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1. 중국 건축문화의 대명사, 자금성
1.1. 자금성의 역사와 건축
1.1.1. 자금성의 건축연혁
자금성은 명의 3대 황제인 성조의 재위 중인 영락 4~18년(1406~1420) 사이에 건립되었다. 당시 명나라 태조 주원장은 건국 당시 국도를 금릉으로 정하고 남경이라 불렀으나, 주원장의 제4자였던 주태가 무력으로 남경을 공략하여 영락으로 연호를 바꾸고 황제에 올랐다. 북방으로 패주한 원의 잔존세력이 계속 위협을 가해왔기 때문에 군사적으로 정권 강화가 필요하여 영락 4년(1406년) 북경 천도의 결정을 내리게 된다. 이어 영락 5년(1407년) 5월에 궁전, 단묘 및 장릉(주원장의 능묘) 건설을 시작하여 자금성이 조영되었다.
그러나 자금성 완성 직후부터 화재가 빈번하게 발생했다. 완성된 다음해인 1408년 가장 중요한 봉천전(태화전), 화개전, 근신전의 외조 3전이 화재를 당했고, 그 다음해에는 황제의 어좌소였던 건청궁이 소실되는 등 자주 화재가 발생했다. 이후에도 1644년 명을 멸망시켰던 반란군의 수령이 청군과 강화를 맺으면서 궁전에 불을 질러 중요 건물의 대부분을 태웠다.
그러나 자금성은 매번 재건되었고, 청대에는 건물의 명칭만 변경하였을 뿐 지금도 창건 당시의 모습을 잘 보존하고 있다. 이처럼 자금성은 명·청 두 왕조에 걸쳐 수차례 재건되었으나 원래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어, 현재 중국에서 보전되고 있는 규모가 가장 크고 가장 완전한 황궁 건축군이라 할 수 있다.
1.1.2. 자금성의 조영계획
자금성의 조영계획은 다음과 같다.
첫째, 자금성은 원의 수도였던 대도를 기반으로 하여 건설되었다는 점이다. 설계자들은 원의 대도에 대한 전체 상황을 파악한 후에 계획을 연결하였다. 자금성에 물이 부족했기 때문에 태액지의 물을 성의 서북모퉁이로 끌어들여 남쪽으로 돌렸고, 오문 내의 정원에는 아름다운 금수하가 동남방향으로 흘러 창포하, 어하, 통혜하와 연결되도록 하였다.
둘째, 역대 도성의 훌륭한 성과를 충분히 숙지하여 원의 대도보다 궁전 배치를 더욱 장대하게 개조하였다. 원나라 대내의 정문인 숭천문(현재의 오문)에서 대도의 정문인 여정문까지의 거리가 비교적 짧아 북송 변량의 궁전 앞 천가와 같은 웅대하고 심원한 기백을 볼 수 없었다. 그래서 변량의 천가를 모방하여 남측에 현재의 정양문에서 자금성까지 직선으로 연장시킨 중축선을 형성하였다.
셋째, 명대 북경성의 경우 원의 궁전과는 달리 황후, 비빈들의 궁실 전부를 자금성 내에 배치하고 그 주위에는 폭 52m의 해자를 파서 방어하였다. 원 때의 궁전은 경도를 중심으로 흥성궁, 융복궁, 대내 3개소의 궁전군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자금성 주위에 높이 약 49m의 경산을 만들어 배후의 장벽으로 삼았는데, 이는 남경궁전의 후방에 만세산을 만들어 배후의 장벽으로 삼았던 것을 모방한 것이다.
이처럼 자금성의 조영계획은 원의 대도를 기반으로 하되, 역대 도성의 우수한 성과를 참고하여 더욱 웅장하고 장대하게 개조하였다. 또한 황후와 비빈들의 궁실을 자금성 내에 포함시키고 방어시설을 대폭 강화했다는 특징을 보인다.
1.2. 자금성의 건축특징
1.2.1. 건축재료와 구조
자금성에 사용된 주요 건축재료와 구조는 다음과 같다.
첫째, 목재이다. 중국 고대 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재료는 목재이며, 자금성 조영에 사용된 목재 또한 매우 엄격한 기준으로 선정되었다. 자금성의 목조가구와 제작에 사용된 목재는 향남이나 금사남(金絲楠) 등의 최상급 남목(楠木, 樟木, 녹나무과)이 선정되었다. 자금성이 건설되는 동안 북경성 내에는 대규모 목재 저장소가 있어 언제나 부족함이 없었다고 한다. 특히 서쪽 대목창(大木廠)은 그 규모가 3,600칸에 달할 정도로 방대했으며, 정통 2년(1437년)까지 약 38만 본의 우수한 목재가 저장되어 있었다.
둘째, 벽돌과 기와이다. 자금성에 사용된 벽돌과 기와는 형태와 양이 매우 다양하고 많았다. 벽돌은 성전(城塼), 징장전(澄漿塼), 방전(方塼) 등 세 가지로 구분되었으며, 기와 또한 금속기와, 청기와, 황색유리기와 등 세 종류로 나뉘었다. 이렇듯 다양한 재료가 사용된 이유는 건물의 수가 많고 성벽이 크며 여러 종류의 특수한 장식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셋째, 석재이다. 자금성 건축에는 엄청난 양의 석재가 사용되었으며, 그 규격 또한 매우 엄격했다. 기단에 사용된 계조석(階條石)은 주간(柱間)과 길이가 같도록 규제되었다. 특히 거대한 규모의 석재들이 많이 이용되었는데, 이러한 거대 석재를 운반하기 위해 수레와 산륜(散輪)을 사용했다. 겨울철에는 노면에 얼음을 깔아 마찰을 줄이는 방법으로 운반했다고 한다. 백석, 청석, 두사석(豆渣石), 화강암, 청사석(靑砂石) 등 용도와 내구성에 따라 다양한 석재가 활용되었다.
넷째, 기타 건재료로 석회와 홍토, 금박 등이 대량으로 사용되었다. 궁전 벽면은 적색으로 마감되었는데, 황색유리기와에 석회와 홍토를 혼합한 내롱회(來瓏灰)가 사용되었다. 또한 보좌와 실내외 장식에는 금박이 대량으로 사용되었다.
이처럼 자금성은 당대 최고 수준의 건축자재와 기술이 동원된 걸작이었다. 거대한 규모와 화려한 장식, 정교한 구조로 인해 자금성은 중국 전통 건축의 대표작이자 세계적인 건축유산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1.2.2. 건축공간의 조형성
자금성의 건축공간은 그 변화가 풍부하며, 건축과 건축, 건축과 인간과의 관계를 교묘히 처리하였다. 개개의 공간에도 여러 가지 독특한 시각적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
오문은 자금성의 정문으로서 전방에 연결된 통로는 궁전과 통하는 간선이며 천가(天街)라고 한다. 오문의 양측에 회랑이 연결되어 긴 지붕을 형성하고 있는데 천가에서 바라보면 마치 의장대가 사열하는 것과 같은 엄숙한 분위기를 연출해준다. 오문을 들어서면 지금까지의 분위기와는 달리 대단히 넓은 중정이 눈앞에 전개된다. 중정 가운데는 다섯 개의 아치교가 놓여 있고 내금수하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