 제조업체 AB인베브가 있다. AB인베브는 1989년 브라질의 한 맥주 제조업체를 인수했는데, 개별 양조장에 기업 목표를 공유하여 거래 현장의 투명성을 높일 수 있었다. 또한 실적이 저조한 양조장이 자발적으로 실적이 좋은 양조장에 실적 개선 방법을 조언하는 등 긍정적인 효과를 볼 수 있었다. 다른 사례로 글로벌 반도체 기업인 인텔(Intel)사도 있다. 인텔은 과거 70년대에 목표관리의 단점을 보완하여 직원들에게 단기간에 구체적이고 높은 수준의 목표를 달성하도록 요구했고 실제로 엄청난 성과를 거두어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멀지 않은 실생활에서도 우리는 목표관리 전략을 응용할 수 있다. 학교나 직장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서 팀을 꾸리거나 TF를 만드는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프로젝트의 성공, 우승 등을 공동의 최종 목표로 설정하고 팀장과 팀원 혹은 반장과 학생들 간 구체적인 하위 목표를 설정하여 개개인의 업무를 나누고 계획 수립을 진행한다. 프로젝트가 끝나면 결과에 대해서 함께 분석하고 다음 프로젝트는 어떻게 개선하는 것이 좋은지 논의하는 순서로 실제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중급재무회계Ⅰ]? 주제 : 재무상태표에 자산과 부채를 유동항목과 비유동항목으로 구분 표시하면 재무상태표의 유용성이 증가하는지에 대해 작성하시오.Ⅰ. 서론‘재무상태표’란, 일정 시점에서 기업의 재무상태 즉, 기업이 자금을 어떻게 조달하여 운용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재무보고서를 말한다. 기업의 자산, 부채, 자본, 세 가지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먼저, 자산은 과거 사건의 결과로 기업이 통제하고 있으며 미래 경제적 효익이 예측되는 자원을 뜻한다. 현금 및 현금성자산, 매출채권, 미수금계정 등이 자산계정에 속한다. 부채란 과거 사건으로 발생, 경제적 효익이 내재된 자원이 기업에서 유출·이행될 것으로 기대되는 현재의무이며 매입채무, 차입금, 미지급금 등이 있다. 마지막으로 자본은 자산총액에서 부채총액을 차감하고 남은 순자산을 의미한다.위의 자산, 부채, 자본, 세 요소는 재무상태표에 ‘자산 = 부채 + 자본’의 공식을 기반으로 기록해야 하며, 이 중에서 자산과 부채는 유동항목과 비유동항목으로 구분하여 표기하도록 하고 있다. 이번 과제에서는 재무상태표 상에서 유동항목과 비유동항목을 살펴보고 이렇게 두 가지로 구분 표기하는 것이 재무상태표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고자 한다.Ⅱ. 본론아래 그림 재무상태표 예시와 같이, 자산과 부채는 각각 유동자산과 비유동자산, 유동부채와 비유동부채로 나누어 기록하고 있다. (계정식, 보고식 재무상태표 모두 유동/비유동을 구분하여 기록한다.)*출처 : 두산백과, ‘재무상태표’유동항목과 비유동항목을 구분하는 기준은 12개월 이내에 실현(부채의 경우 결제)될 것으로 예상 가능한가이다. 유동자산은 12개월 이내에 현금화할 수 있는 현금, 매출채권, 재고자산 등이 있으며 비유동자산으로는 12개월 내 현금화 불가능한 부동산과 같은 유무형의 자산이 있다. 마찬가지로 유동부채는 12개월 이내에 지급해야 하는 미지급금, 외상매입금 등을 말하며 비유동부채는 12개월 이내에 이행하지 않아도 되는 부채를 의미한다.이렇게 기업의 자산과 부채를 12개월 즉, 1년을 기준으로 유동과 비유동항목으로 구분하는 이유는 기업의 유동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장단기로 기업이 어느 정도의 지급 능력이 있는지 판단할 수 있게 해주며 보다 정확한 재무 정보를 기업 내외부에 제공하게 된다. 풀어서 다시 말하면, 유동자산이 많다면 단기에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이 많아 기업의 자금 운용이 수월한 것이며 유동부채가 많으면 12개월 이내 상환 부채가 많아 기업 자금 운용이 어려운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물론 모든 자산을 표기하는 것이 아니라 측정이 가능한 자산만 표기하여 한계가 있긴 하지만, 유동/비유동항목을 구분하지 않는 것보다 재무상태표의 유용성이 훨씬 증가하게 된다. 유동/비유동항목을 구분하는 이분법을 사용할 때 재무상태표 상에 표기 순서는 정해져 있지 않다. 유동-비유동의 순서로 작성하기도 하고 비유동-유동의 순서로 작성하기도 한다.예외적으로, 금융업과 같은 특정 분야 일부 기업의 경우에는 영업주기가 1년으로 구분되지 않기 때문에 유동/비유동 항목을 구분하는 이분법의 재무상태표 배열법보다 환금성 순서에 따라 자산, 부채를 표기하는 유동성 배열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자산 현금화가 가장 쉬운 것부터 어려운 것 순으로 작성하는 방법이다.Ⅲ. 결론일정 시점의 기업 재무상태를 나타내는 재무상태표의 표기 방법은 이분법, 유동성 배열법 등이 있다. 상황과 목적에 따라 표기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원칙적으로 유동/비유동항목을 구분하는 이분법을 사용한다. 12개월을 기준으로 그 이내에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이라면 유동자산, 12개월 이내에 갚아야 하는 부채라면 유동부채라 하고 12개월 이내에 현금화 불가한 자산은 비유동자산, 이행하지 않아도 되는 부채는 비유동부채라고 한다. 이분법은 매우 유용하다. 기업이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는지, 재무적으로 건전한 상태인지, 수익성과 자산 구성이 적절한지 판단할 수 있는 척도가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유동자산이 많으면 기업의 유동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하고, 유동부채가 많으면 기업 유동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에 따라 투자자나 이해관계자의 의사결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며, 이분법에 따른 재무상태표는 매우 유용한 정보가 된다.
[과목명 입력]? 주제 : 5주 2강에서 기업의 경쟁 우위 달성을 위한 환경과 역량 진단에 대하여 학습했습니다. 마이클포터의 5세력 모형(5 Force Model)에 대해 설명하고, 정보시스템이 가질 수 있는 역할을 제시하십시오. 필요 시, 사례를 제시하여도 됩니다. (① 5세력 모형, ② 정보시스템의 역할, 그리고 ③ 시사점 등이 포함되어야 합니다.)Ⅰ. 서론“지피지기, 백전불태”, 손자병법의 유명한 구절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모두가 공감하는 말이 아닐까. 현대 전략 분야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마이클 포터(Michael Porter)는 기업이 새로운 산업에 진출할 때 사전에 전략을 결정하기 위해 살펴보아야 할 5가지 경쟁 요소를 분석하여 ‘5 세력 모형(5 Force Model)’을 개발했다. 이번 과제에서는 5 세력 모형에 대해 살펴보고, 정보시스템이 가질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자 한다.Ⅱ. 본론5 세력 모형(5 Force Model)의 5 세력은 아래 그림처럼, 1. 기존 시장의 전통적 경쟁자, 2. 잠재적 진입자, 3. 대체재, 4. 고객, 5. 공급자를 뜻한다. 이 다섯 가지 세력에 따라 경영 환경이 평가되고 기업은 이를 고려하여 전략과 방향을 결정해야 한다.대체제의 위협↓공급자의 협상력→산업 내 경쟁 정도(기업 vs. 경쟁자)←고객의 협상력↑잠재적 진입자의 위협첫 번째로 기존 시장 내에 전통적 경쟁자를 고려해야 한다. 즉, 산업 내 경쟁이 얼마나 치열한지를 확인하라는 뜻이다. 경쟁이 너무 치열한 상황이라면 기업의 진입에 불리한 상황이므로 진입 전략을 재고해야 할 것이다. 기업들은 가격, 제품 및 서비스 개발, 마케팅/홍보 등 다양한 분야에서 경쟁을 벌이는데, 경쟁이 치열한 경우, 경쟁을 위한 비용 지출이 많고 수익이 줄어든다. 진입을 고민하는 기업으로서는 매력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반대로 경쟁이 없는 경우도, 시장 개척을 위해 투입될 비용이 많을 것으로 예상되어 매력도가 떨어질 수 있다. 산업 진출에 적절한 경쟁 정도를 찾는 것이 필요하다.두 번째로 잠재적 진입자를 고려해야 한다. 즉, 신규 경쟁자가 시장에 나타나는 위협을 의미한다. 기존 기업은 잠재적 진입자를 막기 위해 법적 규제, 높은 전환 장벽 구축(고객이 다른 제품이나 서비스로 전환할 때 발생하는 전환비용을 크게 만드는 방법을 의미한다), 원자재 독점 등을 통해 진입장벽을 만든다. 잠재적 진입자는 이러한 진입장벽을 넘기 위해 막대한 비용을 투입해야 하므로 진출을 포기할 수 있다.세 번째로 대체재의 유무이다. 대체재가 있으면 고객이 상황에 따라 대체재를 소비할 확률이 높다. 대표적인 예가 뉴스에서도 자주 볼 수 있듯이 닭고기와 돼지고기다. 조류 인플루엔자 발생 등 여러 이유로 닭고기 수급이 불안해지고 가격이 오르면, 소비자는 대체재인 돼지고기를 찾게 된다. 반대도 마찬가지이며 이런 대체재의 존재는 시장 진입 매력도를 떨어트리는 요인이 된다. 따라서 기존 기업들은 대체재로의 고객 이동을 막기 위해 위에서 언급한 전환비용을 높이려고 노력한다. 카페에서 소비자에게 스탬프 적립 쿠폰을 주는 것도 이러한 전환비용을 높이는 방법이라고 볼 수 있다.다음으로 고객, 정확히는 고객의 협상력을 생각해야 한다. 고객이 대량 구매하는 경우,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경우, 제품이나 서비스 선택 폭이 넓은 경우 고객의 협상력이 올라간다. 요즘은 인터넷이나 SNS 등이 발달하면서 고객의 교섭력이 점점 올라가고 있다.반대로 공급자의 협상력도 고려 대상이다. 공급자가 차별화된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여 고객이 많을수록, 독점적 지위에 있거나 공급자가 더 많은 정보를 가진 경우 공급자의 협상력이 올라간다. 대표적인 예로 우리나라 3대 통신사의 반독점 구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고객의 선택 폭이 넓지 않기 때문에 높은 통신비를 내고도 3대 통신사를 이용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위에서 살펴본 5 세력 모형에서 기업은 다섯 가지 요소들을 모두 분석하여 산업의 경쟁도와 진입 여부 등을 고려해야 한다. 5 세력 모형은 기존 전통적 모델과 달리 전통적 경쟁자와 경쟁뿐만 아니라 기업을 둘러싼 네 세력을 추가로 고려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사점이 있으며, 실제로 기업이 활용하는 실효성 있는 분석 모델이다. 요즘은 인터넷 등 통신 발달로 더욱 복잡한 시장 환경이 되어 더욱 면밀한 요소별 검토와 전략이 필요하다.정보시스템을 도입하면 이런 5 세력의 산업 환경에서 경쟁 우위를 차지할 수 있는 전략적 위치를 선점할 수 있다고 본다. 굉장히 다양한 방면에서 정보시스템을 활용할 수 있는데, 먼저 제품이나 서비스의 원가절감을 위해 이용하는 방식이 있다. 월마트나 대형 아웃렛 등에서 제품 태그를 활용한 물류 정보시스템 도입이 좋은 사례이다. 또 요즘 카페나 식당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키오스크 주문방식도 인건비를 줄이는 저비용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신제품이나 서비스 개발을 위해, 기존 제품이나 서비스의 품질 향상을 위해서도 정보시스템을 활용할 수 있다. 애플의 아이폰이나 구글의 검색엔진 등 사례가 있으며, 정보시스템 도입으로 이제는 다품종 소량 생산에서 더 나아가 다품종 대량생산까지 가능해지고 있다. 틈새시장을 공략하는 데에도 이용된다. VVIP를 위한 폐쇄형 웹서비스 개발 사례가 대표적이다.
『케인스와 하이에크』,니콜러스 웝숏‘경제학의 두 조류, 승자는 누구인가’케인스와 하이에크의 첫 접촉은 1927년 하이에크의 서신으로 시작되었다. 오스트리아의 젊은 경제학자였던 빈은 이미 당시 42세의 세계적인 학자였던 케인스에게 당돌하게 편지를 보내, 책을 구해줄 수 있는지를 물었다. 그 책은 50년 전 책인 프랜시스 이시드로 에지워스의 「수리경제학」이었다. 그러나 케인즈는 책의 재고가 떨어졌다는 답장을 하고 첫 서신교환을 끝났다. 구하기도 그리 어렵지 않았던 그 책을 하이에크가 왜 케인즈에게 부탁했는지는 모르겠다. 당시 케임브리지 중심의 영국 경제학파와 유럽의 경제학파 사이에는 큰 의견대립이 있었다. 영국은 케인스의 스승 앨프리드 마셜을 중심으로, 유럽은 하이에크의 스승 폰 미제스를 중심으로 굴러갔고, 양 측은 접촉이 꽤 빈번했음에도 서로 잘못 이해하는 부분도 있고 의견충돌도 있었다.케인스는 학자 집안에서 태어나, 영국 경제학계의 거장 앨프리드 마셜에게 개인 교습을 받던 중, 그의 권유로 경제학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는 케임브리지의 폐쇄적 소모임, 블룸즈버리 그룹 친구들과 친분을 다지며 보냈다. 일찍이 경제학과 재정에 뛰어났던 그는 전쟁 전후로 정부의 부름을 많이 받았다. 그렇게 지배층에 합류했지만, 그는 1차 세계 대전의 승리를 목표로 한 정부와는 달리, 전시의 특수한 경제 상황에 흥미를 느낀 것뿐이었고 자신이 전쟁에 관여하면 더 이로운 정책을 실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케인스는 영국 로이드조지 총리의 부탁으로 평화 회의의 협상 전략가로 파리에 갔고, 연합국 지도자들이 독일과 오스트리아에 엄청난 액수의 배상금을 징수하려는 것을 보고, 절망하고 지친 나머지 사임하게 된다. 이는 기본적으로 케인스가 평화주의자였기 때문이다. 격정과 분노를 안고 영국에 돌아온 케인스는 파리에서 보고 겪은 일을「평화의 경제적 귀결」이란 책으로 펴내 연합국 지도자들을 맹비난했다. 이 책은 전 세계 판매량이 10만 부를 넘어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패전국에서 제개입을 주장하자 하이에크는 이 순간을 기점으로 미제스와 하이에크를 포함한 자유주의 지지자들과 노선을 달리하게 되었다. 당시 경제는 균형으로 향하는 자연적 힘이 있다는 고전학파의 견해가 지배적이었는데, 케인스는 금 본위제를 택해도 금의 가치가 중앙은행의 정책에 달렸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고 설파했고, 통화량과 물가의 장기적 관계를 다시 따져보았으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 통화량과 물가관계에서 화폐의 유통속도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균형 이론의 장기라는 개념이 확실치 않은 개념이라고 생각했다. 한편 하이에크는 미제스의 소개로 젱크스 교수를 알게 되고, 미국의 자유방임적 자본주의를 직접 살피러 미국에 갔고, 그 곳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1924년 빈으로 돌아왔다. 하이에크는 빈에서 다시 전쟁채무 관리를 하였고, 그 때 즈음하여 사회주의에 대한 기존 신념이 흔들리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만의 생각을 전개하여 경기 순환을 연구하고자 했다. 같은 시기, 케인즈는 『화폐 개혁론』을 펴내고 이곳저곳에 칼럼과 기고문을 쓰면서 바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20년대의 높은 실업률을 경험하며 정부의 고용의무를 주장, 파운드화 평가를 당시의 낮은 수준에 고정해야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영국은 고금리, 고실업에 물가하락, 파운드화 강세에 고임금까지 겹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케인스는 정부나 중앙은행의 경제관리가 없다면 자본주의자체가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에 공격받을 것이라 경고했다. 또한 높은 실업률을 낮추기 위해 엄청난 돈을 정부가 지불해야하며, 실패할 수도 있지만 돈을 낭비하더라도 안 쓰는 것보단 낫다고 확언했다. 자유방임은 수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케인스는 사회주의자는 아니었다. 그는 사회주의도 비판하며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중도를 지향했다. 파운드화 평가절상으로 물가가 하락하면 임금은 그에 맞게 떨어지지 않는다는 그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새 재무부 장관 윈스턴 처칠은 금 본위제 복귀를 하였고 이는 명백한 과오임이 드러났다. 1926년 최초로 총파과 물가상승, 반대면 불황과 물가하락 및 실업이 발생한다고 봤다. 또한 국민총소득은 소비재와 자본재로 구성되며 경기순환의 이유는 은행이라고 했다. 따라서 중앙은행의 금리와 상관없이 장기 균형은 도달되나, 그 과정에서 끊임없는 불균형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 외에 고정 환율 문제를 거론하고 초국가적 중앙은행의 창설을 논하기도 했다. 맥밀런위원회에서 케인스는 정부지출 확대, 재정 관세를 주장하기도 했다. 한편, 영국 LSE에서 하이에크는 통화량과 상대가격, 우회적 생산방식, 가격 원리 및 구조와 필연적 경제 위기, 자신의 화폐 이론에 대한 강연을 했다. 네 차례 강연의 핵심주장은 ‘불균형의 경제는 시간이 약’이라는 것이었다. 하이에크는 《이코노미카》에 케인스의 『화폐론』에 대한 반박 서평을 냈고, 케인스는 이에 대응하여 같은 저널에 반론의 글을 냈다. 그리고 이후, 오랫동안 사적인 서신교환을 하였으나 의견대립은 좁혀지지 않았고, 이는 두 사람의 제자들 간 논쟁으로 길게 이어졌다. 케인스의 제자 스라파는 하이에크의『가격과 생산』을 상세히 검토하는 글을 《이코노믹 저널》에 싣는다. 케인스와 하이에크 논쟁에 비해 큰 의미가 없었던 이 논쟁도 경제 총량적, 거시 경제적 사고를 했던 케인스와 미시 경제적 사고를 했던 하이에크의 차이를 보여줄 뿐이었다.1930년대 나치독일이 부상하면서 자본주의에 위기가 닥쳐왔다. 몇 년이 지난 1936년 케임브리지 서커스의 도움과 그들과의 오랜 의견교환 끝에 자신의 이론을 정리한 케인스는『고용, 이자, 화폐에 관한 일반 이론』을 출간했다. 이 책에서 케인스는 고전파를 비판하여 세이의 법칙을 부정하였고, 유동성 선호에 대한 생각을 설명하였으며 승수의 개념을 도입했다. 케인스의 책은 미국의 대공황을 타개할 방법으로 각광받게 되었고, 케인스는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서신에서 그리고 직접 만난 자리에서 자신의 방법 즉, 정부가 빚을 내 공공사업을 추진하는 것을 권유했다. 그리고 이는 루스벨트의 뉴딜정책에 영향을 주었음이 분명하다. 루스벨트뿐 아니라 케어 하이에크를 지지하던 많은 이들이 케인스 사상으로 돌아섰다. 1941년 『순수 자본 이론』이 모습을 드러냈지만 그 여파는 미미했고, 순수 경제 이론 분야에서의 마지막 일격으로 상품 수요는 노동 수요가 아니라고 주장한 것이 끝이었다.루스벨트 불황을 겪고 난 미국은 케인스 논리를 더욱 적극적으로 받아들였고, 여기에 더해 2차 세계 대전이 터지면서 군비증강을 통해 경기를 회복하게 되었다. 이는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 각 국에도 해당하는 것이었다. 문제는 전후 경기 침체를 막는 것이었고, 케인스는 금 본위제의 개편과 질서 있는 통화 시스템 구축을 제안하였다. 그리고 이는 훗날 IMF와 세계은행 구상에 큰 영향을 주게 된다. 그 사이 하이에크는 『노예의 길』을 저술하여 나치즘과 파시즘을 비판하고, 전후 경제에도 전시 상황처럼 정부지출을 늘리는 것은 개인의 자유를 제한할 뿐이라 하였다. 또한 케인스의 말대로 국제 정치 기구를 설립하는 것은 결국 권위주의로 흐르게 된다고 우려했다. 물론 케인스는 하이에크의 견해에 일면 반대했다. 전체주의는 개인의 윤리적 선택 문제라고 본 것이다. 그래서 자유주의와 전체주의 극단이 아닌 중도가 가능하다 생각했다. 1946년 케인즈는 바쁜 삶을 견디지 못하고 죽었다.하이에크는 『노예의 길』의 흥행으로 원치는 않았지만 미국 전역에서 순회강연을 하였다. 그러나 그 책으로 하이에크는 동료 경제학자들로부터 고립되었다. 그는 자신과 노선을 같이 하는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을 모아서 스위스 몽펠르랭에서 회의를 했고, 자신은 보수주의자도 사회주의자도 아닌 자유주의자라는 것을 강조했다. 얼마 안 있어 하이에크는 『자유의 권능을 세우다』를 출간하여 이전 작만큼의 흥행을 기대했으나 기대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케인스는 죽었지만 여전히 그는 케인스를 넘어설 수 없었다. 60년 이후 그는 우울증과 건강문제, 그리고 더 심각해진 개인적인 금전문제 때문에 힘겨워했다. 세계는 크게 변하여 케인스를 더욱 옹호하였고, 하이에크는 외톨이가 되었다.케네디가 대통령이 된 후에도 케인국 총리가 되면서 하이에크와 자유주의가 다시 빛을 보기 시작했다. 대처는 정부 공공 부문과 통화량을 축소했고 세금은 줄였으며 기업에 대한 정부 규제를 완화했다. 대처에게 영감을 받은 레이건은 작은 정부, 세금 인하와 강한 국방을 걸고 1980년, 대선에서 승리했다. 프리드먼에게 자문을 얻은 레이건은 물가를 잡기 위해 긴축적 통화정책을 시행했다. 경제가 호황 가도를 달리게 되었지만 케인즈 추종자들이 보기에 이것은 완전한 케인즈 이론의 시행이었다. 앞에서는 하이에크를 추종한다 했으나 뒤로는 국방비에 막대한 예산을 지출하며 수요를 진작시킨 것이다. 어쨌든 세월이 흐르면서 하이에크의 주장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늘었고, 이를 입증하기라도 하듯이 구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들이 막을 내렸다. 이러한 상황은 케인스 사고와 하이에크 사고를 절충하는 탈-케인스주의의 도래를 야기했다. 그러나 여전히 하이에크 주장처럼 고물가가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하는 민물경제학자들과 실업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하는 짠물경제학자들 사이에 간극이 존재했다. 민물경제학자들은 공급 측면의 해결책을, 짠물경제학자들은 수요 측면의 해결책을 더 중시했다. 그래도 하이에크가 대세였다. 루카스를 비롯한 많은 경제학자들이 탈-케인스주의라는 이론적 합의를 통해 경기 순환을 정복했다고 여겼다. 레이거노믹스에 이어서 정권을 잡은 조지 H. W. 부시는 90년대 초, 그동안의 호황이 주춤하면서 클린턴에게 자기 자리를 내주게 되었다. 클린턴은 국가 채무를 감소시키는 것을 목표로 계층별 차별적 세율, 균형 재정법 등을 도입해 늘어난 세수로 기록적인 채무상환을 했다. 2001년 조지 W. 부시가 대통령이 되었고 재정흑자로 시작한 부시 정권은 곧 불황을 맞이했다. 90년대 인터넷 회사들의 주식 거품이 붕괴되고 세계화로 인한 경쟁심화로 상품가격이 떨어졌으며, 세수가 줄어들었다. 설상가상으로 9.11 테러가 발생했다. 부시는 정부 지출 증대의 대안을 내놓았는데 이런 경제 활성화 시도는 효과가 없었다. 경제 성장은 부진했고, 기 있다.
영화감상문‘fail-safe’는 ‘안전장치’를 의미한다. 영화 속에서는 우발적인 전쟁을 막는다는 기본적인 의미와는 약간 다르게 미국과 소련 간의 전시 상황을 가정했을 때, 핵을 실은 폭격기는 특정한 지점을 넘어서면 그 어떤 무선명령이 떨어지더라도 명령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뜻한다. 결국 그 폭격기의 조종사는 무조건 처음 입력된 목표지점으로 날아간다. 다시 말해, 폭격기가 별도의 지시가 없으면 넘을 수 없는 ‘한계선’을 'fail-safe'라고 한다.60년대 냉전시기, 미국은 실시간으로 자국 영공을 감시하고 있다. 어느 날 레이더망에 알 수 없는 비행체가 포착되자 국방부는 즉시 핵폭탄으로 무장한 폭격기와 전투기를 발진시킨다. 그러나 비행체는 기류로 항로를 이탈한 민간 여객기였다. 문제는 전파 방해 때문에 귀환 명령을 전달받지 못한 폭격기들이었다. 이들은 전쟁이 발생한 것으로 착각하고 모스크바에 핵폭탄을 투하하러 간다. 미국 대통령은 핫라인을 통해 소련의 서기관에게 이는 실수이고 폭격기를 격추시키는 데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도와주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결국 모스크바에는 폭탄이 투하되고 미국 대통령은 자국의 도시 뉴욕에도 동일하게 폭탄을 투하하는 극단적인 결말로 영화는 끝난다.영화는 이렇다 할 해결책 없이 끝이 났지만, 현실에서는 이상주의자들이 역사적인 사실과 경험을 바탕으로 ‘민주 평화론’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 이론은 두 가지 명제를 가진다. 민주주의 국가 간에는 전쟁을 하지 않는다는 것과 비민주주의 국가와는 전쟁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치체제가 다른 적대국이 있다면 불확실성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이론에 근거하면, 제한적인 사태인식으로 인한 불확실성의 문제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은 도덕성과 합리성이 발전하여 타인에 대해 관대해지므로 타인이나 타국을 수단화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적어도 영화에서와 같은 안보 딜레마 상황은 오늘날 민주주의 국가 사이에서는 발생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물론, 민주 평화론에도 비판과 한계점이 존재한다. 민주주의라는 국가내부의 체제가 전쟁을 소멸시키는 것이 아니라 전쟁의 소멸이 민주주의를 가져온다는 인과관계의 잘못이라는 비판, 민주국가의 역사는 오래되지 않았다는 통계의 오류라는 비판, 민주국가에 전쟁 명분을 제공할 수 있다는 한계점 등이 그것이다.사실 이 영화의 비극적인 결말은 ‘안보 딜레마’의 상황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냉전시대라는 배경에서 미국은 자국의 안보를 확보하기 위한 조치로서 전투기와 핵을 실은 폭격기를 띄운 것이고, 어떤 한계선을 넘었을 때는 비록 그것이 타국의 안보를 저해하는 것일지라도, 무조건적으로 실행하도록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근본적으로 이러한 안보 딜레마의 상황은, 영화 속에서는 미국과 소련의 경우인데, 두 국가 간의 신뢰 부재 때문이다. 영화 속 대통령과 서기관의 핫라인 연결 장면을 보면서 답답하다고 느낀 것도, 미국 대통령이 아무리 믿어달라고 해도 서기관은 믿지 못하고 그저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 합리적으로 대응할 뿐이었기 때문이다. 신뢰 부재로 인한 정보의 불확실성은 안보 딜레마의 상황을 심화시키는 악순환을 야기할 뿐이다. 이런 의미에서 영화 속 미국 대통령이 소련 서기관에게 했던 ‘사고는 기계가 일으키지만 책임은 사람에게 있습니다.’ 라는 대사가 기억에 남는다. 마지막 비행기 장면에서 누군가가 ‘이 모든 것이 소련의 계획이었을 것이다’라며 의뭉스런 표정을 짓는 것에서도 이 안보 딜레마의 상황이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