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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교육제도"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조선시대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1.1. 조선시대 교육제도
1.1.1. 관학
1.1.1.1. 성균관
1.1.1.2. 4부 학당
1.1.1.3. 종학
1.1.1.4. 잡학
1.1.1.5. 향교
1.1.2. 사학
1.1.2.1. 서재
1.1.2.2. 서당
1.2. 조선시대 과거제도
1.2.1. 과거제의 정비와 운영
1.2.2. 과거의 종류
1.2.2.1. 문과
1.2.2.2. 생원·진사시
1.2.2.3. 무과
1.2.2.4. 잡과
2. 참고 문헌
본문내용
1. 조선시대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1.1. 조선시대 교육제도
1.1.1. 관학
1.1.1.1. 성균관
성균관은 조선왕조의 국립 최고고등교육기관이었다. 성균관은 고구려에서는 국학, 신라에서는 태학이라 불리다가 고려시대에 처음으로 국자감이라 칭해졌으며, 그 후 성균관으로 불리었다. 태조 7년(1398)에 현재의 성균관대학교가 있는 숭교방에 건립되었다. 성균관의 주된 교육목적은 인재양성, 선현·선성에게 제사지내는 것, 고급관리 배출 등이었다.
성균관의 주요 시설로는 문묘, 명륜당, 존경각, 계성사, 비천당, 육일각, 일양재, 벽팔재 등이 있었다. 문묘는 대성전과 동서양재로 구성되었으며, 대성전에는 공자와 제현들을 모셨다. 명륜당은 유생들이 강학하는 곳이었고, 그 주변에 동·서양재가 있었다. 존경각은 성균관의 도서관 역할을 하였다.
성균관 유생은 생원·진사인 상재생과 보충적 하재생으로 구분되었다. 유생들은 경술과 문예를 주로 공부하였는데, 경서를 강독하고 제술과 서법을 연습하였다. 교육내용은 4서 5경, 근사록, 성리대전, 통감 등이었고, 경서에 대한 9제로 구성된 교과과정이 특색이었다. 교육활동으로는 학관일강, 예조월강, 통독 등의 평가시험이 있었다.
성균관의 재정은 학전과 성균관 노비의 신공 등으로 충당되었다. 성균관 운영에 소요되는 제사와 유생 지원 비용 등은 이를 통해 마련되었다. 또한 오랫동안 수학하고 학문과 행실이 뛰어난 자는 공천을 통해 관직을 제수받기도 하였다.
성균관은 조선초기 주자학 보급과 관료양성의 중심적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조선 후기로 가면서 정치적 갈등과 함께 교육의 기능도 점차 약화되었다.
1.1.1.2. 4부 학당
조선왕조의 수도를 한양으로 옮긴 뒤인 태종 11년(1411) 6월에 남부학당, 세종 4년(1422) 12월에 중부학당, 세종 17년 11월에 서부학당, 세종 20년 3월에 동부학당의 학사를 각각 마련하였다. 이리하여 조선 초기부터 5부학당 가운데 북부학당을 제외한 4부학당이 운영되게 되었다. 그러나 북부학당은 끝내 설치되지 못하였다.
4부 학당은 송의 三舍法(삼사법 : 외사·내사·상사) 중 외사에 해당하는 학제였다. 삼사법은 학생들이 우선 외사에 들어가 공부를 하다가 성적이 좋으면 내사로, 내사에서 상사로 올라가 상사에서 직접 관리로 임명하는 제도였다. 4부 학당의 생도들은 8세가 되면 입학하여 15세가 되어 《소학》과 「4서」를 시험보이는 승보시에 합격하면 성균관에 들어가 공부할 수 있었다.
4부 학당에는 양인 이상의 신분이면 누구나 입학하여 생원·진사시를 준비하는 교육에 임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학구제가 있었던 것도 아니어서 지방학생들도 각 도의 추천을 받아 입학할 수 있었다. 각 학당의 정원은 100명씩으로 입학시험이 따로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학당의 교과목은 소학과 4서가 중심이었으며 교육평가는 경서를 배강케하는 강경과 논술시험인 제술로 나누어져 있었다. 특히 학당의 교육에서는 소학이 중시되었고, 소학 이외에도 4서와 《효경》·《삼강행실》·《주자가례》·《사략》 등이 학당의 교과서로 널리 쓰였다. 《경국대전》에는 4학에 교수(종7품) 2인, 훈도 2인씩을 두고 성균관 전적 이하의 학관이 겸임하도록 되었다. 4부 학당의 경비는 학전·어장의 세수입과 노비신공에 기본적으로 의존하고 있었다.
1.1.1.3. 종학
종학은 왕실의 임금과 세자 및 종친을 교육하기 위한 기관으로 경연(經筵)과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과 더불어 조선시대에 존재했다. 세종 10년(1428) 7월에 처음 설립되었으며, 종실 자제들의 교육을 담당했다. 그들의 교육 목적은 문장 실력 향상이 아니라 학문을 닦고 몸가짐을 신중히 하여 자질을 높이는 것이었다.
그러나 종친들은 관직에 나아갈 수 없었고 부귀를 누리는 존재들이어서 학문에 뜻이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종학은 성균관과 학당의 교육내용 등을 준용하였지만, 교육 행정 체계로는 타 학교와 달리 예조가 아닌 종부시(宗簿寺)의 감독을 받았다.
종부시는 조선시대 왕실의 계보인 선원보첩을 편집·기록하고 종실의 잘못을 조사 규탄하는 임무를 맡았던 관청이었다. 종학 교관으로는 처음에 종학박사 4인이 있었으나, 점차 성균관 사성(司成) 이하 관원이 겸직하게 되었다. 입학자격은 15세 이상의 종친자제로 한정했으며, 입학정원도 처음 40인이었다가 50인으로 증원되기도 했다.
종학의 교과과정은 성균관과 같이 경술(經術)과 문예(文藝)를 주로 하였으며, 소학(小學)도 중요한 과목이었다. 그러나 종학은 제도상 문란함과 종친들의 학문 열의 부족으로 유명무실해져, 연산군 때 일시 폐지되었다가 중종 때 복구되기는 하였으나 그 후 교육이 점차 쇠퇴하였다. 결국 조선 말기에는 종친을 위한 학교인 종인학교가 설치되었지만, 이마저도 융희 1년(1907)에 폐지되었다.
1.1.1.4. 잡학
조선왕조는 집권적 관료제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관리를 충당하는 방법으로 각종 관학을 설치하였는데, 그 중 잡학(雜學)이 있었다. 잡학은 유학, 무학, 역학, 의학, 음양학, 산학, 율학, 화학, 도학, 악학 등 10개 학과로 구성되었다. 이는 국가 운영에 필요한 각종 전문 관리를 양성하던 조선시대의 관학이었다.
잡학 중에서 양반들이 종사하는 것은 유학과 무학뿐이었고, 나머지 역학, 의학, 음양학, 율학, 산학, 화학, 도학, 악학은 기술관들이...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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