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역사의 거울 앞에서"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중세교회사: 어둠 속에서 빛을 찾다
1.1. 중세교회 시대에 대한 오해와 진실
1.2. 게르만족의 선교와 복음 전파
1.3. 교황권의 확립과 신장
1.4. 동·서방교회의 분열
1.5. 교황권과 제왕권의 대립
1.6. 이슬람권의 확장과 십자군 운동
1.7. 중세 수도원 제도와 수도원 쇄신 운동
1.8. 13세기 경건생활과 성례전 교의
2. 중세 문화와 사회에 나타난 교회의 면모
2.1. 스콜라 신학의 발전과 기여
2.2. 중세 신비주의와 데보치오 모데르나
2.3. 중세 교회의 사회봉사와 대학의 생성
3. 교회사를 통한 교회의 모습 성찰
3.1. 교황권의 쇠퇴 과정과 그 의미
3.2. 중세 종파운동과 종교개혁의 선구자들
3.3. 역사의 거울 앞에 선 교회와 그리스도인
4. 참고 문헌
본문내용
1. 중세교회사: 어둠 속에서 빛을 찾다
1.1. 중세교회 시대에 대한 오해와 진실
중세교회 시대는 암흑기가 아니다. 중세교회 시대는 단순히 어둠 속에 갇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역동적으로 변화하며 빛을 찾아가는 시기였다.
먼저, 중세교회 시대를 암흑기라고 부르는 것은 부적절하다. 이는 주로 일반 문화사가들이 내린 평가이다. 이들은 중세 시대 세속문화와 세속 학문이 교회 조직에 의해 눌려 제대로 발전하지 못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또한 기독교인들 중에서도 중세를 암흑기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중세가 초대교회와 종교개혁기 사이의 중간기라는 막연한 의미 때문이다.
그러나 중세교회 시대에는 잘못된 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면도 많았다. 예를 들어 중세 스콜라 신학자들은 기독교 교리를 더욱 성경적으로 발전시켰다. 안셀무스는 대속 교리를 발전시켜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에 대한 이해를 깊이 있게 발전시켰고, 토마스 아퀴나스는 대속 교리와 성육신의 필요성에 대해 더욱 체계적으로 설명하였다. 이러한 발전은 종교개혁자들에게 이어졌다.
또한 중세교회는 교회 조직을 강화하여 복음 전파와 교회 보존에 힘썼다. 로마 주교가 점차 세력을 확대하여 교황으로 부상하였고, 교회는 강력한 조직으로 성장하였다. 이를 통해 초대교회 이후 어려운 시기를 잘 견뎌낼 수 있었다. 비록 교회 내부에 부패가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지상의 불완전한 교회를 보존하시고 사용하셨다.
따라서 중세교회 시대를 단순히 암흑기로 규정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이 시기에도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고, 교회는 복음 전파와 신학 발전, 조직 성장 등을 통해 발전해 나갔다. 중세교회사를 이해할 때는 이러한 긍정적인 면도 함께 고려해야 할 것이다."
1.2. 게르만족의 선교와 복음 전파
주후 180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가 죽고 게르만족이 서유럽 역사의 주인공이 되었다. 이는 기독교에도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게르만족은 추운 곳에서 따뜻한 곳을 찾아 내려왔고, 인구 증가로 인한 식량 부족으로 더 풍족한 곳을 찾아왔다. 이에 따라 로마인들과의 충돌이 시작되었는데, 고트족이 훈족의 공격을 받아 서쪽으로 밀려오면서 게르만족의 본격적인 이동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동로마제국과 교전을 벌였지만 뜻대로 되지 않자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서로마제국을 공격했고, 결국 476년 서로마제국은 멸망하게 된다. 로마 주교는 동로마황제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535년에서야 유스티니아누스 대제가 선왕들이 계획한 서유럽 수복을 위해 원정군을 보냈다. 하지만 유스티니아누스 대제가 죽은 후 국력이 급속히 쇠퇴하면서 1453년 동로마제국도 멸망하게 된다.
서로마 지역의 새로운 통치자가 된 게르만족은 피정복민인 로마인들의 문화에 동화되었고 로마인들에게 전도 받아 기독교도가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게르만족 선교에 제1차 세계공의회인 니카이아 공의회 때 이단으로 정죄 받은 아리우스파가 먼저 나섰다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절대적 초월성을 강조하며 성자가 성부와 동일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정통 기독교 신앙은 뒤늦게 그들에게 전파되었다.
중세 유럽 선교와 관련해서 기억해야 할 것은 기독교회의 주체가 바뀌었다는 사실이다. 복음은 로마제국 식자층의 언어였던 그리스어로 기록되었고, 로마가 교만하고 퇴폐하자 하나님께서 복음의 횃불을 야만인들에게 넘기셨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복음의 중심이 계속해서 서진한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쓰시던 민족이 교만할 때 그들을 버리셨다. 오늘날 우리 한국 교회도 잘못된 것을 찾아서 회개하고 선교에 합당한 정결한 그릇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1.3. 교황권의 확립과 신장
중세교회의 가장 큰 특징은 교황제도라고 할 수 있다. 로마제국의 박해를 피해 카타콤에 숨어 예배를 드릴 때만 해도 신자의 수는 그렇게 많지 않았지만 교인 수가 급증하자 이전에는 필요 없던 새로운 조직이 생겨났다. 교회조직이 강화되면서 교회 직원들도 고위직원과 하위직원으로 나뉘게 된 것이다. 또한 이들에 대해 요구된 것이 독신 생활이었다. 로마 주교는 먼저 고위 성직자들에게 세속적인 직업을 버릴 것은 물론이고 금욕적인 생활을 하도록 요구하기 시작했다. 로마 가톨릭 교회가 성직자의 독신제도를 공식화한 것은 306년 엘비라공의회 때였다. 그리고 6세기 중엽 교황 펠라기우스 1세는 성직자 임직 때 재산목록을 제시하도록까지 요구하였다. 독신을 요구한 것은 성결의 이유와 교회 재산 누수 방지를 위한 것이었다. 서서히 강화된 로마 가톨릭의 교회조직은 마침내 교황교회의 모습이 되었다.
교황권 우위 주장은 세 갈래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로마 주교가 서방교회 내 다른 주교보다 우위에 있다. 둘째, 로마 주교가 다른 총대주교들보다 우위에 있다. 셋째, 로마 주교가 세속의 왕이나 황제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이다. 이런 개념이 동·서방 교회의 분열 문제, 그리고 교황권과 왕권의 대립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에 중요하다.
그레고리우스 대교황은 로마 교회는 사도적 교회의 권위를 갖고 있다는 과도한 주장을 했다. 로마 교황청은 로마 주교 즉 교황의 우위성을 입증하려고 여러 모로 애썼다. 교황청의 억지가 들어가 있는 것을 볼 수 있고, 더 나아가 세속권에도 손을 뻗었다.
교황권의 확립과 신장과 관련하여 ...
참고 자료
김열규, 「현대의 언어적 구제와 이상문학」, 『지성』, 1972.
임문혁, 「이상 시의 구조와 의미」, 한국비평문학회, 비평문학 제3호, 1989.08,
조광제, 『몸의 세계, 세계의 몸』, 이학사, 2004.
신범순, 「거울과 얼굴의 기호 풍경」, 『이상 문학 연구-불과 홍수의 달』, 지식과 교양, 2013,
Sigmund Freud, 김인순 역, 『꿈의 해석』, 열린책들, 1997.
이규현 역, "말과 사물" 민음사,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