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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부상조직과특징"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개성상인과 송도사개치부법
1.1. 서론
1.2. 개성상인(開城商人 : 松商)
1.2.1. 형성배경
1.2.2. 상도
1.2.3. 몰락
1.3. 송도사개치부법(松都四介置簿法)
1.3.1. 개요 및 원리
1.3.2. 특징
1.3.3. 기장 예시
1.4. 결론
2. 개항기 조선의 변화
2.1. 대외 무역 관계
2.1.1. 곡물의 상품화와 수출의 확대
2.1.2. 면제품의 수입과 변화
2.1.3. 금의 유출과 문제점
2.2. 사회 경제의 변화
2.2.1. 개항장의 발전과 상품유통의 변동
2.2.2. 농촌 사회의 변화
2.2.3. 외국 자본의 침략
2.2.4. 국가 재정의 파탄
2.3. 변화에 대한 대처
2.3.1. 개항기 상권의 수호 움직임
2.3.2. 식산 흥업 운동
3. 참고 문헌
본문내용
1. 개성상인과 송도사개치부법
1.1. 서론
어느 사회의 경제적 시스템의 발달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측면을 다양하게 고찰해야 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가령, 그 시대에 주조된 화폐를 발굴하여 조사할 수 있고 조용조(租庸調)와 같은 세법, 조세체계를 연구할 수 있고 시장의 형태나 상인들의 활동들을 분석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본 논문에서는 그 동안 비중 있게 조명하지 않았던 회계제도에 대해서 간략하게 조명하고자 한다. 즉, 한 사회의 경제적 발달과정을 파악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측면들 가운데 회계제도를 통해서 경제활동을 조명하고 나아가 이를 통해 우리나라 고유의 회계제도라는 소중한 문화유산적 측면을 보존함과 동시에 자본주의 맹아론과 연결시켜 식민사관의 정체성론에 대응할 수 있는 반론 증거를 하나 더 확실하게 확보할 수 있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 목표이다."
1.2. 개성상인(開城商人 : 松商)
1.2.1. 형성배경
개성(開城)은 고려시대 475년간 수도였던 곳으로, 원래는 송악(松嶽)이었으나 고려 건국 이후 송도(松都)라 불리다가 개경(開京)으로 개칭되었다. 고려시대 개성은 상업도시로서 번영을 누렸다. 그 이유는 첫째, 개성이 예성강과 임진강을 끼고 있는 황해와 경기 내륙지방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충지였기 때문이다. 둘째, 개성에 이르는 해상통로의 예성강 하류에 위치한 벽란도(碧瀾島)라는 고려시대의 국제무역항이 대외무역의 근거지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즉, 개성은 역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 상업적인 기반이 튼튼한 곳이었다.
이러한 개성의 지리적 장점과 역사적 배경으로 인해 고려시대 정부는 행상을 통한 적극적인 유통정책을 추진하였다. 그 결과, 고려후기 개성의 상업은 국내외 교역에서 도성이 차지했던 위상과 비중에 걸맞게 상당한 세력을 가진 부상대고(富商大賈)가 형성되었다. 이들 부상대고는 이미 금융업을 할 수 있을 정도의 경제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고려가 망하고 조선왕조가 수립되면서 상황이 변화하였다. 한양 중심의 상업질서 편성과 민간상인에 의한 무역 금지 등 조선의 정책이 송상들에게 큰 타격을 주었다. 이러한 상황이 도리어 송상의 사회적 의식을 공고히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송상들은 자신들만의 협동체계를 더욱 확실히 하게 되었고, 개성출신의 사대부들은 관료진출을 포기하고 상업에 종사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상업의 문서화, 합리화, 상술의 고도화가 이뤄지면서 개성의 상업이 보다 견고해지게 되었다.
한편, 조선왕조 국가운영상의 필요에 따라 다시 송도에 4대전(四大廛)의 개시를 허용하게 됨에 따라 이를 중심으로 전국 상업계를 연결하는 행상조직으로 송상의 기반이 확고해졌다.
이처럼 개성상인, 즉 송상은 개성이라는 상업적 DNA가 강한 지역에 기반을 두고, 고려시대부터 발전해온 상업적 역량을 바탕으로 조선시대에 접어들면서 더욱 견고한 자신만의 경제적 기반을 구축할 수 있었다.
1.2.2. 상도
송상(松商)의 상도(商道)는 고려시대부터 존재했던 것으로, 개성상인이 지켜왔던 독특한 상인의 이념, 정신, 기질, 상술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상도는 상인이 상행위를 함에 있어서 지켜야 할 도리로서 상인의 행동양식이자 경영사상의 기본이 되는 것으로, 사회적 의식(상인정신, 상인덕목, 상술 등)과 경영제도(조직, 금융, 회계)로 구분할 수 있다.
개성상인의 상도는 고려시대부터 존재했던 것으로, 삼도훈(三道訓)인 의(義), 신(信), 실(實)을 그 핵심으로 삼고 있다. 송상은 신용을 중요시하고 근검절약하는 상인정신의 소유자였다. 그들은 시장적 기회의 포착과 창의성의 발휘에 능숙하고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의 상술을 지니고 있었다. 이러한 의리, 신용, 근검절약을 바탕으로 하는 합리적 경영을 추구하였음은 물론 단결력과 협동심을 발휘하여 상권의 유지, 확대를 기함으로써 송상이라는 독특한 지위를 확보하게 되었다.
송상의 상도는 상인정신 뿐만 아니라 상인덕목에 의해서도 표현된다. 고려조에서 상인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정신 자세를 표방하고 있는 것으로 송도의 시전상가에 영통(永通), 통상(通商), 광덕(廣德), 흥선(興善), 존신(存信), 행손(行遜), 효의(孝義), 자양(資養)이라는 방(榜)이 있었다. 이러한 정신자세는 훗날 송상이 진정한 상인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모태가 되었다.
송상의 상술 역시 그들의 상도를 잘 보여주는데, 크게 도고(都賈)상술과 관수(官需)상술 두 가지로 요약된다. 도고상술은 독점, 또는 매점매석에 의한 입도선매하는 방식으로, 전국의 상업계를 행상조직과 송방을 통한 정보수집으로 그 지방의 생산물을 매점하거나 독점하여 상업자본의 축적을 했다. 관수상술은 국가의 운영상 필요로 태종 9년 허용된 개성상가와 사대전을 활용해 관수용품과 관부경비를 제공하는 관상으로서의 조달청 기능을 수행하였다.
이처럼 개성상인의 상도는 단순히 기술적인 경영 기법이나 상술에 그치지 않고, 상인의 신념과 가치관을 내포하고 있는 상인정신의 발현이자, 그에 기반한 경영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상도는 개성상인의 상업 활동의 근간을 이루며, 그들만의 독특한 상인 정체성을 형성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1.2.3. 몰락
개성상인은 개항과 한일합병으로 인한 거대 일본자본의 침투와 시장의 독점지배 소멸로 성공적인 경영제도가 무력화됨에 따라 경영적자와 자본감소로 상도가 작동하지 않아 결국 몰락하게 되었다.
개항초기 사대전을 활용한 난전금지권과 관전대출의 특권제도 등이 폐지되었으며 외국자본이 무차별적으로 도입되어 토착민간자본을 쇠퇴시켰고 시전, 보부상, 지배인을 중심으로 한 상업활동 체계가 와해되었다. 특히 민족자본으로 설립된 대한천일은행마저 1906년 일본으로 지배권이 넘어가면서 민족자본이 형성되지 못하였고 1910년 12월 29일 공포된 조선회사령과 일본에 의한 인삼 수출권의 강제 박탈권은 송상에게 심각한 타격을 주게 된다.
개성상인의 독특한 회계제도인 사개치부법 또한 1905년 일본의 통감부가 설치되고 1906년 발표된 은행조례에 따라 각 금융기관이 6개월마다 영업보고서를 정부에 제출하고 신문에 대차대조표를 공고하도록 규정하면서 서양식 부기가 활성화 될 수 밖에 없었다. 이후 일본은 모든 금융기관과 한일은행, 농공은행, 지방금융조합도 서양부기를 도입하도록 하였다. 이와 같은 개성상인의 몰락은 외부충격에 의한 내부모순의 결과로 이해할 수 있는데, 자본주의를 빨리 수용하고 발전시킨 구미제국과 일본의 외부충격에 의해서 그 동안 개성상인의 발전 동인이었던 경영제도의 와해, 경쟁력상실의 결과인 것이다.
과거 폐쇄적이고 봉건사회 안에서 왕조에 의해 보호를 받았던 개성상인이 무한경쟁이라는 세계사적인 역사흐름이라는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것이다.
1.3. 송도사개치부법(松都四介置簿法)
1.3.1. 개요 및 원리
송도사개치부법은 개성상인들이 사용했던 독창적인 회계제도이다. 송도사개치부법의 개요 및 원리는 다음과 같다.
송도사개치부법은 회계 기록을 위해 사용된 독특한 시스템으로, 크게 봉차질(捧次秩), 급차질(給次秩), 이익(利益), 손해(損害)의 4가지 구성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 봉차질은 '받을 권리'로서 자산을 의미하며, 급차질은 '줄 의무'로 부채를 의미한다. 이익과 손해는 각각 수익과 비용을 나타낸다. 이처럼 송도사개치부법은 자산, 부채, 수익, 비용의 개념을 갖추고 있어 복식부기의 특성을 보이고 있다.
또한 송도사개치부법은 의인화된 계정을 활용하여 거래를 기록하는 특징이 있다. 모든 거래에는 주체인 사람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에 실체가 아닌 사람으로 가정하여 권리의무 관계를 기록하였다. 예를 들어 상품이 '자삼질', '포속질' 등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러한 송도사개치부법의 특징은 고려시대 개성상인들의 독창적인 회계사상이 반영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상업 활동에서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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