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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론
1.1. 일본과 한국의 관계 변화
오늘날 일본과 한국의 관계는 한일 월드컵 공동개최 등을 통해 과거의 민족사적 대립보다는 동반자로서의 공존을 모색해 가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나라 역사 속 침략과 식민통치의 아픔이 남아있다. 전 세계적으로 침략전쟁의 주범들은 유래없이 역사적 심판을 받고 단죄되었지만, 유독 일본의 정신적 지주였던 히로히토 천황만은 그러한 역사의 심판을 받지 않았다는 점에서 여전히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원활하지 않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최근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지는 일본이 19세기 말부터 제2차 세계대전 패망까지 한반도 곳곳에서 약탈한 문화재 10만여점을 반환하지 않았으며, 이에 반대한 핵심인사가 당시 일본 점령군 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었다고 폭로하였다. 이는 일본이 한국에 대한 식민지배와 약탈의 역사를 제대로 청산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일본의 역사적 책임 회피와 한국에 대한 이해 부족은 여전히 한일관계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양국은 서로의 아픔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자세로 과거사를 청산하고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구축해 나가야 할 것이다.
1.2. 히로히토에 대한 의문
히로히토에 대한 의문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히로히토가 전쟁의 책임을 어떻게 회피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의문이다. 히로히토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천황으로, 전쟁의 최고 책임자였다. 그러나 그는 전쟁 중에는 군대를 직접 통제하지 않은 채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했고, 전쟁 후에는 전범 재판에서도 처벌을 면제받았다. 이에 대해 많은 이들은 히로히토가 책임을 회피하는데 성공했다고 보고 있다. 저자는 이것이 히로히토의 치밀한 "처세술과 위장술"의 결과라고 지적한다. 히로히토는 전쟁에 대한 책임을 부하들에게 전가하고, 자신은 뒤로 물러서는 전략을 통해 처벌을 피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둘째, 히로히토가 전쟁을 막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막지 못한 이유에 대한 의문이다. 저자는 히로히토가 군국주의자들의 전쟁 추진에 반대하는 의사를 표명했지만, 결국 전쟁을 막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이는 히로히토가 천황이라는 신격화된 존재로 인해 실질적인 권력을 행사하기 어려웠기 때문으로 보인다. 군국주의자들은 천황의 명령을 거역할 수 없었고, 히로히토는 이들을 제어하지 못한 채 전쟁에 휩싸이게 된 것이다.
즉, 히로히토는 전시에는 전쟁 책임을 피하고자 했으며, 전후에는 맥아더 장군과의 협력을 통해 처벌을 면할 수 있었다. 이는 그가 치밀한 "처세술과 위장술"을 통해 자신을 보호하고자 했음을 보여준다. 다만 그가 실질적인 권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꼭두각시"에 불과했다는 점에서, 그가 전쟁을 막지 못한 이유에 대한 의문도 여전히 남아있다고 할 수 있다.
2. 천황제의 개념과 의의
2.1. 천황의 개념과 유래
천황의 개념과 유래는 다음과 같다.
천황이라는 말의 유래는 도교에서 우주 지배자를 일컫던 '천황대제'에서 기인한다. 7~8세기경 일본 지배계급은 당시 '대왕'으로 불리던 왕을 '천황'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이는 중국 신화에 등장하는 '천황대제', 즉 북극성을 신격화한 존재를 본받아 만든 용어이다.
8세기경 고대 일본 조정이 펴낸 것으로 알려진 『고사기』와 『일본서기』는 이렇게 성립된 '천황'을 신성화하고 정당한 존재로 묘사하고 있다. 이 두 책은 민중 사이에서 생겨난 신화를 있는 그대로 편찬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천황가의 궁정에 전해진 신화와 설화를 이용해 개작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