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국사편찬위원회 사무원"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서론
1.1. 국사편찬위원회 사무원 선정 이유
1.2. 조선사편수회와 조선사 편찬 과정 개요
2. 조선사편수회의 설치
2.1. 조선총독부의 구관제도 조사 사업
2.2. 조선사 편찬 사업의 전개
3. 조선사편수회의 운영과 편찬 과정
3.1. 조직 구성과 편찬 체계
3.2. 편찬 계획 및 추진 과정
3.3. 편찬 내용의 변화와 특성
4. 조선사편찬자들의 한국사 인식
4.1. 구로이타 가쓰미
4.2. 이마니시 류
4.3. 이나바 이와키치
4.4. 나카무라 히데다카
4.5. 세노 우마쿠마
5. 결론
5.1. 식민사학의 성격 및 영향
5.2. 현재 역사학계의 극복 노력
6. 참고 문헌
본문내용
1. 서론
1.1. 국사편찬위원회 사무원 선정 이유
국사편찬위원회 사무원 선정 이유는 일제가 강제 병합하기 전부터 한국 침략과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한 이데올로기 정립에 주력했기 때문이다. 이 작업은 병합과 함께 본격적으로 진행되었고 조선사편수회를 주축으로 이곳에서 활동한 일본인 관학자에 의해 확대 보급되었다. 조선총독부는 조선사편수회를 통해 식민통치사업의 일환으로 조선사 편찬 업무를 전담하게 했다. 이를 통해 일본은 왜곡된 역사인식을 효과적으로 확산 보급하고자 했다.
1.2. 조선사편수회와 조선사 편찬 과정 개요
일제는 식민지 통치기반 마련과 동화정책의 일환으로 한국의 구관제도나 사료 조사 등을 진행하였다. 이것은 취조국이나 참사관실에서 이루어지다가 중추원으로 업무가 이관되면서 본격화되었다. 중추원은 1910년 10월 1일부터 시행된 칙령 제355호 '조선총독부중추원관제'에 기반하는데, 조선 총독의 자문기관이자 한말의 주요 관리들을 친일세력으로 전환시키기 위한 기관이었다. 중추원은 여러 번의 관제 개정을 거쳐 1915년에는 기존 참사관실에서 담당하던 구관 및 제도에 대한 조사를 이관 받았다. 이때부터 중추원은 '조선의 舊慣 및 제도에 관한 사항'을 조사하고 사료를 수집하여 '조선반도사' 편찬을 준비하였다. 일제는 '조선반도사'의 편찬이 '충량한 제국신민에 부끄럽지 않은 지위로 이끌 것을 기대'하고 '민심의 훈육에 도움이 되고자' 계획하였다고 밝히며, 사서 편찬을 통한 역사 왜곡을 식민통치의 수단으로 활용하고자 하였다. '조선반도사' 편찬 사업은 1915년 박은식의 '한국통사'가 국내외로 급속히 퍼져나가자 본격 착수되었고, 1918년 중추원사무분장규정으로 중추원의 고유 업무가 되어 사업 기한의 제한이 없어졌다. 한편 '조선사' 편찬 사업이 추진되었는데, 이것은 1919년 3.1운동 이후, 독립운동 양상의 다양화에 따른 교육열 고조, 한국인의 자국사에 대한 관심, 특히 민족의 기원으로써 단군에 대한 관심에 대한 무마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또 당시 일본의 역사 연구자들은 한국의 통사를 서술할 사전지식과 한문 해독능력이 충분치 않았기 때문에 '조선사'가 추진되었다. 겉으로는 "공평하고 학술적인 조선사 편찬"을 표방하였지만, 연구대상과 접근 가능한 사료를 규제해 식민사학으로 유도하려는 의도를 내포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조선사편찬위원회는 이른바 '문화정치'를 표방한 사이토 마코토 총독의 발의로 정치 선전적 의도에 힙입어 계획되었다. 조선사편찬위원회는 1922년 12월 '조선사편찬위원회규정'에 의해 설치되어 중추원 내에 자리잡았다. 따라서 두 업무가 완전히 분리되지는 않았고 선임된 직원들은 중추원 촉탁의 자격으로 편찬위원회에 참여하였다.
2. 조선사편수회의 설치
2.1. 조선총독부의 구관제도 조사 사업
조선총독부의 구관제도 조사 사업은 일제가 한국을 강제적으로 병합하기 이전부터 시작되었다. 일제는 한국 침략과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한 이데올로기 체계 구축에 주력하였는데, 이 작업은 병합과 함께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조선총독부에 설치된 중추원은 1915년에 기존 참사관실에서 담당하던 구관 및 제도에 대한 조사 업무를 이관받아 수행하게 되었다. 중추원은 '조선의 舊慣 및 제도에 관한 사항'을 조사하고 사료를 수집하여 '朝鮮半島史' 편찬을 준비하였다.
일제는 '朝鮮半島史' 편찬이 '충량한 제국신민에 부끄럽지 않은 지위로 이끌 것을 기대'하고 '민심의 훈육에 도움이 되고자' 계획하였다. 즉, 역사서 편찬을 통한 역사 왜곡을 식민통치의 수단으로 활용하고자 하였다.
'朝鮮半島史' 편찬 사업은 1915년 박은식의 '韓國痛史'가 국내외로 급속히 퍼져나가자 본격 착수되었고, 1918년 중추원의 고유 업무가 되어 사업 기한의 제한이 없어졌다. 편찬에 이용된 자료는 다수가 외국의 기록에 상당부분 의존하고 있어 한국사의 주체적 서술에 한계가 있었다.
'朝鮮半島史' 편찬을 담당한 집필진은 이마니시 류, 오기야마 히데오, 스기모토 쇼우스케, 세노 우마쿠마였고, 이와 함께 학무국 편집과장인 오다 쇼고가 참여하였다. 그러나 자료 수집이 원활하지 않았고 편찬 담당자의 전출·사망 등으로 인해 상고 삼한~통일신라 부분과 조선시대 부분만이 탈고되었다.
2.2. 조선사 편찬 사업의 전개
1919년 3.1운동 이후, 독립운동 양상의 다양화에 따른 교육열 고조, 한국인의 자국사에 대한 관심, 특히 민족의 기원으로써 단군에 대한 관심에 대한 무마가 필요하였다. 또 당시 일본의 역사 연구자들은 한국의 통사를 서술할 사전지식과 한문 해독능력이 충분치 않았다. 이에 따라 사료집 형태인 '조선사'가 추진되었다. 겉으로는 "공평하고 학술적인 조선사 편찬"을 표방하였지만, 연구대상과 접근 가능한 사료를 규제해 식민사학으로 유도하려는 의도를 내포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조선사편찬위원회는 이른바 '문화정치'를 표방한 사이토 마코토(齋藤實) 총독의 발의로 정치 선전적 의도에 힙입어 계획되었다.
조선사편찬위원회는 1922년 12월 '조선사편찬위원회규정'에 의해 설치되어 중추원 내에 자리잡았다. 따라서 두 업무가 완전히 분리되지는 않았고 선임된 직원들은 중추원 촉탁의 자격으로 편찬위원회에 참여하였다. 조선사편찬위원회의 주요 목적은 역사편찬과 사료수집에 있었다. 이 중 특히 사료수집에 적극적으로 주력했지만 수집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사업의 진척이 지지부진하자 일제는 관제 반포로 위원회에 권위를 부여하여 일의 진척을 도모하고자 하였다. 그 결과 1925년 6월 6일 칙령 제218호 '조선사편수회관제'가 공포·시행되었고 총독 직할의 독립관청으로 조선사편수회가 설치되었다. 그리고 종래 중추원이 담당하던 사료의 수집·편찬 업무가 삭제되면서 조선사편수회가 이 업무를 전담하게 되었다.
3. 조선사편수회의 운영과 편찬 과정
3.1. 조직 구성과 편찬 체계
조선사편수회의 조직 구성과 편찬 체계이다. 조선사편수회는 조선총독의 관리에 속하며 회장은 정무총감이 겸임하였다. 위원과 고문은 한국인과 일본인 중에서 간선되었으며 조선총독의 요청에 의해 내각에서 임명하였다. 다수의 한국인이 고문과 위원으로 ...
참고 자료
朝鮮總督府朝鮮史編修會, 朝鮮史編修會事業槪要, 1938
朝鮮総督府中樞院, 朝鮮舊慣制度調査事業概要, 1938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친일반민족행위관계사료집 Ⅴ, 선인. 2008.
葛城末治, 「書評」, 靑丘學叢 26, 靑丘學會, 1936
中村榮孝, 「檀君朝鮮と李氏朝鮮」. 朝鮮及滿洲 301, 朝鮮及滿洲社, 1932
中村榮孝, 「內鮮一體論」, 朝鮮の敎育硏究 124, 朝鮮初等敎育硏究會, 1938
瀨野馬熊, 瀨野馬熊遺稿, 朝鮮印刷株式會社, 1936.
瀨野馬熊, 朝鮮史大系 近世史, 朝鮮史學會, 1927
小田省吾, 朝鮮史大系 上世史, 朝鮮史學會, 1927
강은영, 「黑板勝美의 한국사 인식과 조선총독부의 修史事業」, 역사학연구 66, 호남사학회, 2017
김성민, 1989, 「朝鮮史編修會의 組織과 運用」, 한국민족운동사연구 3, 한국민족운동사학회.
瀧澤規起, 「稻葉岩吉와 ‘滿鮮史’」, 한일관계사연구 19, 한일관계사학회, 2003
박걸순, 식민지 시기의 역사학과 역사인식, 경인문화사, 2004
박찬흥, 「『朝鮮史』(朝鮮史編修會 編)의 편찬 체제와 성격-제1권(朝鮮史料)을 중심으로-」,한국사학회, 2010
박찬흥, 「『조선사』 (조선사편수회 편) 제2편(신라통일시대)의 편찬 방식과 성격-『삼국사기』 「신라본기」와의 비교를 중심으로-」, 『先史와 古代』 45, 한국고대학회, 2015
박찬흥, 「滿鮮歷史地理調査部와 고대 `滿鮮歷史地理` 연구」, 역사와 담론 75, 호서사학회, 2015
심희찬, 「근대역사학과 식민주의 역사학의 거리:今西龍가 구축한 조선의 歷史像」, 韓國史學史學報 28, 한국사학사학회, 2013
桜沢亜伊, 「「満鮮史観」の再検討-「満鮮歴史地理調査部」とを中心として」, 現代社会文化研究 39, 新潟大学大学院現代社会文化研究科, 2007
이대화, 「조선구관제도조사사업개요-경성:조선총독부 중추원, 1938. 2-」, 한국민족운동사연구 2011
이성시, 「黑板勝美를 통해 본 식민지와 역사학」, 한국사학 23, 1999
이영, 「朝鮮史編修官 中村栄孝의 왜구 패러다임과 일본의 왜구 연구」, 일본학 38, 동국대 일본학연구소
장신, 2009, 「조선총독부의 朝鮮半島史 편찬사업연구」, 동북아역사논총 23, 동북아역사재단
정상우, 「稻葉岩吉의 ‘滿鮮史' 체계와 ‘朝鮮'의 재구성」, 歷史敎育 116, 歷史敎育硏究會, 2010
정상우, 「조선총독부의 『朝鮮史』 편찬 사업」, 서울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11
정상우, 「『朝鮮史』(朝鮮史編修會 간행)의 편찬과 사건 선별 기준에 대하여 -『조선사』 제4ㆍ5ㆍ6편을 중심으로-」, 사학연구 107, 한국사학회, 2012
정상우, 「식민지에서의 제국 일본의 역사편찬사업-조선·대만을중심으로-」,한국사연구한국사연구회, 2013
정상우, 「『朝鮮史』(朝鮮史編修會 간행) 편찬 사업 전후 일본인 연구자들의 갈등 양상과 새로운 연구자의 등장」, 사학연구 116, 한국사학회, 2014
정상우, 「『朝鮮史』(조선사편수회 간행) 편찬과 만선사의 상관성-『朝鮮史』 제3편을 중심으로」, 만주연구 24, 만주학회, 2017
교육부 홈페이지
https://www.moe.go.kr/main/mainSub06.do?m=06&s=moe
장지훈, “초등돌봄전담사 절반, 내일 ‘돌봄 파업’…학교 혼란 ‘불가피’”, 뉴스1, 2020. 11. 5. , https://www.news1.kr/articles/?4109725
지성배, “국가교육위원회는 자문기구...국민의힘 국가교육위원회 설치법안 발의”, 에듀인뉴스, 2021. 1. 25. http://www.edui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8378
권형진, “ ‘그린스마트 미래학교’ 사업 설명회... 노후 학교건물 개조”, 뉴스1 뉴스, 2021. 04. 21.
https://www.news1.kr/articles/?4281781
김창영, “내년 초중고 전면 무상교육... 교육부 2021년 76조 3,332억원 예산안 편성”, 서울경제,
2020. 09. 01, https://www.sedaily.com/NewsView/1Z7OQ62NL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